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로 난 2053번째 삶을 맞이했다.


누구에게나 오는 그런 진부한 세계가 몇번이고 되돌아와 오늘도 또다시, 나의 곁으로 찾아왔다. 항상 그것으로 하여금 눈을 뜬다. 하지만 그게 전부란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재미없다. 어느새 눈을 떠보니 생전 보지못한 생명체들과 조우하는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주변에 사물들이 부숴져 있다거나 아포칼립스 세계관처럼 일그러진 것 하나없이, 평상시 몇번이고 마주하는 평화롭기 짝이없는 이 세계에 방금 전 세계와는 달리 따분하기 그지없을 따름이다. 언제나 이 세계의 마지막 순간을 눈에 담고, 살며시 마침표를 찍을때마다, 의식이 남아있을 동안에도 아무일조차 일어나지 않는 무미건조한 마무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언젠가 의식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끊겨져 다시 정신을 차려보면 캄캄한, 색색 점들이 주위에 살짝 걸쳐진, 저 깊숙한, 심연 어딘가로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던 나를 이윽고 발견하게 된다. 아득한 저 너머에서 홀로 정처없이 떠다니기만 할뿐인 존재. 거기에선 나는 그저 작은 먼지덩이를 보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원래 결속된 세계보다 내 눈을 즐겁게 해주는 무언가가 나의 곁에 있었기에, 상관없었다. 무엇보다 그러고 계속 떠돌기만 하는건 아니었다. 먼지덩이가 눈을 깜빡이는 사이 어느새 커져있었고 또 깜빡이면 커졌갔기에 지루할틈따위 없었다. 보라. 따분한 세계를 외면하니 지금도 보이고 있는거 아닌가. 역시 그 세계는 영원불멸의 세상, 그자체.



저벅저벅 저벅저벅



그러고 생각한 사이에도 조그맣던 먼지덩이는 여전히 커져간다. 하염없이, 내가 모르는 사이, 더크게, 커져간다. 커지고, 커지고, 커져서 더이상 무시못할 존재로 거듭난다. 또다시 커지고, 커지고, 커져서 조금씩 꿈틀거리고 시작해서는. 다시금 커지고, 커지고, 커져서 드디어 형태를 바꾸기 시도한다. 정말로, 신기했다. 이게 나였으면.



저벅저벅 저벅저벅 저벅저벅



내가 다른 부가적 망상에 빠지지 않게 오직 자신만을 보고 빠지라는 듯 그것도 모르게 이목을 끌려선, 커져가는걸 벗어던지고는, 이번에는 변화를 선택하기로 결정한다. 난 오직 그의 변화만을 관찰하는 묵묵히 바라보는 스토커. 꿈틀꿈틀. 오, 변했다. 뭔가 점점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하지만 지켜봐야 한다. 인간이 아닐지 몰라. 혹시나 이상한 생명체면. 그래도 그것이 더.



똑똑똑 똑똑똑



꿈틀꿈틀. 오, 윤곽이 생겼어. 다시보니 진짜 인간인가보네. 작다. 나랑 크기가 비슷한걸. 하지만 아직은 몰라. 좀더 지켜봐야겠지. 그러자 그 먼지덩이, 아니 더이상은 덩어리가 아닌 하나의 생명체가 이리로 무슨 소리가 들려온다. 꿈틀꿈틀, 철벅철벅, 몽글몽글, 뭉게뭉게, 달랑달랑, 미끌미끌, 허우적 허우적 온갖 소리들이 들려오는 가운데 나는 귀를 감고 눈만을 기울였다. 그 생명체 머리 위로 돋아난 두개의 뿔 두자루를. 어라, 저게 뭐지?



·····



마치 작은 몸에서 타고 올라가 머리 끝에 세워진 두개의 뿔이 빛나고 있다. 빛나고 있었어. 혹시나 저게 말로만 듣던 책에서나 보던 악마일까. 그것도 아기악마, 그런? 어, 나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계속 보기만 있기로 했잖아. 다시보자. 한번 더 한눈 팔면···. 어, 눈에서 빛이나? 뭐야 뭐야. 뭔데, 너 이리로 오는거야. 아니야. 그대로 있는게 아니었어. 눈을 보자마자 떠오른 본능의 숨소리, 세음절.


무서워, 순식간에 떠오른다.

무서워, 갑자기 소름이 끼쳐온다.

무서워, 점점 다가오는 점점 빛이 세진 눈 하나가.

무서워, 몸은 저려오는지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에 일러.

