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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스왑대회에  #스까듭밥 #전기고문 #목조르기   로 제출하였던 글의 17편 입니다.



살면서 북한 사투리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북한 사투리로 대사를 꾸리려고 하니 어색한 표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따흐흑

어휘력 부족도 정말 눈에 띄네요...

다독 다작 다상량... 우선 뭔가를 읽을 시간이 필요합니다... 도비는 자유롭지 못해요...


쓰다 보니까 내용이 좀 많이 길어져서 17화, 18화로 분할했습니다.

공미포 4만자를 글 하나에 다 올리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요.






* 이번 화와 다음 화는 보기에 좀 (성적으로) 불쾌한 표현이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 본문은 픽션이며, 탈북자들에 대한 편견이나 혐오를 조장할 의도는 일체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 본문에서 등장하는 인물 및 사건, 단체와 지명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평행세계인 대한민국4 에 존재하는 것으로써, 실존하는 인물 및 사건, 단체와 지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 본문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전원 주민등록 상 성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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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를 위한 나라는 없다



17.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정인의 코를 찔렀다.


 정신을 차린 그녀를 가장 먼저 엄습한 것은, 명치의 욱신거리는 고통.

 그 다음에는 한쪽 볼에 닿은 마대자루의 까끌한 감촉이었다.


 곧이어 주변을 둘러싼 유리가 깨진 것처럼, 한순간에 주변의 자극이 정인에게 우르르 밀려들었다.


 치마가 말려 올라가기라도 했는지 서늘한 하체.

 왼쪽 무릎에는 바닥 시트의 까칠한 감촉만이 느껴졌다.

 의족은 벗겨 놓은 것 같았다.

 입에 재갈을 물려 놓은 듯, 양 볼이 당겨지면서 따가움이 밀려왔다.

 혀에 닿은 뭔가에서 시궁창 냄새가 나는 걸로 봐서는 걸레라도 물린 모양이었다.


 주변에서는 대화를 나누는 중인지 웅얼거리는 소리가 반복해서 들렸다.

 차량 안인 듯 계속 덜컹거리며 몸을 뒤흔드는 바닥.

 토할 것 같은 냄새와 섞여서, 오래 안 씻은 사람들 특유의 구리고 텁텁한 체취가 가득했다.



 정인은 혼미한 정신으로 여기가 어딘지 파악하려 애썼다.

 명치를 걷어차이고 쓰러진 이후로는 기억나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옛날 입대하기 전 친구들과 술을 진창 퍼 마신 다음 날, 전봇대에 기대어 쓰러진 채 아침을 맞이했을 때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때보다도 훨씬 지독한 구역감과 두통이 정인을 엄습했다.


 살짝 몸을 꿈틀거려 본 정인은, 팔이 몸 뒤로 꺾인 채 안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았다.

 양손목에 단단한 끈 같은 것이 매여 있었다.


 자연스럽게 정인은 국정원의 보안분실에 갇혔을 때를 떠올렸다.

 점차 가빠지는 그녀의 호흡.

 마대자루 안에 거친 숨소리가 울렸다.

 순식간에 몸이 여기저기가 가려워지고 명치가 에이는 것처럼 쓰리기 시작했다.


 정인은 숨을 꾹 눌러 참고, 소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 놈들의 대화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애썼다.

 패닉보다는 상황파악이 우선.

 그리고 깨어난 걸 함부로 티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납치범들이 눈치챈다면 정신을 차린 게 무색하게, 금세 다시 기절 시킬지도 모르니.


 차가 덜컹거리는 소음, 마대자루의 결이 퍼석거리는 소리 사이로 두런거리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듣기로… …에는 백공오 호텔(*류경 호텔)만치 으리으리한 아빠트도 있다 하웨다.”


 “고조 지상락원이구만 기래. 내레 기런 데서 한 번… …내일 당장 죽어도 원이 없갓어.”


 “평생소원이 보리 개떡이오. …마적할(*만족할) 기 아니라, 재앙당(*공산당의 속어) 간부처럼… …아니 하겠니.”


 “…넘어가면 체연한(*멀쩡한) 집부터 구하겝소. 인제 길바닥… …와늘(*완전) 진력이 나우다.”


 “그… …서는 짬수(*눈치)업시… …하디 말고 꼭 남한이라 말하라우.”



 차가 흔들리는 소음이 심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군데군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섞여 있었다.

 어지간히도 빨리 달리는 중인 모양이었다.

 아니면 서스펜션이 영 안 좋든지.

 비포장도로라도 달리고 있는 상황일지도 몰랐다.

 덕분에 이 대화에서 정인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건, 난민들이 탈북자 출신이라는 점 뿐.


 이면세계 대전으로 북한이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된 지도 어언 6년이었다.

 고난의 행군을 넘어서는 식량난, 조선인민군 사이의 내전, 영변 1호기와 방사화학연구소의 대규모 누출 사고 등.

 그런 과정을 거쳐 초토화된 북한에서 남쪽으로 탈출한 인구가 겨우 100만 정도였다.

 그 대부분이 부산으로의 이주를 거부당했기에, 그 중 일부는 이들처럼 서울연합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혹은 한반도 곳곳으로 흩어졌든지.


 아마 이 납치범들도 그런 난민들 중 하나일 터.

 그런 자들이 자신을 납치할 이유를 정인은 도무지 떠올릴 수 없었다.



 대화의 문맥에서 추론해보면 돈이 목적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태에 납치범에게 몸값을 치를 거라고 판단하는 순진한 자가 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항간에 떠도는 괴담 마냥, 장기를 털려 하거나 인신매매를 위해 이랬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었다.

 도덕적이지는 못한 발상이지만, 자신보다 쉬운 ‘사냥감’은 사방에 널려 있는 곳이 연합이니까.

 야음을 틈타 난민 소굴이라도 급습하는 편이 훨씬 짭짤한 인간 사냥이 될 터.


 원한 관계에 의한 납치라고 여기기에도 마땅히 짚이는 바가 없었다.

 연합에 와서 민우 외의 사람과 깊게 교류한 적도 없고, 원한을 질 만한 일을 한 적도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정인은 그들의 대화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자신이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발목에 길이 모를 사슬을 감고 달리다가, 언제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넘어질지 모르는 긴장감.

 꼭 그런 느낌이었다.



 그 순간 과속방지턱이라도 넘은 듯 차량이 세차게 덜컹거렸다.

 좌석에 앉아 대화를 나누던 탈북민 중 한 명이 ‘어이구’하는 비명과 함께 비틀거렸다.


 안전벨트를 메고 있는 사람도 그러는 판이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정인의 몸이 살짝 튕겨 올라, 좌석 받침대에 머리를 세차게 부딪혔다.



 “윽.”



 눈 앞에 불이 번쩍이는 듯한 통증.

 정인은 저절로 나오려는 신음을 최대한 억눌렀지만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투덜거리던 납치범들의 시선이, 몸을 새우처럼 구부린 그녀에게 꽂혔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매부리코 사내가 자리에서 엉거주춤하게 일어났다.

 그러더니 발로 정인의 몸을 밀어 뒤집으면서, 머리에 씌워 놓은 마대자루를 휙 벗겼다.

 신선한 공기가 그녀의 코에 들어왔다.

 매부리코의 거친 동북 사투리와 함께.



 “이 에미네 일났나?”



 암순응이 끝난 정인의 시야가 삽시간에 뿌옇게 밝아졌다.

 오만상을 찌푸린 채 실눈을 뜬 정인은, 재빨리 주변을 파악했다.


 스쿨버스처럼 보이는 대형 밴.

 양 옆에는 좌석이 있고, 맨 뒷좌석 창가에는 수염이 너저분한 노인이 앉아서 조는 중이다.

 바로 옆에는 허리를 구부정하게 편 채 자신을 발로 누르고 있는, 매부리코가 인상적인 남자.

 그 외에는 배만 올챙이처럼 튀어나온 마른 중년 사내와, 얼굴에 기름때가 잔뜩 낀 추레한 난민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한 명은 운전 중일 터.

 조수석의 머리 받침대 곁으로 힐끔거리는 얼굴을 보니 한 명이 더 있는 듯했다.


 당장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은 네 명.

 도끼로 자신을 습격한 집합주택 경비원은 이 자리에 없었다.


 정인은 주변의 눈치를 보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두 손을 단단히 묶은 케이블 타이는 도무지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창 밖을 슬쩍 곁눈질로 쳐다봤다.

 선팅 처리가 야무지게 되어 있어서 명확하진 않았으나,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경치를 볼 때 시속 100km 정도는 되는 듯했다.


 이래서야 자력으로 탈출할 가망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마법만 쓸 수 있다면 지금 상태에서 안의 사람들을 다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정인은 마력을 사용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상태.

 그런 데다가 단단히 결박까지 당했으니 도저히 지금 상황을 모면할 방법이 없었다.

