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헤어질결심] 아마도 당신이 게임을 접으면 일어나는 일 11(1)~15(5) 完






 아마도 당신이 게임을 접으면 일어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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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은 "아마도 우리가 게임을 접으면 일어나는 일" 카사 커뮤니티 고전작 패러디.


 지금 이게 1편인데 마치 저것하고 연계되는 인상으로 숫자 11부터 쓰자 생각했음. 직접적으로 플롯이 계승되는 것은 아님. 그냥 숫자 또한 제목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좋을 거 같다. 이럼 3차 창작 같은 느낌일까….


 저거 썼던 카붕이가 아직까지 카사 하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싫다하면 제목 바로 바꾸겠음. 사실은 계삭해서 본인인지 확인도 불가능하겠지만….




 << 소개 >>



 여태까지 너무 길이가 길고 내용도 복잡하게 써서, 비쥬얼 노벨처럼 문장의 길이가 극도로 절제되고 짧고 빨리 읽을 수 있는 느낌으로 쓰자 생각했음. 그래서 책보단 시에 가까운 느낌?




 << 등장 인물 >>



 타기리온: 메인 빌런. 또한 완전하게 승리하는 빌런.


 스완: 발상의 근원. 마왕 타기리온의 설정에 관해 이때까지 멸망한 세계가 많았으며, 스완이 그녀가 침공했던 세계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것에서 소재의 중심으로서 취하게 되었음. 그런 정체성에 맞게, 마치 추리소설 탐정처럼, 세계종말을 냉정한 건조한 시선으로 보고하는 관찰자 기능을 수행하는 캐릭터.


 유미나: 늑대가 아니라 그냥 대적자라고 정함. 탐미엘도 여기 없고.


 이수연: 힐데도 유빈도 없다는 설정의 세계관이라 그들의 역할을 적당히 가져감.


 주시영: 버려진 세계의 저항자. 시윤이 아닌 이유는 힐데도 없고 그냥 크로스로드 설정을 섞고 싶어서.


 카린웡: 버려진 세계의 저항자. 크로스로드 설정을 섞었기에 델타세븐의 구성원은 카린 하나.


 신지아: 클리포트 게임에서 역으로 뒤집혀서 전부 죽는 구도를 취했기에 지아가 나옴.


 에스테로사: 클리포트 게임에서 역으로 뒤집혀서 전부 죽는 구도를 취했기에 로사가 나옴.


 엘리자베스: 클리포트 게임에서 역으로 뒤집혀서 전부 죽는 구도를 취했기에 리사가 나옴.


 류드밀라: 클리포트 게임에서 역으로 뒤집혀서 전부 죽는 구도를 취했기에 류드밀라가 나옴. 이수연과의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알렉스는 이미 죽었다는 설정. 드라마적 요소로서, "관리자와 만나면서 오랜 저주에서 해방되며 구원 받은" 류드밀라가 다시 버려져서 그냥 죽어버리는 플롯.


 나유빈: 원작 메인 세계관 대적자. 플롯에 관여하지 않으며, 미싱 링크처럼 최후에 스완하고 만나면서 육익의 정보원으로 영입되는 대화를 서술하며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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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I9nnOG4W00g

 (마우스 오른쪽 눌러서 반복 켜주세요)







 관리국 최후의 방어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최전방에 차원전함들이 워프되며, 인류 최정예가 지금 집결했다.




 관리자가 말도 없이 사라졌던 이후, 마왕과 침식체들의 침공도 그 끝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들에 있어서 최악의 종말으로.







 고아한 갈색의 긴 머리를 휘날리며 카린이 모두와 눈을 맞추곤 중얼거렸다.


 "드디어, 모두가 모였군요."


 델타 세븐과 코핀 컴퍼니, 그리고 그 외 세력은 조디악 나이츠, 프리드웬 기관, 그리고 알파트릭스 뿐이다. 애초에 실낱 같은 희망만 남았던 세계에서 구심점이 사라져, 오랜 시간에 걸쳐 몰아닥친 혼돈과 풍파에 나머지는 전부 없어졌다.


 하지만 그 사실은 극비통제로 이수연과 코핀 컴퍼니의 일부만 알고 있었다.


 관리자가 아직도 머신갑의 이름을 사용하여 관리국을 움직이고 있다는 오해를 가지고… 카린은 이수연을 보았다.



 "부사장, 이것이 우리의 전력입니다. 최고관리자는 어떠한 작전을 입안하셨나요?"


 "……."



 수연은 마치 침식체와 같은 새빨간 붉은 눈으로 지평선 너머를 보았다. 자신이 관리자라면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 도대체 무엇이 최선인 것일까. 억지로 없는 사람의 대행자역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심리적인 부담감이 컸었지만, 여기서 그녀마저 없으면 모두가 무너질 것이다.



 갑자기 그가 사라진 그날부터….


 각오한 것이다.



 양팔을 교차해, 자신감 있는 미소로 피로함을 숨기며. 수연이 말했다. "이번 작전은 어쩌면 마왕 자체를 공략할 수도 있는… 그리고 아예 전쟁 자체를 끝낼 수 있는 한 수입니다."


 "……."


 침묵하며 집중하는 카린의 옆으로, 지아와 스완이 섰다. 그들의 옆으로 엘리자베스 및 에스테로사, 그리고 수연의 옆으로 대적자 미나와 시영이, 마지막으로 류드밀라가 끼며 모두가 원을 그렸다.


 "이것을 보시죠."



 책상엔 이 세계의 지도가 있다.







 수연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병력의 질은 우리가 높지만, 양은 저쪽이 압도적으로 많지요. 다만 마왕 타기리온만 처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끝납니다. 그렇기에…."


