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편


내가 델타에 빙의한 지 시간이 제법 흘렀다.


처음엔 그래도 열심히 일해보려고 했었다. 오르카호 수색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건 사실이니. 


근데 X발 서류가 전부 다 영어로 써져있더라...


여긴 한국이 아닌 유럽이고 오르카호처럼 김치맨 사령관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니 당연한 거기는 한데... 아니 근데 말은 한국어로 술술 말하고 있잖아. 왜 듣고말하기랑 읽고쓰기가 별개로 이루어지는 건데.


서류 해석하는 데만 한세월이니 제대로 일할 수가 없어서 일하기 귀찮다는 핑계로 내 업무를 완전히 중단했다. 원래의 델타는 명색이 비서 레모네이드이니 멍청하긴 해도 머리는 좋을텐데 이제 난 능지박살난 라붕이다. 


일은 전부 다 테일러한테 짬처리 시키니까 처음엔 당황하긴 했어도 어떻게 진짜로 알아서 하더라. 자연스럽게 요약본도 만들어주던데, 혹시 델타새끼 원래부터 테일러한테 짬때리고 자긴 오드리 괴롭히며 놀기만 했던건가? 뭐야 무능해도 되는 직책이라니 개꿀이잖아.


만약 내가 감마에 빙의했으면 지휘도 못하고 싸움도 못하는 등신이 돼서 스토리가 크게 바뀌었을텐데. 적어도 행보관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것 같지만... 그렇게 되면 연의 하후돈에서 정사 하후돈이 되는건가.


아무튼 덕분에 난 백수처럼 지내고있다. 방 안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뒹굴거리기만 해도 테일러가 밥을 가져다준다. 나날이 테일러 다크서클이 늘어나는거 보면 양심에 좀 찔리기는 한데 내가 능력이 없어서 미안하다 야. 


다만 일이 없어서 편한 거랑은 별개로... 더럽게 심심하다. 게임이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미래세계니 컴퓨터도 태블릿도 있기는 한데 놀거리는 하나도 없다. 델타 씹년은 오드리 괴롭히기가 놀이니까 심심할 틈이 없었겠지. 


말 나온 김에, 델타의 질투심 MAX가 기본값으로 설정된 성격은 나에겐 영향을 안끼치는 것 같다. 오드리를 봐도 불쌍하다는 생각만 들 뿐 딱히 질투나 분노가 느껴지진 않았으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태블릿이나 그런건 비밀번호 걸려있으면 난감했겠지만 다행히 지문인증이라서 바로 열 수 있었다. 태블릿에 오드리 고문기록 그런거라도 있으면 어쩌지 했는데 다행히 그건 없고 대신 멸망전 문리버 회장 사진이나 회장이 나온 뉴스, 신문기사 그런 것들이 크롤링되어있었다. 심심풀이로 몇 개 읽다가 말았다. 문리버 산업 만세 회장 만세 이딴 내용밖에 없어. 쓸데없이 용량만 차지하는거 다 지울까 했는데 용량 비워놔도 채울거리가 없다. 


인터넷이 되기는 하는데 인터넷이라기보단 펙스 인트라넷이다. 병신같은 펙스 홈페이지밖에 없어. 그것도 잡담은 하나도 없고 레모네이드끼리 정보 나누는 용도로만 쓰는거같다.


그러고보니 기억의 방주에 저장된 정보 중 멸망전 인터넷에 올라온 글도 싹 다 긁어서 아카이브 떠놨다고 하는데 그거 보는게 더 재밌겠네. 근데 이젠 므네모시네한테 갈 수가 없지. 가도 문 안열어줄걸.


...지금이라면 우르가 나타나서 아재개그 해도 공중제비 돌면서 웃어줄 수 있을 거 같아...


그나저나 가만 생각해보면 델타에 빙의한게 그리 최악은 아니지. 당장의 생사는 걱정안해도 되니까. 만약 내가 빙의한 게 폐광에 갇힌 더치걸이나, 테마파크에 묶인 키르케였어봐. 굶어죽던가 미쳐버리던가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는데 델타에 빙의하니까 적어도 부유층같은 삶을 누리며 밥은 잘먹고 다닐 수 있잖아. 심지어 반찬투정 부리면 밥을 딴메뉴로 새로 만들어주기까지 한다니까.


...그래도 델타지만. 모두가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델타.

