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저 바다 건너 멀리, 컬럼비아인가 하는 나라가 주인 없는 집에 거렁뱅이들이 눌러앉는 일 때문에 골머리를 앓듯이, 주인없는 평원에는 여러 잡것들이 꼬이길 마련이다.


마땅한 거주지 없이 떠돌아다니는 부랑아들, 신분증명도 없이 국경을 넘어온 밀입국자들, 오래전부터 초원을 요람삼아 살아가던 원주민들.


이것들은 각기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놀랍게도 한가지 공통분모를 가진다.


그건 바로…


“여기서 죽기 싫으면 갖고 있는걸 몽땅 내놔!”


수틀리면 강도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이 불한당들의 괘씸한 점을 뽑자면 여러가지가 있겠다만, 가장 괘씸한 것은 자신들도 스스로의 주제를 알고는 있는지 남자 하나 없는, 이 초원을 아녀자들끼리 움직일 때에만 습격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는 기사가 필요하다.”


“누, 누구냐!”


말을 탄 채, 태양을 등에 지고, 도적의 가슴팍을 향해 내려꽂히는 은빛 섬광.


태양빛 때문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도적은 반항 하나 하지 못한채, 심장이 꿰뚫려 그 자리에서 절명해버렸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도적들은 상황파악이 그제서야 끝났는지 검을 치켜들고 갑자기 나타난 기사를 향해 달려왔지만.


관리가 안되어 피떡진 녀석들의 무디고 두꺼운 검은 기사와 말의 두꺼운 갑옷을 쉬이 뚫지 못했고, 그 반대로 기사가 휘두르는 장검은 한번 그었다하면 곧이곧대로 놈들의 살점에 파고들며 목숨을 앗아갔다.


“죽어ㄹ.. 켁!”


전투를 빙자한 한편의 학살극이 막을 내리고, 말에서 내린 기사는 아직도 도적떼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있는 여인 둘에게 다가가 손을 건넸다.


둘은 아마도 모녀관계인 것인지, 덩치가 크고 나이가 조금 있어보이는 여인이 어리고 작은 소녀 하나를 보호하려는 듯이 겉을 감싸안고 있었다.


“괜찮으신가요? 레이디들.”


죽음의 공포에 눈을 감고 계속 벌벌 떨다가 사내의 목소리를 들은 그제서야 눈을 뜨고, 양편으로 뻗은 손을 각자 하나씩 천천히 잡고서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녀들.


“가, 감사합니다. 기사님.”


“뭘요. 기사라면 곤경에 빠진 레이디들을 지나칠수는 없는 법이죠.”


“정말 기사도적이고 멋졌어요!”


“그래, 꼬마 아가씨. 제대로 봤는걸? 내가 기사도적이긴 하지.”


“푸릉.”


기사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인지, 가볍게 비웃는 흑마의 울음소리.


갑작스런 도적떼의 습격 때문에 다소 가라앉아있던 분위기가, 그 소리를 듣고 웃음을 터뜨린 여자아이 덕분에 올라올 수 있었다.


“저…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를 뭐로 갚아야할지. 저희 바깥양반에게 급한 일이 생겨서 서둘러 올라가던 중에 이런 귀인을 만나다니. 참 운이 좋네요.”


“그런가요? 하하, 그럼 이제 보호세를 받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놀랍게도 그가 이 말을 꺼낼 때, 상대방의 반응은 장소가 다르고 상황이 달라도 다들 비슷하다.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 커져가지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사내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는 것이다.


“보, 보호세라고요?”


“예,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원하는 걸로 훔쳐갈 겁니다.”


성인끼리 돈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 와중 갑작스레 끼어드는 맹랑한 꼬마아이.


칼자루를 쥔 건 사내라는 사실도 잊은건지, 검이 무섭지도 않은건지 당돌하게 따져댔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아저씨는 기사잖아요. 아무런 대가 없이도 기사도를 지켜야 하는거 아니에요?”