 그녀가 팔을 걷고는, 곧은 검지 손가락을 뻗어 주력부대를 가리키었다. "우리가 이쪽에서 방어하는 동안에, 별동대를 복병으로 보내 대기를 합니다. 그리고…." 수연은 말을 마치며 다음 지도를 밑에서 꺼냈다.




 




 "주력 부대과 적과 교전하는 도중, 별동대가 모습을 드러내며 타기리온 쪽으로 향합니다."


 그러자 카린이 말했다. "…이런 걸로 이길 수 있다 생각하는 건가요? 타기리온의 주위에는 호위병력이 많이 있을 텐데?" 그러자 수연이 붉은 원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게 바로 지도에서 그려졌던 붉은 원입니다. 이 작전에 진짜 중요한 포인트는 다음…."








 "별동대의 선두가 후퇴하는 척을 하며 유인하면, 그때 대적자와 시영 양이 마왕의 배후로 이동해 급습을 겁니다. 만약 성공한다면 마왕 자체를 처치… 더이상 전황을 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리하게 될 건 틀림없을 겁니다."


 "……."


 모두가 그걸 듣고서 침묵하는 가운데, 카린은 수연을 노려봤다.


 그 눈동자의 뒤에 무슨 감정이 있는 건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정말로 관리자님이 이러한 지시를 하신 건가요?"


 "어디에 의문이 있는 거죠?"


 나이와 경험이 쌓이면서 전술적인 식견도 자연스레 늘어난 그녀였지만, 이수연은 본인도 자신의 능력이 특출난 정도는 아닌 걸 알고 있었다.


 목소리는 짐짓 엄격하게 냈지만, 불안을 가진 그녀답게 사실 카린이 자신이 보질 못했던 맹점을 지적하거나,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하진 않을지 내심 기대하고 있다.


 "먼저…." 하지만 카린은 그걸 몰라, 잠시 목소리를 흐리고는 다시 말했다. "별동대는 누가 지휘하는 건가요?"


 "당신입니다."

 "네?"


 "이 작전은 본대가 방어에 실패할 경우 끝나게 됩니다. 우리 전투기는 지난 교전에서 너무 많은 수를 소모했고,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도 제가 본대에 남지 않으면 안 됩니다."


 카린이 스완을 힐긋 보면서 물었다. "별동대엔 누가 누가 가는 거죠? 아마 스완 씨랑…."


 수연이 고개를 저었다. "별동대는 대적자와 시영 양과, 에스테로사 단장, 펜드래건 기관장과 당신이 알비온에 승선하여 반격의 때를 노립니다."


 "…뭐라고요?"


 카린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스완 씨가 여기에 남는 건가요? 그녀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면…."




 신은 죽지 않는다.


 타인이 존재를 부정하려고 해봤자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다.


 침식체의 형상을 하였지만, 류드밀라와 같이 이 세계 수호자와도 같은 것.




 우산을 땅에 꽂으며 조신하게 서있던 스완이 대답했다. "가디언이 아니라고 해도, 마왕은 저를 피하고 있어요."


 "…그건 무슨 소리죠?"


 "그녀는 호승심 강하고 명예로운 네헤모트 같은 자와 달리, 영악한 교활한 수단을 사용하길 즐기는 자입니다. 그녀는 제가 거울을 사용하여 어디까지 시험할 수 있는지 모르기에 경계하고… 제가 가디언과 함께 그녀를 쫓으면 도망칠 뿐이죠."


 아티팩트 파노라마.



 존재를 가둔다거나.


 도구를 복제하거나.


 내면을 읽는다거나.



 이전, 마왕이 임의의 이면세계를 경유해 이동할 당시에, 스완이 몰래 숨어서 기다리다 습격한 적이 있었다.


 자신에게 익숙치 않았던 영역이라 애초부터 스완에게 유리했던 싸움이었고, 파노라마의 권능으로서 대적자와 같은 힘을 카피하여 무적과도 같은 마왕을 죽일 힘조차 있었다 - 애초에 미나가 아군이니까 조력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 타기리온은 호위병력을 희생하며 싸움에서 안전하게 물러났지만, 이후에 스완이 도대체 무슨 힘을 가졌는지 몰라, 조심스럽게 경계할 뿐이다.


 스완은 몰랐지만 아마도 타기리온은, 멀린에게 당한 직후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생각하는 것이리라.



 그녀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제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하고 같이 마왕을 쫓아도, 단지 방어선이 무너질 때까지 절 유인하기만 할 뿐이라면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렇겠죠." 카린은 눈을 깜빡이면서 고민하다가 다시 수연을 보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석연치 않군요. 정말로 이길 수 있는 건지요? 전개가 어려운 작전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을 정말 깔아줘도 지금의 대적자가 마왕을 이길 수 있다 생각하시나요?"


 그게 문제였다.


 수연이 말했다. "지금의 대적자라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길 수 있다, 질 수도 있다,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는 갬블을 하는 것이 아니예요. 확실한 승산이 있나요? 근거는? 관리자님이면 계산을 했겠죠. 도대체 무슨 과정을 취했기에 이게 최선이란 것이죠?"


 "……."


 카린이 말했다. "대적자의 힘은 세계에서 생존자가 줄어들 수록 강해진다고 했죠. 전 이곳의 위치를 포기하고 아예 현실세계에서 농성하는 것을 제안해요."


 "뭐라고요…?" 이수연은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적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타기리온이 자신의 군세를 충원시키는 속도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적일 수록, 지하 벙커에서 계속 농성하며 상대가 실수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죠."


 그건 안 된다.


 마왕은 오직 이곳 루트만 통해 침공할 수 밖에 없다. 여기가 뚫리면, 현실세계에 침식균열이 얼마나 많이 어디서 열릴지도 모른다. 연합군의 영토를 지키기엔 지금의 병력으로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시민들이 죽는단 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건 군수시설과 생산기반을 모두 잃고, 단지 지하에서 모두 갇혀 말라죽을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던가?


 "그건 안 되요."