개라도 한 마리 키워볼까? 동물이라면 편견없이 날 좋아해줄 것 같은데.


(똑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어, 들어와."


"보고드리겠습니다. 새로 짓기로 한 AGS 공장 297군데 중 252개가 완공되었습니다. 남은 45군데는 철충의 방해로 인해 지연된 상태입니다만, 조금만 시간을 주신다면 인부들이 해당 지역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토미워커를 앞세워서 길을 막고 더치걸과 럼버제인이 다이너마이트를 쓰면-"


"걔들은 군인이 아니잖아. 무리해서 강행하지 말고 군인들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그래. 확실하게 안전 확보한 뒤에 진행하라고."


"...알겠습니다."


"오르카호 수색은 잘 되가? 일본에는 나타났어?"


"아뇨... 여전히 진전이 없습니다."


"역시 그런가. 그래도 계속 일본쪽 감시하고 있어. 오드리들 몸 상태는?"


"아직 완치되기까진 멀었습니다."


"그래? 알았어. 참, 테일러야 너 머리 자를 줄 아냐?"


"머리... 말씀이십니까?"


"머리감기가 불편해서, 좀 짧게 치려고."

(게다가 원래 델타가 하고다녔던 헤어스타일을 대체 어떻게 묶어올리는 건지 모르겠어)


"...보련을 부르면 되잖습니까? 왜 저에게..."


"그것도 생각해봤지만 날 겁내지 않고 다가올 수 있는게 너뿐이잖아. 보련 걔는 전에 눈만 마주쳤는데도 벌벌 떨던데."


"그야... 예전에 델타님 심기를 거슬렀다가 처형당한 동형기들이 있으니까요. 두려운 거겠죠."


"...뭐 그래서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싶어서 그랬지. 네가 정 못하겠다면 그냥 보련 부를게."


"아뇨. 문제없습니다. 제가 잘라드리겠습니다. 금방 미용가위를 가져올테니 앉아서 기다려주십시오."


***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기억의 방주 침략 당시의 테일러 리스트컷 시점.


델타가 방주에서 중상을 입은 채로 돌아오고, 델타가 치료받는 사이 방주 공략 및 오드리 유전자 씨앗 확보에 성공했다. 보고를 위해 델타의 방으로 향한 테일러는 속으로 델타가 아직 기절해있기를 빌었으나 유감스럽게도 이미 일어나있었다. 문 밖에서도 그녀가 세상 떠나가라 서럽게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자기 외모에 흠이 난 게 그리도 불만인건가... 저 여자가 분노보다 슬픔을 먼저 느끼다니, 별일이군.

한바탕 울고나면 또 오드리 불러서 분풀이하겠지. 델타가 기분이 안좋은 날은 오드리가 받는 고문의 강도도 심해지니,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려면 내가 여기서 달래주는 수 밖에 없군... 구역질 나는 일이지만... 지금은 자매들만 생각해...!'


(똑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크흡, 훌쩍... 누구?"


"...? 테일러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방 안에 들어간 테일러는 겉으로 티내진 않으나 180도 변해버린 델타의 분위기를 보고 크게 놀랐다. 델타의 안하무인한 태도가 사라지고 독기가 쏙 빠져있었기 때문에. 지금 델타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슬픔, 억울함, 절망, 그리고... 의문과 호기심. 어째 말투도 약간 남자같아 진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델타를 달래기 위해 성공적으로 오드리 유전자 씨앗을 털어왔다고 말하니, 델타는 기겁해서 유턴을 명령하고는 제대로된 호위도 없이 방주로 돌아가고, 빈 손으로 돌아왔다. 테일러는 그 자리에 동행하지 않았으나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는 알 수 있었다. 델타가 데려간 마리오네트 보병의 블랙박스를 확인하고,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보게되었다.


델타가 므네모시네에게 사과하는 장면을.


'므네모시네에게 중상을 입고 쓰러진 걸 기점으로 뭔가 변했어. 기억상실은 아닌 것 같은데, 머리를 다쳐서 성격이 변한건가? 내가 아는 델타라면 므네모시네의 사지를 찢어놓겠다며 지랄발광을 했을텐데.

므네모시네가 가진 힘을 두려워해서? 아냐. 그 때 델타가 당한 건 자만에서 비롯된 방심 때문이지, 각잡고 싸운다면 상대가 안돼.