 행여나 마법을 써서 전원을 제압한다 하더라도, 자칫하다간 차량 전복으로 자신도 죽거나 크게 다칠 판이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며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는 정인.

 그녀의 몸 위에 한쪽 발을 얹은 매부리코가, 차량 앞쪽을 돌아보며 걸걸한 목소리로 불렀다.



 “어쩌니? 도로 재우니?”



 운전하던 자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대꾸했다.



 “내버려 두라우. 잘못 손찌검하다 탁 죽으면 남한행이고 머고 다 파투웨다.”



 경비원이 안 보인다 싶더니, 아무래도 놈이 운전 중인 모양이었다.

 때마침 조수석에서도 콘솔박스에 있는 물통을 집으러 누군가 손을 뻗었다.

 손등에 잔털이 덥수룩한 걸 봐서는 남자 같았다.


 사면초가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도움을 요청할 휴대폰은 좀 전에 박살 났고, 의족은 놈들이 떼어 버린 모양.

 유일한 무기인 마법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저히 사용법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마법소녀가 마력을 쓰는 방법을 잊어버려서 납치당하다니, 웃지도 못할 노릇이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정인은 등골을 타고 소름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난민들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먹잇감이나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지폐 다발을 보는 듯한 눈길.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훨씬 음습한 욕구.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서늘한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떤 정인은, 그 자리에서 몸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봐도 피할 곳은 마땅치 않았다.

 우연인지 계획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납치범들의 위치는 딱 그녀를 포위하는 듯한 형국이었다.


 뭉툭한 두 다리를 꼼지락거리던 정인을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던 매부리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녀의 배를 발로 꽉 짓눌렀다.



 “보채지 말고 조신히 있으라이.”



 내장을 누르는 둔중한 압박감에, 정인은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재갈을 꽉 깨물었다.



 “흐윽.”



 턱 막혀오는 숨통과 뱃속의 내용물이 그대로 튀어나올 듯한 고통.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정인은 배에 힘을 꽉 줬지만 역부족이었다.

 납치범들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 끅끅거리는 그녀를 무시하고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즈바이(*아저씨), 공작원들이 이 에미나이르 랍치해오라 한 게 맞슴메? 이거이 순 영락업는 아새끼고마.”

 “마법소녀라 하데만 마법인지 부리지도 아니하고, 어줍잖은 장두칼(*식칼)로 드뎀비질(*덤비질) 않나.“

 “남조선 요원들이 뭐하러 이런 아새끼를 데리가노. 알기를 잘못한 거 아이오?“



 꼭 자신을 불신하는 듯한 대화에 신경이 잔뜩 곤두선 경비가 짜증을 부렸다.



 “그 간나 맞으니끼니 가을 뻐꾸기 같은 소리(*헛소리) 걷어치우고, 설치지 못헤게 감시나 잘 하라.”



 흔들거리는 차 안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좌석 등받이를 붙든 매부리코가 볼멘소리를 냈다.



 “마법소녀하구 옳은지 정확하이 확인할 방법이가 아이 있소?” 

 “거모사니(*거시기) 데레가 봐야 알어. 그 치들이 어련히 알디 않갓어.”

 “씹할, 대책이가 없구마는.”



 그 와중에도 놈은 정인의 몸을 잘근잘근 뭉개고 있었다.

 체중을 어찌나 실었는지 정인은 금방이라도 배가 터질 것만 같았다.

 밀려오는 욕지기를 간신히 참으며, 그녀는 그나마 자유로운 왼쪽 무릎으로 매부리코의 다리를 여러 번 걷어찼다.

 발악하는 듯한 발길질이었으나 매부리코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살짝 마른 데다가 키가 160cm도 안되는 소녀에 불과한 정인.

 반대로 상대는 덩치가 크진 않았지만, 살집이 꽤 있어 몸무게는 정인의 두 배 가까이 되었다.

 밑에 깔린 상태에서 정인이 놈을 밀어낼 방법은 전무했다.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는 상황.


 터질 것처럼 벌겋던 정인의 안색이 점점 보라색으로 질리기 시작했다.

 배가 세게 눌려서 호흡조차 만족스럽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서스펜션이 불량한 지 차가 계속 덜컹거리는 통에, 당장이라도 내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와서 죽을 지경이었다.


 의식조차 점차 희미해지는 상황.

 정인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재갈 사이로 신음 같은 소리를 흘렸다.



 “이어 히어... 훔으 모히… 에어.(이거 치워... 숨을 못 쉬… 겠어.)”



 용케 그 소리를 알아들은 기름때 면상의 사내가 정인을 돌아봤다.

 숨을 껄떡거리면서 넘어가기 직전인 몰골을 확인한 놈이 매부리코를 다급히 말렸다.



 “야, 야, 그만 족발이래 치아라우. 기러다 간나 숨 넘어간다.”

 “어이구 실쉬(*실수)해슴. 재낏하고(*깜빡하고) 있었슴메.”



 다분히 고의적인 행동인 듯, 매부리코는 능청스럽게 이를 드러내며 발을 치웠다.


 정인은 다 떨어져가는 산소를 갈구하며 미친듯이 숨을 몰아쉬었다.

 어렴풋하게 바뀌어 가던 감각들이 너저분한 공기와 함께 다시 돌아왔다.

 뿌옇던 시야가 선명하게, 멍멍하던 귀는 맑게.


 그러나 좋은 것만 있지는 않았다.

 짓눌렸던 배에서는 들숨과 함께 통증이 끝없이 밀려왔다.

 날숨이 나갈 때면 속에서 신물이 왈칵 솟구쳤다.

 아래쪽이 살짝 축축한 것이 소변도 약간 지린 모양이었다.


 반쯤 풀린 눈의 정인은 몸을 새우처럼 구부린 채 앓는 소리를 냈다.

 옆으로 돌아누운 정인의 원피스 자락은 어느새 허리춤까지 말려 올라가 있었다.

 훤히 드러난 그녀의 하체.


 납치범들은 저도 모르게 그 광경을 눈으로 좇았다.


 길이가 제멋대로고 끄트머리에는 흉측한 봉합 자국이 있었지만, 그 외에는 매끈하기만 한 두 다리.

 봉긋한 엉덩이와 골반을 감싼 회색 민무늬 팬티.

 젖어서 검게 변한 사타구니에는 묘하게 시선을 끄는 힘이 있었다.

 야들야들해 보이는 하얀 피부에 묻은 바닥의 먼지, 발간 생채기가 대비를 이루어 선명했다.


 놈들 사이로 군침 넘기는 소리가 흘렀다.

 잠시 넋을 놓고 쳐다보던 셋 중, 기름때 면상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윤 동무, 고조 우리네 마지맥으로 속잔치(*섹스) 해본 게 원젠(*언제냐)?”

 “한 넉 달 됐지비. 섹유(*석유)를 한 통이나 줐더니, 끼어드니(*삽입하니) 아새끼만 섯 싸지른 에미나이라 그런가 흘거버가(*헐거워서) 세밧던(*세웠던) 좆도 팍 죽었슴메.“


 “나야 준석이 애미 가고 나선 일거무소식이오. 공동변소(*매춘부)들도 요새는 엉가이 비싸게 부릅데.”

 “양지(*얼굴)두 땟국물 한나 없이 이목구비가 아주 오똑한 거이 퍽이나 아이 맨매자니(*반반하니)?”



 가만히 놔두면 이놈들이 귀중한 ‘상품’에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경비원이 버럭 소리질렀다.



 “야 이놈들, 괜한 수작들 부리디 말고 제발 가만히덜 있으라우. 국정원에 바칠 상품이니끼니 상하면 큰일난다. 알간?”



 그 서슬에 맨 뒷좌석에 앉아있던 노인이 움찔하면서 눈을 떴다.

 그러더니 놈 역시 바닥에 나뒹구는 정인을 눈을 휘둥그레 뜨고 쳐다보기 시작했다.

 목까지 거북이처럼 빼고 절경이라도 보듯 구경하는 꼴이 가관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머지 셋은 경비원의 불호령을 못 들은 척, 저마다 수군거리기 여념이 없었다.

 대체로 쓸데없는 옛 시절의 이야기였다.

 자기 젊을 때는 대동강변에서 저런 예쁜 처녀들 여럿 꼬셔봤느니.

 평양에서 국가보위성 간부를 여럿 조진 유명한 간부절단기가 있었는데 그 년보다 더 낫다느니.


 그 사이 차량은 강변북로를 거쳐 고양시의 자유로로 들어섰다.

 가양대교는 대전 시기에 끊어져서 복원이 안되었기에 그대로 지나쳤다.

 빠른 속도로 자유로JC를 향하는 차량.

 좌측 차창으로 말라붙은 습지와 갈대만 무성한 공원이 스쳐갔다.

 먹이를 찾아 한강변까지 내려온 멧돼지 가족이, 적막한 강변에 울리는 주행음에 놀라 잽싸게 수풀 사이로 도망쳤다.


