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딸깍 딸깍


공허한 모니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몇번 클릭해 본다. 엄마가 있었을 때는 마우스 클릭 소리만 내도 혼났는데 이젠 날 혼낼 엄마도 없었다. 고등학생땐 그렇게 스트레스를 주던 엄마였는데, 막상 사라지니 마음의 한자리가 비어진 것 같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뚤린 느낌.


검은 모니터에 비치는 내 모습은 피폐했다. 남자였을 때는 단 한번도 생긴적 없던 다크서클이 눈 밑에 진하게 박혀있었고 대충 말리다 포기한 검은 머리카락이 축축한 물기외 함께 귀 뒤에서 등에 늘어져 있었다. 기다란 속눈썹은 작은 얼굴에서 그 존재감을 더 과시하고 있었다.


헐렁한 반팔티에 잠옷바지를 입고 게이밍 의자에 쪼그려 앉으니 무릎이 가슴을 짓눌렀다. 가슴이 뭔가 웅웅 거리는 느낌이었다.


어딘가 망가진듯한 머리카락 뒤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각같은 얼굴이 박혀있었다. 날렵한 턱선에 날카로운 눈매, 커다란 눈. 그리고 그 눈 속의 눈동자는 죽어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허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두 눈동자에는 슬픔과 비애가 담겨 있었다.


위이잉!


“흐엑!!”


예고도 없이 갑자기 켜진 컴퓨터에 깜짝 놀라 비명을 질러 버렸다. 


“우으….”


별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놀란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겨우 이정도로 놀라다니, 마치 펄럭이는 이불을 보고 귀신이라 생각해 도망쳐버린 느낌이다. 상태가 좋지 않으니 별에 별거에 다 반응하는 것 같다.


컴퓨터는 오랜 로딩시간을 거쳐 켜지게 되었다. 그리고 켜지자 마자 보이는 익숙한 창,


“요즘 엣지를 누가 쓰냐구우…”


엣지를 기본 인터페이스로 쓰라는 문구였다. 요즘 세상에 크롬을 안쓰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그래, 적어도 MZ는 아닐거다. 엣지 광고를 빠르게 건너뛰기 한 후 바탕화면에 깔려 있는 엣지를 완전 삭제를 하니 한결 편해진 바탕화면이었다.


별 생각 없이 켰던 컴퓨터였기 때문에 뭘 할지 고민이었지만 드물게 들어가던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았다.


“으음….. 당신은 간지 9대 천황을 마주쳤습니다? 이게 뭔…..”


첫 글을 보고 역시 커뮤니티는 하는게 아니란 것을 느끼고 빠르게 뒤로가기를 눌렀다. 신고를 누르고 나오는 거였는데 그럴 시간을 쏟는 것 조차 아까운 글이었다.


“.....게임이나 하자.”


커뮤니티에서 몇 개의 글들을 더 찾아보다 꺼버렸다. 남자일 때는 ㄹㅇㅋㅋ로 넘어 갈 법한 글들이 여자가 되니 뭔가 뭔가 했다. 마치 남자였을 때 여사친이 Bl물을 보여줬을 때의 기분이었다.


더러웠다.


크롬창은 치즈찍찍을 키고 옆의 모니터로 넘겼다. 노란 배경의 치즈를 뒤집어쓴 쥐가 나와 반겨 주었다. 쨍한 노란색 인터페이스의 창 안에는 스트리머들이 게임을 하는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뭐하지? 배그?”


솔직히 이런 기분으로 롤을 하자니 점수를 떨어뜨리는 격만 된다. 어차피 아이언이라 떨어트릴 점수가 어디있겠냐만은, 아이언에서도 나름의 자존심은 존재하는 법이다.


그리고 요즘 다시 역주행하는 배그를 하는 것도 재미있어 보였다. 예전에 다이아까지 찍은 적이 있던 배그는 에임은 많이 상했을 지라도 그 센스는 어디 가지 않았을 것이다.


“배그….. 아빠가 추천해 주셨었는데…..”


처음 컴퓨터를 사러갔을 때가 기억난다. 초등학교 6학년때인가? 친구가 내게 마크를 알려주고 집에서 죽어가던 컴퓨터로 마크를 깔고 같이 게임을 했던게 기억난다. 


그때 친구가 추천해줬던 게임은 고급시계였고, 아빠에게 그걸 말하니 ‘때가 되었군.’ 이란 말과 함께 같이 컴퓨터를 사러가자 말씀하셨었다. 


그때까지 난 컴퓨터하면 삼성밖에 몰랐지만 처음으로 용산이란 곳을 가보게 되었었다. 용산에 가서 여러 집을 전전하며 아빠와 함께 컴퓨터 부품을 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었다.


결국 100만원대에 모니터와 함께 당시 최고 사양이었던 1060과 i7을 탑재한 컴퓨터를 샀었었다.


그때 아빠에게 ‘저사양을 써도 괜찮은데, 좋은 걸 사요?’라고 물어 봤었다. 그때의 나는 어차피 오버워치만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높은 사양의 컴퓨터를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때 아빠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다~ 이유가 있는 거란다 아들아.”


몇년이 지난 후, 아빠의 선경지명은 정확히 들어 맞았었고 지금도 같은 사양의 컴퓨터를 쓰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할때마다 아빠는 자길 되게 자랑스러워 했는데, 오늘따라 자부심 가득한 표정의 아빠가 그리워졌다.


“우으…..”


아무튼, 이렇게 추억이 담긴 배그는 이번 패치로 채팅까지 가능하게 되었는데, 배그에서 채팅으로 상대방을 농락하는게 그렇게 스트리머들 사이에서 유행이더라.