만약 델타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적이 생긴다면 델타가 취할 행동은 도망치거나 숨는거겠지. 굳이 적의 눈앞에 가서 사과할 리가 없어.'


델타의 갑작스런 태도전환은 유럽에 돌아가서도 지속되었고, 하루만에 오드리 고문과 학대가 뚝 끊기자 테일러는 또다시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수복실 있지? 오드리랑 올리비아랑... 아무튼 걔네 자매들 전부 다 치료해."


'치료라고? 어째서? 만전의 상태에서 다시 고문을 하려고? 사지를 잃은 자매들한테 다시 사지를 붙여놓고선 또 자르려고? 헛된 희망을 준 뒤 나락으로 내리꽃으려고?'


"치료가 끝난 다음에? 뭘 어떡하냐기 보단... 그녕 밥 잘 먹이고 푹 쉬게해서 회복에만 전념하라고 해둬."


"..."


사람의 성격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다. 처음부터 그런 성격을 가지도록 설계된 바이오로이드라면 더욱더. 그런데 델타는 변했다.


테일러는 차라리 이 모든 행동이 가식이기를 빌었다. 어떤 계산을 통한, 무언가를 바라고 한 이기적인 행동이기를. 그렇지 않다고 하면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델타는 정말로 오드리들을 구한 뒤 아무런 행동도 안했다. 심심하면 오드리를 불러서 구타해놓고선 이제와선 하품할 정도로 심심하다고 중얼거리면서도 오드리를 부르지 않았다. 


달라진 점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매일 멋부리고 다니던 년이 이젠 다 포기했는지 화장도 안하고, 사치스런 드레스 대신 편의성 중시의 옷만 입고, 머리는 고작 머리감기 불편하단 이유로 짧게 자르라하고. 테일러한테 머리를 자르게 시켰다는 점도 그녀를 당황시켰다. 죽일 기회가 뜬금없이 눈앞에 오다니. 


델타는 완전히 방심하고 자신에게 뒤통수를 보이고 있다. 이 가느다란 목을 가위로 푹 찌르면 지 머리색같은 피가 치솟고, 그녀는 비명도 못지르고 바람 새는 소리만 내면서 쓰러지겠지. 워낙 빈틈 투성이라 오히려 죽여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아직까지도 그녀를 죽일 기회를 놔주고 미루고있는 자신의 인내심이 놀라워졌다.


테일러는 문득 자신의 복수심이 퇴색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이래서는 안된다.


정말 기적이 일어나 갑자기 착해졌다고 해도 그동안 죽은 자매들의 한은 어떡한단 말인가. 더 늦기 전에 결행해야만 한다.


...하지만 어떻게?


테일러가 생각하는 완벽한 복수는 단순히 델타를 죽이는 게 아니다. 델타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제 손으로 죽이는' 고통을 겪게 한 뒤에 죽일 생각이었다. 그러기위해 델타가 끔찍이도 아끼는 문리버 회장에 손 댈 방법을 찾는 중이었지만...


과연 지금의 변해버린 델타도 여전히 회장을 사랑할까? 얼마전에 자기 방의 회장 초상화도 버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각사각. 가위질하는 손을 멈추지않고 계속 생각하던 테일러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델타님."


"왜?"


"그러고보니 요즘은 지하에 회장님을 뵈러 안내려가십니까?"


잠깐의 침묵. 보통이라면 네가 뭔데 회장님을 입에 담냐며 성내거나, 무슨 이유든 간에 너까짓게 상관할 바가 아니다 라며 대답을 회피했겠지만 지금의 델타는 그러지 않았다.


"음. 그냥... 요즘은 좀... 피곤해서?"


"...그렇군요."


대충 지어낸 대답. 델타의 본심이 따로 있다는 걸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근데 그건 왜?"


"별 건 아닙니다. 그냥 궁금해서요."


오드리들이 델타의 관심 밖으로 나간 것처럼 회장도 마찬가지인가 보군.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지금의 델타가 좋아하는 건... 뭐가 있을까...


*** 다시 델타 시점 ***


"다 잘랐습니다. 어떻습니까?"


테일러가 가위를 내려놓고 거울을 보여주자 델타는 짧아진 자신의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흠, 괜찮네. 수고했어."