 "어째서죠?"


 "카린 양도 보기보다 우둔하시군요. 이곳을 내준다고 신중한 성격의 타기리온이 빈틈을 내줄 것처럼 보이나요?"

 "죽여달라고 멍하니 있지는 않겠죠! 하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지금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라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대적자는 비약적인 상승을 거치겠죠…!"


 "벙커에 처박혀서 도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겁니까…?! 설령 미나 양이 거기까지 강해져도, 타기리온이 싸움에 응할 것처럼 보이시나요? 이면세계 곳곳마다 자기 눈과 귀를 심어두고 피하려고 할 게 분명한데…! 국가가 완전히 궤멸하면 남은 자원도 없이 대체 언제까지 버틸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하지만 여기서 실패하면 우리에게 뒤는 없다는 거예요! 그녀가 신중하게 움직이면, 우리도 신중하게 움직여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두 여자는 언성을 높이고 계속 서로의 주장을 했다.


 미나도 시영도, 그리고 지아도 엘리자베스도 에스테로사도 딱히 아무런 말도 하질 않았다.


 스완이 조용히 말했다. "…사실, 양쪽을 만족시키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예요."


 둘이 돌아보자, 스완이 땅에 우산을 콕콕 찌르면서 말했다. "지금 당장 지구권에 남은 모든 미사일을 무작위로 주거지에 폭발시키세요. 그러면 미나 양은 즉시 엄청난 힘을 갖게 되겠죠. 그리고 사태가 끝나면 한 사람이 모든 책임을 지고 자결하면 되겠네요."


 "……으."

 "그건…."


 직접적으로 말하길 꺼렸었지만, 어쨌건 그게 카린이 자신도 모르게 원하던 방향성이긴 했었다. 그리고 수연도… 지금 그녀가 말한 방법이 어쩌면 좋지 않을까 고민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짓을 한다면 침식체들과 다를 게 없게 되겠지요." 스완은 털어내듯 웃었다. "여기에 있는 모두가 그걸 원할 것 같지는 않아요."




 카린은….


 그것을 마지막까지 아름답고 깨끗한 척하면서 양심을 지키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다만 파노라마로 자기 내면을 전부 들여다 본 스완은, 이미 존재에게 있어 죽음이란 뭔지 알았으며….


 성공하건 실패하건, 끝까지 자기 자신으로서 적에 맞서는 것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르는 채, 아직도 혼자서 평온하고 차분하게 미소를 짓는 그녀가 제안했다. "결정은 빨리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부사장의…"


 수연과 눈이 마주쳐, 스완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고쳤다.


 "…실례, 관리자님의 작전에 찬성하는 분들과 반대하는 분들의 표를 갈라서 결정하는 것은 어떤지요?"


 "……."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연이 말했다. "저는 찬성합니다. 반대할 이유가 없어요."


 미나가 말했다. "나는… 기권할래. …싸우긴 할 거야. 내가 틀린 선택을 할지 모른다는 건 너무 부담스러워."


 시영이 말했다. "하아… 저는 찬성할께요. 미나 양이라면 충분히 강한데, 아직도 스스로를 의심하네요."


 류드밀라가 말했다. "…찬성이다. 전우가 결정한 사항이야. 따르지 못할 건 없지."



 여기서 말하는 전우는, 수연이었다.


 류드밀라 또한 관리자가 떠난 걸 안다.



 지아가 말했다. "저는… 반대해요.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아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실패할 것 같아요."


 천재의 감인가?


 모두가 그녀를 쳐다봤지만, 지아는 눈동자를 돌릴 뿐이었다.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기권하겠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승산은 양쪽에 대등히 있는 것 같군요."


 에스테로사가 말했다. "나도 기권하지. 미나랑 똑같이, 판단은 그대들의 몫에 남기고 싶군."


 카린이 말했다. "말을 꺼낸 이상, 저는 반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카린은 스완을 쳐다봤다.


 스완이 말했다. "…저도, 기권하겠어요."


 '왜 웃고 있지…?'



 모두가 정신적으로 몰리며 우울한 심각한 와중에, 그녀의 태도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카린이 스완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어째서 기권하는 것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결과가 어떻게 되건, 납득할 수 있기에 그렇다고 생각하네요."


 "……."


 "그래요. 성공하건 실패하건… 결과는 정해진 게 아니라, 오직 우리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설령 미래가 완전한 끝이라 해도, 우리 전체가 선택했기에 거기에 도달하는 것이겠죠."



 스완은 문자 그대로 의미했지만, 어쨌건 카린은 그런 시적인 표현에 신경을 집중할 여유가 없다.


 이것이 정말 맞는 것일까… 그렇게 고민하며 카린은 한숨을 쉬었다.



 "좋아요. 비록 저는 반대하긴 했었지만, 그래도 여태까지처럼 최선을 다하겠어요. 만일 제가 틀렸다면… 그때 가선 솔직하게 기분 좋게 인정하고 싶군요."







 이십 분 뒤.


 격렬하게 울려퍼지는 총성하고 비명소리. 전장에 휩쓰는 고통과 분노는 인간들과 침식체를 가리지 않고서 퍼졌었다. 착지시킨 전함마저 고정포대처럼 사용하며 결사항전하는 지금, 묘하게도 양산형 타이탄과 전차들을 비롯한 지상전력은 그다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수연의 판단대로, 수비전에 이곳이 최선의 지형임은 틀림없던 것이다. 진입각이 좁은데다 뻥 뚫려있어, 압도적인 사거리와 화력으로, 돌격하는 지상 침식체는 장갑이 얼마나 두텁건 박살났다.


 결국 비행 침식체가 사각에서 돌진하여 폭격해야 화력에 구멍이 생기지만, 그 윙즈 오브 에이스인 이수연이 있는 이상, 그리고 창공을 가르는 선더볼트 부대가 하늘을 지키는 이상, 그런 일은 없다.