무서워, 주위에 없을 심연 어딘가에 탈출구를 찾아본다.

무서워, 그래도 없다. 그런데 벌써 코앞에 온 눈동자. 오지마, 오지말라고.

········, 결국은 눈동자에 잡아먹혀 버리고 말았다. 그저 그 생각만 반복. 어라, 어라? 그러면 나, 이제 그 먼지덩이가 아닌. 그저 보고만 있던 스토커가 아닌 혹시.


그 생명체, 그 자체가 되어버린건···· 가?





그때였다. 그 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린 이상적인 세계는 부서진 유리조각 마저 남기지 않은채 사라져 버렸고, 눈을 뜬 곳은 또 지루한 세계. 무서웠는데 그새 빠져나왔나. 다행이야. 아니지. 그게 아니야. 지루한 세계에 깨어나버린 난. 그저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 일상이 시작된거잖아. 아니야. 다시 돌려줘. 그 꿈을 다시 무서워 하지않을테니. 한번이라도. 응? 그래도 무섭단거야? 응? 뭐야, 왜이리 머리가 띵—


“아리야. 어서 일어나서 밥 먹어야지.”


나는 비몽사몽 눈을 떴다. 그 소리에 맞춰서 귀를 열었고 그상태로 일어나 앞을 보고 그다음 소리난 옆쪽을 바라본다. 그렇다. 평소대로 옆, 즉 문 옆에는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또한 동시에 내게 삶의 이유를 넌지시 던져 준 ‘그분’께서 멀찍이 서 계셨다. 그리고 나는 그에 순응이라도 하듯 일어나니 그분도 미소를 지으며 나가시니, 이번에는 나도 새처럼 몸을 젖힌다. 그리고 고양이처럼 눈을 비비고는 원숭이처럼 옆에 나뒹구는 머리끈을 움켜쥔채 곧장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옆머리를 꼼지락 거리며 나는 오늘도 말없이 조용히 늘 같은 한숨을 내쉬며 뱉는다.


햇병아리 유치원생으로서의 하루가.


이번엔 제대로 시작됐음을 알리면서.











<작은 상자 속 울지 않는 병아리>











짹짹 짹짹


오물오물


나는 매일같이 일어나 세월이 부쩍 든 방을 빠져나가보면 언제나 내가 앉을 걸상 위에는 항상 따뜻하게 모락모락 피어나는 토스트 반조각과 차가운 우유 한컵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을 확인할수있었다. 그래, 먹으라고 만든것이지. 하며 곧장 자리에 앉아 매일매일 야금야금 빵을 갉아먹으며 아무도 없는 구석을 잠시동안 바라보며. 그리고 빵에서 ‘바삭’ 하는 소리가 날 때 쯤이면 그제서야 내가 살아숨쉬며 움직이고 있구나 라는 것을 새삼 자각하면서 옆에 같이 놓여있던 우유 한컵으로 집어들어 입속에 알림 메세지를 안으로 넘겨버린다. 그리고 계속 씹고 씹으며 점점 정신도 맑아지고 또렷해져선 그제서야 빵 뒷부분에 검댕이가 조금 묻어있단 걸 깨닫게 된다.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그분은.


“아리야. 목욕물 받아놨어. 얼른 먹고 들어오렴.”


그리고 나는 그 말이 꼭 실을 바로 조종해 움직이는 꼭두가시처럼 그새 다먹은 접시와 컵을 양쪽으로 간신히 들고 물고인 싱크대 안으로 밀어넣은채 서둘러 인형술사가 인형의 실을 꼬아 잡아끌듯이 나를 자연스레 발을 욕조 안으로 발을 디딘다. 그리고 그분이 하시는 따뜻한 말씀과 더불어 내 몸을 가볍게 툭툭, 곳곳을 씻기며 따뜻한 물을 적시면 하늘속 천국이 나를 맞이해준다. 그렇게 나른해진 몸을 순식간에 타올로 둘러매며는 천국에서 쫓겨난 날개를 감싸맨 천사를 떠오르게 된다. 물론 따분한 현실은 그런게 아니었지만.


“옳지옳지. 다음은 만세해보세요. 만세!”


