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조차 들지 않는 어느 빌라의 구석에서 소녀는 중얼거렸다.


그녀의 나이 23살,인간이 식물이라면 이제 막 꽃봉오리를 터뜨려 만개할 나이였지만 억지로 꽃봉오리를 벌려 이제 너절거리는 잎을 간신히 붙잡을 뿐인 그녀에겐 전성기가 아닌 암흑기만이 존재하고 존재흘 예정이었다.


"...그래 처음부터 마법따윈 없었단 거...내가 제일 잘 알았으니까"


하늘하늘 화려한 색의 드래스는 이미 침대 모퉁이에 난잡하게 던져져 있었다.


예쁘장한 마법의 지팡이는 아무렇게나 내던저 술병과 함깨 바닥을 굴렀다.


청록색 타일 사이사이 곰팡이가 핀 화장실의 거울은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뭐가 마법이냐...뭐가 사랑이냐...뭐가 우정이냐...그런거 이미 오래전에 버렸잖아..."


그녀는 마치 단어를 게워내듯 내뱉었다.

비록 희망을 전하는 그녀지만 그녀의 더럽혀진 심장엔 아름다운 것을 집어넣긴 이미 늦었다.


마치 사람의 식사를 게워내는 식인귀처럼 그녀는 추악한 인육을 원하였다.


"...후배들,잘하고 있구나"


작은 티비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소녀들의 모습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과거마저 찾지 못하고 있었다.


마법소녀를 그만둔 지 5년이 지났다.


겨우 마법소녀의 특혜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공황 탓에 제대로된 사회생활을 하지도 못한 채 대학을 자퇴하고 지금은 연금으로 겨우 먹고사는 그녀였다.


한번씩 마법소녀 의상을 입을때마다 오히려 변하지 않은듯한 외견이 마음을 따라 죽어가지 못하여 오히려 그녀의 마음이 몸을 대신하여 한번 더 죽어갔다.


"마법...? 웃기시네...저주지 그냥..."


축복이란 이름의 방부제를 온 몸에 바른 그녀는 다시 힘없이 쓰러졌다.

핑크빛 머리는 이제 희미한 선홍빛이 되어 시야에 얽혀들어갔다.


"...죽고싶어라"


그 소원을 누군가 듣기라도 한건지 찢어지는 사이렌 소리와 함깨 안내음이 들려왔다.


"A시 괴수 출현,시민 여러분께선 신속히..."


"진짜냐..."


대충 검은 후드 집업을 걸친채 밖으로 대피하려던 그녀의 시야에 자꾸만 버닥에 굴러다니던 마법지팡이가 눈에 밟혔다.


"반복합니다. A시에 괴수 출현,시민 여러분은..."


"하...시발 모르겠다!"


일단은 지팡이를 품에 넣은 그녀는 대피소로 발을 옮겼다.


"저사람..."


"그래,그..."


시민 몇몇은 그녀를 알아보는 듯 그녀를 보며 숙덕거리기 일수였다.

그도 그럴것이 과거 꽤나 유명한 마법소녀중 하나였던지라 오히려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그녀는 시민들의 관심에 오히려 후드를 푹 눌러쓸 뿐이었다.


"시민여러분~ 이제 곧 저희 마법소녀가 괴수를 진압할테니 안심하시고 열심히 응원해주세요~"


"와 마법소녀다!"


"진짜다! 실물이야!"


다행히 현역 마법소녀들의 등장으로 시민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그녀는 조용히 아무도 없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좋아...저 구석으로 가면..."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선...배? 맞죠?"


마법소녀 샤이닝 엔젤,역대 최강 최고의 마법소녀라 불리던 그녀가 지금은 퇴물,뒷방 늙은이 등으로 불리던 그녀의 어깨를 붙잡은 것이다.


"어...으어...어..."


갑작스런 상황에 그녀의 언어체계가 무너져 내렸다.


"선배...활동...정말 그만두신거예요?"


주변엔 시민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뭐야...? 샤이닝 엔질이 왜 저..."


"선배...?"


그녀는 죽을맛이었다.


다시 도진 공황탓에 시야가 흐려지고 귀가 멀어지며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사정을 알리없던 샤이닝 엔젤은 꿋꿋이 말을 이어갔다.


"...지켜봐주세요,당신을 동경하던 소녀의 모습을..."


꽤나 비장하고 멋진 대사였지만 그녀의 귀엔 영 들리지 않았다.