기사도에 그런것이 있긴 하다.


약자들을 존중하고 보호하라, 금화로 이루어진 보상을 경멸하라,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살아라,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해서 싸워라.


그런데 법이 존재하는 이유가 법으로 최소한의 도덕과 처벌을 정하지 않으면 지키지 않는 이들이 넘쳐나서 아닌가.


기사도란 것도 결국 대부분의 기사가 보편윤리를 지키지 않으니 제발 이정도만 지켜달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진거다.


다만 기사도는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명시된 처벌따위가 없으니 명예를 중시하는 귀족이면 모를까 평민들에겐 지킬 필요성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고.


게다가.


“꼬마아가씨, 내가 평범한 기사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나는 기사도적이라서 말이야. 참 안타깝게 됐네.”


그렇다. 


그는 기사도적이다.


이 무슨 선량한 살인마, 강력한 건랜스, 잘생긴 장붕이처럼 말도 안되는 단어의 조합인가 싶겠지만 이에는 깊은 사연이 있다.


그의 어머니는 백작가의 하녀였다.


하루는 백작이 백작 부인과 다투었을 때, 하필 그 곁에 있었던게 사내의 어머니였고, 백작의 눈에 띈 그녀는 그날 딱 한번 벌어진 불상사 때문에 백작가의 오점, 사생아를 만들어내셨다.


그녀가 백작님에게 사랑이라도 받았다면 사내의 처우가 지금보다는 나았겠지만, 백작은 부인과 가끔 사소한 일로 다툴지언정 둘의 사이는 정략결혼을 했단게 믿기질 않을 정도로 끈끈했기에 사내는 태어나자마자 백작가의 눈엣가시가 되어버렸다.


반절은 백작의 피가 흐르건만 받는 대우는 하인,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으며 백작가에서 살아왔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고통받으며 살아가던 중 사내의 어머니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기사도적인 사내가 되라는 유언과, 강철 무구와 말을 살 정도의 거금을 남긴 채.


“아마 기사수업을 받는 소백작님을 보며 부러워 했던 내 어릴적 모습이 눈에 밟히셨던 모양이지. 그때부터 봉급을 차곡차곡 모아오셨을테고.”


“그, 그러면 어머니께서 말하신게 ‘기사도적’은 아니었을거 아니에요! ‘기사도’적을 말하셨겠죠!”


사내가 기껏 이해를 돕기 위해 스스로의 과거를 이야기 했건만, 아이는 아직도 왜 그가 어째서 기사도적이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듯 얼굴을 붉혀대며 소리쳤다.


“이봐 꼬마야. 내가 어느정도의 돈을 받았다고했지?”


“무구랑 말을 살 정도…”


“그러면 내가 가지고있는거랑 저기 있는 저 네발 달린 동물이 뭔진 알고?”


“그야, 무구랑 말이죠…”


“그래, 따로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데 검 한자루에 갑옷을 입고 말 좀 타고다닌다고 기사가 되는건 아니잖니? 예전의 나도 너처럼 머릿속이 희망으로 가득차가지고 ‘기사도’적으로 살다가, 말을 잡아먹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쫄쫄 굶고 나서야 ‘기사도적’으로 살기로 결심한거란다.”


가슴으로는 몰라도 머리로는 대충 이해가 갔는지 소녀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정도 시그널이면 사내에겐 충분하다.


“두분 다 이해하신 것 같으니, 그러면 이 돈 주머니는 제가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없었으면 어차피 돈은 물론이고 소중한 것이나 생명까지 강도들한테 빼았겼을텐데요.”


“어, 어느새.”


그가 평원에서 살아가며 배운 잡기술로 여인 품속에 곤히 잠들어있던 돈주머니를 슬쩍 꺼내 손에 쥐고 흔들자, 그제서야 여인은 자신이 당했다는걸 깨닫고는 품속을 뒤져가며 돈주머니를 찾았다.