만약 내가 혼자 할수있는, 그래도 누구나 정식으로 인정받는 위치 정도가 되면 기분좋은 욕조에도 내 맘대로 오래 있을 수 있고, 그러면 내 맘대로 현재 옷도 갈아입는 아까와는 달라른 거친 손 대신 내가 직접 갈아입는 내일을 언제쯤 되어야 맞이할수있을까? 한 앞으로 470 밤 정도 세상을 맞이하면 되려나? 아무튼. 내 삶은 아직도 한참이나 부조리한게 많은 세상이다. 의지를 갖고있어도 몸이 말을 안듣는편이거나 행여나 되는 일도 주위에서 원치않게 몰려와서 방해하니 말이다.

꼭두각시 같은 일상으로 그 주변에 많은 실에 엮어져 자유롭게 못 움직인다. 어릴적 관람한 그 눈의 생기없던 인형과 가까이서 눈을 마주치고 난 후, 평생 인형과 눈을 돌리기로 다짐한 이래로 내 삶이 대신 이렇게 느껴지게 된 것 같다. 아마도 그 인형의 저주땜에 그런게 아닐까. 그렇다면 전에 그 작디 작은 유치원에서 배운대로 찾아가 용서를 빌어야 하는데. 흐음, 그땐 한참 전에 일이니까 그자리엔 없겠지. 하며 또다시 전에도 했던 생각을 또다시 되풀이 해간다. 역시나, 이 세계는 똑같다. 여전히 다름이 없다. 그러니 똑같은 생각을 반복하지. 그렇게 변함은 없는건가. 똑같은 일상이 또?


딩동~♪


“아, 벌써 왔나보네. 아리야. 옷 마저 갈아입고 서둘러서 오렴.”

“(끄덕)”


그리고 그분은 저 너머 벨소리에 홀린듯 내곁에 있어준 몸을 일으켜 소리가 들린 쪽으로 굳이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나는 문득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분의 그림자 꽁무니를 밟게된다. 당연히 어미닭을 바라보는 병아리같은 눈으로만. 그래. 나도 준비를 마저 해야겠지. 그리고 나는 유치원 복의 옷매무새를 다듬고 양갈래로 땋은 머리도 재차 확인하며 마지막으로 그것을 집어든다. 그리고 바라본다. 이게 내가 짊어질 사명이자, 순순히 이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표식? 같은 것. 볼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솔직히 적응도 안되고 싫은데.


터벅터벅


그래도 오늘도 결국은 머리 위에다, ‘유치원 모자’를 푸욱하고 꾸욱 눌러쓰며 현관문쪽으로 걸어가지만. 이걸 쓰고 있자면 알에서 갓 부화한 병아리가 깨면서 나온 달걀 껍데기를 반쯤 쓰는 모습이 잠시동안은 계속해서 연상케 된다. 그렇게 보고있으면 가끔, 자주, 매일을 나를 병아리로 각인시켜 세상을 바라보는 경향이 약간, 꽤, 많이 있다. 부서진 알 껍데기를 쓰고 생전 처음봤을 상대를 어미라고 보는 각인은 곧 세상을 단정시키는 본능이고, 머리 위에 쓴 이 모자가 아직도 내가 한참 햇병아리인 처지를 말해준다. 그럼 위에서 날 내려다보며 뭔가 가르쳐 들려는 어른들은 해를 보고 시간을 알려주는 닭이겠지. 쓸데없는 것만 알려주기도 하다만 간혹 받아쓰기 같은 시험도 보고, 그로인해 책을 읽게 되면서 쓸데없는 고찰만 늘어나게 된거지만. 봐. 지금도···.


“앗, 아리짱이다아! 아리짱—! 유치원 같이 가자아아—!!!”


그리고 난 오늘도 아침을 맞이하고, 밥을 먹고, 목욕하고, 옷을 입고, 그리고 문 틈 사이로 보이는 저 아이를 만나게 되는게 나의 평소 하루일과의 시작이자, 따분한 세상 살기에서 꼭 거쳐야 하는 필수요소가 되어있다. 저 아이가 누구냐고 물어봐도 확실히 말하기 뭐한 면이 있다. 나를 낳아주신 그분께서 알고지내는 친구분들 중에 나와 같은 해, 같은 날짜로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게 쟤라고 했다. 그렇게 간단히 서로 알고 친하게 지내며 자연스레 이렇게 연결됐다. 한마디로 자진해서 맺어진 친구 사이가 아니라서, 부르기도 애매하다. 친구?, 아님 같이 이 세상의 도보하며 ‘복종’이라는 부조리한 달걀 껍데기를 머리에 이고 함께하는 동료? 음, 그저 편의상 동료라고··· 할까? 