 무엇보다 3~5종 침식체는 전부 정면에서 스완과 류드밀라가 보이는 순간 일격에 협공으로 처치했다.



 쓰러져 죽어도 죽어도 갑자기 일어서며 계속해서 싸우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런 가디언이 적에 둘러쌓일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염동력을 난사하며 방해하는 류드밀라.


 그리고 그녀의 옆에서 사각으로 몰려드는 침식체를 춤추듯이 우산으로 찌르거나 걷어차는 스완.



 셋은 이수연과 함께 좀 앞으로 나설 필요가 있었다. 애초에 침식체가 진형에 들러붙지 못하게 막는 것이 전술의 요지였으니까. 뒤에서 지아가 의무병들과 함께 부상자들을 돌보는 가운데, 걱정과는 달리 무난하게 전투를 지속하고 있었다.



 상황을 냉정하게 예측하던 스완이 말했다. "…솔리키타티오. 이쪽으로 오질 않는군요."


 타기리온의 으뜸패이자 부장과 같은 존재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마왕의 옆에서 호위병으로 쓰고 있단 거다.


 또한, 별동대가 상대해야 하는 책임이 더해진다는 의미와 같다.


 "전우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


 앞으로 얼마나 많은 적들이 남은 것일까?


 애초에 얼마나 많은 적들을 끌고 왔었나?


 스완은 발을 바쁘게 놀리면서 싸우면서도, 고개를 올려 하늘의 이수연에게 물었다. "부사장, 지금 별동대와의 연락은 되나요?"


 이수연은 바쁘게 선더볼트 편대에 지시를 내리면서도 스완의 말에 대답했다. "타기리온이 전장에 나타난 이후에 침식파의 농도가 너무나도 짙어졌습니다."


 '…이렇다면….'


 '카린이 무능한 지휘관은 아니지만, 공격할 때를 잘못 잡지는 않을지 걱정되는군요.'


 모든 계획의 허점은, 상대가 자신의 상상에 맞춰 행동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얼핏 보기엔 매우 합리적인 계획처럼 보이지만, 헛점이 없진 않았다. 만일 상대가 병력의 일부만 앞에 보내면? 혹은 별동대가 핵심이란 것을 알고, 역으로 덫을 둔다면?


 또한 방금 우려한 대로, 별동대가 잘못된 때에 움직일 경우라면, 적이 공격하던 병력의 후열만 되돌리면 그대로 양면공격을 당하는 것이다.


 알면서도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대적자의 옆엔 뱀이 있다. 일단 최악의 경우라 해도, 둘만은 위급한 상황에 빠져나올 것이니까.


 즉, 수연과 카린이 예측하는 것처럼 큰 리스크는 아니었다. 찌르기가 실패하면 그냥 회수하면 된다. 만일 거기까지 가면, 단순히 카린이 제안했던 방식으로 자연히 흘러갈 뿐이니까.


 거기까지 알고 있긴 했었지만, 그래도….



 "…회장이 말했죠. 뭔가 기분이 좋질 않다던가."


 류드밀라가 말했다. "의외로군. 언제부터 네가 자기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감을 믿었던가?"


 …….


 스완은 조용히 웃으면서 사뿐히 발을 멈췄다. "그래요, 걱정이 된다면 이쪽에서 밀어버릴 각오로 움직이죠."


 "잘 말했다. 적들에게 강철의 눈보라를 보여주지…!"


 류드밀라가 팔을 캐논으로 변형시켜 차지하는 도중, 날아오는 침식체를 스완이 몸을 던져서 쳐내었다. 곧, 블랙홀과 같이 응집되던 에너지가 전방위로 짧게 날라가며 중심부터 붕괴하며 폭발했다.


 스완이 쳐냈던 비행체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야수와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우악스러운 손가락으로 집어 게걸스럽게 씹어삼켰다. 서로 등을 맞대고 싸우는 긴 시간에 어느새 둘의 연계는 자연스럽게 맞춰진 거다.




 




 안 좋은 예감은 언제나 맞는다.


 솔리키타티오, 제5종 침식체였던 그녀가 거기 있었다. 비록 엘리자베스가 공중에서 원호하고, 카린이 숨어 사격해, 대적자인 유미나가 적에 맞서면서, 좌측엔 로사가, 우측엔 시영이 보조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얕보였을지 몰라도, 체스로 친다면 타기리온 측의 퀸과 같았으며, 이쪽 류드밀라와 다를 게 없다.


 거기다 같은 타입의 3종 및 4종, 네르비에 같은 침식체도 대동했다.



 "미스 펜드래건, 적은 얼마나 많이 있나요?!" 수풀 사이에 숨어 계속해서 저격총을 쏘던 카린이 물었다.


 타기리온이 나타난 직후에, 아예 레이더 같은 기기들은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날개를 가진 그녀가 눈의 역할을 맡는 것이다. 잠시 공중에 떠서 둘러보던 그녀가 대답했다. "스무 명…? 서른 명…? 하지만 그것이 전부예요!"


 이쪽은 고작 다섯 명이다.


 그것만이 아닌, 여기에서 제일 강한 패인 대적자를 뱀과 함께 보내야만 한다.


 '자살 특공대원이랑 다를 게 없군요, 정말로….'




 사실 원래 계획은, 마왕으로부터 호위병을 유인하며 떼어두는 것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아예 살기 위해 도망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말해줘요, 리사… 보이나요? 타기리온?"


 "…네."


 "그녀의 주위에 누가 남았나요?"


 하얀 날개를 펼쳐, 지평선 너머를 슬쩍 보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


 카린은 그러자 바로 신호탄을 쐈다.


 '그러면, 행운을 빕니다…!'




 지금,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자기가 죽어도 상관은 없다고.


 마왕이 죽고서 세계가 구원을 받으면 괜찮을 거라고.