'네가 모자란 델타새끼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이 많다. 그렇지만 휴가는 못줘. 출장임무도 금지고. 니가 사라지면 내가 밥도 못찾아먹고 죽을거같거든. 


...의존할 수 있는 인력이 테일러밖에 없는 건 심각하긴 하군. 사람이 더 필요해. 마리오네트 말고 바이오로이드. 


인구조사 자료 보니까 내 밑에서 일하는 민간 바이오로이드 수가 생각보다 많던데, 다 다른 지역에서 일하고 있고 지금 내가 있는 문리버 본사에서 일하는 바이오로이드는 테일러 포함해도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델타의 편의를 위해 있는 보련과 소완, 기술자인 유미와 포츈, 스파이 임무 담당인 니키와 팬텀, 그리고 일단은 군인이라는데 뭐하는 놈인지 모르겠는 나스호른... 이게 다 델타의 처참한 인망 덕분이지.'


※나스호른은 요새 델타가 자길 찾지 않자 의아해하지만 굳이 먼저 접근하지는 않고 슬금슬금 피해다니면서 식충이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사실은 이걸 구상했던게 11구역 나오기 전이라서 나스호른을 상정하기 않고 스토리를 짜놨기 때문에...)


'보니까 오드리들은 직원이 아니라 델타 장난감으로 취급돼서 따로 카운트되는 모양인데, 어차피 걔들은 일 시키려해도 안따라줄 것 같다. 나 엄청 싫어할테고, 나도 좀... 불편하지. 안그래도 걔들한테 델타가 아니란걸 들키거나 빈틈 보였다가 몰매 맞을거 같아서 접촉도 피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러고보니 테일러는 왜 델타 옆에 남아있는거지. 펙유미처럼 무서워서 복종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친해보이지도 않은데. 혹시 원래는 친했나? 내가 빙의되고 어색하게 굴자 테일러도 거리를 두는건가? ...에이 설마


아무튼, 델타랑 원수지지 않고 내 곁에 있어줄만한 누군가가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펙스에 소속되지 않은 외부의 누군가를 불러온다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미 델타 악명이 퍼질대로 퍼졌을텐데, 내 밑에 들어올만한 사람이 누가 있겠어?


***


"있습니다."


"있다고? 누구?"


"엠프레시스 하운드의 바르그. 저번에는 영입에 실패했지만 이번엔 바르그를 끌어들일 미끼가 갖춰졌으니 확실히 불러들일 수 있겠죠."


"바르그라고?"

'분명 워터파크 이벤트랑 바르그 외전에 나온 정보들이... 엠프레시스 하운드 소속이고, 멸망 전에 마리아 리오보로스를 섬겼고, 사교성 최악이고... 별로 아는 게 없군.'


'그것보다도, 바르그가 델타의 부하로 들어오게 된다고? 워터파크 때 펙첩 떡밥만 뿌려놓고 이벤트 끝나서 몰랐었는데, 그 범인이 바르그였어? 난 갈라테아일줄 알았는데.


그런데 분명 게임에서 바르그는 대놓고 델타를 엄청 혐오하던데... 음... 일단 불러놓고 잘 대해주면 향후 스토리가 달라지지 않을까?'


이러저러해서 델타는 테일러에게 알아서 진행하라며 일을 맡기고, 얼마 후 바르그가 소환에 응합니다.


"직접 보게 되는 건 처음이군, 레모네이드 델타. 엠프레시스 하운드의 바르그다."


"음, 반가워. 앞으로 잘 지내보자."


델타는 악수하자고 손을 내미나 바르그는 팔짱을 풀지 않습니다.


"치워라. 네년과 친하게 지낼 생각따윈 추호도 없다."


"오... 음..."


"여기있습니다."


"? 이게 뭔데?"


"예절 주입용 전기충격봉이요."


"뭐? 아니, 그냥 태도 좀 차가운 게 그리 맞을 짓 한 건 아니잖아. 저리 치워. 훠이훠이."


"..."


"어흠. 아무튼... 내가 마음에 안드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와주기는 했잖아? 그러니 좋게-"


"오지 않았더라면 네놈들이 여제님께 무슨 짓을 저지를 지 모르니 말이다."


"...응?"


"먼저 확실하게 해둬야겠다. 여제님을 부활시켜주겠다는 약속은 유효한 거겠지?"


"응??"


