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카를 보면 자괴감이 심하고 겁도 많은 성격이잖아.


하지만 특정 상황이 되면 폭주해서 공격적으로 돌변하지.



이런 면이 헤일로 디자인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아.


'하드보일드 무법자'라는 이상을 꿈꾸지만 유약하고 선한 편인 아루는 '장미꽃'을 연상시키는 헤일로.


항상 자신을 비하하지만 행동만은 누구보다 공격적이고 하드보일드한 하루카는 장미를 지키는 '가시덩굴' 헤일로잖아.



이 가시의 '무자비함'은 이오리를 쓰러뜨리는 장면에서 잘 나타난 것 같아.


소중한 걸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 따위 부러지고 상처 입어도 상관없어하는 저돌성.


장미꽃이 계속 아름다울 수 있도록 날을 세우는 가시.


하루카를 이보다 잘 비유할 수 있는 게 있을가?


하루카의 단점은 이 무자비함을 드러내는 순간 사리분별이 잘 안 되어서 칠 필요 없는 사고까지 벌이는 거겠지.


위 짤에서 '용서못해'를 연발하는 것도 그렇고. 


전투에서 '죽어주세요!'를 남발하는 것도 그렇고.


이 상태의 하루카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장미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꽃이 상처입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과하게 날카로워진 가시.


장미를 지키려고 한 거지만, 그 행동에 꽃이 상처입은 걸 알고 또 후회해버려.


여기서 이 생각이 들었어.


눈이 돌아갔지만 폭주하지 않는 하루카는 어떨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모든 나약함과 도덕적 제약을 버리는 하루카라면 어디까지 선을 넘을까?


어느 날 흥신소와 함께 작전을 개시한 선생.


갱단 토벌 작전 중 선생이 총에 맞고 말아.


아로나가 보호막을 깜빡한 것도 있지만, 하루카가 너무 앞으로 나간 나머지 탱킹해야 할 위치를 벗어난 것도 있었지.


다행히 정말 가벼운 상처라 금방 치료하면 되었어. 선생이나 흥신소 멤버도 하루카를 질책하지 않았고.


하지만 하루카는 넘어갈 수가 없어.


잡초만도 못한 자신을 받아들여준 사람한테 상처를 입혔으니까.


동시에, 자기 자신도 용서할 수 없게 되었어.


그동안 입이 떠나가랴 죄송하다고 말했는데 이런 자신은 바뀐 것이 없었잖아.


그 순간 하루카는 아루 사장님이 했던 말을 떠올리지.


"우리 팀은 거리에서 껄떡대고 클럽에서 끼리끼리 뭉쳐 '죽여버린다', '죽여버린다' 하고 큰소리나 뻥뻥 치며 저희끼리 핥아대는 흔해빠진 못난 놈들과는 격이 달라. '죽여버린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떠올랐을 때는 이미 행동이 끝난 뒤여야 해!"


아루 본인은 그냥 폼 내려고 말한 건데 하루카는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말았어.


그리고 자신이 백날 사과해봤자 아무 의미 없단 걸 깨달은 거야. 단어란 건 반복할수록 그 뜻이 퇴색되는 법이잖아.


하루카는 뭘 고쳐야 할지 알았어.


죽여버리겠단 생각만 하다 일을 망쳐선 안 된다는 걸 말이야.

그날 밤. 하루카는 과거 의뢰 때 입은 정장으로 갈아입어.


블랙마켓을 거닐다 도착한 곳은 토벌에 실패했던 그 로봇 갱단의 입구.


이전에 작전 구상 과정에서 구조는 파악한 뒤라 함정 설치도 완벽.


그렇게 잡졸 몇이 크레모아에 벌집이 되자마자, 갱단 멤버들에게 총알이 날아오지.


다들 기관총에 수류탄까지 날리는 데도 싸움은 끝나지 않아.


연기가 걷히는 순간, 갱단 멤버들의 눈에 어떤 보랏빛이 보여.


날카롭고 차가우며, 뾰족한 보라색 눈동자.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모두가 얼어붙지.


스케반이나 헬멧단같은 놈들이면 여럿 상대해봤지만 저 눈은 그때까지 본 학생들의 눈과 달랐어.


복수심에 냉정함을 잃었거나 일탈감에 흥분했다고는 정의내릴 수 없었거든.