 하지만 상황을 아는 미나가 그걸 보고선 말했다. "잠깐… 여기서 우리가 빠지면, 단장님이랑 남은 둘은…!" 그녀가 울브즈베인으로 공격을 쳐내면서 다가오는 적들을 보았다.


 그러나 시영이 그녀를 재촉하기 전에, 걱정의 눈빛에 역정을 내듯 로사가 외쳤다. "누굴 걱정하나! 가라, 대적자여!"


 "하지만…!"


 "세계의 선택을 받았다고, 자신만이 싸울 수 있는 전사라고 오만하게 굴지 마라! 나도 별의 인도를 받는 기사다!"


 "…젠장…!"


 때를 놓치지 않고, 주위의 시선이 집중된 그 상황에 로사는 검의 별빛을 방출시켰다. 마치 태양과 같은 광휘에, 침식체들은 일순 눈을 가리며 그녀를 똑바로 볼 수 없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시영이 미나를 붙잡고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하아… 뒤는 맡기세요. 이런 말하긴 싫은데… 여태껏 정말로 고마웠어요." 그녀들이 바로 공간을 잘라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엘리자베스는 조용히 혼자서 읊조렸다.


 "기사에게 필요한 것이란 명예로운 죽음… 그리고 뼈를 묻을 전쟁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직 이 날을 위해서 훈련했던 것이니, 용기와 영광은 영원하리라."


 분홍빛 긴 머리를 가진 여기사가 혼자 서있다. 설령 적이 등을 보이고서 도망쳐도, 아예 목숨을 바치면서 방해해 죽을 각오겠지.


 하지만 솔리키타티오가 그녀에 다가오며 비웃고는 조롱했다.


 "너희 같은 연약하고 엉성한 살덩이가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 만든 것이 무엇인지 아나? 명예, 신념, 의지… 그런 거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서 마치 그림자 같이 따라다닌 같은 타입의 침식체들이 줄줄이 전개하였다. 하지만 그걸 보고도, 로사는 푸른 눈을 비추며 각오를 다졌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가능성이다, 그리고 기사의 정신이다…! 힘에 취한 너희 같은 괴물들이 어둠에 저항할 긍지가 있겠는가?!"


 "……!"


 "심연에 떨어져, 환경을 탓하며, 운명을 저주해, 스스로를 구하지 못하고 포기해… 결국은 더러운 어둠과 하나가 되었다. 그것이 너희다! 나약한 정신들이여!"


 그녀는.


 내면으로부터 진정한 빛의 기사다.


 그리고 그 호통이, 너무나도 단순했던 말이지만, 솔리키타티오와 그 비슷한 리타들에겐 너무나 거슬렸다.


 솔리키타티오는 얼굴을 일그러트려 중얼거렸다. "이 계집… 곱게 죽고 싶지 않나 보군… 네년의 살갗을 찢어서 괴롭히고 짓밟으며 살려달라고 울부짖게 만들어주지…."


 그리고 다른 자매도 동시에 말했다.


 "눈을 뽑아주마, 기사 놀이나 하는 멍청한 광대년…."


 "그 검을 빼앗아 네 심장에 꽂아볼까…?"


 "…팔다리를 뜯어서 침식체들에게 던져주지."




 하지만 그 단순한 반응에, 오히려 에스테로사는 기백 있는 눈동자를 비추었다. "…와라, 악당. 애초부터 나는 기사라는 의미의 무게를 알고 있었다. 아무리 참혹한 결말이라도 각오했었다… 너희 같은 잔혹한 사악한 무리들을 처단하기 위해서 인생을 바쳐왔다! 그것이 내 기사의 명예이다!"


 선에 형상이 있다면.


 분명히 이 여자의 모습과 비슷할 것이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엘리자베스와 카린도 서포트의 준비를 했다.




 




 싸늘하게 죽은 바람만이 부는 왕좌의 앞에서.


 둘은 공간의 뒤틀림을 타고서 혼자 조용하게 서있는 인형의 뒤에까지 왔다.


 "하아… 역시, 성능 좋네!"


 숨막혀 죽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풀려고 장난조로 농담을 뱉은 주시영. 그리고 그녀의 뒤로, 침묵하며 울브즈베인을 뽑아내는 대적자 미나가 있었다.


 "시영 선배…."


 "네?"


 "우리, 첫 날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해?"


 괴물들하고 싸우기 위해서 태스크포스에 입사해 그렇게 만난 둘이다.


 그리고 그 여정에, 드디어 끝이 다가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 뒤에 영원한 안식이 있을지, 아니면 계속된 투쟁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하하, 네… 깐깐한 부사장님에게 일일이 말대꾸하고 따져댔었고, 아직도 이상한 후임이었던 게 기억나네요."


 "…선배, 나 샤워하는데 갑자기 가슴 만졌던 거 기억해? 나도 시영 언니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어? 저 남자도 아닌데 괜찮지 않아요? 만질 수도 있지 않나?"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 선배, 카린 씨랑 이상한 소문이… 아니, 됬어 정말!"


 …긴장을 풀기 위한 거라면, 시영은 성공한 건지도 모른다.




 미나가 한숨을 쉬며 웃었다. "정말, 선배랑 함께 있으면 엉뚱하지만 재밌다니까. 그러니까…." 힐데가 없는 이곳의 인과에서, 수연과 시영과 미나의 코핀 트리오가 여태 함께 했었던 일들을 짧게 회상하며, 미나는 다시 각오를 다졌다.


 이번에야 말로, 그런 평화를 영원히 얻자고.







 소녀의 목소리가 그녀들 둘을 향해서 울렸다.


 "호오…. 대적자, 어떻게 여기에 온 것인지…?"


 마치 버려진 장난감이 혼자서 말을 하는 것 같은, 뒤틀린 인상이 바로 타기리온이란 소녀.