"물론. 네가 말만 잘 듣는다면 델타 님께서 마리아 리오로보스를 되살려주실 거다."


"???"


"단, 마리아의 시신은 우리 측에서 관리하도록 할테니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


라붕이는 그제서야 원작 델타가 마리아의 시신을 담보로 협박했다는걸 알게됩니다. 


델타 이 미친년아아아아아아아

아니 그보다 테일러 썅년아 미리 귀뜸이라도 해주던가 했어야지 내가 개썅년이 됐잖아. 델타는 개썅년 맞지만. 혹시 테일러는 진작에 계획 자료 보내줬는데 내가 안읽었던건가? 그보다 델타가 생각했다는 계획이 이거였냐고. 불러놓고 잘대해주면 스토리가 달라지긴 개뿔 부르기 전부터 호감도 -200 찍었네. 바르그가 존나 야리고 있잖아


"좋다... 여제님이 부활할 때까진 네 명령을 따르도록 하마. 레모네이드 델타...!"


"어으... 그래... 잘 부탁... 할게...?"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 나한테 무슨 일을 시킬 생각이지?"


"그으... 건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자. 오늘은 이만 짐 풀고 쉬도록 해. 테일러? 바르그를 숙소로 안내해줘."


"알겠습니다."


"좋은방 줘 좋은방"


***


시작부터 좆망한 바르그 미연시. 라붕이는 바르그를 불러들인 게 악수였다는 걸 깨닫고 만회할 방법을 모색합니다. 먼저 테일러가 보내줬던 밀린 보고서들을 뒤진 끝에 바르그와 마리아에 관련된 자료를 찾습니다.


델타의 능력과 지능을 못쓰는 이상 마리아를 부활시킨다는 건 불가능하지만, 일단 마리아의 상태가 어떤지부터 확인해두자.

다 영어긴 하지만... 어떻게 영어사전을 끼고 해석해본다면...


[마리아 리오보로스의 시신을 확보. 멸망 전쟁 막바지에 사망한 것으로 보임. 추정되는 사인은 휩노스 병. 부패해서 소생은 불가능하나 이 사실만 숨긴다면 그녀 휘하의 엠프레시스 하운드를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보임.]


...내가 아니라 델타가 와도 부활못하는 상태네.


X발

아니 진짜 델타 이 양심터진 년이, 있지도 않은 걸 거래 조건으로 내걸었다고? 무슨 철지난 만우절 농담도 아니고!


ㄹㅇㅋㅋ


근데 바르그는 왜그리 마리아를 못버려 안달인거지? 마리아는 제 부하들을 모질게 대하지 않았나? 장화는 분명히 여제를 증오했었고, 천아는... 뭔가 중립적이었던 거 같은데.


[바르그. 엠프레시스 하운드 중 여제 직속 처형인. 다른 맴버들에 비해 월등한 전투력을 지녔을 뿐더러 여제에 대한 충성심이 특히나 높음. 제작 과정에서 컴패니언 시리즈의 유전자가 섞였기 때문으로 보임. 꾀어내기에 제일 적합한 대상.]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리리스 앞에서 주인 시체를 미끼로 쓴 셈인가...?


세상에, 이걸 들키는 순간 바르그가 내 목을 날려버릴텐데! 어떡하지? 일단 바르그가 절대로 마리아의 시신을 확인하게 둬선 안되니 시신을 꽁꽁 숨기고, 관련자료도 폐기하고, 그리고 또...


...


차라리 그냥 바르그를 도로 밖으로 내보내는게 낫지 않을까? 


솔직하게 마리아 부활 불가능하다고 알려주고 시체 돌려주면 용건이 없어진 바르그는 돌아가주지... 않을까? 뭐 일단은 속였으니 화가 나기야 했겠지만...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자. 싹싹 빌자.


.

.

.


"드디어 시킬 일이 생겼나?"


"아니... 마음이 바뀌었어."


"뭐라고...? 그게 무슨 의미냐? 거래는 어쩌고!?"


"글쎄, 그건... 아직 서로에게 오고간게 아무것도 없으니 거래를 취소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여제님은!? 설마 여제님의 유해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나!?"


"아니. 그 부분은 분명한 사실이야."


"그럼-"


"돌려줄게."


"...뭐라고?"