 경비원은 그 광경을 시야에 흘리며, 사이드 미러를 슬쩍 쳐다봤다.

 쫓아오는 차량은 전혀 없었다.

 백미러에도 마찬가지.


 뒷칸에서는 조금 전하고는 다르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만 들렸다.

 해주공업대학의 교수 출신이라던 김씨 노인은 다시 꼬박꼬박 졸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마법소녀를 밟고 있던 양강도 혜산에서 온 매부리코, 윤 씨도 자리에 얌전히 앉은 상태.

 나머지 둘, 약사 출신의 중년인 옥 선생과 외화 벌이꾼 리 씨도 얌전히 있는 모양이었다.


 납치한 마법소녀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어서 백미러로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매부리코와 기름때 면상, 배불뚝이 중년인 셋 다 얌전히 있으니 별 일이야 있겠는가.



 살짝 긴장감이 풀린 경비원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의뢰주가 지정한 경로를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자유로JC에서 김포대교를 넘어 48번 국도로 합류.

 거기서 쭉 나아간 뒤 서김포-통진 교차로에서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로 빙 돌아 남하하여 인천남항부두로 가는 길.


 서울 시내의 주요 도로는 연합 순찰대원들이 지키고 있으니, 이를 최대한 피해서 가는 경로였다.


 가능하면 일산대교까지 더 돌아서 가는 게 안전할 터.

 하지만 마신 포르네우스가 직접 들이받았던 일산대교는 교각까지 모조리 붕괴해서 복구할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었다.



 경비원은 계기판과 연료 미터를 다시 확인했다.

 속도는 시속 110km 정도.

 이 정도만 유지할 수 있다면 인천남항부두까지 도착하는 데는 3-40분이면 충분했다.


 연료도 넉넉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추적당하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 없으리라.


 그런 낙관적인 생각을 하던 경비원은, 곧 저도 모르게 다시 밀려오는 조급함과 긴장감에 엑셀 페달을 꾹 밟았다.


 마법소녀에게 난민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라 해봐야 대체로 빈집 털이나, 사기, 모욕 정도.

 하지만 연합에서는 난민이 마법소녀에게 저지르는 범죄는 대부분 즉결처형으로 다스렸다.

 아니면 대부분의 지역이 방사능과 몬스터 잔해로 오염된 구(舊) 비무장지대 너머로 추방하든지.


 상대적으로 가벼운 범죄도 그런데, 납치라면 어떤 꼴을 겪게 될지 경비원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북한에 김씨 왕조가 남아있던 시절,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사람들이 차라리 곱게 죽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몰랐다.


 의뢰주가 제시한 거액의 선수금,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산 시민권.

 그 미끼에 눈이 멀어 일을 저질러버렸으니, 유일한 살 길은 이제 어떻게든 마법소녀 납치를 성공시키는 것뿐이다.

 그러려면 변수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다.


 가령, 여자에 굶주린 저 세 얼간이가 도저히 성욕을 참지 못한다든지.


 납치한 마법소녀를 윤간하는 건 상관없었지만 그러면 분명 크게 다치게 만들 게 분명했다.

 자칫하다가 죽어버릴 수도 있었다.

 자신이 명치를 세차게 걷어찬 건 생각도 하지 않고, 경비원은 백미러로 뒤의 세 명을 보며 투덜거렸다.



 “그깟 간나 사리마다(*속팬티)네 속살이네 정신이 팔리우가, 뭐가 중헌 지 모르는구만게레.” 



 어느 새 고개를 뒤로 빼서 마법소녀를 구경하던 조수석의 사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해르 하시오, 녕감. 다들 에미나이 맛 보지 못한 지두 오래 됐으이.“

 “날래 부산에 가기만 하면 네자 구녕이래 얼마든디 탐할 수 있다끼니 그걸 못 겐지(*견뎌)서는. 쯔쯔…”



 그런 대화가 오가던 중, 정인은 창백하게 질린 채 몸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통증 때문은 아니었다.

 욱신거리는 복통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으니까.

 납치범들의 대화가 혐오스러워서도 아니었다.

 노골적인 음담패설이라는 건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고, 역겨웠지만 그 뿐이었다.


 오히려 그런 더러운 내용보다는, 경비원이 중간에 던진 한 단어가 정인의 뇌리를 사로잡은 것이다.



 ‘국정원에 바칠 상품.’



 정인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어느 광경이 떠올랐다.

 아마 숨이 멎는 날까지 그녀가 잊을 수 없는 광경을.


 머리 위에서 진자처럼 흔들리는 갓등.

 이름도 모를 요원들이 나무토막처럼 늘어진 자신을 옮긴다.

 드러누운 그녀의 얼굴에 수건을 덮으며 씩 웃는 이 계장의 누리끼리한 어금니.

 곧 얼굴에 쏟아지는 물에, 횡격막이 산소를 갈구하며 찢어질 듯 오르락내리락한다.

 자신의 퉁퉁 부은 얼굴에 날아오는 두툼한 손바닥.

 박 과장의 따귀는 언제나 여러 번 연속으로 날아온다.

 눈 앞에 포스터를 흔드는 한 전무의 눈매는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인상은 선해 보이지만 시선의 온도는 액체질소보다도 차갑다.

 그의 손에서 천천히 돌아가는 전압조절기의 스위치.

 곧이어 전신을 벼락이 꿰뚫고 간다.


 바로 그 순간 정인의 영혼은 인천으로 향하는 밴 안이 아니라,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보안분실에 있었다.


 실제로 전신에 전기가 통하는 느낌을 받은 정인은, 몸을 부들거리며 웅얼거렸다.



 “아이야, 아니아오. 여잉오아붕이이 아니아오. 욱엉워놈으오 엄은에 왜이애.“ (아니야. 아니라고. 여긴 보안분실이 아니라고. 국정원 놈들도 없는데 왜 이래.)



 하지만 그럴수록 신경을 지지는 괴로움, 그리고 전신을 괴롭히는 가려움은 심해져만 갔다.

 정인은 입술이 하얗게 질리도록 재갈을 깨물고는 몸부림쳤다.

 당장 도망쳐야 된다는 생각, 앞으로 찾아올 고문에 대한 두려움이 정인의 넋을 사로잡았다.



 “이거 깝재기 웨 이러노? 간질이니?”



 매부리코는 혹시나 밟은 곳이 잘못됐나 싶어서 당황했다.


 마법소녀라길래 꽤나 돈을 많이 꿈쳐놨을 줄 알았더니, 현금은 1,500만원 뿐.

 거기에 돈이 될 만한 현물이라곤 58식 보총(*AK-47) 두 자루와 탄약 박스밖에 없어서 화풀이를 좀 한 참이었다.

 그랬더니 귀중한 돈줄이 갑작스럽게 발작하듯이 뒹굴면 지레 겁을 먹을 만도 했다.


 바로 옆에 있던 마른 중년인이 정인의 몸을 모로 돌려 눕혔다.

 중년인은 북한에 살던 시절에는 약사 노릇을 하던 자였다.

 그래서 간질발작 때는 옆으로 눕히는 게 좋다는 걸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손이 닿자마자 정인은 불 같이 화끈거리는 신경통을 느꼈다.


 그녀는 비명이 되다 만 소리를 내지르며 반대쪽으로 몸을 굴렸다.

 냄비 안에서 산채로 삶아지는 대하(大蝦) 같은 모습이었다.

 격한 움직임에 뒤로 묶인 정인의 팔에서 뚝뚝 거리는 소리가 났다.


 가만히 놔두다가는 차량 승강구 모서리에 머리라도 부딪힐 판이었다.

 중년인은 정인의 몸을 허겁지겁 누르면서 신경질을 부렸다.



 “가만히 좀 있으라우, 종간나.”

 “아하 아흐아오 아이마아아아!” (아파, 아프다고! 하지 마! 아아악!)



 환상통에 시달리며 발버둥치는 정인 때문에 중년인의 몸도 덩달아 들썩거렸다.

 매부리코까지 합류해서야 겨우 그녀를 억누를 수 있었다.

 어정쩡한 품새로 굳어 있는 기름때 면상에게 매부리코가 손가락질했다.



 “에미나이 뭐라 작산치니(*떠드는지) 몰르겠으이 저 자개(*재갈) 좀 벗기보라이.”



 뒤에서 벌어진 소란에, 결국 이놈들이 사고를 쳤나 싶은 경비원이 브레이크를 밟으며 버럭 소리질렀다.



 “이놈들아 지금 뭐하니. 내 얌전히 있으라 하지 않았네?”



 관성 때문에 바닥에 나뒹군 매부리코가 마주 신경질을 부렸다.



 “그냥 에미나이 발작하는 겁메. 신경 끄고 운던이나 잘 하라.”



 그 사이 기름때 면상은 정인에게 매어 놓은 재갈의 매듭을 푸려고 안간힘을 썼다.