딸깍 딸깍


의미없는 클릭을 몇 번했다. 생각에 잠길 때면 마우스를 클릭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 습관도 엄마가 진짜 싫어하셨었는데…..


‘왜 모든게 다 트리거냐고…’ 


멍해지는 기분에 다시 슬퍼질 것 같아 치즈찍찍에서 배그 스트리머들을 둘러보았다.


“어, 킬내기?”


킬내기는 오래전 우끼끼 대륙의 배그 스트리머들이 즐겨하던 콘텐츠였다. 4대 4 혹은 2대 2, 어떨 때는 1대 1로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 누가 먼저 정해진 킬 목표를 달성하는지, 혹은 누가 제한 시간 내에 더 많은 킬을 하는지를 겨루는 놀이였다.


“치즈찍찍에서 킬내기라니…”


우끼끼 대륙에서만 하던 음지의 놀이가 치즈찍찍이라는 순수한 신생 플랫폼에서 이루어 지고 있으니 뭔가 순수함을 잃은 기분이었다.


2대 2로 킬내기를 하고 있는 스트리머들은 유명 전프로 두명과 마크를 주로 하던 여자 스트리머 둘로 성비 1 대 1의 킬내기였다. 심지어 전프로 두 분 중 한 분은 내가 처음 배그를 입문 했을 때 강의를 찍어 올리시던 어떻게 보면 내 스승님이셨다. 물론 스승님은 제자가 누군지 모르시겠지만 말이다.


옆에서 치열한 킬내기가 진행되는 동안, 로딩이 완료되었다.


[배그 시작 브금]


스피커에서 웅장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와… 오랜만이네.”


오랜만에 키는 배그에서 옛적에 들었던 가슴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게임이 이렇게 익숙해 지기 전, 손에 땀을 쥐게하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었다.


그가 떠올랐다. 나와 같은 나이때의 남자들은 이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이다.


홈에는 초창기 유저들만 얻을 수 있었던 검은색 롱코트 스킨을 한 캐릭터가 눈 앞에 나타났다. 번쩍번쩍 거리며 이상한 춤을 추는 지금의 배그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리움 가득한 커마다.


“일단 훈련장 부터 가보자.”


자연스럽ㅅ게 훈련장을 클릭하 손풀기를 시작한다. 노 파츠 M4 반동을 잡는 것 부터 시작해 베릴, 노파츠, 8배율 스르륵, 레드도트를 단 벡터까지. 간단히 손을 풀어 본다.


퍽! 퍽! 퍽!


소음기를 장착한 스르륵에서는 정겨운 둔탁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흐흫, 좋아!”


퍼버벅!


탬포를 올려 쏴보지만 깔끔한 탄착군이 만들어 진다. 보정기에 칙패드를 단 스르륵보다 좋은 탄착군이다.


펑펑펑펑!


몇발을 더 쏴보니 이전과 느낌이 달라진 것만 같았다. 분명 남자일 때는 총의 반동에 내가 끌려다는 관계였지만 지금은 총이 나를 따라오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마치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다.


“근데 진짜 잘 맞는다, Ts 버픈가?”


전성기 시절 반동 제어보다 훨씬 깔끔한 수평, 수직 반동 제어에 놀랐다. 여자로 변하면 이런 미세한 변화도 생긴다는 것에 놀라웠다.


“원래는 감도도 다시 맞출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겠구만!”


평소 하던 세팅 그대로 사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걸 느끼고 훈련장에서 나왔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잘 맞아 바꾸면 안됬다.


“으윽, 어깨 아파…..”


훈련장에서 나와 로딩창에서 대기를 타던 도중, 평소에도 아파 오던 어깨가 가슴이 달려서 그런지 더 뻐근해 져왔다. 


‘이게 여자들의 고충인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잠시 어깨도 휴식을 취하고 나도 좀 쉴 겸, 아까 전에 이어가던 킬내기를 다시 시청하기 시작했다.


[형님들~ 저기 지금 몇 킬이죠?]


[아~ 63 킬이라구요? ㅈ밥이네, 작은 별이도 퇴물 다 되었구만.]


-짤랑

<라고 62킬이 말합니다>


[펑~ 이제 65킬이죠?]


정확한 타이밍에 던져진 수류탄은 능선에서 존버를 타던 스쿼드의 머리 위로 정확히 안착했다. 순식간에 3킬을 따낸 리와인드였다.


“역시 전프로는 전프로네.”


깔끔한 예측 각폭과 리드샷, 그리고 운영 능력. 아직까지 프로 단계에서 먹힐 만한 실력이다. 


[쾅!]


어느새 치킨을 먹고 다음판을 진행하는 리와인드를 보며 나도 같이 큐를 돌리기 시작했다.


* * *


배그에서 가장 재미있는 맵은 뭘까? 배그 프로씬을 좋아하며 손에 땀을 쥐는 경기를 좋아하는 나는 당연 에란겔과 미라마를 뽑을 것이다.


커다란 지형과 거대한 능선은 긴 스나이퍼 싸움을 볼 수 있게 만들고 곳곳에 있는 시가지들은 근접과 초근접 교전의 재미를 늘려 준다. 


물론 그만큼 플레이 시간은 늘어가지만 플레이 시간이 긴만큼 그 시간이 가는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다. 


곳곳에서 게릴라전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작은 맵들보다 기다란 스나이퍼 싸움이 더 많이 발생하는 커다란 맵을 좋아하는 이유기도 했다.


그리고 커다란 수송기 안, 밖의 보이는 풍경은 커다란 초원과 산지역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군사기지. 


배그의 초창기 맵, 에란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