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집이나 하나 있으면 좋겠네."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은, 어디에 가던지 내 집이 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썩은 나무 밑동이 가까스로 나뭇가지들을 겹겹이 쌓아둔 땅도.


퀴퀴한 냄새가 나는 싼값의 여관도.


코를 움켜쥐던 처음과 달리, 아침을 부르는 햇살에 눈을 뜰때.


온몸이 아침 이슬 때문에 축축하지만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그런곳을 전전하며 다닌지 10년이 넘기 시작하니. 문득, 이게 내가 찾던 자유가 맞는가 의문이 들었다.


처음 자유를 찾아나섰을때, 나는 환호를 질렀다.


몇주나 겨우 버틸까 싶었던 금화 몇닢은, 제법 오랜 기간 내가 살기 위한 원동력이 되었다.


집에 굴러다니던 검 한 자루.


남매중 누구하나 제대로 이기지 못하는 검술 흉내나 내던 여인일 뿐이었던 나였지만.


몬스터가 즐비한 동네에서 살았기에, 몬스터 토벌만큼은 자신있던 내가 택한 길은.


방랑하며 임무나 수행하는 용병의 삶이었다.



태생이 연약했지만, 적어도 나는 정신 하나만큼은 자신있었다.


검을 처음 들어본 어릴때부터 속에 들어있던건, 스물 중반까지 살아본 남자였으니. 가끔 나를 괴롭히는 육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뿐.


적응하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떻게든 악착같이 하루하루 연명하며 살다보니, 어느새 같이 다니는 파티도 생겼고. 제법 명성도 떨쳤다.


그럼에도 내가 그토록 찾아 해메던 자유는, 이렇게 돌아다녀서 생길게 아니었다.


'늦게도 깨달았네.'



"집?"


"응. 으리으리한 집까진 안바라고. 언제든 돌아가서 마음 편히 쉴만한 집이면 좋겠어."


'되도록이면 정원이 딸려있어서 이것저것 심어놓고 키우면 재밌겠다.'


"누나. 부모님이 있지 않았나?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는거야?"


"부모?"


"응."


첫 만남에 누가봐도 귀족이나 입을법한 고운 옷을 걸치고 있던 녀석은 나와 함께 다니는 동안 제법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여전히 세상 물정 모르는것 같지만.'


용병들에게 과거를 물어보는건 칼침이라도 맞겠다는 말과 다름없음에도.


어디서 왔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요 녀석에게 받았던 질문에 나는 너무 많은것을 털어놨다.



"있기야 했지."


부모라면 그딴 제안을 할리가 없었다.


부모일리가 없다. 그저 돈 많은 배불뚝이들의 첩으로 들어가는게 어떠겠냐니.


'그딴 삶을 살바에야 차라리 혀를 깨물지.'


"요즘 많이 피곤한가봐? 용병이 집을 다 찾고. '용병은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침대 삼아 사는거야!'라고 하던 누나가 맞나?"


"시끄러 임마."


"그럼 누나 고향으로 가는거야?"


"아니. 그딴 동네는 더이상 가고 싶지도 않아."


"그럼 나랑 같이 정착할래?"


"너랑?"


"응. 나 사실 집이 있거든. 슬슬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기도 했었고."


제법 사는 어딘가의 도련님 정도라곤 생각했다.


'언제 연락을 받았지?'


남들이 남매 용병이냐고 할만큼 붙어다녔음에도 작은 낌새도 없었던 녀석의 속사정을 듣는 순간. 호기심이 동했다.


"네 집이야?"


"응."


"너네 가족도 있을거 아냐."


"있긴 하지."


"그럼 내가 뭣하러 남의 집에 들어가."


"누나 말은 남이 아니면 된다는것 같은데?"


"⋯."


"남이 아니라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이 데려온 신부는 어때?"



'미친놈.'


"뜬금없이 무슨 신부야 미친놈아. 내가 너랑 나이 차이가 몇인지는 알아?"


"당연히 알지. 누나 옷에서 나는 닭장⋯. 어헉?! 잠깐, 말로 해! 검 휘두르지 말고!!"


'내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나나?'


장난스러운 그의 말에 팔을 들고 팔뚝을 킁킁 거리던 나는, 나를 바라보며 키득거리는 그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이자식이!"


씩씩거리며 화를 삼키던 내게 슬며시 다가온 녀석은 구렁이 담넘듯이, 내 허리를 슬쩍 껴안았다.


"왜. 누나는 결혼이 싫어?"


"⋯."


"하긴. 그 나이 되도록 용병이면서도 처녀인 누나가 어떻게 시집을⋯! 끄악!? 누나 방금 나 베일뻔했다니까 진짜!?"


"시발. 한다! 할수 있다고! 내가 마음을 안먹어서 그렇지! 맘만 먹으면 당장 결혼도 할수 있다니까!? 맘만 먹으면 나한테 달려들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이자식아!"


욕은 아니었지만 욕처럼 들리는 '처녀'라는 말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술 한모금 하지 않은 맨정신에 버럭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자, 녀석은 만세 삼창이라도 할것처럼 기뻐하며 은은히 속삭였다.


"그럼 아예 모르는 사람보단 나랑 결혼 한다고 말해 누나. 그럼 한달정도는 머무르면서 집 살때까지 얹혀 지낼수 있을거아냐?"


"⋯어, 어떻게 그러냐?"


"와, 누나는 한입으로 두말하는 쓰레기네. 방금 그 자신감은 어디갔어? 역시 누나는 여자로써 매력이 없는――."


"한다! 한다고! 당장! 어!? 너네 집 기둥 뿌리 뽑을때까지 단물만 쪽쪽 빨고 도망친다! 어! 알겠냐!?"


"알았어. 그럼 부모님한테 말씀 드려둘게. 신부될 사람을 데려가겠다고."


"⋯⋯어?"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으며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어라?'


멀찍이서 맥주를 마시던 파티원들의 헤실거리는 표정이, 싹다 쓸어버리고 싶다.


"여러분. 그런고로 저랑 누나는 오늘부로 용병대 탈퇴를 해야할것 같습니다."


"그래. 여태 수고 많았다. 야, 그래도 우리 막내 능력도 좋네. 저 석녀를 어떻게 저렇게 잘 꼬득였대?"


"축하해~!"


'박수까지 칠정도로 좋은 소식이야?'


"아니, 아냐. 내, 내가 왜!?"


"여보. 우리 같이 잘까?"


"웩! 소름돋아 미친놈아 하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