 얇은 천이 없어서 두꺼운 행주로 묶어 놓은 데다가, 어지간히 단단히 매어 놨는지 풀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정인이 도리질까지 쳐 대는 통에 더 까다로웠다.


 입에 매인 재갈이 풀려나가자 정인은 두 사내 밑에 깔린 채 이 가는 소리만 한동안 냈다.

 그러다가 곧 진정했는지, 씩씩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들썩대는 어깨가 잦아들었다.

 숨을 고르던 중년인이 그 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



 “좀 가라앉은 모양인?”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정인은 아직도 따끔거리는 피부를 바닥에 비비며, 끊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국정원 그 개새끼들이… 날 납치하라고… 시켰냐?”



 매부리코가 떨어져 나가자, 중년인은 엎드린 정인의 몸통을 깔고 앉았다.

 놈은 잠시 숨을 더 고른 뒤 혀를 차면서 대답했다.



 “기래. 너 넴게주면 싹전(*삯돈)이래 주고 부산에 귀순도 시켜준댄다.”



 비참한 몰골의 정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동정심이라도 들었는지, 나름 부드러운 투의 대답이었다.

 그 소리를 용케 주워들은 경비원이 운전석에서 노성을 뿌렸다.



 “쓰잘데기 없는 소리레 하디 말라, 동무!”

 “뭐 어드렇네(*어떠냐). 어차피 옴짝달싹도 못하니끼니 도망개질(*도망질) 한 걸음도 못 치는 넌(*년) 아니우.”



 둘 사이에서 오간 말을 듣자 정인은 다시 이빨을 딱딱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녀는 떨리는 목청을 겨우 가다듬고 중년인에게 따져 물었다.



 “대체 이유가 뭔데, 씨발… 왜 날 못 괴롭혀서 안달이냐고.”



 따지는 내용과는 정반대로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

 매부리코와 중년인은 그 말을 듣더니 서로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곧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생긴 건 해말끔하게 생겼으면서 입버릇은 아주 고약한 여자였다.


 정인의 정수리를 딱 소리나게 후려치며 중년인이 투덜거렸다.



 “내가 어케 아니? 그런 거이 궁금한 걸 보니끼니 지끔은 살 만한 가보네?”

 “…”



 정인은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 입을 다물었다.

 상대가 이유를 알든 모르든, 대답해줄 마음은 없는 모양이었으니까.

 묻는 만큼 시간낭비나 다름없었다.


 짐작이 가는 바가 없진 않았다.

 ‘포커스 인 서울’ 특집편.


 부산 정부를 상대로 하는 프로파간다에 뻔질나게 출연했으니, 그 보복이라 생각하면 납득은 할 수 있었다.

 아마 프로파간다가 꽤나 반향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굳이 자신 같은 폐인을 납치까지 해서 없애려는 거겠지.

 이런 난민들에게 실행을 맡긴 이유까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아마 쓰고 버리기에 편리해서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머리로는 납득이 가도, 정인의 심정은 억울해서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병신 같은 방송에 나가는 게 아니었는데. 그리고 국정원 이 미친 새끼들,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어 놓고는 이제 와서 이렇게 아예 납치해서 없애 버리려고, 개 같은 것들…’



 저지른 죄값을 치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편했을 것이다.

 자신이 나은 대신 고문하고 죽인 채무자들의 핏값을 국정원이 대신 받아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왜 하필 지금인가.

 그때 보안분실에서 죽여버리지 않고 어정쩡하게 고문만 해대다가, 왜 하필이면 이제 와서 없애 버리려고.


 상처를 조금씩 잊어가고, 늪에서 겨우 머리를 쳐든 지금 와서, 다시 상처를 벌리고 고개를 짓눌러 처박으려고 하는지.

 그런 억울함이 고개를 쳐들자, 정인의 눈에 저절로 자그마한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다시 뇌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떻게든 탈출할, 혹은 살아남을 방법을 강구해야 할 때.

 도움이라곤 한 푼도 안되는 분풀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결국 타개책은 마법밖에 없었다.

 마법이 없는 정인의 육체는 두 다리가 없는 약해 빠진 소녀에 불과하다.

 체중도 근력도 키도 상대에 비하면 한없이 모자란 몸.

 물리적으로 이 상황을 극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어떻게든 마력을 움직이는 방법을 기억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정인은 내면에 잠들어 있는 마력을 움직이기 위해 집중했다.

 마력을 어떻게 끌어올렸는지, 어떤 방식으로 다뤘는지, 효과와 목표 설정은 어떻게 했는지.

 그런 것들을 떠올리기 위해.


 아직도 가렵고 따끔거리는 몸 때문에 정신을 모으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해내야만 했다.

 그래야 살아서 다시 민우를 볼 수 있을 테니까.

 자연스럽게 정인의 감각 또한 예리하게 날이 섰다.

 조금만 더 집중할 수만 있다면, 곧 간단한 마법 정도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정인의 목덜미에 소름 끼치는 미끄덩한 감촉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뒤로 휙 젖히며 새된 소리를 냈다.



 “히익.”

 “억.”



 뼈와 뼈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정인의 눈 앞에 불꽃이 번쩍 튀었다.


 그녀는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뒤통수가 단단한 뭔가에 부딪히면서 골이 울리고 눈 앞에 빙글빙글 돌았다.

 움직일 실마리를 부여잡기 직전이었던 마력은 삽시간에 정인의 손을 벗어나서 흩어졌다.


 정인의 목덜미를 핥은 중년인이 코를 부여잡고 벌떡 일어났다.



 “으어어, 내 코. 내 코.”



 한 손으로 코를, 반대쪽 손으로 좌석 등받이를 붙든 채 끙끙대는 중년인.

 손 밑으로 빨간 피가 주르륵 흐르는 게 코피라도 터진 모양이었다.

 그 꼴을 보며 매부리코가 낄낄 웃었다.



 “으이구 멀뚜기(*멍청이) 자슥. 께끼러고(*새치기하려고) 하이 벌 받으 것이야.”



 정인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이해하기 싫었다는 말이 옳았다.

 목덜미의 살결에 스쳤던 미끄덩한 덩어리가 뭐였는지.

 전신에 저절로 소름이 올라오는 그 감촉은 어디서 왔는지.


 어찌나 거북한 기분이 들었는지, 아직도 오한이 올라오며 등골이 떨렸다.


 코를 쥔 중년인이 바닥에 코피를 뚝뚝 흘리며 정인의 옆에 섰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흰자에서 분노가 흠씬 묻어났다.



 “이 종간나가, 맛만 보고 끝내레 했디만.”



 정인은 다급한 심정으로, 다시 마력을 어떻게든 움직이기 위해 애썼다.

 어차피 도망치고 발버둥쳐봐야 차량 안.

 두 팔이 묶인 자신이 놈의 손길을 피해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조금 전처럼 우연한 일격을 다시 노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러나 한 번 놓쳐버린 실마리는 다시 돌아오는 법이 없었다.


 그 사이 놈은 양손으로 정인의 왼쪽 무릎을 덥썩 움켜쥐더니, 쓰레기봉투 끌 듯 밴 가운데로 끌고 왔다.

 정인은 놈을 떨쳐 내기 위해 다리를 버둥거렸지만 헛수고였다.


 중년인은 정인을 홱 뒤집어서 바로 눕힌 뒤, 그녀의 배를 깔고 앉았다.

 소위 말하는 마운트 포지션.

 중년인의 주걱턱을 타고 코피가 떨어지며, 정인의 흰 옷자락에 새빨간 반점을 차례대로 남겼다.


 정인은 마치 도움이라도 구하려는 것 마냥 주변을 둘러봤다.

 매부리코와 기름때 면상은 스포츠라도 관람하듯, 곧 벌어질 볼거리를 기대하며 실실거리는 낯이었다.

 놈들의 시선에 담긴 기대감을 눈치챈 정인은 이를 악물었다.

 국정원 요원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폭력에 익숙한 모습이었기에.


 그런 그녀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중년인의 충혈된 눈깔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중년인이 한쪽 손으로 정인의 머리칼을 콱 틀어쥐어 당겼다.

 정인은 고개를 좌우로 비틀며 소리치려고 했다.



 “뭐 하려는-”

 “얘 간나야, 로씨야에 이런 속담이 있는 거 아니?”



 망해버린 러시아의 속담은 갑자기 왜 나오는가.

 그런 소박한 의문을 해결할 새도 없이, 중년인이 두툼한 손바닥을 치켜 올렸다.



 “고조 에미넨(*아내는) 모피(*모피 코트)텨럼 잘 타작질이래 해야 반항기가, 적어진다, 그러데!”



 정인의 시야가 핑 돌아가면서 순식간에 새까맣게 변했다.


 직후 발포음처럼 뒤늦게 찾아온, 폭죽 터지는 듯한 소리.

 폭음이 사라지자 고막이 터지기라도 한 듯 귀가 멍멍했다.

 눈 앞에서는 새빨갛고 하얀 티끌 같은 것들이 둥둥 떠다녔다.