"저같은건 마법소녀로 안봐주시는 건가요..."


"아니...그 어...으 어...저..."


"네,저같은거 선배가 보기엔 그냥 아이돌,광대겠죠...하지만 전 선배에게 '마법소녀'로서 인정받고 싶어요! 그리고...선배의 마음도 언젠가..."


"샤이닝! 이제 갈 시간이야!"


"선배,다음에 또 뵈요..."


한바탕 폭풍과도 같은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전성기 속도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오로로로로로록"


마법'소녀' 라기엔 추잡한 음색이었지만 그녀는 이미 마법소녀가 아닌지 꽤 되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다시 대피소로 돌아왔을땐 거대한 모니터 넘어에서 마법소녀들이 괴수와 싸우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지지마 마법소녀!"


꽤나 고전중인건지 주변에선 열띈 응원이 들려왔다.

그때 그녀의 옆에서 익숙하고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오랜만이야...스칼렛 레빗"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귀여움으로 똘똘뭉칭 그 생명체는 능청스럽게 그녀에게 말했다.


"은퇴생활은 어때?"


"최악이야"


"하하,너다운 대답인걸...마치 마법소녀때 처럼..."


그는 마치 저 넘어 과거를 바라보듯 먼 곳을 응시했다.


"그래서,마스코트깨서 여긴 어쩐일이야? 빨리가서 네 아이달 서포팅 해야하는거 아냐?"


"그게 말이지...상황이 꽤 복잡하단 말야..."


"복잡하다니...너 설마...!"


"워워,이번엔 마법소녀를 희생할 생각은 없어...그래서 너한테 도움을 청하러 온거지..."


"한번 더...싸우라는 소리야?"


"가져왔잖아...'그거'..."


"상황이 꽤 나쁜 모양이야...샤이닝 엔젤로는 안되는 거야?"


그녀가 비꼬듯 말했지만 그는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뭐,그래도 여전히 귀여운 얼굴이긴 했지만


"그 아이는 아직 미완성이야,조금만 성장하면 저정돈 순살이지만...아직은 아냐"


"그래서,내가 시범이라도 보이라고?"


"시범까지야...그냥 조금 '도움'을 달라는 것 뿐야..."


"...싫어,난 은퇴했어"


"슬프지 않아? 마법소녀로서 죽는다는 건..."


"그것보다 마법소녀로서 사는건 더 고통스러운걸"


"그래서,안도와줄 생각이야?"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8년전 그날처럼


"어이...저거 위험한거 아냐...?"


시민의 말에 모니터를 올려다보니 피투성이로 거리에 쓰러진 마법소녀들이 보였다.


"죽은...거야...? 거짓말이지...?"


주변에선 점점 절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어떤 남자가 그녀를 가르키며 말했다.


"어...어이 너! 너 마법소녀잖아...가서 싸우라고!"


"그래! 빨리가서 뭐라도 해보란 말야!"


들려오는 절규에 그녀의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어이,스칼렛 너 괜찮냐...?"


"어이 리큐...텔레포트...쓸 수 있지...?"


"갈 마음이 생긴거냐?"


"어쨌든 여기있긴 싫거든...일단 빨리...!"


"알았다...잘 해보라고...마법소녀,스칼렛 레빗"


일순 시야의 풍경이 바뀌고 그녀는 어느새 모니터 넘어의 풍경으로 이동해 있었다.


"선...배...?"


샤이닝 엔젤은 피투성이인 채 스칼렛을 불렀다.


"...좀 쉬고있어"


"선배...! 그놈은...!"


"쉬고있으라니까...참,다시 이 짓거릴 할 줄은 몰랐는데..."


'으아아악!'


비명과도 같은 괴수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하,목청한번 더럽게 크네..."


그녀는 품속에 숨겨둔 지팡이를 꺼냈다.


"무구,해방"


지팡이는 일순 빛나더니 거대한 대태도의 모습으로 변했다.


'마법소녀...! 죽어...!'


절규와도 같은 비명으로 돌진하는 괴수를 스칼렛 레빗은 대태도로 한순간에 반으로 갈라버렸다.


"뭐야,물렁하네..."


마법소녀 스칼렛 레빗

그녀는 마법없는 마법소녀,샤이닝 엔젤이 등장하기 전 유명했던...최강 최흉의 마법소녀다.


그렇다,그녀에겐 애초에 마법도 소녀도 없었다.


그저 검과 마법소녀 드레스만이 있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