 훑어보는 그녀의 눈동자와 밑에 머리칼을 쓰다듬는 무수히 많은 손이란, 천공성과 같이 떠있는 그녀의 위압감을 십분 더하였다.


 "…묘하군요. 도대체 뭔 능력을 써서 여기까지 왔던 것일까? 초가속 능력이 있었나? 아니면 함선의 워프 능력을 썼던가? 시간정지계열 기술을 쓸 수 있었나?"


 하지만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뿐에, 그녀는 살짝 당황한 채 상황을 계산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모드레드 이후에 자신이 전황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컨트롤하지 못하면 불안함을 느끼는 마왕이었다.


 다만, 그녀의 목소리는 오히려… 낮고 차분하여 되려 시험하고 내리깔아 보는 인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앞으로 단 한 걸음을 뻗으면 모든 게 끝날 것이다.


 "선배, 내가 마왕을 상대할 동안… 주위를 경계해."


 "…혼자서 싸우겠다는 건가요?"


 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세계가 날 선택한 이유야. 타기리온이 무슨 수단을 남겼을지 모르니…!"




 "후후후… 후하하하하하…!"


 "……."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그 백조와 다르게, 당신을 상대하는 것은 쉽답니다… 늑대."


 그리고 타기리온은 그대로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것부터, 이미 미나에게 불리했다.


 이 세계의 대적자는 격투계 전법에 특화됬고, 사격계 공격은 보조적인 기술에 지나지 않았다. 그마저도 접근해서 영거리 발포를 했었는데, 공중에 붕 떠있는 상대기에 전력을 다하질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적자는 대적자.


 공중에 붕 날아서, 손에서 여러 마법들을 제창하며 많이 쏘아내, 타기리온이 머신건과 같이 쏘아내는 에너지 탄을 능숙히 피하면서 검기로 지워냈다.




 빠르다.




 지난 번과 달리, 검기의 속도가 보고 피할 정도가 아니다. 아니….


 "당신… 지난 번에 비해, 좀 더 강해진 것 같군요."


 미나는 차갑게 대꾸했다. "네가 죽인 사람들의 원한과 영혼이 나와 함께 하는 거야… 아우드라."


 "…호오. 제 옛날의 이름을… 흐음… 백조는 제 기억을 거기까지 엿보고 당신에게 말했군요?"




 하지만 인간성이 없기에, 그녀는 분노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네 약점을 쏘라고 말했지…!"


 "후후후후… 후하하하하하…! 당신에게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말이예요."




 그러나 마왕은 마왕이다.


 탄을 쏘지 않고 쉬었던 손을 통해 계속 침식파의 방벽을 쳐내면서, 뚫고 들어오는 검기를 계속 막는다.


 …힘이 부족한 거다.




 처음에는 단지 자길 시험하나 신중하게 상대를 관찰하던 타기리온은, 아무리 대적자가 진지하게 싸워도, 검이건 총이건 뭘 쓰던지 이 정도만 되는 걸 알곤, 환희에 젖으며 격앙된 비웃음을 터트렸다.


 "세계의 희망이라는 대적자가 고작 이 정도…."


 "으으으…!"


 발악인지, 대적자는 자신의 힘으로 추진력을 써서 타기리온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타기리온은 단순히 침식파의 에너지를 응집시켜 방출하는, 매우 기본적인 응용으로 계속 밀어내었다.


 데미지는 주질 못한다고 해도, 힘 자체를 그런 형태로 사용하는 것이다.




 "폴짝폴짝 뛰는 것이 귀엽군요, 대적자."


 늘어뜨린 손가락을 입가에 대고서 비웃는 타기리온은 마왕의 카리스마를 그대로 드러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야."


 "……칫!"




 스테일메이트.


 만일 타기리온이 지상에서 싸웠다면, 빠른 검격으로 계속 압박하며 늑대가 몰아세웠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대적자의 힘이 강했다면, 총격이나 검기로서 그녀가 막지 못하게 뚫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타기리온의 입장에서도 적들의 전력이 어느정도인지 몰랐듯, 작전을 회의했었던 모두도 이런 양상의 일기토가 될 것이라고 생각치 못했었다. 수연도, 카린도, 스완도, 단지 대등하니까 죽진 않겠지. 밀리진 않겠지.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틀린 것은 아니었다.


 타기리온은 다른 손을 수비에 쓰기에, 오히려 미나에게 유효타를 먹였던 적도 한 번도 없었다.


 유효타는 커녕 아직까지 공격을 맞춘 적도 없었다.


 어떻게 막고는 있지만, 도발하는 태도와는 달리 아예 반격할 엄두조차 내질 못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둘은 대등했다.




 여태까진….




 "칫…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 거지?"


 그렇게 뛰면서 검기를 여태까지 쐈어도, 전혀 지치는 기색이 없는 유미나. 숨을 고르는 기색도 없고, 앞으로 몇 시간은 더 싸울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단지 그녀는 상황이 자기 뜻대로 되질 않으니 정신적인 초조함만 느낄 뿐이었다. 오히려 마왕을 상대한다는 긴장감 및 위압감 자체에, 자신이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오해만 하고 있었다.


 "후후후후… 지루하군요. 이제는 끝내도록 할까요?"


 타기리온이 자신의 손을 튕겼다. 그리고, 하얀 인형의 손도 튕겨졌다.



 그리고 동시에.



 하얀 실이, 기둥과 기둥의 저편에서, 바닥과 바닥의 사이에서 들어올려.


 실톱과도 같이 대적자의 전신을 향해서 다가왔다.


 "설마… 싸우던 도중에, 보이지 않게 함정을…?!"




 머리카락.


 타가리온의 머리카락 색과 동일했다.


 방어만 하고 있었다 생각했었는데…!




 하지만, 대적자의 힘을 타기리온 또한 너무나 얕봤다.


