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전편




학교가 끝나고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평소와는 다르게 설레는 마음으로 지하철을 탔습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아빠를 만나러 가는 날입니다.

저번 달에도 만났었고 저저번 달에도 만났지만, 아빠를 만나는 건 언제나 즐겁습니다.

 

 

우리 집은 다른 집과는 다르게 엄마랑 아빠가 따로 떨어져서 삽니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으로는 엄마 아빠는 같이 붙어살아야 하는 게 맞는 것인데. 참 이상하죠? 두 분이 서로 사랑해서 제가 태어난 것일 텐데, 이제는 두 분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 걸까요?

 

 

제가 사는 동네에서 지하철을 타고 5정거장을 가면 저희 아빠가 사시는 동네가 나옵니다. 이크! 말하는 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내리지 못할 뻔 했네요. 저번 달에도 정신을 놓고 딴생각하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다행히 놓치지 않았네요.

 

 

엄마랑 같이 간다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 말이죠. 아빠를 만나러 가는 날이 되면 엄마한테도 항상 같이 가자고 말하지만, 엄마는 늘 절대 안 간다며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답니다. 

 

 

아빠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한 걸까요? 그래서 엄마는 아빠를 만나기 싫어하는 걸까요? 제가 너무 궁금한 나머지 이 질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엄마는 자세한 거는 안 알려주셨지만, 아빠가 싫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엄마는 아직도 아빠를 사랑한다는 사실을요.

 

 

엄마의 핸드폰 배경 화면은 아빠 사진입니다. 그리고 엄마는 매일 밤 자기 전에 그 사진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흐느끼십니다. 누군가를 보면서,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정말로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동안 아빠가 사시는 집에 도착했습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건물, 마인크래프트를 처음 하는 사람이 지은 거처럼 생긴 이 건물에 저희 아빠가 살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탕탕탕 소리가 울리는 철제 계단을 올라갑니다. 그렇게 삼 층까지 올라간 후 복도 끝까지 걸어갑니다. 이 복도 맨 끝에 있는 집이 저희 아빠가 사시는 곳입니다. 문 앞까지 도착한 후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제가 초인종을 누르고 난 후, 문 뒤로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습니다.

 

 

“ 우리 딸 왔구나! 어서 들어와! ”

 

 

아빠는 냉장고에서 주스 하나를 꺼내서 식탁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 요즘 날씨가 많이 더워졌지? 시원하게 들이켜, ”

 

 

아빠가 주신 주스를 단번에 들이켰습니다. 오는 길에 목이 정말 말랐는데, 역시 저희 아빠입니다. 제가 원샷으로 주스 통을 비워내자, 아빠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습니다.

 

 

“ 천천히 마셔 체하겠다. 집에서 엄마가 이런 거 안주니? ”

 

“ 아니에요, 목이 너무 말라서 그랬어요. 엄마도 이런 거 자주 사주세요. ”

 

 

오해하시는 아빠의 모습이 웃겨서 그런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빠도 웃는 저의 모습을 보시자, 자기가 오해한 걸 알았는지 같이 웃으셨습니다.

 

 

“ 아니면 다행이고. 그래 요즘 학교생활은 어떠니? 아직도 옆자리 짝꿍이 귀찮게 굴어? ”

 

“ 아니요, 이제 괜찮아요. 저번 주에 자리 바꿨거든요. 근데 아빠 보여드릴 게 있어요. ”

 

“ 뭔데? 저번에 보여준 찰흙 인형 다 만들었니? 그거 보여주려고? ”

 

 

찰흙 인형이라. 멋들어지게 만들어서 아빠에게 자랑하고 싶었지만, 지금 그거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메고 왔던 가방에서 유인물 한 장을 꺼내서 아빠에게 보여드렸습니다.

 

 

“ 부모님과 함께하는 1박 2일 캠프라... ”

 

“ 엄마랑 같이 여기 가면 안 돼요? ”

 

 

그렇습니다. 오늘 제가 준비한 작전입니다. 두 분을 꼬드겨 서로 만나게 하고, 화해시키는 자리를 만들어 두 분이 다시 예전처럼 한 지붕 아래에서 사시는걸 만드는 작전입니다. 엄마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어차피 엄마는 무조건 가신다고 하실 겁니다.

 

 

“ 가면 안 돼요? 저희 반 애들 다 온다고 했는데. 저만 안 가면 이상하잖아요. ”

 

 

아빠는 유인물과 제 얼굴을 번갈아 가며 보시며 오랫동안 고민을 하시더니, 흐리고 어두운 표정으로 제게 말했습니다. 