 정인은 불에 데인 듯한 쓰라림을 참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카락이 한계까지 당겨지면서, 두피까지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입 안이 터진 듯 얄팍한 핏방울이 입술 사이로 배어 나오며 쇠 맛이 났다.


 중년인은 정인의 귀싸대기를 올린 굳은살 박힌 손을 다시 치켜 올렸다.

 정인은 이를 악물었다.

 단순한 폭력 한두 번쯤이야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몇 번 맞았다고 어린애처럼 울며 빌 것 같았으면 국정원에서 버티지도 못했을 터.


 다시 정인의 고개가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입이 터지며 옆의 바닥에 피가 뿌려졌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연달아 휙휙 돌아가는 정인의 얼굴.


 중년인은 북이라도 치듯이 손바닥으로 그녀의 뺨과 머리를 연신 후려쳤다.

 정인은 그나마 길이가 되는 왼쪽 무릎으로 중년인의 등을 연신 걷어차려고 했다.

 하지만 놈은 어디 어린애가 안마라도 하느냐는 듯, 따귀질에 박차를 더 가할 뿐이었다.


 정인은 무심코 팔로 막아보려고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러나 양손이 묶여 있는 데다가 몸 밑에 깔려 있기까지 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녀의 인내력이 버틸 수 있는 한계는 스무 대 정도였다.

 이후로는 맞을 때마다 발버둥치면서 말이 되지 않는 쉰 목소리를 내기만 할 따름.


 눈의 모세혈관이 터졌는지 시야가 점점 검붉은 빛으로 물들어 갔다.

 물에 빠진 것 마냥 소리를 먹먹하게 들렸고, 얼얼한 얼굴에 밀려오는 건 타는 듯한 고통 뿐.

 목덜미가 좌우로 연신 꺾이며 바닥에 얼굴이 부딪히는 둔한 느낌만이 정인에게 주어진 전부였다.


 구타가 끝날 때쯤 정인은 피범벅이 된 채 늘어져 있었다.

 터진 입안과 코에서 피가 줄줄 흐르며, 우윳빛 살결과 하얀 원피스가 빨갛게 물들어갔다.

 중년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손바닥으로 정인의 콧잔등을 한 대 더 내리쳤다.

 반쯤 시체처럼 퍼진 그녀의 몸이 한 차례 들썩거리며, 희미한 신음이 흘렀다.



 “흐윽, 흐윽, 끄으…”



 분이 덜 풀린 듯 씩씩거리는 중년인을 기름때 면상이 밀쳐내며 구박했다.



 “에라 이 모재랜(*모자란) 놈아, 양지를 그래 패면 쓰니. 네자(*여자)하고 먹게질(*섹스)이래 할라면 양지도 둥요하지 않간.“

 “입 다물라우, 이 반동 간나는 더 맞아야 된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중년인은 정인의 옆구리를 두 번 세게 걷어찼다.

 그녀는 숨 막히는 소리를 내며 옆으로 굴렀다.

 갈비뼈라도 부러졌는지 숨을 쉴 때마다 극심한 격통이 밀려왔다.


 몸을 웅크린 채 헛구역질을 하는 정인.

 터지고 부르튼 입술 사이로 피가 섞인 침이 주르륵 새어 나왔다.


 매부리코와 기름때 면상은 도마에서 팔딱거리는 횟감이라도 보듯 그 모습을 구경했다.

 사람은 저 정도로 죽지는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전부터 운전석 쪽에서 고성이 오갔지만 셋 중 누구도 신경 쓰는 자는 없었다.

 뒷좌석의 소란에 경비원이 자꾸 짜증을 부리던 차.

 똑같이 신경질이 난 조수석의 사내가 투덜거린 말이 발단이었다.


 ‘죽지만 않으면 됐지, 미제 파쇼(*파시스트)처럼 빡빡하게 굴기는.’


 그 말에 흥분한 경비원이 욕지거리를 하면서 시작된 격한 말다툼.

 자연스럽게 운전에 집중을 못한 나머지 차량의 속도는 느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밴 안의 인간군상에게 그 사실은 중요치 않았다.


 오히려 매부리코와 기름때 면상, 중년인은 이런 상황을 좋아라 여기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사내도 내심 마찬가지.



 그들이 서대문구를 벗어난 것도 이미 한참 지난 시점이다.

 순찰대원들의 검문이 가장 걱정스러웠던 행주대교IC도 텅 비어 있는 상황.

 평소에는 주요 도로마다 오가는 차량을 감시하는 검문소도 오늘따라 텅 비어 있는 곳이 많았다.


 뒤에서 쫓아오는 추적자도, 앞에서 기다리는 검문도 전혀 없는 묘한 납치극이었다.

 이런 상황이 그들을 낙관적으로 만든 것이다.


 애초에 난민들에게 마법소녀란 먼발치에서나 겨우 접할 수 있는 존재.

 특히 계급사회에 익숙한 탈북자 출신의 난민들 사이에서 마법소녀라 하면 곧 특권계층, 부르주아지였다.

 그들이 생각하는 마법소녀의 상징은 드레스와 요술봉, 마법이 아니라 희소한 외제차와 커다란 단독 주택.

 옛 북한으로 치자면 노동당 고위 간부들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일 지금 납치해온 이 마법소녀 역시 그런 ‘부르주아지’적인 면모가 있었다면, 돈을 아무리 준다 해도 납치는 엄두조차 못 냈을 터.


 사회의 밑바닥 계급이 감히 특권 계층을 건드리면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는 건 상식이었다.

 연합 초기에 마법소녀가 뭔지도 모르던 월남 동지들이 얼마나 많이 사라졌는지, 그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리 뒤가 없는 인생이라 하더라도 제 목숨은 아까운 법이니.


 그러나 공교롭게도 정인은 일반적인 연합 마법소녀가 아니었다. 안 좋은 의미에서.


 사는 곳은 말단 사원들이나 쓰는 신축 집합주택.

 두 다리도 없어서 휠체어나 목발이 없으면 외출도 못하는 신세.

 차는 있지만 동거하는 남자가 없으면 애초에 나가지를 않았다.

 더군다나 의뢰주의 말로는, 마법도 제대로 못 쓰는 반편이라고 그러지 않던가.


 실제로 납치 과정은 물론 지금도 마법으로 반격은커녕 무기력하게 얻어맞기만 하고 있으니, 그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마법소녀는 숙청당한 당 간부, 소위 말하는 ‘콩나물 대가리’.

 건드려도 별 뒤탈 없는 존재라고.


 거기다가 의뢰주가 원하는 건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마법소녀였다.

 해석을 살짝 뒤틀자면, 살아있는 상태로만 넘겨주면 뭘 해도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방금처럼 두들겨 패든.

 아니면 몇 달을 쌓인 욕구를 그 몸으로 해소하든.



 매부리코는 빳빳하게 충혈된 고간을 주무르며 군침을 삼켰다.



 “무시기, 폴(*팔) 한두 개쯤 부질그도 일없다(*부러뜨려도 괜찮다) 했으이까. 몸틈새 여사(*좀) 후빈다구 문제야 삼갔니.”



 이면세계 대전 전에는 양강도 혜산에서 일평생 남한 전자제품을 밀수하던 매부리코.

 대전이 발발한 후에는 만주에서 쏟아지는 혹한, 광기에 빠진 조선인민군을 피해 죽기 살기로 몸만 내려온 놈이었다.

 일평생 푼돈만 만지고 살았던 그 같은 가난뱅이가 이런 여체를 맛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기껏 해봐야 성병 걸린 꽃제비나 비쩍 곯은 매춘부 정도가 그의 수준에 맞는 여자였으니까.


 어쩌면 이번을 놓치면, 앞으로 한평생 기회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부산으로 간다고 해서 없는 돈벌이 재주가 생기겠는가.

 북한이든 남한이든 돈 없는 놈은 계집질조차 시원하게 못하는 세상 아니던가.


 그렇게 생각한 매부리코는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룩하게 솟은 바지 앞섶이 거추장스러운지 자세가 약간 엉거주춤했다.

 기름때 면상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다리 사이의 텐트를 추슬러댔다.



 차창 밖의 풍경은 이제 거의 멈춘 상태였다.

 경비원과 조수석의 사내는 이제 아예 삿대질을 해가며 서로 욕을 퍼붓고 있었다.

 어지간히 흥분했는지 운전하는 것도 잊은 모양이었다.


 매부리코는 속으로 ‘저 혼자 다급한 척은 다 하더니’라고 비웃으며, 중년인의 옆으로 갔다.



 “조매 멀래(*비켜)보라.”

 “무어 할라구.”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중년인.

 매부리코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정인을 곁눈질로 흘겼다.

 떡이 될 정도로 맞았으면서도 피범벅이 된 것 말고는 이목이 썩 나쁘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 저렇게 얼굴을 맞았으면 이미 말벌에 쏘인 것 마냥 퉁퉁 불어터졌을 터.

