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우리는 가난한 사랑을 했다. 


남들 다 가는 비싼 오마카세도 한번 못 갔고, 싼 값의 가성비 좋은 무한리필 식당은 우리의 단골집 이었다. 

호캉스는 상상도 할 수 없었고, 둘이서 겨우 잘만한 좁은 나의 집에서 같이 얘기 하며 휴식을 했다. 


"왜 그래 오빠?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좋아서 계속 쳐다봤지."

"아 뭐야 그게~~"


...그래도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나와 그녀는 매일 같이 밤이 되면 집 근처 벤치에 앉아 달과 별을 바라봤다. 

나에게는 걸리적거리기만 한 이 집이, 그녀에게 있어선 근처에서 달과 별이 잘 보였기에, 그녀는 이 집을 좋아했다.

달빛이 몸에 스며들고, 별이 눈에 담길 때, 우린 사랑을 얘기 했다. 


작지만 빛나는 별 하나에 나의 이름을, 

크고 빛나는 별 하나에 그녀의 이름을, 

그리고 가장 크고 빛나는 달에게는 우리의 모습을 새겼다.


"참 예쁘다, 그치?"

"....그러게."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가난한 사랑은 나에게 있어서 부족했다. 

좀 더 그녀와 좋은 추억을 나누고, 좀 더 좋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다.

...가난한 사랑 따위는 지속되기 어려울 거다.


그렇게 나는 가난한 사랑에 묶여있는 나를 떨쳐내고, 풍족한 사랑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풍족한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별 다른 준비가 필요 없었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것. 그것이 전부라 생각했다. 즉, 돈을 많이 버는 것.

그렇기에 나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시작했다.


"응? 당분간 일을 좀 많이 할 것 같다고? 괜찮겠어?"

"....괜찮아." 


일을 계속했다. 밤낮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기 위해 일했다. 


"어 오빠. 뭐? 오늘도 못 만날 것 같아? 많이 바빠?"

"....어 좀 바쁘네 계속."

"알았어 그럼. 너무 고생 하지마~"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녀와의 만남도 줄어들었다.

원래 같았으면 매일 만났겠지만,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또 돈을 아끼기 위해 그녀와의 만남을 줄여나갔다.


그렇게 나는 계속, 풍족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짧은 기간 동안 정말 많은 돈을 벌었다. 나도 나 자신이 어떻게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그렇기에 나는 그 동안 노력했던 결과를 보여줄 때가 왔다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그녀와 만나는 것 같다. 준비가 다 된 것 같다.


나는 풍족한 사랑을 한다.


무한리필 대신에 오마카세 식당을 그녀와 함께 가서 먹었고,

편하다는 핑계로 매일 같은 옷을 입던 그녀를 위해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줬다.

그리고, 매일 보던 달빛과 별빛 대신에 특급 호텔에서 보이는 도시의 야경을 그녀와 바라봤다.


"오빠, 오랜만에 만나서 좋긴 한데. 오늘 이래저래 비싼데 많이 다닌 것 같은데? 괜찮은 거 맞아?"

"괜찮아, 이럴려고 돈 번거야. 넌 그냥 즐기면 돼."

"....응 알았어."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마음 한구석이 부족한 이 느낌은 뭘까.


이것은 위화감일까? 

지금 하고 있는 짓은 단순 겉치레일까? 

그간 만나지 못해 부족해진 사랑을 물질로 채우려고 하는 것 일까?

나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착각이라 단정했다. 지금 내가 하는 사랑은 분명 가장 완벽한 사랑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 일까. 

그녀가 이전보다 행복한 표정을 짓지 않는 것은,

묘하게 느껴지는 그녀와의 거리감은,

그녀에게서 더 이상 나를 향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오빠 오늘 오랜만에 봐서 좋았어. 잘 가."

"응, 그래."


그 일이 있고 난 후, 며칠이 지났다. 여전히 그녀와 만나고는 있지만, 예전보다 행복하지는 않다.

나는 다시 사랑을 채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지만, 가까워지지 못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내가 나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녀에게 물질적인 풍족감을 줬을 때 부터? 

우리가 가난한 사랑을 했을 때 부터? 혹은.... 우리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이런, 잡생각이 많아진다. 이렇게 계속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 돈으로 그녀의 사랑을 사려고 하는 짓? 어리석은 짓이다. 


"....젠장할."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 돈을 벌었는데."

짜증이 났다. 진정하기 위해 산책을 하러 나갔다.