당연하게도 돈주머니는 이미 그의 손에 들려 있으니 그녀의 품속에 존재할 리 없었다.


뭐, 수도의 마탑에서 논의되는 마법입자역학 머시기에 따르면, 그녀가 관측하기 전까지는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는 상태가 중첩되어 희망을 가질 수도 있었겠지만, 마법의 마자도 모르는 무지렁이 평민들이 뭘 알겠는가.


“그러면 안녀…”


“자, 잠시만요!”


위험한걸 모르는지 막 출발하려는 말의 앞으로 뛰어들어 가로막는 여인.


그 탓에 사내의 말은 깜짝놀라 앞발을 들고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목숨을 걸고 사내를 가로막은 용감한 여인은 말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양손을 싹싹 빌었다.


“그, 그 돈은 신전에 바칠 제 남편 치료비에요. 다른 것, 제 몸이라도 바치라면 드릴테니 제발 그 돈 만은…”


-풀썩


그녀의 기도가 하늘에 닿은것일까?


의외로 사내는 순순히 돈주머니를 내려놓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내의 행동에 당황한 두 여인은 덤이었고.


“뭐하십니까? 가져가시죠.”


“네, 네!”


혹시 은화말고 다른 것이 든 주머니 아닐까, 이해못할 사내의 행동에 그런 걱정이 든 여인은 주머니를 조금 열어 그 안을 슬며시 들여다 봤지만 어둠 속에서도 제 몸을 뽐내는 그건 틀림없는 은화였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걸 왜…”


연거푸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하는 여인을 뒤로한 채 사내는 다시 말고삐를 단단히 쥐었다.


“그야 전 기사니까요. 혹시 불만이 있으시면 다시 가져갈드릴까요? 젠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자 하는건데 오늘은 굶겠네.”


어조는 혼잣말 같으면서도 두 모녀가 다 들을 정도의 큰 목소리로 오늘은 굶겠다는 그의 말에 기사를 바라보던 소녀는 그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저기… 기사님, 그러면 이거라도…”


그녀는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감자 한 덩이를 꺼내 기사에게 건넸다.


볼품없이 작고 찌그러진 삶은 감자 한 알, 하지만 평원을 건너는 이 두 모녀에겐 생명줄과도 같이 소중한 물건일테다.


“미안하지만, 난 기사라서 뭔가 대가를 바라고 널 구해준게 아니거든. 마음만 받도록 할게.”


“그런ㄱ…”


“그리고 도적도 상대에게서 빼앗지 결코 받지 않아! 가자, 이럇!”


여린 소녀의 손아귀에서 무자비하게 감자를 탈취해낸 희대의 악적, 기사도적 한스.


그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끝없는 지평선을 향해 말을 타고 달려갔다.


“퉷, 맛대가리 없이 퍽퍽하기만 한데. 이봐 친구, 너도 한입 하겠어? 이게 오늘의 식사인데.”


“푸히힝!”


“야! 오늘 유일한 식사라니까! 아깝게 땅에 버리고 있어!”




머 대충 히로인은 예전에 암살자들에게 쫓기는 걸 구해준 귀족영애


구해줘서 고맙다고 자기 따라 영지에 가서 보상 받자고 하는데


자기는 도적이니까 받지 않고 훔친다고 미래 남편한테 주라고 어머니가 물려준 반지를 훔쳐가서 찾으려고 쫓아다니는거지


아니면 예전에 있던 백작가의 소백작이 여자인데


나중에 성인되면 남주랑 결혼하려했는데 자기 기사되겠다고 편지남기고 도망가서 잡아다 키우려고 쫓아다니는 머 그런거...


대충 에피소드는 사실 기사는 기사자격증이 필요해서 자격증 따러 수도로 간다던지


히로인들에게 꽁무니 잡혀 쫓긴다던지


도적길드도 가입하고 기사길드도 가입해서 이중첩자로 양쪽에서 골수 쪽쪽 빨아먹는다던지


머 그런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