 마법소녀란 것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맷집이 좋다더니 아무래도 맞는 말인 듯했다.


 매부리코는 운전석을 손가락질하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마츰 딱 둏은 기회 아니겠냐. 운뎐하는 차에서 먹게질하느 것보다야 머추(*멈춰) 있을 때 재싸게 해제끼는 게 낫지비.”



 옆에서 음흉한 낯의 기름때 면상이 끼어들더니 주억거렸다.



 “옳다. 그르문 저 간나 몸틈새(*여성기)래 누가 쓰간?”

 “내레 저 종간나 괄괄한 주뎅이에 좆꺼지 마자 처박아야 직성이 풀리갔어.”


 “깨물기지나 않게 조심하라.”

 “그랬다간 니빨을 모주리 뽑아버리디.”

 “공 녕감, 이 에미나이 쓰기오?”



 방금 잠에서 깬 듯 뒷좌석에서 하품을 해대던 노인이 귀찮다는 듯이 손을 저어 댔다.



 “일없다야. 몸막대 안 선 것두 벌써 십 년은 넘었다야.”



 황해도 사투리를 쓰는 노인은 이미 일흔이 넘은 몸.

 발기부전이 와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였다.


 그의 처량한 신세를 놀리듯 낄낄거린 셋은, 곧 정인을 차량 승강구 근처로 질질 끌고 갔다.

 그곳이 밴 안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발버둥칠 기력도 없는 정인은, 바닥을 빗자루처럼 몸으로 쓰는 신세가 되었다.

 뒤로 묶인 손이 몸통하고 까끌까끌한 바닥 패드 사이에서 뭉개지며 이리저리 상처가 났다.

 쓰라린 느낌에 반쯤 의식을 잃었던 정인이 몸을 움찔했다.

 말려 올라간 원피스는 바닥에 밀려 거의 벗겨지기 직전.

 회색 스포츠 브라도 덩달아 말려 올라가면서 소담한 가슴이 봉긋하니 위로 쏠렸다.


 그 모습을 보고 흥분한 매부리코가 서둘러 정인의 속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좀 전에 배를 밟히며 실금한 탓인지 조금 축축한 감촉이 놈의 손에 와 닿았다.

 팬티를 벗기는 매부리코는 고급 상품의 포장을 벗기듯 조심스러웠다.

 기대감에 가득 찬 손길이었다.


 정인의 하체를 가리던 마지막 보루.

 그게 사라지자 솜털 보송한 살색 둔덕과 그 밑의 꾹 닫힌 균열이 드러났다.


 밑에 있을 분홍빛 속살을 기대하며 덩달아 흥이 난 기름때 면상이 품에서 회칼을 꺼냈다.

 그러더니 ‘준마처녀’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거추장스럽게 말려 올라간 원피스를 칼로 찢어 내기 시작했다.


 중년인이 정인의 얼굴에서 흐르는 피를 우악스럽게 닦아내는 사이, 매부리코가 기름때 면상을 보며 혀를 찼다.



 “무시기 그른 에미내들이나 흥얼게리는 가요르 불르고 있노.”

 “내 뉘(*누이)가 질리던(*좋아하던) 가요라우. 지끔은 뭐 듕국이래 부산이래 어데 가서 살고 있는지도 모루겠디만.”

 “그른 가요르 지끔 와 불르고 있니. 이 동무도 아이 제정신이구만.”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에 정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화 때문인지, 아니면 맨 살에 저릴 정도로 와 닿는 불길한 느낌에 제정신을 차렸는지는 모를 노릇이었다.


 정인은 가랑이에 휑하니 서늘한 느낌을 받고는 반사적으로 허벅지를 오므렸다.

 실핏줄이 터져서 벌건 시야로 그녀는 아래쪽을 살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정인의 안색이 허옇게 질렸다.


 팬티는 다 벗겨져 있고 입고 있던 원피스는 조각나기 직전.

 그 와중에 납치범 중 한 놈은 자신의 사타구니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고, 한 놈은 회칼로 옷을 찢는 중이다.

 자신을 구타한 놈은 머리맡에서 바지를 벗으려고 하고 있었다.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바보라도 능히 짐작이 가는 상황이었다.


 중년인의 바지에서 나는 고약한 구린내에 욕지기를 느끼며 정인은 몸서리쳤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겪은 사람들은 문명 세계의 매너를 한 꺼풀 씩 벗어 던지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덕분에 마법소녀가 된 이후, 정인은 희롱하는 듯한 발언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정부와 경찰 권력이 강력한 부산에서는 다들 입으로만 그럴 뿐.

 행동에 옮길 용기는 없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경우 그저 못 들은 척 흘려 넘기면 그만이었다.

 짜증이야 났다지만 입을 강제로 다물게 할 순 없는 노릇이라,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 와중에도 은근슬쩍 직접적인 추행을 하려는 자들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럴 때는 그저 참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정밀하게 마법을 부리면, 기도에 물을 좀 넣어주는 것 정도야 간단한 일이었으니.


 그 정도의 마법 행사는 들킬 일도 없었다.

 그런 응징을 당하고 한바탕 사레가 들려 바닥을 몸으로 청소하다 보면, 다들 정신이 번쩍 들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모든 면에서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리고 조금 전처럼 얻어맞는 정도는 차라리 버틸 수 있었다.

 고통스러울 뿐 아주 공포스럽지는 않았으니까.

 국정원에서 당한 고문에 비하면 그저 지나가는 삽화에 불과한 정도였다.

 인간을 어떻게 하면 극한까지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을지 아는 전문가들에 비하면, 이들은 아마추어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눈 앞에 다가온 놈들의 곧추선 고간은, 정인에게 완전히 다른 종류의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흐느끼는 듯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로 뺐다.

 애처로운,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과 함께.



 “그만해, 이 씨발놈들아… 뭐 하려는 거야…”



 욕을 먹은 중년인은 다시 성질이 솟구치는지, 버럭 소리지르며 주먹을 들었다.



 “이 간나 상게두(*아직도) 반항질할 기운이 있니. 에라!”



 정인의 배 한가운데에 내려치는 망치처럼 꽂히는 주먹.

 버르적거리던 그녀의 몸이 잠시 빳빳하게 굳더니, 곧 부들거리면서 침과 위액을 토해냈다.



 “우욱, 게에엑.”



 핏자국과 멍으로 엉망이 된 정인의 볼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와중에 기름때 면상의 회칼 끄트머리가 그녀의 가슴을 스치며 긴 창상이 났다.

 정인은 그 통증을 느낄 겨를도 없이 헛구역질을 해댔다.


 매부리코는 그러거나 말거나, 오므린 정인의 허벅지를 좌우로 쫙 벌리고 다리 사이를 감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고관절 안쪽의 파인 계곡, 그 사이로 앙다문 균열.

 속에서 희미하게 풍기는 숨길 수 없는 암컷의 냄새라도 맡으려는 듯, 놈은 코를 벌름거리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 와중에 회칼을 잠깐 회수했던 기름때 면상은, 마지막 남은 스포츠 브라 조각마저 잘라냈다.

 놈은 드러난 정인의 젖가슴을 보고 노골적으로 실망한 기색이었다.



 “우유저장통은 별 볼일 없구만.”



 기름때 면상은 정인의 말랑하고 소담한 가슴을 손으로 쿡쿡 찔렀다.

 좀 전에 난 칼자국에서 핏방울이 송골송골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바지춤을 반쯤 걷어 내린 속옷 차림의 중년인은 모자란 인간을 보듯 놈을 구박했다.



 “딱 보게두 작아 보이더만, 염독(*욕심)도 대가랑(*적당히) 부려야지. 만날 하던 것처르 꼭지나 빨든가.“

 “초떼기(*초짜) 같으니. 요 열음(*열매)이래 고조 빠는 게 아니라, 톡 깨밀(*깨물)어야 제 맛인 게시오.”



 기름때 면상은 누리끼리한 이빨을 드러내며 히죽 웃고는 회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정인의 몸통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중년인은 놈의 고약한 버릇이 또 나왔다며 넌더리를 부리며, 허름한 사각 트렁크를 주섬주섬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 정인은 다리 사이로 파고든 매부리코의 얼굴을 어떻게든 밀어내려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속옷이나 생리대 말고는 뭔가를 대본 적도 없는 부위.

 씻거나 용변을 볼 때가 아니면 일부러 만질 일도 없는 곳이었다.

 그런 비부에 닿는 놈의 숨결과 체온은, 몸서리가 저절로 쳐질 정도로 소름 끼치는 것이었다.

 엄습하는 진통으로는 차마 무마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그러던 그녀는 갑자기 왼쪽 가슴 끝에 끔찍한 고통을 느꼈다.


 마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은 통증에 정인은 갈라지는 비명을 질렀다.

 발버둥치려 하지만, 남자 셋이 그녀를 제각각의 위치에서 짓눌렀다.