덥썩


“저엉말~! 그러다 늦는데도! 아리짱은 아직도 아가구나, 아가! 그럼 아줌마, 유치원 잘 갔다오겠슴따!”

“그래. 둘다 사이좋게 잘 갔다오렴.”

“예에이-!!! 그럼 가자, 아리짱! (후다닥)”

“후후, 오란이는 오늘도 남자아이 못지않게 씩씩하구나. 조심해서 다녀오렴!”


이녀석. 또 혼자 멋대로 업돼서 내 손을 부여잡고는 집 밖으로 잡아끈다. 아 그래, 얘를 ‘이녀석’이라고 명명해 왔었지, 참. 이리 잡아끄니 잠시 잊었던 명칭도 가끔씩 까먹고 떠오를 때가 많다. 물론 직접 그렇게 불러본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하여튼, 그렇게 똑같은 방향으로 세상을 걷고있는 난, 한참을 짧디짧은 다리로 간신히 걸어(물론 강제적으로 이끌려갔지만)갈때, 누군가 우릴 잡아끌고 어디론가 집어넣는다. 또한 거기서 들려오는 갖갖이 소음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게 한다. 요는 똑같은 수법과 패턴이네. 하, 정말로 지겹구나.


“아리짱, 아리짱! 오늘도 ‘마법유녀 큐티&치키’ 봤지, 봤지?! 거기서 큐짱하고, 치짱이 퐁하고 싸우는데 진짜 짱짱~!”

“(응)”


이녀석과 더불어 매서운 소리와 함께 주변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가볍지않은 매서운 소리가 귀를 뜷고 들어왔고, 난 당장 이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꼬물꼬물 숨겨있을 그것을 캄캄한 어둠에서 꺼내들어야 했다. 작지만 막상 꺼내 들면 길고, 약해보이지만 꽤나 단단한 그것으로 묶어 튕겨나갈 우려가 있을 이 곳을 버텨야만 한다. 난 이런걸 싫어하지만 원래 세상이란 내 뜻대로 되지 않는게 투성이. 난 온갖 실로 묶여 구속되어 왔지만 이번엔 자신의 손으로 직접 고정시켜야 한다. 세상은 받아들여도 무언가를 원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직접, 받아들인 세상을 인정하기 위한 단계.


달칵


“맞아맞아! 유치원 버스 안전벨트는 꼭 차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지;; (허둥지둥)”

“(흠, 똑같겠군. 오늘 하루도)”


•••

도착했다. 

눈을 떠보니 서있었다. 

그 작은 유치원 문 앞에서. 

그리고 또 멋대로 잡아끌고 들어가려는 이녀석. 

한결같이 이끌려 이런저런 생각들이 맴돈다.


“아리짱. 오늘도 재미나게 놀자~! 앗, 서리짱도 있었구나, 안녕~!”

“아, 노란이하고 아리도 안녕!”

“(···)”


삐약삐약 삐약삐약. 내 사방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언제나 내가 이들 주위로 사이사이를 걸어가며 느끼는 하나의 의성어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 말고도 중간중간마다 괴성소리가 들려올 때 쯤이면 한번 나보다 나이많은 초등학생 언니 오빠들이 다니는 학교 주변에서 병아리를 파는 그 광경이 번쩍 떠오르곤 한다. 거대한 아저씨가 우두커니 웅크려 앉아 낡고 작은 상자 안에 끝없이 소리내는 병아리들을 앞에 두고 계속해서 하는건 아닌데 문득문득 사방을 쩌렁쩌렁하게, 귀 아프게 소리를 질렀다. ‘병아리 사세요’ 그때에도 병아리들은 변함없이 삐약거릴 뿐이었다. 아, 그렇게 보고있을때 어느새 난 자리에 앉아, 정처없이 선생님의 조회소리를 듣는데 그친다.


“햇님반, 여러분! 오늘도 힘차고 밝은 유치원 생활을 보내보아요! 할수있겠죠?”

“네! 네! 선생님!”


그렇게 들어간 꽤나 때묻은 유치원 안은 예상대로 똑같이 진행된다. 큰소리로 대답하는 선생님, 그에 힘껏 반응하는 유치원생들. 흡사 꼬끼오 우는 닭들과 그를 따라다니며 지저귀는 병아리들만 같다. 그래서 아까 빽빽 소리 지르는 철없는 아이들은 그 아저씨가, 주변을 매꾸는 소음은 병아리가, 앞에 보이는 이 유치원은 우릴 묶어 가두는 그 낡은 상자가 떠오른다. 스스로 들어가는 우리들은 자유없이 울어대는 병아리와 다를바가 있을까? 그리고 선생님의 조회소리가 떠오른 해를 보고 외쳐대는 닭을 생각나게 한다. 그런데 닭이란 원래 병아리가 커서 된 성숙체. 즉, 우리도 커서 저렇게 높은 곳에서 우리 같은 아이를 돌보는 존재가 된다. 