 

 

“ 혹시 이거, 엄마가 시켰니? 아빠한테 여기에 오라고 말이야? ”

 

“ 아니요, 엄마는 이거 모르셔요. 아빠한테 처음 말하는 거예요. 안 가실 거예요? ”

 

 

아빠는 내 질문에 오랫동안 대답을 안 하시더니, 엷게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 미안하다, 여기는 못 갈 거 같다. 그리고 엄마도 여기는 못 갈 거야.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렴. ”

 

“ 왜요? 오시면 안 돼요? 이참에 오랜만에 엄마도 만나면 좋은 거 아니에요? ”

 

“ 그거 때문이야, 엄마 때문에. 딴 건 다 되는데 그것 때문에 안되는구나. ”

 

 

엄마 때문이라니,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요. 오랜만에 아빠를 만나는 자리에서 이러면 안 되는걸 알지만,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 그냥 두 분이 화해하시라고요! 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

 

 

여기서라도 그만둬야 했지만, 한번 끓어오른 제 마음을 식히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목소리를 더욱 높여가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 학교에서 선생님이 그랬어요! 친구랑 크게 싸워도 다시 화해할 줄 알아야 한다고! 서로 입 꾹 다물고 사는 건, 보기 안 좋다고! 화해를 할 줄 알아야 진정한 어른이 되는 거라고! ”

 

 

제가 건물이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말하자 아빠께서는 매우 놀라셨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놀라신 이유는, 제 큰 목소리에 놀라신 게 아니라. 제가 화를 내는 모습을 처음 봐서 그런 거일 겁니다. 저는 아빠 앞에서는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었고, 또 그래 왔기 때문이지요. 

 

 

아빠는 다시 냉장고에서 주스 하나를 꺼내서 제 앞에 놓으셨습니다. 또 한 번 시원한 주스가 제 속에 들어오니, 끓어 올랐던 제 마음도 조금은 식혀지는 거 같았습니다. 아빠는 주스를 마시는 제 모습을 보시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 좀 더 크면 말해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아빠가 엄마를 안 만나는 이유는 좀 복잡한 문제가 있단다. 혹시 접근금지라고 아니? ”

 

“ 접근금지요? 아니요, 처음 듣는 말이에요. 학교에서도 배운 적 없어요. ”

 

“ 음...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나쁜 사람이 나쁜 짓 하지 못하게 가까이 못 오게 하는 거란다. ” 

 

 

저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나쁜 사람이라니, 엄마 아빠 두 분 다 착하고 좋은 사람인데 말이죠. 그럼 아빠가 나쁜 사람일까요? 아빠에게 물어봤습니다.

 

 

“ 아니, 나쁜 사람은 엄마란다. 엄마는 아빠한테 가까이 오지 못해. ”

 

“ 엄마가 나쁜 사람이라고요? 엄마가 뭘 했는데요? ”

 

“ 음... 그러니까 말이야. 관심이 너무 많다고 해야 하나. 아 그렇지! 학교에서 선생님이 너만 쳐다보고, 근처에서 얼쩡거리면 기분이 어떨 거 같니? ”

 

“ 으... 기분 나쁠 거 같아요. ”

 

“ 문제를 풀고 있는데 뒤에 서서 너만 내려다본다면? ”

 

“ 신경 쓰여서 집중도 안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거 같아요. ”

 

“ 바로 그거야. 엄마가 나한테 그런 식으로 행동했단다. ”

 

“ 그렇지만 엄마는 아빠를 사랑해서 그런 거잖아요. ”

 

“ 그 선생님도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 일걸? ”

 

 

알 거 같으면서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해서 그런 건데, 사랑 때문에 멀어진다니. 수학 시험 마지막 문제를 푸는듯한 기분이었습니다. 

 

 

“ 그래도 화해해 봐요. 같이 모여서 갈등을 풀어봐요. 엄마는 아직도 아빠를 사랑해요. 책에서 읽었었는데, 사랑의 힘은 위대하데요. 엄마가 달라질 수도 있잖아요 ”

 

 

하지만 아빠는 표정에 아무런 변화 없이 말했습니다.

 

 

“ 아니,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야. 나도 관계 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봤지만, 오히려 더 심해졌단다. 너 팔에 있는 그 흉터, 뭐 때문에 생긴 줄 아니? ”

 

 

제 팔에는 큰 흉터가 있습니다. 남에게는 보여주기 싫어서 토시를 하고 다니며 숨기고 다니는데, 이 흉터는 엄마가 말하길 제가 어릴 때 계단에서 굴러 넘어져서 생겼다고 했었는데. 다른 뭔가 일이 있는 걸까요? 

 

 

“ 역시 모르는구나. 엄마가 어떻게 둘러댔는지는 모르지만, 그 상처. 엄마가 그렇게 한 거란다. ”

 

“ 엄마가 제 팔을 이렇게 만들었다고요? ”

 

“ 나는 원래 엄마를 떠나려고 했어, 하지만 네가 생겨 버렸지. 바보 같았지만, 그래도 한때 내가 사랑했었던 사람이라 나는 딱 한 번만 더 믿어보자는 생각으로 곁에 남았지. 나는 네가 태어나면 달라질 줄 알았어. 하지만, 아니더라고. ”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엄마가 제 팔을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니. 그 상냥하고 착하신 엄마가 저한테 이런 짓을 했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 결국은 달라지지 않는 변함없는 모습에 실망해버린 나는, 다시 엄마를 떠나려고 했는데 말이야. 내가 떠나려고 하자, 그때 당시 아기였던 너를 인질로 잡고 부엌칼로 너의 팔을 그으며 나를 붙잡으려 하더라고. 내가 떠나면 이 아이도 죽는다고 말이야. ”

