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쓴 정약용


정약용이 정조머왕의 명을 받들어 

수원화성을 축조한것을 이미 다들 잘 알것이다. 


이때 국사책에서는 거중기 발명과 함께 중국에서 입수한 외국의 성곽축조관련 

서적들을 참고해 축성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 외국의 성은어디인가?

대부분 교사들도 이에대한 부연없이 넘어가서 막연히 거대한거 좋아하는 중국? 천수각이 발달한 일본?? 이라고 생각할 것이지만 



보방식 요새의 설계자 세바스티안 드 보방


실재로는 유럽식성 그것도 당대 최신식 수학과 기하학이 적용된것 으로 평가받던 

보방식 (별모양요세)축성법을 참고하여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보방식 요세는 19세기 산업혁명이후, 남북전쟁과 보불전쟁 시기를 거쳐 

고폭탄과 장거리에서 고각사격이 가능한 야포가  발명되기 이전까진 정면으로 뚫기가 무지하게 어려운성이었다.



프랑스 선교사로부터 기술자를 소개받아 설계했다는 하노이성

비록 토성이지만 보방식 설계의 전형을 보여준다.



반면 수원화성은 이게 어딜봐서 보방식인가?
싶기도 하지만 정말 참고 만 했다는걸 어렴풋이 알수는 있다.


문론 세종대왕때 재정된 세법 연분 9등법 조차 이해못할 정도로 퇴화된 문돌이 천국이된 당대조정의 

성리학 제일주의지 신하들이 보방식 같은거 이해할리가 없으니 수원화성만의 독특한 설계라 하겠다.


아래부터는 수원화성과 관련된 나으 국사선생 피셜인데 

정조가 노론세력의 본거지인 한양을 멀리하고 수원으로 천도할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며 

수원화성이 그 첫번째 단계라는 것이다. 



노론독살설에 시달리는 정조대왕


즉 병권을 장악한 노론에 대항하기 위해 국왕을 지키고 

국왕 친위군대의 본영이자 요새로서 당대 최첨단 기법을

 과감히 도입하면서 수원화성을 축조한것이라는 거다.



프랑스 대혁명은 실재로 근대화 이후 동양에서 왕을 압박할때 즐겨 사용되었다.
위안스카이도 청나라를 멸망시킬때 조정에 대형명과 루이 16세를 언급하며 협박했다.


당시 정조는 청나라로 부터 프랑스에서 대혁명이 일어나 국왕 내외의 목이 달아났단 사실을 알았으며 

자코뱅마냥 노론들이 자신과 왕후의 목을 칠것을 두려워해 천도계획을 몇몇 친위중의 친위들과 수립한게 아니냐는게

우리 국사선생 피셜이다. 


근거로 노론 즉 서인들은 예송논쟁에서 군주는 신하들을 초월한  존재가 아니라 사대부의 일원이다 라는 다소 귀족공화정에 가까운 주장을 펼친바가 있다.이에 정조는 반발하며 홍국영,남인등 친위세력을 키우며 만천명월주인옹이란 호를 써가며 초월적 군주를 자처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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