AGS들이 운반하는 관이 도착하자 바르그는 조심스레 관 뚜껑을 열고, 마리아의 유해를 직접 보게 됩니다.


"...부활할 수... 있다고 했잖나... 뭐가, 뭔가 부활에 필요한 재료라도 있는건가? 말만 하면 내가 구해올 수 있다. 그러니-"


"널 부를 땐 마리아를 살리겠다고 했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발견했을 때부터 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부패한 상태였어."


"......"


"거짓말해서 미안해."


"...나를 속여서 재밌었나?"


눈이 역안으로 변한 바르그는 델타의 멱살을 콱 붙잡습니다.


"여제님께서 다시 세상을 거닐 날을, 여제님과 재회할 날 만을 기대했다! 실날같은 희망을 품고 먼 길을 걸어 네 앞에 당도했다! 그런데 뭐? 불가능해!? 거짓말해서 미안해!? 여제님의 유해를 훔친 도굴꾼 주제에 이제와서 양심있는 척이라도 하려는 것이냐!? 내 앞에서 여제님을 욕보이고도 살아남기를 바랬나!? 할 말이 있으면 해봐라!!"


"..."


"해보라고!!!"


"...미안해."


"...."


바르그는 한참을 씩씩대며 델타를 노려보다, 이내 손을 떼고 마리아가 안치된 관을 들어올립니다.


"아, 어디로 가는지 말만 하면 우리쪽에서 옮겨줄 수 있는데..."


"사양하지. 내 손으로 해야만 하는 일이다."


바르그는 오기로 관을 들고 양지바른 곳을 찾아 맨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합니다. 차 타고 바르그를 뒤쫓은 델타는 삽 한 자루를 건네줍니다.


"...도움은 필요없다고 했을텐데."


"알았어. 안도와줄게. 그냥 필요해보이는 도구를 빌려줄 뿐이야."


"네년에게선 어떠한 방식의 원조도 받고싶지 않다."


"왜 그렇게까지 고집피우는 거야?"


"..."


"억지로 맨 손으로 땅 파도 깊게 파기는 힘들텐데, 여제를 위해서라도 제대로된 무덤을 만들려면 그냥 삽 쓰는데 낫지 않겠어?"


"......"


"그리고 또, 그렇게 네 몸을 망쳐가며 일해봤자 하늘에서 여제가 기뻐하겠어?"


"여제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잘도 지껄이는군."


"그래 뭐, 솔직히 말하자면 말 한번 섞어본 적이 없으니 전혀 모르지. 테러단체 수장이라는 대외적인 정보밖에 몰라. 그렇지만 신체발부수지부모라는 말도 있잖아?"


"..."


"뭐, 정 싫다면... 그냥 삽 여기에 두고 갈게. 넌 나한테서 받는 게 아니라 우연히 땅에 떨어진 걸 주웠다는 식으로-"


"바보같은 소리 하지말고 이리 내놔라."


약간이나마 마음이 열린건지 바르그는 델타에게서 삽을 건네받고 속도를 높입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프랑스에 작은 무덤이 하나 생깁니다. 델타는 테일러를 닥달해서 구해온 흰 장미를 무덤에 바칩니다.


"보면 볼수록 넌 대체 뭘 하고 싶어하는 건지 모르겠군."


"뭐... 세상은 이해 안되는 일들의 연속인 법이지..."


"..."


"음... 마리아는... 좋은 사람... 이셨지...?"


"...엠프레시스 하운드를 창설해 민간 대상의 테러를 일으키고 적을 척살하셨으니 객관적으로 보자면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긴 힘들겠지."


"어, 음. 그럼... 호상이라던가...?"


"아무도 곁에 있어주지 못한채 악몽 속에서 돌아가셨는데 호상이라고?"


"아, 아니 그게... 미안. 내가 이런 걸 잘 못해서..."


"그래보이는군."


한참의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저기..."


"뭐냐."


"넌 앞으로 어쩔 생각이야?"


"모른다. 삶의 목적이 사라져버렸으니 뭘 해야할 지 모르겠군. 그렇다고 여제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목숨을 스스로 끊을 수도 없고 말이지."


"오... 음..."


"너는 어떻지?"


"어? 뭐가?"


"너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나?"


"그야...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기 위해?"


"...펙스 회장의 부활이 너희 레모네이드의 목적 아니었나?"


"이미 죽은 사람이야."


"..."


"...바르그."