 정인은 꼼짝도 못한 채 신음과 울음 섞인 고함을 질러 댔다.


 앞니로 정인의 왼쪽 가슴 첨단을 짓씹은 기름때 면상은, 백태 낀 혀를 낼름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거의 끊어지기 직전까지 깨물린 유두는 피와 침으로 번들거렸다.



 “이거 아주, 꼭지 때까리나(*때깔이나) 따먹으니 놀라나는 거 보기에 체너(*처녀)구만.”



 기름때 면상이 정인의 반대쪽 가슴으로 고개를 들이미는 사이, 중년인이 그녀의 머리를 위에서 꽉 붙들었다.



 “뎄구 날래 주뎅이나 써야 쓰갔어. 야 윤 동무, 냉금 안 박고 무어하네.”



 타박을 들은 매부리코는, 당장 눈 앞에서 버둥거리는 정인의 다리를 억누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보통 여자 같으면 오금에 팔이라도 걸면 됐을 터.

 왼다리는 무릎 관절이 남아있어 수월했지만, 오른다리가 문제였다.

 허벅지 가운데서 잘려서 그런지 잡을 만한 구석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고관절에 가까운 쪽을 잡고 누르려니 체중을 실어도 쉽지가 않았다.


 트렁크까지 벗고 흉물을 드러낸 중년인이 그런 놈을 보고 비웃었다.

 매부리코는 낄낄거리는 웃음소리에 결국 부아가 치밀었는지, 바닥에 놓여 있는 회칼을 집었다.

 그리고는 정인의 다리 사이를 칼 끝으로 쿡쿡 찌르면서 위협했다.



 “개새끼처르 발버뎅치지 말라. 내써시(*가만히) 안 있으문 보당짝으 좆 대충(*대신) 이거로 쑤시버린다이.”

 “야 야, 체너 틈새 게지구 쏠롱허게(*헐렁하게) 만딜디 말라우. 투대(*나중) 우리도 고조 써야디.”



 사타구니의 연한 살이 따끔거리자 정인이 움찔거리며 잠시 발버둥을 멈췄다.

 그 틈을 타 매부리코는 정인의 샅을 붙잡고, 두 손으로 체중을 실어 꽉 눌렀다.

 거의 수평에 가깝게 정인의 고관절이 벌어지며 뚝뚝 거리는 소리가 났다.


 인대가 늘어난 것처럼 찢어지는 통증이 정인의 하반신을 덮쳤다.

 하지만 그녀는 통증에 신경 쓸 겨를조차 없이, 거의 발악하듯 소리쳤다.



 “하지 마! 치우라고, 주, 죽여버릴 거야! 개좆 같은 새끼들, 씨발, 씨발!”



 반쯤 감긴 눈꺼풀 사이로 보이는, 다리 사이에서 솟은 발기한 매부리코의 성기 때문이었다.


 화상을 입을 것 같은 열기가 그녀의 사타구니로 밀려왔다.

 정인은 백지장처럼 질린 채 허리를 뒤로 빼려고 발버둥쳤다.

 그러나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라 꿈틀거리는 정도가 한계였다.


 자꾸 도리질치는 정인의 따귀를 중년인이 다시 올려 붙였다.

 걸쭉한 욕지거리가 쏟아졌다.

 하지만 정인은 아래쪽에서 점점 다가오는 공포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때 자신의 몸에도 달려 있던 것.

 남자였을 때는 질리도록 보고 주물럭거린 물건이다.

 하지만 그게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배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정인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 정인은 다리 사이로 다가온 물건이 흉기, 혹은 흉측한 괴물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몸 속으로 파고들어 내장을 파먹을 괴물처럼.


 그녀는 발작하듯이 울부짖었다.



 “난 남자야, 남자라고, 이 씨발, 개새끼들아!”



 세 난민은 터무니없는 말에 잠시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행동이 멈춘 틈을 타, 정인은 애벌레가 꿈틀거리듯이 바닥을 기려고 했다.

 그 자리를 피하기 위해.


 헛된 수고였다.

 구타에 녹초가 되어버린 몸은 사내 셋을 뿌리치기엔 역부족이었다.


 놈들은 곧 그녀를 왁자지껄하게 비웃기 시작했다.



 “하이고 벨 세상에 미추과이(*미친 사람)래 다 보갔구만.”

 “좆이래 어디 때리고(*버리고) 우유통 달고 왔네? 압록강변에서 꽃제비 짓차구 해다가 저기 윤 동무 같은 밀수꾼한테 바꺼 먹었니?”



 매부리코는 아예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놈은 그러더니, 거리를 얼마 벌리지도 못한 정인을 다시 붙들었다.


 배 위에 걸터앉은 놈은, 다짜고짜 그녀의 균열에 두꺼운 손가락을 쑥 밀어 넣었다.


 습기 하나 없는 동굴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는, 굵고 거친 손가락.

 마디 가득한 굳은살이 속을 헤집는 아픔에 정인은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신음을 내뱉았다.



 “흐윽, 뭐, 뭘 너흑, 씨발, 윽.”



 그러기가 무섭게, 아랫배를 꼬챙이로 후비는 것 같은 묵직한 아픔이 정인을 덮쳤다.

 정인의 성기 안에 검지와 중지를 밀어 넣은 매부리코가 속살을 거칠게 휘저었기 때문이었다.


 정인은 헐떡거리며 허벅지로 매부리코를 걷어차려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조금 전 꺾인 고관절에서 극심한 아픔이 밀려왔다.

 그 통증에 저절로 힘이 빠진 정인은, 결과적으로 우스꽝스럽게 다리를 버둥거릴 뿐.


 놈의 투박한 손가락 마디가 들락날락할 때마다, 정인의 뱃속에서 장기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마치 놈이 내장을 우악스럽게 주물럭거리는 듯한 느낌.

 저절로 정인은 욕지기가 올라왔다.

 몇 번이고 배를 걷어차인 탓도 있어, 그녀는 허덕거리며 몸서리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를 무시한 채, 매부리코는 손가락 전체에 전해지는 여자의 부드러운 체온을 즐겼다.

 한동안 그녀의 음부를 쑤신 놈은 만족스러운 듯 이죽거렸다.



 “이딴 보당짝(*보지)이 있으문서 놈자니? 거젓부데기(*거짓부렁)질두 정두껏 하기오. 웃입으로 얼레부끼(*거짓말)르 부렸으이 아릿입에 좆대구리르 쑤시박을 것이여. 그래야 마춤맞지(*딱 맞지) 않겠니.”



 뒤늦게 합세한 기름때 면상이, 그녀의 젖가슴을 꽉 쥐어짰다.

 흉곽에서 뜯어내 버리겠다는 듯.


 정인은 위아래로 몰려오는 진통에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도저히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는 끔찍한 상황이었다.



 “국정원에 넘어가면 어차피 죽은 목숨이니끼니 체너구신(*처녀귀신) 안 되게 우리가 딕발(*직접) 체너 딱지래 떼 주겠다 이 말이디.”

 “…발정난 개새끼들…”



 맥없이 중얼거린 정인의 입을 중년인이 꽉 붙들고 밑으로 짓눌렀다.

 이미 혹사당한 정인의 목 관절이 뒤로 꺾이며, 뿌드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사내의 억샌 손아귀에 턱관절이 벌어지면서, 핏자국이 말라붙은 입술이 저절로 열렸다.


 드러난 정인의 가지런한 치열 앞으로, 놈이 핏줄 솟은 성기를 과시라도 하듯 들이밀었다.



 “내 남포 장어나 빨아보라우. 행와나(*행여나) 니빨 세우면 펭생 풀죽이나 쑤어 먹게 해 주갔어.”



 눈물과 피로 희미한 정인의 시야.

 그 한가득 검붉은 덩어리가 자리잡았다.


 잔뜩 충혈된 놈의 성기에서는, 포피 틈새에 누리끼리한 노폐물이 끼어 지독한 냄새가 풍겼다.

 거의 몇 달은 안 씻은 것만 같았다.

 기둥 여기저기에 울룩불룩한 곤지름도 있었기에 더더욱 흉측해 보였다.


 정인은 기겁을 하며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이든 놈의 말이든 어느 하나 역겹지 않은 게 없었다.

 하지만 잡힌 턱관절에서 빠질 것 같은 둔통만 밀려올 뿐.


 그러는 와중에도 잔뜩 곤두선 중년인의 성기는 코끝까지 다가왔다.

 점점 강렬해지는 악취와 바로 눈 앞에서 덜렁거리는 주름진 털투성이 음낭. 

 그 더러운 물건이 자신의 입 안으로, 혀로, 목구멍으로 들어오게 되리라는 상상.

 모든 것이 그녀에게 지독한 역겨움을 일으켰다.


 급기야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한 정인은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어에엑, 켁, 에윽.”



 벌어진 정인의 입술 사이로 성기를 쑤셔 넣으려던 중년인은 질겁을 하며 정인의 턱을 놓았다.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린 정인은 그대로 위장을 게워낼 것 마냥 구역질을 했다.