“노오란,····”


매일 같이 솟아오른 해를 바라보며 우리에게 알려주고, 병아리는 그를 보며 병아리 특유의 예민함과 민감한 적응력으로 앞으로 어떤 닭이 될지 결정된다. 그렇게 적응을 잘해서 크면 저분같은 모범적인 홰치는 닭이, 반대로 거기에 견디지 못해 죽어버린 병아리는 병아리인채로 멈춰 영영 높게 솟은 해를 보지 못하고 헛된 소리만 낼 뿐이다. 그러고 전에도 생각한거고 나중에 커서도 알고싶은 진실이 있다면, 과연 ‘해’란 대체 어떤 의미를 존재일지다. 해는 우리가 보기에 한참은 이르지만 비가 내려 생긴 웅덩이에 해와 자신을 번갈아 비쳐 보는 병아리처럼 그런식으로 나는 책을 보며 알려하며 동시에 내 자신의 존재를 평가하려 노력한다.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추기찬,····”


그렇게 책을 보며 하루를 보내는데도 결국엔 정확한 답을 얻지못했다. 떠오른 해를 태양이라 부르고, 우리는 밝게 불타오른 태양에 매료되버린 닭은 눈부신 빛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본래 책에 나와있는것은 미래를 위해 향해서 쫓아가는 구체적인 ‘목표’를, 지금 내가 생각한 방식으로 풀어본다. 하지만 껍데기를 짊어진 수동적인 난 목표가 뭔지 모르겠다. 


“····,현아리”


또 저 태양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모르지만 울어대고 보니 생명들이 저절로 깨어나길래 자신의 천명처럼 울어대는 거다. 이것도 본래 책에 써있기론 미래는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살면서 깨닫는 지혜와 기적을 맛보기 위한 추상적인 ‘이상’을, 내 멋대로 풀어써본다. 하지만 이상은 잠을 잘때나 그림을 그리거나 그냥 멍때려도 나오는게 헛된 상상, 그게 이상이 아닌가? 그런데 고작 어느때나 나오는 상상(이상)에 태양(미래?)을 보기위해 살아간다고? 왜 어째서? 누구나 할수있는 그런걸. 왜 보려고 살려는걸까? 


“아리··· 야?”


이상은 진실을 살아가기 위한 동력원 또는 진실을 피하기위해 꾸는 것이다. 전자는 내게는 크게 와닿지 않지만, 후자는 그런식으로 꿈꿔온 나로선 예부터 알고있다. 내가 읽은 책들에는 대부분 그런식으로 써있었다. 똑같은 세상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온걸 그저 사족을 붙여 느낀 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니 똑같겠지. 그래서 내가 알고싶은 그 ‘해’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 수 없다. 꼭 알려하면 더욱 머리만 꼬여드는 개념. 병아리가 닭이 될때의 과정의 시간들은 어쩌면 그 해를 보기위해 우리에게 건내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쓸데없이 강요하며 억지로 만드는 일상에서 그런걸 발견할수 있단걸까? 모르겠다.


“저, 아리야; 현아리···.”

“네, 선생님! 아리짱 여깄습니다!! (번쩍)”

“오란아. 출석체크 하는데 대신 들면 어떡하니; 휴, 어쨌든 모두들 온 것 같으니 오늘 하루 시작해보도록 할까요, 햇님반 여러분?”

“네, 네 선생님!”

“(흠, 모르겠어. 왜 이런 일상속에 사는지)”


•••

이상을 항상 꿈꿔오던 나에겐 꿈이란 별거아닌 부속품에 불과하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평소와 다름없는 넓은 공간에 몸을 맡긴채로 둥둥 떠다니는 꿈을 꿨는데, 뒤이어 잠깐 잠들다 깬 두번째 꿈속에서는 악몽을 꾸고 말았다. 이번 환상의 세계는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어째선지 여태껏 꾼 꿈들중에 인상이 깊게 박혔다. 원치않는 꿈인데 오래가는 꿈이라, 이상하다. 하지만 더 이상한것은 분명 꿈에서는 정말로 공포에 질렸던 꿈인데도 불과하고. 막상 깨어나서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면 별거아닌 시나리오에 불과했다. 정말로 이상하다. 왜 의식이 끊기는 순간 그 순간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도 의문인데, 왜 따분한 현실에 눈을 뜨면 그때의 공포감은 무뎌지게 되는 것일까.