 "…뭐야, 별 것 아니잖아."


 피할 수 없다. 분명히 맞는다. 그렇게 주춤한 미나였었지만, 살을 가를듯 매섭게 당겨 옭아맸던 실은….




 그녀에게 아무 데미지도 주질 못하였다.




 아무런 상처도 없으며, 그렇다고 움직임을 속박하는 것도 아닌….


 미나는, 마치 거미줄과 같이 살짝 불편함만 느껴, 손가락과 팔을 움직였다.




 "아니…?!"


 타기리온은 놀라 눈동자를 크게 떴다. "이게 무슨… 모드레드 정도라면 이걸로서 끝났을 터였는데…!"


 카운터마다 힘의 성향이 매우 다르듯이, 대적자마다 힘의 성향이 매우 다르니까.


 애초부터 격투계에 가까웠던 미나에겐, 그에 따른 방어력과 지구력의 비약적인 상승률이 주어졌던 거다.




 타기리온 또한, 상대의 힘을 정확히 파악하질 못했다.




 '잠깐… 이거, 머리카락이면…!'


 갑자기 섬광과 같은 발상에 미나는 눈을 번쩍이면서, 그대로 실을 잡았다. 그리고, 휙 전부다 당겼다.




 "그으으으윽?!"




 "……."


 매섭게 노려보는 대적자.


 그녀의 송곳니.


 마치 늑대의 아가리에 빨려들어가듯 당겨지는 마왕은, 경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손가락을 튕겼었다.




 챙!




 그리고.


 "자, 잠깐? 선배?!"


 "으… 이렇게 방심을 할 줄이야… 윽!"


 시영이, 미나의 칼날을 막았다.



 "하하하… 하, 아하하…."



 타기리온은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만약에 시영이 걸리지 않았다면….


 자신의 공격이 오히려 반격의 기회로 작용하여, 완전히 꿰뚫렸을 것이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심장을 향해 세워졌었던 늑대의 칼날을 보면서,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의 심장을 쓸어내렸다. 그녀의 뒤에 자라난 무수히 많은 손들은, 저항하려는 시영을 옭아매며 억지로 조종하고 있었다.



 "정신차려, 선배!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저는… 실에… 조종당해… 미나…."


 "……!"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상황을 파악한 미나였다.




 시영이 말했다. "호오… 재밌군요. 이런 능력을 가졌던 건가. 아라한이 될 수 있던 그릇이라…."


 타기리온이 말했다. "지금 알겠네요. 언니하고 싸우고 있었던 당신들이 어떻게 갑자기 배후에 나타났던 건지."


 "칫…!"


 당연하지만 타기리온이 시영을 제어하에 두어도, 그녀를 세뇌시킨 것은 아니기에 마왕 자신의 검술로서 싸우는 것이다.


 더 잘할리 없었다.


 시영의 공격을 쉽게 막으면서도, 고민하는 미나에게 시영이 말했다.




 "이건… 저는 틀렸어요. 미나 양, 빨리 저를 죽이세요…!"


 하지만 시영이 말했다. "아니, 방법은 있을 거예요. 어떻게든 실만 끊는다면…!"


 "마왕은 저의 혀까지 조종하고 있어요! 빨리, 더 이상한 수를 쓰기 전에…."


 "…비굴한 건 알지만, 제발 부탁해요… 제가 죽는다면 저의 부모님이…."




 어느 쪽이 진짜인가?


 그리고 어느 쪽이 마왕이 불어넣은 말이라 해도, 말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주시영은 타기리온에 의해서도 난감한 적이다. 여기서 미나의 손에 처치되도 그녀에게 손해는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타기리온이 지금 자기 제어하에 두고 조종하는 주시영을 잃고 싶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해도….



 과연 근접전에 의해서는 거의 모든 가능성을 해금했던 미나답게, 시영을 막는 것은 어렵지 않았었다.


 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



 "저의 신경과 관절은 마왕의 실에 의해서 전부 끊겨졌어요… 미나 양, 어차피 전 더이상 살지도 못해요…!"

 "아니예요, 이건 우리를 이간질하려는 마왕의 농간이예요! 미나 양, 제가 없으면 마왕을 죽여도 다른 모두를 구출하러 가지도 못해요!"



 ……!


 미나는 결국 여기서 최선처럼 보이는 선택을 했었다.




 그것이, 최악이었지만.




 "하아아아앗!!!"


 질풍과도 같이 그녀는 검을 휘두르며, 보이는 실을 전부다 잘라내었다.


 마리오네트는 해방되, 그대로 실이 끊겨진 목각인형은 바닥에 누웠다.



 "이걸로 됬겠지… 시영 선배, 누워서 좀 쉬고 있어. 그리고…."


 "이제는 네 차례다, 타기리오오오오온!!!"



 하지만.


 순간에, 미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왕의 손은 시영을 조종하는 것으로 한계라, 시영을 놓친 이후엔 몸을 물리며 도망치리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심장을 일부 팔들로 막으며, 다른 손들을 만발하는 꽃처럼 벌려, 자신에게 돌진했다.



 "…뭐… 뭐야?!"



 울브즈 베인은 그대로 꽂혔지만, 심장까지 닿지는 못했다.


 그리고… 온몸이 타기리온의 마네킹 손에 잡히는 동시에.




 미나의 심장이, 칼에 꿰뚫렸다.




 "그… 으으윽…!"




 뒤에는, 늑대의 심장을 공간째로 후벼파는 시영이 있었다.


 단지 묶여있던 실만 끊는다고 그걸로서 끝날리가 없다.


 아직 사용하지 않은, 바닥에 설치했던 무수히 많은 다른 실들을 들어올려 시영을 다시 조종했던 거다.




 "…방심했었군요, 대적자."


 "아… 아아아아…."


