시리즈 백합근친



식객으로써 거주하게 된 이후.


프레데리카는 나와 잠시도 쉬지 않고 붙어있으려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종일 곁에 나를 두고 사사건건 관여했다.  


업무를 볼 때에도.


"오늘은 업무가 많으니 옆에서 다과라도 하실래요?"


끄덕끄덕.



밥을 먹을 때에도.


"릴리가 있어서 그런지 요리사가 힘을 좀 썼나보네요. 맛있죠? 자, 아 하세요."


냠냠.



목욕을 할 때에도.


"등 씻겨드릴게요. 동생이랑 같이 목욕하는 게 소원이었어요."


"호,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직접 편지에 '사이좋게 지내라'고 적긴 했지만, 이렇게나 달라붙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자신 앞에서는 전혀 이런 흐뜨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예전이었다면 경을 쳤을 일이었다. 귀족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매달리는 모습을 감히 보이지 말라고. 


그러나 지금의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프레데리카가 나를 이렇게까지 집착적으로 대하는 이유의 일부에는 과거의 내가 있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공작가의 후계로써 항상 모범을 보여라.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마라.'


'입학 수석을 했다고? 응당 그래야만 하는 일이다. 당연한 일에 칭찬이 필요한가?'


'성과를 보여라. 남들보다 우월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공작가를 이어나갈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아주 약간의 느슨함도 허용 할 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지금의 나를 이렇게 집착하는 게.


답답한 공작가에서 유일하게 마음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사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얼굴이 거의 쌍둥이처럼 닮아있었기에 더 친밀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얇은 네글리제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녹안의 소녀. 


거울을 보는 듯 비슷한 차림으로 바라보는 나. 



"오늘도 같이 잘까요? 자, 어서 들어오세요."


끄덕끄덕.



프레데리카의 새로운 측면을 바라보는 감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대하던 어미의 모습이 조금씩 보였다.


딸에게서 아내의 모습을 찾아내는 건 기묘한 느낌이었다. 



"무얼 그리 깊게 생각하나요? 어서 잠자리에 들지 않고. 혹시 전에 살던 곳이랑 달라서 잠이 안 오는 건가요?"


도리도리.


"잠옷이 몸에 맞지 않는다거나."


도리도리.


"혹시 아까 전에 마신 차 때문에 화장실을 가고 싶다거나."


도리도리.



단순히 잠옷을 입은 딸 옆에서 누워있는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가끔 그런 적이 있긴 했지만. 


이미 다 커서 성인이 다 된 딸 옆에서 같이 자는 상황에 불편한 기분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자, 그러면 이야기라도 들려드릴게요."


도리도리.


"옛날옛적에 북극곰 한 마리가 살았는데..."



천천히 이야기를 들려주던 딸에게서 죽어버린 아내가 떠올랐다.


그녀가 딸아이의 옆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때도 있었지.


말조차 떼지 못한 아이였을 때라 기억은 못하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핏줄은 속이지 못하는지 은연중에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옛날옛적에 기후변화로 살 곳을 잃어버린 북극곰 한 마리가 있었는데...커어어...'


'...엄마가 아기보다 먼저 잠들어버리면 어떡하나?'



천천히 이야기를 꺼내다가 딸보다 자기가 먼저 잠에 들어버리는 모습까지 너무나 닮아버렸다. 


자기도 모르게 눈이 감겨버린 귀여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커어어..."



프레데리카의 이마에 작게 입을 맞추고, 이제는 작아져버린 팔로 낑낑대며 딸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때도 이렇게 이불을 덮어줬었지. 


편안한 표정으로 누운 프레데리카의 품을 슬그머니 빠져나와 복도로 나왔다.


이제 나의 자유시간이 온 것이었다. 


.


주방에서 한가롭게 차를 마시던 때. 


애타게 나를 찾아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깬 듯 잠에 푹 절어있다 일어났다는 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어, 어디갔어요? 릴리?"



딸아이를 재움으로써 간신히 얻어낸 짧은 자유시간은 순식간에 날아가버렸다.


분명 나와 비슷한 크기의 베개를 안겨주고 나왔건만 뭐가 저리 예민한건지.


다급한 발소리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릴리 어디에요?"


"릴리?"


"저만 두고 어디로 가버린 건 아니죠?"


"버리지 말아줘요 제발..."



적당히 찾아보다가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프레데리카의 상태가 조금 심각해보였다. 


마치 자신이 딸아이를 버리고 도망친 것 같은 모습이 아닌가.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앞으로 나왔다. 



"잠시 화장실."


"다음에는 저도 깨워서 꼭 같이 가도록 해요? 저택의 밤은 위험하니까요."



화장실 가고 싶을 때마다 깨우라는 소리야?


내가 아무리 어려졌지만, 기저귀조차 떼지 못할 정도로 어려진 건 아니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아무래도 그건 조금..."


"안돼요. 릴리가 눈 앞에 있지 않으면 불안하단 말이에요. 언니인 제가 동생을 지키는 건 당연한 일 아니에요?"



프레데리카의 빨갛게 부어오른 눈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짙은 녹빛 구슬에는 이전에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감정이 담겨있었다. 


집착. 


더 심해지기 전에 빨리 저주를 풀어야 했다. 빨리 관계를 끊어서 원래대로 되돌려야 했다.


프레데리카의 얼굴은 오늘따라 유독 그늘이 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