집 근처를 조금 걸었다. 얼마나 걸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집 근처를 계속 배회할 뿐이다. 

그러다, 한 벤치가 내 시선에 들어왔다.


"어, 저긴...."

이미 내 몸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예전에 그녀와 매일 앉았던 벤치다. 

다만 한가지 다른점은,

지금 나에게는 달과 별이 안 보인다는 것.


"분명 날을 맑은데 말이지..."

"....어?"

슬프진 않은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리고서 난, 무언가 머리를 스쳐 지나간 느낌을 받았다.


왜 달과 별이 나에게 보이지 않는지.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달과 별이 아닌, 나와 그녀가 새겼던 추억들 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내가 그녀에게 여태 무슨짓을 했는지도, 느껴졌다.


그녀의 마음에 칠해졌던 무엇보다 아름답던 "사랑"이라는 색을, 나는 마저 칠하지 못해주고 "돈"이라는 색으로 덮어 씌웠다. 그렇게 방치해, 결국 그녀의 마음은 그 색으로 굳은 것이다. 그리고 굳어버린 그 마음은, 그녀에게 계속 부딪혀 그녀를 멍들게 했다. 얼마나 후회되고 어리석은 짓인가. 내가 자초한 일이다.


핸드폰을 꺼냈다. 마음으로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본능대로 움직여 그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

"....제발 받아줘"

"....여보세요?"

나의 마음이 나의 입을 붙잡고 있었지만, 간신히 말을 꺼냈다.

"....거기로 나와줄 수 있어?"

"............."

"알겠어.."


그리고 조금 뒤, 그녀가 왔다. 어딘지 말은 안 했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이 곳 일거라 생각한 것 같다.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한 짓을 알았기에. 

그걸 알아서 였을까,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여기 되게 오랜만이네...?"

(.....아니야.)

"여기서 자주 얘기 했었잖아."

(그만 말해.)

"여기서 달이랑 별 보면서..."

(제발 나를 더 후회하게 하지 말아줘.)

".....음"

(차라리 나랑 헤어지자고 말해줘.)

"............"

"오빠, 난 옛날에 자주 만났던 그때도 좋지만, 지금도 그때 못지 않게 좋아해."

(............!)

"그리고 아직, 오빠도 나를 사랑하는 게 느껴져. 나는."

"그러니까 그렇게 슬픈 표정 짓지마."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할 말이 너무 많은것 같다. 그래도 최대한, 정말 최대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담아 한 마디 했다.


"......미안해..."


그때서야 비로소 다시, 달과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별과 같이 빛나는 그녀의 눈, 달과 같이 빛나는 그녀의 얼굴, 별똥별 같은 그녀의 눈물 까지. 다시 모든 게 보이기 시작했다. 말 없이 그녀는 나를 안아주었다. 


"이제야 모든게 보여...."

"응....."

그렇게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그랬던 것 처럼 다시금 그 벤치에 앉아 사랑을 얘기했다.


"오빠 근데, 오늘은 달과 별이 유독 잘 안보이네? 왜 이렇지?"

"그래?"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잘 보이는데?"

"뭐야 그게~ 뭔 뜻인데?"

"잘 찾아봐~"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다. 나와 그녀는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뭐, 그렇게 돈을 벌어도 쓰는 건 금방 쓰는 것 같다. 그래도, 이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것이 물질적인 풍요에 기반된 사랑이었고. 그녀에게 더 잘해주고 싶다는 마음과 겹쳐 왜곡되어 잘못된 길을 걷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되었다. 서로의 부족함을 서로가 채워주는 그런 사랑을 예전의 그녀는 느끼고 있었고, 나 또한 이제 느낀다. 그걸로 된거다.


"오빠! 빨리 가자! 짐 싣는 차 왔어!"

나는 이사를 하기로 했다. 이런저런 추억이 많아 약간 적적하지만, 뭐 새로운 곳에서 다시 추억을 만들어 나간다 생각하니, 괜찮아졌다.

"어 지금 갈게!"

(잘 있어라. 어리고 어리석었던 사랑아.)


우리는 가난한 사랑을 했다. 아니, 정확히는 "나만 가난한 사랑을 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가난한 사랑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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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때문에 이래저래 치이다 순챈에서 힐링 하고 가는 평범한 사람임.

맨날 눈팅만 하다, 취미가 글쓰기라 그냥 생각나는 대로 대충 한편 써봤음.

오글거리는 표현이 많지만 재밌게 봐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