 "당신의 시체를 갖고 놀려고 했지만… 좋은 도전이었어요. 그래요… 적어도 대적자에게의 예우로, 깨끗한 죽음을 하사하죠."




 "……!"




 그리고, 아우드라는 시영의 칼날을 사용해….


 칼날을 올리며, 미나의 머리를 수직으로 베어냈다.




 만일 운명이 있다면.


 시영이 있기에 여기까지 갑자기 올 수 있었던 미나였었지만.


 반대로 그녀가 있었기에, 최후에 파멸을 맞았던 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심지어 타기리온도 예측한 게 아니던, 최악의 미래다.




 "…… 이럴… 수가…."


 마치 영혼이 부숴진 듯한, 저항할 의지가 완전하게 꺼진 눈동자를 비추며, 시영은 눈물을 흘렸다.




 "아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환희와 광기에 빠진 타기리온의 웃음이 절정이 달하여 울려퍼졌다.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됬던 건지… 잠깐, 시영 씨?!"


 에스테로사가 쓰러진 직후에, 카린과 리사는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이쪽으로 달려온 카린은, 최악의 광경을 보았다.


 심장부터 머리가 갈라진 대적자의 시체.




 그리고 인형처럼 마왕의 옆에 얌전하게 앉아있는 시영.




 "실패… 했었군요."


 악마도 아니고, 카운터라고는 해도 신경과 관절이 전부 손상되어졌다.


 죽을 듯이 숨만 헐떡이는 그녀를 보고서 카린은 고개를 떨구었다.


 "이제는 우리도… 완전히 끝난 걸까요. 처음부터 승산은 없었던 것일지도…."




 "……."


 타기리온은 손을 들어올리며, 이제는 카린을 향해 실을 당겼다. "그걸 이제야 알다니, 당신도 우둔하군요."



 하지만.



 그때, 위로부터 타기리온 자신이 난사했던 마탄들과, 울브즈베인의 검기가 실들을 향해서 쏟아져내렸다.



 "……!"



 "승산은 이쪽이 컸었죠. 단지 이런 물리적인 계산을 거쳤을 뿐이네요." 공중에 붕 떠있어, 스완은 한 손에는 울브즈베인을, 다른 손에는 무수히 많은 에너지 정수를 쥐고 있었다.




 타기리온은 그녀를 보고 물었다. "백조… 이제 나타나다니. 하지만 도대체 당신의 힘은…?"


 스완은 대답 대신에 싱긋 웃으면서, 에너지를 거두고는 손을 그대로 펼쳤다.




 실.


 도대체 언제부터 거기에 깔아뒀던 것이지?


 마왕의 몸은 그것에 의해 묶였다.


 자신이 늑대와 새끼 뱀을 농락한 그 기술을, 이 여자는 그대로 자신에게 쓰고 있다.




 '이상해… 이것은 단지 겉만 비슷한 기술이 아니야. 내 힘이랑 완전히 똑같은 것인데… 도대체 어째서?'


 그것만이 아니었다.


 백조는 땅을 박차듯 공기를 밟고, 자신을 향해서 울브즈베인의 칼날을 이쪽에 향해 치켜세워 날아오고 있다.




 이 힘….


 틀림없다. 대적자의 힘이었다.


 하지만 의문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사라질 수 없었다.



 '도대체 어째서…? 저 여자가 쥔 검은 울브즈베인… 하지만 늑대의 검은 그대로 바닥에 있는데요.'


 '하지만 모양만 비슷한 게 아니라, 완전히 똑같은 무장…. 어쩌면 다른 세계의 울브즈베인…?'


 '게다가 늑대가 아직 살았을 때도 백조는 대적자의 힘을 다뤘으니… 혹시나 저 여자는 엑자일러인지…?'



 마왕 정도가 되면, 일반적인 무기로는 아예 피해를 주지도 못한다.


 대적자가 된다거나… 신성을 사용해 공격한다거나.


 하지만 백조는 그게 가능했다. 도대체 왜?


 타기리온은 사실과 먼 추측을 하면서도, 어쨌던간 연전을 하기에는 내키지 않았다.




 "대적자를 죽였으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두죠. 만족스러운 날이었군요… 그러면 안녕히."


 그녀는 몸에서 침식파 에너지를 방출해, 실을 가볍게 끊어버렸다. 그걸 보고, 스완은 그대로 검을 던졌다.


 타기리온이 사라지면서 말했다. "우리는 곧 만나게 될 거예요. 최후의 시간은 더욱 극적이면 좋겠군요." 말을 마치는 그녀의 잔상 사이로 울브즈베인이 꿰뚫어 그대로 바닥에 박혔다.



 "……."


 땅에 착지한 스완은 고개를 돌렸다.


 저편에, 모두가 오고 있었다.



 "전투는… 분명히 이겼네요. 적을 격퇴하는 것엔 성공했으니까요."


 "하지만 전쟁은 졌군요. 그래서 타기리온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거겠죠."




 하지만 이미 지옥에 떨어진 듯한 카린의 표정과는 다르게, 스완은 묵묵히 대적자의 유해를 쳐다봤다.


 "…평안히 잠드시길, 친구여."


 어떠한 절망도 없었다.




 참혹한 그녀의 모습에도 동요하지 않고, 스완은 눈길을 돌리며 수연과 류드밀라에게 사태를 보고하기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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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편(1편)은 유일한 전투씬 파트라서 길었지만, 12편(2편), 13편(3편), 14편(4편), 15편(5편)은 전부 드라마적 요소만 푸는 것이라 이렇게 길진 않을 거임….


 관리자가 떠났다는 플롯 또한 딱히 부각되지 않았지만 이제부터 그 빈자리가 중심 요소로서 굴려질 것이고.


 카붕이들 바쁘고 긴 글 읽기도 귀찮으니 최대한 짧게 쓰자고 생각해도 1만 9천자가 됬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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