그건 역시 이 세계와 그 세계는 서로 흑백관계여서 그런것일지도. 그도 그런게, 이 세계에서 절대 일어날수 없는것이 꿈같은 이상세계에선 걷는것만큼 아주 간단히 일어난다. 또 반대로 이상세계에서는 한정적인 일만 할수있다. 즉 똑같은 환상이나 상상에 얽매여서 고정적인 관념만 늘어난다. 아마 이게 이상세계의 유일한 단점이겠지. 한정적인 것만 일어나는 것에 비해 이 따분한 세계에서 겨우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은, 바로 난생보지 못한걸 경험할수 있단거다. 그래서 나도 따분한 곳에 인정하고 사는만큼 안하던 짓을 한번 해보기로 한다. 뭐가 좋을까, 이세계에서. 역시 전전에 봤던 그 괴물을 소환하는게— 흠—


쿠콰쾅!


내가 그린 진에서 무언가 맞대어 

검은 구렁이가 튀어나온다. 여기는 사실 마법세계.

꿈은 따분한 현세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기위한 매개체에 불과할뿐.

그런데 내가 쓴 진이 너무 강한 나머지 사방을 박살내며 등장한다. 그리고 내 몸을 감싼다. 

그후는 주변을 감싼다. 먹힌다. 그 검은 구렁이에. 아아, 죽은건가. 실수로 불러낸거에 죽은건가.

아니 봐봐. 난 지금 난 죽지 않았어. 지금의 난, 모두의 위에 당당히 서있지. 난 바뀌었어!


그 뿔달린 생명체와 하나가 된 나의 모습이 현실이 되어 지금 강림한···.


“오, 아리야. 혼자서 무슨 그림 그리고 있었니?”

“(선생님, 지금 세계관 구상중인데 끼어들면 어떡합니까)”

“선생님도 보여주겠니?”

(이 아이와 이번엔 제대로 소통할수있을지도···!)

“(끄덕)”

“어디보자. 우와! 아리야, 그림 솜씨가 여전하구나! 이거 고양이 맞지? 아직 밑그림 같은데 정말 세세하게 잘 표현···!”

“(이거 꿈에서 처음 본 생명체인데)”


선생님께서 찾아와 내 종이를 들추고 한참을 말씀을 계속 이어나가신다. 아마 쟁일 시끄러운 병아리들 하고만 있어서 심심하셨는지 조용히 있던 내게로 찾아와 마저 못그리고 애써 집은 크레용을 책상위에 툭 올려놓는다. 뭐, 이런걸 책에서 보면, 어른들의 어드바이스 같은건가. 어린이한테 자신들의 병아리 시절을 겪어온 어른들이 가르쳐드는 그 본능을 말로 표현한 것. 이게 끝날때까지 나같은 아이들은 아무것도 못하고 그대로 잠자코 있어야 한다. 귀찮은데. 새로운걸 찾을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 이것도 나름 새로운걸 발견한 어른이 내게 기회를 준다 볼수도 있지만···. 선생님과는 별로 말이 안통하던데. 딱히 와닿는 것도 없고.


데구루루


“그래서 이 고양이에게 예쁜 꽃 장식을 하는게 어떨까? 분명 예쁜 고양이가 될거야!”

(이렇게 아이와 얘기하며 소통을 이어가고, 분명 통하게 될거야! 하하!)

“(휙)”

“아··· 아리야; 혹시 맘에 안든거니? 그런거야···?”

(오늘도 대화 실패인건가. 난 교사로서 부족하나ㅠㅠ)


그렇게 생각할 때 쯤, 올려놨던 크레용이

데구루루 굴러가는 기척이 느껴졌고 

그래서 얼른 고개를 돌려 크레용을 집어든다.

잽싸게 집어들고 설마 다른건 떨어진거 없나 보고

다시 선생님쪽을 봤는데 어디론가 급히 나가셨다.

종이는 책상위에 그대로 놔두신채로.

아아, 끝났구나. 오늘도 빨리 끝내셨네.

뭐, 됐나. 이제 그림을 그려보도록 할까···.


“으으, 아니야!! 아니라고오!!”