 

 

“ 그만! 그만 말해주세요! ”

 

 

저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상냥하시고 착한 엄마의 모습을 더 이상 헤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 많이 충격적으로 들리겠지... 그래서 네가 어른이 됐을 때 말하려 했는데... 미안하다, 말할 수밖에 없었어. 그날 이후로 나랑 엄마가 완전히 갈라서게 된 거란다. ”

 

 

아빠는 또 냉장고에서 주스 한 병을 꺼내서 제 앞에 놓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주스를 마시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알 수 없는 검은 무언가가 제 가슴속과 배 속을 가득 채운 기분이었습니다.

 

 

“ 오늘 들은 이야기 때문에 많이 힘드니? 힘들면 집에 가도 된단다. ”

 

“ 저 이제 아빠랑 같이 살면 안 돼요? ”

 

 

엄마의 말도 들어봐야 하는 게 맞지만, 오늘 들은 이야기 때문인지 엄마를 보는 게 두려워졌습니다. 이제 엄마를 보면 예전처럼 대하는 것이 힘들지도 모릅니다. 

 

 

“ 아니, 안된단다. 집으로 가렴. 미안하다. ”

 

“ 왜요? 엄마한테는 제가 잘 말할게요. ”

 

“ 내가 너를 충분히 데리고 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양육권을 포기했는지 아니? 내가 왜 위험한 그 새끼 곁에 너를 두는지 말이야. 너는 확실히 나를 닮았지만,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건지 너의 엄마의 모습도 닮았어. ”

 

 

거울을 보지 못해서 정확하지는 않으나, 저는 지금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일 겁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저의 모습보다 아빠의 모습이 더 힘들어 보일 겁니다. 아빠는 바들거리는 입술로 제게 말했습니다.

 

 

“ 그 새끼의 모습이 너한테서 가끔 겹쳐 보인다고. 그럴 때마다 그 새끼 생각이 나버려. 미안하다, 지금 너무 힘들다. 이제 그만 집으로 가렴. ”

 

 

아빠는 말을 마치시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방구석으로 가셔서 바닥에 앉아 무릎을 껴안으시고는 무릎에 얼굴을 묻으셨습니다. 그러고는 아까 바들거리는 입술처럼 이번에는 온몸이 바들거리시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보는 아빠의 모습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저는 아빠의 손이라도 잡아드리고 했지만, 아빠가 했던 말을 유추해보면 저의 모습이 무서워서 그러시는 거 같아. 이만 집 밖으로 나가는 게 맞는 거 같았습니다. 아빠에게 “그럼 다음 달에 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밖을 나가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밖을 나가려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 아니, 다음 달에 오지 마. 다다음에도. 3달 뒤에도. ”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말씀을 하셔서 정확한 발음은 아니었지만, 확실하게 알아먹었습니다. 그럼 언제 다시 오라는 걸까요?

 

 

“ 미안하다. 나도 정확히 모르겠어. 나중에 내가 따로 연락할게. 그때까지만 기다려줘. 지금 정리해야 할게 많아. ”

 

“ 아빠, 대체 왜 그러세요? 이젠 저도 싫으신 거예요? ”

 

 

아빠는 엄마가 싫다고 하셨는데, 그럼 엄마를 닮은 저도 싫어하는 걸까요?

 

 

“ 봐버렸어. ”

 

“ 네? 뭘 보셨다는 건데요?

 

“ 아까 네가 나한테 크게 소리 질렀을 때, 그 모습을 봐버렸어. ”

 

“ 무슨 모습이요? ”

 

“ 그때 그 새끼가 나한테 했었던 그... 아아악!!! 제발 부탁이야! 나가!!!! ”

 

 

아빠는 아까 제가 소리 질렀던 거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공포영화에서나 볼법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아빠의 집을 뛰쳐나왔고. 항상 조심스럽게 내려갔던 철제 계단을 쾅쾅쾅 소리가 울리게 내려갔습니다.

 

 

그러고는 빨간 벽돌집이 안보일 때까지 한참을 뛰어 달렸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 뒤를 돌아보고 빨간 벽돌집이 안 보이는 걸 보자 그제야 마음이 진정되는 거 같았습니다.

 

 

오늘 아빠의 모습은 평소와는 아주 많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아빠가 하신 말씀이 다 맞는 거라면, 엄마는 제가 평소 알던 모습과는 다른, 정반대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제가 그동안 알던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겁니다.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오늘 본 아빠의 표정은 진실만을 말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집 가는 지하철을 타면서 생각했습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말해야 할까요? 

아니면 비밀로 하고 그냥 평소처럼 행동해야 할까요?

 

투표결과에 따라서 재결합엔딩 파국엔딩으로 갈릴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