"듣고있다."


"생각해봤는데, 갈 데가 없다면 우리한테 오는 건 어때?"


"감히 새 여제를 자칭하는 건가?"


"아니, 아니. 부하가 되라는 게 아니라. 뭔가 다른 목적이 생길 때까지 용병으로 일해보는 건 어떠냐는 거지. 뭐, 말이 용병이지, 그냥 눌러앉기만 해도 돼."


"..."


"묻고싶은 게 있다."


"...나를 묻고싶다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방금 내가 말한 건 질문을 하고싶다는 의미었다."


"...뭔데?"


"여제님의 소생을 미끼로 나를 꾀어내는 건 네가 생각해낸 건가? 아님 네 부관의 아이디어인가?"


"...테일러에겐 죄가 없어. 내가 죄인이지."

(애초에 델타가 고안해냈던 아이디어고, 테일러가 행동으로 옮긴 것도 내가 허락해서니까...)


"이리 갑작스럽게 변심할 거였으면 애초에 왜 그런 발상을 해낸거냐."


"글쎄...

나도 어쩌다 이렇게 변한건지 모르겠네."


"..."


"용병이든 뭐든 네 밑에 들어가게 된다면, 너는 나에게 뭘 줄 수 있지?"


"응? 어, 그건... 월급?"


"...숙식 제공이면 충분하다."


델타군에 바르그가 용병으로 들어왔습니다.


*** 바르그 시점 ***


레모네이드 델타가 접촉해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인류멸망 후 내가 야생을 떠돌아다닐 무렵, 어떻게 나를 찾아낸 델타가 제 밑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했었다. 여제님을 배반할 생각이 없었던 나는 거절했고, 그년은 군대를 보내 나를 압박했다. 그 군대를 역으로 쳐부숴주자 그년이 내민 것은 여제님의 유해를 저들이 가지고있다는 정보였다. 


여제님의 유해가 저 혐오스런 작자의 손에 넘어갔다는 사실에 절망했었지만, 저들이 그 다음으로 내민 여제님의 소생이라는 달콤한 미끼에 나는 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가능성이 한없이 낮은, 아니 실현 불가능한 희망이란 걸 알면서도 나는 델타에게 머리를 숙이기 위해 이를 악물고 프랑스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직접 만나보자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화상으로 대면했을 땐 모두가 자신을 떠받드는 게 당연하다는 듯 오만하고 독선적인 모습만 보여줬었는데, 눈앞에 나타난 건 정말로 같은 사람인건지 의심될 정도로 분위기가 달라진 델타였다. 뭐랄까, 서민적이게 된 것 같다.


정말로 당황스러웠던 순간은 그 여자가 거짓말을 했음을 인정하며 사과하고 여제님의 유해를 돌려줬을 때였다. 그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해 표정관리도 못하고 감정적으로 나갔음에도 델타는 내 분노를 받아줬다. 자신도 떨고 있었으면서. 나한테 해코지 당할까봐. 예전의 표독스런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처연히 눈을 내리깐 모습에 나는 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레모네이드 델타라는 작자가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는 사람이던가.


혹시 저 모습이 무슨 계획된 수작질이 아닐까 싶었지만, 검은 정장을 입고 찾아와 여제님의 무덤을 짓는 것을 도와주고 무덤에 흰 장미를 바쳤을 때 나는 그녀가 변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가 다시 자신에게 오라고 하자 나는 고민끝에 그러기로 했다. 마땅히 갈 곳도 없다는 것도 이유이긴 했지만, 그보단 그녀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건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 다시 델타 시점 ***


아 씨바 개무서웠다. 쟤 눈 역안으로 바뀐거 보고 죽는 줄 알았어서 식은땀 났네


쫓아낼 각이었는데 혼자서 무덤 만들고 무덤 앞에 조용히 앉아있는게 괜히 별 생각 들어서 오지 않겠냐고 하다니 나 미친 거 아냐? 쟤는 왜 또 오겠다고 한건데? 이제 나한테 얻을 것도 없잖아! 설마 나 담그려고 각 재는건가? 솔직하게 잘못 고백하고 목숨만 살려주십사 싹싹 빌었는데도!? 내가 왜 내가 한 것도 아닌 일 때문에 이 모든 위기를 겪어야 하는거냥 말이야아아...


...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진짜로...



下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