 “쌍간나가 티껍게(*더럽게)!”



 놈이 역정을 부리며 주먹으로 정인을 후려치려던 순간, 갑작스레 둔탁한 소리와 함께 외마디 비명이 밴 안에 울렸다.



 “악!”



 운전석 방향에서 난 소리였다.


 중년인은 깜짝 놀라며 그 방향을 돌아봤다.

 매부리코와 기름때 면상 역시 정인을 놓고 고개를 휙 돌렸다.

 손가락이 빠져나가며 속살을 밖으로 긁어내는 느낌에 정인이 움찔했다. 


 하지만 셋의 관심사는 갑작스러운 사태에 그녀에게서 멀어진 상태.



 조수석에 앉아있던 함흥 출신의 사내가 센터 페시아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머리통이 터진 듯, 꺼져 있는 내비게이션 화면과 각종 콘솔을 타고 선혈이 질질 흘러내렸다.

 희미한 신음을 흘리면서 자기 머리를 더듬거리는 걸로 봐서는 죽지는 않은 모양이나, 아무래도 크게 다친 듯했다.


 세 난민은 그 꼴을 당황한 얼굴로 쳐다봤다.

 경비원하고 좀 전부터 심하게 말다툼하더니 결국 사단이 터진 것이다.


 조수석 사내의 모습을 가리며, 피 묻은 도끼자루가 불쑥 콘솔박스 너머로 넘어왔다.

 그걸 쥔 자는 이마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경비원.

 그 사이 주먹질이라도 했는지 그의 한쪽 눈가와 광대 주변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콘솔박스를 타고 넘어온 경비원은, 가장 가까이 있던 중년인을 도끼 자루로 거세게 밀었다.

 외마디 신음과 함께 뒤로 물러나는 중년인.

 경비원은 홀라당 벗은 놈의 하반신을 경멸하듯 일별하고는, 놈의 몸에 가려져 있던 정인의 나체를 살폈다.



 아직도 구역질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마법소녀.

 얼굴은 핏자국과 피멍이 잔뜩 들어 있었고 옆구리에도 보랏빛 멍이 들어 있었다.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몸 곳곳에 생채기와 긁힌 자국이 가득했고, 젖가슴에는 아예 칼로 그은 듯한 상처도 있었다.

 거기에 고관절 인대가 찢어졌는지 도통 오므라들지를 않는 두 다리.

 메마른 국부를 억지로 매부리코가 쑤신 탓에, 벌어진 다리 사이에서도 피가 조금씩 나고 있었다.


 살벌한 분위기에 얼어붙은 세 난민.

 경비원은 시뻘건 얼굴로 고함을 지르며 도끼를 휘둘렀다.



 “간나새끼들 상품을 이따우로 만딜어! 날래 자리에 가 앉지 안하나!”



 기름때 면상이 질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가 서 있던 자리를 묵직하니 내리찍는 도끼날.


 매부리코와 중년인도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요란한 소리에 정인은 기침을 하며 옆으로 몸을 굴렀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누구도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뭐하는 수작질이우, 녕감 미쳤나!”



 중년인이 퍼렇게 질린 얼굴로 경비원에게 대거리질했다.

 기름때 면상, 리 씨가 피하는 게 조금만 늦었어도 도끼에 맞아 크게 다쳤을 것이다.

 아무리 화가 났어도 그렇지 다짜고짜 도끼질하는 건 분명히 선을 넘은 행위였다. 


 잔뜩 흥분한 경비원이, 놈에게 마주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날래 인천으로 도망개질치도 모재랄 태에(*판인데) 이놈이고 저놈이고 간나 구녕에 넉시 팔리서레, 좆물에 뇌가 파멕혔니, 이 종간나 새끼들!”



 성기를 덜렁거리는 매부리코와 중년인, 그리고 기름때 면상이 악에 받친 시선으로 경비를 노려봤다.

 조금만 있으면 싱싱한 처녀 맛을 마음껏 볼 수 있었건만, 깐깐한 노인네가 훼방을 놓은 것이다.

 심지어 사람한테 도끼질까지 하면서 정신머리 없는 천치 취급을 해대니, 머리 끝까지 화가 날 수밖에.


 매부리코가 손에 들고 있던 회칼을 만지작거리며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기러느 제눔이야말루 연합 쩐으루 허구헌날 오입질이나 하문서 어디 벌루 훼방질이야?”

 “이 간나 새끼 주뎅이는 다 놀렸니? 그 오입쟁이 도꼬(*도끼)레 맞고, 매독으로 죽은 네 에미 보러 오늘 가고 싶네?”

 “성병으로 똥오짐두 못 개리느 천치가 어쩌구 저째? 녕감, 순대로 내포국(*내장탕) 낋이고 습지 않음 겡망(*경망) 떨지 말라.”



 곧 중년인과 기름때 면상도, 매부리코의 뒤에 자리잡고 악다구니를 쓰기 시작했다.

 성질은 나지만 맨 앞에서 도끼를 마주하긴 싫은 듯했다.



 정인은 서로를 향해 악을 쓰는 넷을 피해, 기진맥진한 몸을 꿈틀거리며 좌석 발치로 몸을 숨겼다.


 간신히 좌석 사이로 몸을 숨긴 정인의 그대로 바닥에 푹 엎어졌다.

 그녀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끝없이 새어 나왔다.


 납치당해서 깨어난 이후 흐른 시간을 따지면 십 분도 지나지 않은 짧은 간격.

 하지만 마치 몇 날 며칠이고 시달린 듯 전신이 쑤셔왔다.

 사타구니, 다리, 가슴, 얼굴, 배, 등, 어깨.

 고통스럽지 않은 곳이 없었다.

 특히 셀 수조차 없이 얻어맞은 얼굴은 신경이 마비라도 된 것처럼 감각이 거의 없었다.

 그와는 반대로 머릿속에서는 끝없이 종이 울리듯 두통이 밀려왔다.


 단순히 육체적인 폭력의 여파만이 정인을 괴롭히는 것도 아니었다.

 성적으로 능욕당했다는 정신적인 고통까지 합쳐져서, 그녀는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그런 정인의 머릿속에서는 부정적인 생각만이 계속 맴돌았다.



 ‘어떻게 저놈들에게서 도망치지…? 그리고 민우는 날 찾아올 수 있을까? 어떻게?’



 납치당한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정인이 알 방법은 없었다.

 지금 여기가 어딘지도.


 그건 민우 역시 마찬가지일 터였다.

 안방에서 농성하면서 민우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그리고 기절하기 직전 나눈 통화.

 그 연락을 받고 민우가 곧바로 집으로 달려왔다 하더라도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과연 그 시점에 연료탱크의 수리는 끝난 상태였는지.

 수리가 끝났다 하더라도 납치범들이 어떤 도로를 타고 인천으로 가는지, 민우는 모른다.


 만일 놈들의 목적지인 인천으로 질러 갔다 하더라도, 정인이 기억하는 인천의 부두만 열 개는 된다.

 그 중 어떤 부두를 이용할지는 아무도 모를 노릇이었다.

 배를 타고 가는 게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그저 놈들이 한, 부산으로 가는 게 목적이라는 말에서 유추한 것일 뿐.


 그리고 민우가 온다 한들, 민우는 마법소녀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

 아무리 체격이 크다 하더라도 한 명이 여섯 명을 상대로 승리하기는 어렵다.


 총이 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터.

 그러나 놈들이 자신을 인질이나 인간방패로 삼는다면, 총기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으리라.



 결국은 민우가 오더라도 자신을 무사히 구출하는 건 어렵다.

 그게 정인이 속으로 냉정하게 내린 결론이었다.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은, 마법 사용법을 다시 떠올리는 것.

 그럴 수만 있다면 놈들을 몰살하고 민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정인의 감정은 민우가 제발 찾아오기를 갈구하고 있었다.


 정인은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 가쁜 숨을 쉬었다.

 헐떡거리고 토하고 비명을 지르며 지쳐버린 허파.

 만족스러울 만큼 산소를 공급하기에는 너무나도 기능이 떨어져 있었다.


 폐 뿐만 아니라 전신이 마찬가지였다.

 조금만 긴장을 풀어도, 붕괴하는 빌딩처럼 온몸이 무너져버릴 것만 같은 상태.

 물렁해진 정인의 의지력으로는 버티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지금 당장 민우가 백마 탄 기사처럼 곁에 찾아온다면, 정인은 그 품에 안겨서 모든 걸 잊고 잠들고만 싶은 기분이었다.


 정인의 숨결이 점점 쌕쌕거리며 잦아들었다.

 눈 앞의 더러운 바닥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점차 어둡게 변해갔다.


 퉁퉁 부은 채 반쯤 감긴 눈을, 그녀는 서서히 닫았다.

 엎드린 자신의 몸 주변으로 희미한 파란 빛이 감돌기 시작한 것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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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