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필요 이상으로 무례하고 이기적인 인간은 싫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오래보게 되면 이러한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저 인간은 왜 성격이 저렇게 뒤틀렸을까. 못난 외모 때문에 받은 차별이 그녀를 괴물로 만든 것일까?


평소에 호기심이 많던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라는 인간이 타인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나 하나가 노력한다면 그녀를 모두에게 사랑받는 인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 


"민희 씨! 회사가 어린이집이에요? 옷 입은 거 봐!"


그녀가 신입 사원의 옷차림을 지적한다. 그녀는 큰 떡대를 자랑했으며 두 눈에서는 질투심과 열등감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내가 저런 인간을 바꿀 수 있을까. 가능성이 적어보이기에 오히려 도전 욕구가 더 강하게 타올랐다.


"...다음부턴 조심해요."

"네... 아, 알겠습니다."


마침 화도 어느정도 풀린 거 같은데 슬슬 접근해볼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급발진을 해 싸늘해진 분위기 속에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자 사무실의 이목이 내게로 쏠렸다. 목표인 그녀의 이목까지도.


"뭔가요?'

"아니. 그냥 이거 드시고 화푸셨으면 해서요."


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주머니에서 간식을 꺼내자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기요, 지금 내가 살쪘으니 먹을 걸 주면 풀릴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호의를 저렇게 받아들이네. 진짜 싫다.


"그럴리가요. 원래 기분 상했을 땐 맛있는 걸 먹는게 직빵이잖아요."

"살쪄요. 그건 당신이나 드세요."

"제로칼로리 간식이에요. 먹어도 살 안쪄요."

"...잘 먹을게요."


거 간식 하나 먹이기 더럽게 힘드네. 이래가지고 언제 친해지고 언제 개과천선 시키냐. 


*


나는 그날 이후부터 그녀가 화가 내려고 하면 간식을 꺼내서 화를 내기 뻘쭘한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화를 내는 빈도가 확 줄었으며, 그녀 또한 진짜 화내야 할 일에만 화내게 됐다.


화를 덜 내니 팀원간의 앙금이 점점 사라졌고, 덕분에 그녀는 팀원들과 조금은 친해지게 됐다.


친해지게 되니 화를 내기 어려워졌고, 팀원들은 그녀가 조금씩 달라지자 어느순간부터 인정하고 마음의 문을 열게됐다.


선순환이 생긴 것이다. 비록 중간에서 내가 쌔빠지게 고생했지만 어쨌든 선순환이 생겼다는게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러다 잔업이 남아 그녀와 단둘이 야근을 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한창 일에 열중하고 있으니 그녀는 눈치를 보다 조심스레 입을 뗐다. 


"저기, 궁금한게 있는데요."

"예. 말씀하세요."

"...왜 저한테 잘해주시는 거예요?"


뭔가 느낌이 쎄한데. 설마 아니겠지?


"사실 요즘 제가 다이어트를 하고 있거든요."

"갑자기 다이어트요?"

"같이 다이어트를 하는 동료가 있었으면 해서 여기저기 찔러보고 있는데... 다들 피곤하신지 하겠다는 분이 없네요. 하하."

"...그럼 저도 다이어트 같이해도 되나요?"


오. 자진해서 하겠다고 할 줄은 몰랐는데. 본인이 하겠다고 하면 나야 목표를 빨리 이루니 좋지.


"물론이죠."


본인이 먼저하겠다고 한 이상 절대 봐주거나 쉬엄쉬엄할 생각은 없다. 이때 아니면 언제 앙금을 풀겠어?


*


퇴근 후에 같이 회사 근처의 공원에서 달리기를 하고, 매일 식단 검사하는 등 빡세게 다이어트를 하니 그녀의 몸무게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어쩌면 워낙 지방이 많아서 빨리 빠지는 걸수도. 예전에는 돼지 수인 수준이었는데 그래도 지금은 인간 수준이니까.


"요즘 김 대리님 살 엄청 빠지지 않았어?"

"그러게. 요즘 화도 덜 내고 사람이 변하려는 걸까."

"정 대리님이랑 퇴근 후에 같이 달린다는 소문이 있던데."

"둘이 사귀시나?"

"에이. 설마 그럴리가."


사원들의 쑥덕거림을 들은 그녀는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애써 고정시키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본인이 노력한 결과가 그대로 피드백으로 들어오니 신이 날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우리는 이 기세를 타고 계속 다이어트를 해나갔다. 1개월, 2개월, 3개월, 그리고 어느새 6개월.


다이어트를 시작한지 반년이 지났을쯤엔 그녀는 보통보다 조금 마른 체형이 되어있었다.


마른 체형이 된 그녀는 꾸미지 않아도 예뻤다. 이른바 살에 덮여  긁지 않은 복권이었는데 긁어보니 당첨인 케이스. 


거기다 내 강권으로 스타일을 찾아보며 꾸미기 시작하니 그녀는 인스타에서나 볼법한 여성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정빈아."

"왜요. 누나."

"우리가 붙어다닌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치?"

"그렇죠."


처음과 비교하면 지금은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딱딱했던 호칭은 풀어졌으며, 진상에 불과했던 그녀도 지금은 대부분의 남성이 호감을 품는 여성이 되었다.


"물어보고 싶은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돼?"

"물론이죠."

"...왜 나한테 고백 안해? 나 엄청 기다리고 있는데."


...예?


"아니이이! 너 나 좋아하니까 이런 거 아니었어!?"

"아닌데요."

"가족도 나를 위해 이렇게까진 하진 않아! 날 좋아해서 그런게 아니면 대체 왜...?"

"말했잖아요. 다이어트 동료가 필요하다고."


그녀는 처량하게 고개를 푹 떨궜다. 조금은 불쌍하긴 하지만 난 그녀의 호감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야 지금은 나아졌어도 나는 그녀의 밑바닥을 봤었다. 언제 그때 그 모습으로 돌아갈지 모르는데 굳이?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

"하나만 물어본다면서요."

"으...! 그냥 닥치고 대답이나 해!"

"음... 아직은 없어요."

"그래...? 그렇다는거지?"


그녀는 벌떡 일어나서 검지 손가락으로 날 가리며 외쳤다.


"네가 날 반년만에 바꿔줬듯이, 나도 널 반년 안에 나에게 반하게 만들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