하루카의 눈은 갱단들을 그냥 '보고만' 있었어.


갱단들은 공포심에 다시 저항해. 도망가는 이도 한둘 보여. 의도를 알 수 없는 저 눈빛을 견딜 수가 없어.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해.


소용 없었지. 도망가는 잡졸은 미리 설치한 C4에 볼프셰크 강철이 되었고, 저항하는 이들도 하루카의 방어력과 샷건 남발에 무너져.


마침내 도망치려던 보스 하나만 남았어.


탈출 따위 불가능한 걸 안 보스는 하루카에 말을 걸어.


"네놈은 누구냐! 누가 보낸 거지?"


하지만 하루카는 대답이 없어. 갱단원을 상대했을 때처럼 초점 없는 보랏빛 눈동자를 번뜩이며 다가와.


보스는 그녀를 회유하려고 해. 돈, 스카우트 제의, 황금까지. 차라리 말을 하는 동안 저항이라도 하는게 좋았을텐데 말이지.


충분히 거리가 가까워지자, 하루카는 보스를 공격해. 이 오토마타, 머리만 쓸 줄 알지 싸움은 드럽게 못해서 예상보다 쉽게 제압할 수 있었어.



흐릿한 노란색 불빛에 하루카의 얼굴이 드러나.


그 순간 보스는 하루카를 알아봐.


"설마 그 때의..."


보스는 마지막 한 말도 마칠 수 없었어. 하루카가 보스의 턱 밑에 C4를 붙이더니 바로 기폭시켰거든.


폭발음이 들리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블랙마켓에선 흔한 소음이니까.


그래도 보스는 살아남았어. 두부 오른쪽이 날아가고 썩은 나뭇가지처럼 덜렁거리는 안면 부품 사이로 두뇌 모듈이 비쳤지만 말이야.


마지막 힘을 다해 바닥을 기어가는 가운데, 하루카는 너덜너덜해진 보스의 안면에 다시 C4를 하나 더 집어넣어.


얼굴 한쪽이 날아간 터라 보스는 한쪽 눈으로 하루카의 얼굴을 볼 수밖에 없었어.


하루카도 많이 지쳐서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상태였지.


하루카는 기폭장치를 꺼내들어.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꺼내.


벌벌 떨지도 않고 딱 한마디만.


"죽어주세요."


며칠 후. 하루카는 아무렇지 않게 병문안을 와.


먼저 도착한 흥신소 선배님들은 선생과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지.


뉴스에서는 최근 블랙마켓 갱단 여럿을 쑥대밭으로 만든 어떤 무법자를 이야기하고 있었어.


장미 가시를 형상화한 핀을 달고 다녀서, 언론에선 그녀를 '가시덩굴'이라 부르나 봐.


"갱단 보스까지 모두 몰살했다니.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여럿을? 완전 하드보일드하잖아!"


"쿠후후~ 아루짱. 한 발 늦은 거 아니야? 하드보일드 무법자가 이미 나타났는데?"


"늦기는 누가 늦어! 꼭 가시덩굴에게 내 하드보일드함을 보여주겠어! 아니, 차라리 영입하는 건 어떨까?"


"사장. 하루카 월급도 제대로 못 주는데 재고해야 할거야."


하루카도 이야기판에 끼어들어. 면회 시간 동안 선배님과 선생과도 즐겁게 시간을 보냈지.


무엇보다 기쁜 건 이제 실수나 하던 한심한 인간에서 벗어났단 점이었어.


면회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문을 나서는 하루카를 향해 선생은 물어봐.


"하루카. 힘든 일 있니? 무슨 일이 있어도, 너무 무리하지 마."


하루카는 웃어보이며 문을 닫아.


"걱정하지 말하주세요. 저는 지금 아주 행복하답니다."


하지만 선생을 속일 수는 없었지.


하루카는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그렇지 않았거든.


선생은 하루카가 나가고서도 그 얼굴은 잊을 수가 없었어.


겁 많고 자기 자신을 못 믿는 아이인데 저렇게 급변한 게 당황스러웠지.


하루카는 이전보단 밝아졌지만, 선생의 의구심을 이어졌어. 변화한 게 계속 유지된 모습에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블랙마켓에선 흥신소와 선생을 공격한 갱단을 박살내는 정체불명의 무법자가 소문으로 돌지만, 그건 이후의 이야기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