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어느날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콘돔을 구매하십시오]

[실패시 : 냉장고가 고장납니다.]


“?”


환각이라도 보는걸까.

나는 이 글자가 오늘 마신 술 때문이라고 넘기며 그냥 집으로 갔다.


그리고 다음 날.


“뭐야 시발.”


문자는 사라지지 않았고, 우리집 냉장고는 고장났다.


나는 상태창의 문자가 내게만 보이는 일종의 퀘스트라는걸 깨달았다.


[히토미 사이트에서 망가를 1회 보십시오.]

[인터넷으로 야겜을 다운받으십시오.]

[엑비 사이트에서 야동을 5회 보십시오.]


실패시 패널티가 존재하는 퀘스트.

허나 퀘스트들은 전부 내가 일상마다 하는 것들인데다가, 딱히 어려운 것도 아니라서 수월히 깨내었다.


“존나 쉽네.”


콧김을 뿜으며 다음 퀘스트를 확인하자.


[옆집 여대생 윤서아와 24시간 이내로 섹스하십시오.]

[실패시 : 운석에 의해 지구가 멸망합니다.]


“뭐?”



*



“그러니까, 여기 쓰인 것들이 전부 사실이란 말입니까.”

“그, 그렇다니까요. 제가 의도한게 아니라고요.”

“역겨운 강간범새끼…”

“정신병원에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현행범으로 체포된 내 인생은 그렇게 끝을 맞이하는 듯 했다.


‘왜 하필 나한테 시발.’


평범하게 잘 살고 있었는데.

왜 하필 내게 이런 좆같은 퀘스트가 주어진단말인가.


재판까지 얼마 안 남은 날.

그렇게 인생에 빨간줄이 그어지려던 그 때였다.


“국정원에서 왔습니다.”


갑자기 대한민국 정부가 날 찾더니, 내 증언을 진지하게 검토하였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네, 네.”

“…사실 저희도 믿기 힘든 일이지만, 일단 이 자료를 보시죠.”


자료에는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거대한 운석이 찍혀있었다.


“이, 이게 뭐죠?”

“소행성입니다. 앞으로 한달 내에 지구 궤도와 겹쳐 충돌할 확률이 99.8%나 된다는 과학자들의 소견도 있었습니다.”

 

사실 지구의 멸망까지는 1개월도 안 남았었다 한다.


세계 각지의 높으신 분들은 그 사태를 미리 전해듣고 어마무시한 자본을 활용해 우주센터를 짓거나 하고 있었다기도 하고.


“국민들에게 그 사실이 밝혀진다면 거대한 패닉이 올테니 극비리에 함구하고 말입니다.”

“이걸 왜 저한테…”

“다음 자료를 봐주시죠.”


다음은 나사가 찍은 소행성의 진행방향이다.


지구궤도로 일직선으로 날아온 소행성이, 갑자기 직각으로 꺾여 엉뚱한 장소로 날아가는 광경이 영상으로 남겨져있다.


“김장붕씨가 2주 전 윤서아양을 강간한 시간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니까 그 상태창이 내 망상같은게 아닌 진짜였고.

나는 옆집 여대생을 강간함으로서 지구를 구하게 되었다 이 말인가.


“장붕씨가 한 증언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지구를 구한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며칠 후, 대한민국이 찾아오더니 대뜸 내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게 뭐야 시발.’


어이가 없던 순간이었다.


“큰일입니다 대통령님!”

“미국측에서 사고로 핵을 발사했다는 소식입니다!”

“중국, 러시아를 비롯하여 대한민국쪽으로도 날아오는 중입니다. 어서 벙커로 피하셔야…!”


[한국 대통령의 손녀, 이설아와 12시간 이내로 섹스하십시오.]

[실패시 : 핵전쟁으로 지구가 멸망합니다.]


“어.”



*


[배우 이한라와 24시간 이내로 SM플레이를 하십시오.]

[당신이 S입니다.]

[실패시 : 화산폭발로 지구가 멸망합니다.]


“백두산 폭발징후 확인.”

“타겟 확보했습니다.”

“김장붕씨가 있는 장소로 운반중.”

“지금부터 증거말소 절차에 돌입합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요원들이 일제분란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내가 누워있는 침대에 누군가가 대령되었다.


“여, 여기는…?”

“죄송합니닷!”

“꺄, 꺄아앗!?”


정부가 내 성생활을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