“아니거든요오~ 맞거든요오~ ㅋㅋㅋ”

“추기찬! 이제 노란이 그만놀려!”

“됐거든요오~ 맞는 말 하는건데, 뭐ㅋㅋㅋ”


그때 크레용을 집어들고 마저 그림을 그리려던 찰나, 선생님께서 방금전에 열어놓시고 간 유리문 바깥에서 조금 언성이 높혀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무슨일인지 궁금하지는 않은데, 아까 ‘노란이’라고 한 소리에 나도 모르게 귀를 귀울이게 됐다. 이녀석의 정식 이름은 ‘노오란’인데, 애들은 이녀석의 이름을 노란이라고 부르는 듯했다. 뭐, 부르기 쉬우니까. 그렇다고 저런 별칭땜에 화낸건 이닐테고. 뭐, 큰일이겠어. 쟤는 옛날부터 알고지내왔지만 좀 별난 아이니까. 항상 긍정적이고 활달한 아이. 여자, 남자 상관없이 잘 놀고, 어른들한테도 애교도 많은 편이니. 화내도 조금 지나면 금방 나아지니까. 그래서 평소에 말없는 나를 그분께서 얘와 더 밀어주는 걸지도. 왠지 집중이 안되네. 책이라도 읽을까. 여긴 동화책만 있지만.


팍!


“으윽! 이게 무슨 짓이야! 오랑우탄!”

“네가 먼저 잘못한거야! 난 오랑우탄이 아니라고! 노란이는 귀여운 큐짱이라고!”

“웃기시네! 너 선생님한테 다 이를거야! 이 무식한 오랑우탄이! 어디다 장난감을 던져!”

“노란아; 이제 그만해;”

“서리짱도 봤잖아. 쟤가 먼저 노란이 보고 자꾸 오랑우탄이라 하잖아! 난 큐짱이라고, 큐짱!”

“여자애는 이래서 못 놀아주겠다니까. 야, 네이름이 어디봐서 노란이냐, 오란이잖아! 네가 하두 네가 누구냐고 묻길래, 너하고 잘맞은 이름으로 오랑우탄이라 말해줬는데ㅋㅋㅋ”

“으으으!”

“왜, 그럼 특별히 네가 좋아하는 노란이로, ‘노란우탄’이라고 말해줄까?ㅋㅋㅋ 왜, 그런 눈빛으로 보시나? 때리려고? 그럼 때려, 다 이를거니까ㅋㅋㅋㅋ”


하아···. 정말 못봐주겠다. 고작 그런걸로 싸우다니. 저녀석이 저리 화가난것도 잘 이해 못하겠는데, 쟤(기찬이었나?)는 도저히 이해못하겠다. 인간은 진짜 모르겠다니까. 왜 별것도 아닌 일을 크게 만드는 것인지. 일을 크게 만들지 않아도, 그저 잘못했다는 말로 끝내도 될 일을 굳이 끝까지 저리 기를 쓰고 사람이 싫다는 것에 더 건드니까. 아직 어려서인지 몰라도 악행이란 것 정도는 알텐데. 그런데도 왜. 아마 그런거겠지. 관심을 받고 싶어서, 겠지. 아까 봤을때 때린거에 크게 반응한걸 보아 별로 싸우고 싶은것도 상처입히고 싶었던 것도 아닌것 같았다. 그저 농담과 비하발언으로 상대를 깔보면서 모든 이목이 자신에게 주목된다. 내가 모르는 희열을 얻은채. 특히나 어린아이들 같은 경우도 쉽게 휩쓸리는게 마찬가지. 자신이 남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모르고, 그게 상대를 상처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채 저지르지.


정해지지 않은 자신. 남을 헐뜯는 자신. 거기에 상응하는 반응을 주며 만족감을 얻는다면 더 즐기는게 저 애 같은 부류가 저지르는 방식.


그래, 저녀석한테, 여러모로, 흥미로운걸 봤으니까, 도와줄까. 또, 좋은 대처방식이 떠올랐고.


근데 귀찮네.


•••


“얼레리 꼴레리~ 오란이는 폭력배 오랑우탄이래요~ 손이 먼저 올라가는 저—”

“어?? 아리야!!!! (덥썩) 아리야. 내 말좀 들어봐! 쟤가 나보고 자꾸 놀리고, 또···!”


난 이녀석의 팔을 뿌리치고 기찬인지 기탄인지 한테 다가갔다.


“너, 너 뭐야! 아, 알겠다. 너 지금 쟤 지켜주려고 온 거구나. 역시 오랑우탄은 친구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지? 그러니 이러고—“


난 그 아이 앞에다 손에 들고 온걸 딱 펼치며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더니.


“이, 이건!!! (읍) 야야;; 당장 그거 내놔! 이걸 어떻게!!!”


난 들은 물체를 들고 어디론가 다녀온 선생님이 우리 주위로 몰려있는 아이들을 보고 허둥지둥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난 눈빛으로 그 녀석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자 그아이는 뭔가가 그리 두려웠는지 숨소리가 약간씩 싸늘해진다. 그때, 선생님이 가까이 다가오셨고, 난 물체를 주머니에 넣은채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다.


“기찬아. 오란아. 무슨일이니? 서리가 나한테 와서 말려달라고 해서 찾아왔는데···. 둘이 싸운거니?”

“맞아요, 선생님! 쟤가 저한테 계속 오랑우탄이라고, 막막 놀리고 그랬어요!”

“아니에요, 선생님! 전 그저 장난으로 그보다 쟤도 때렸어요! 저 장난감 검으로 제게 던···(!)”


난 그 애의 눈을 마추고 그 물체를 살짝 보여주며, 이윽고 난 선생님의 얼굴을 번갈아 보기를 반복, 또 반복.


“아··· 사실은요. 선생님···. 제가···.”


그리고 그 아이는 자초지종 자신이 잘못한 것을 열심히 구구절절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정도 효과가 있을지 몰랐는데. 어쨌든 그렇게 선생님께 잘못을 모두 토로하였고, 그걸 들은 선생님은 그 둘을 화해시키려고 유도했고, 그리고 둘은 간신히 화해에 성공한다. 그렇게 지켜본 나는 시간이 살짝 지난틈에 슬쩍 그 애에게 물체를 건네줬다. 인간은 자신의 약점을 쥐면 모습을 바꾼다. 순응의 형태든, 더 큰 반항의 형태든. 하지만 선생님이 앞에 있어서 간신히 된 것 같지만. 따분한 마무리였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은 유치원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는 내게 안심한 얼굴로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소근소근) 솔직히 이거 잊어버린줄 알아서, 조마조마 했는데. 0점짜리 시험지, 엄마가 미리 가져간줄 알았거든. 아무튼 고마워! 앞으로 잘지내보자!”

“(솔직히 주은 시험지인데. 누구 이름인지 몰라서 가방에 넣어났는데 네 이름이 그거와 일치해서 생각났거든)”


뭐, 다 끝난 일이지만. 아이들은 뭔가 순진하다.


“아리짱~! 정말로 고마워! 정말! 아리짱이 없었으면 아무것도 못 할뻔했어. 전에도 냥이가 갑자기 괴로워해서 놀랐었잖아. 그때 아리짱이 와줘서 손쉽게 고쳐줬지! 끄으~!”

“(그건 네가 고양이한테 함부로 초콜릿 줘서 그렇잖아. 난 그냥 고양이한테 풀 먹인것밖에 없고)”

“정말로, 아리짱은, 내 베스··· 베스··· 베스터블···? 아무튼 그거야! 아리짱이 최고로 좋아!!! (꾸욱)”

“(베스트 프렌드겠지. 그리고 너무 꽉 붙어있지 말아줄래?)”


사실 긴 이야기지만, 전에 이녀석이 공원을 가다가 아기고양이를 주워서 내게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 고양이의 눈을 본 순간 왠지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에서 외로움을 비춰 슬쩍 엿보였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그리고 며칠뒤 한동안 내게 오지않게 됐고, 난 그 덕에 책을 오랜만에 집중해서 읽게 됐다. 물론 책에는 내가 생각한게 주르륵 써있는게 다였지만, 오히려 그렇게 써있으면 나와 공감이 가는게 많아서 머리를 책에 묻어두는 적이 많다. 난 그때가 사실 진심으로 행복했다. 마침 그때 읽었던 책도 ‘모든 감정은 욕慾에서 비롯된다’ 였다. 거기 대목이 ‘욕심’의 욕이 사람의 감정을 결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욕이 충족하면 기쁨을 느끼고, 욕이 부족하면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는 간단한 설명이 위에 써있었다. 생명체의 기본은 원래 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나 인간은 무언가을 심취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다가 우연히 지혜를 깨우친 종족에 불과하다는 거다.


그때 난 뒤로 나온 이야기들이 무슨 얘기인지 통 이해할수없었다. 욕심은 끝도 없다. 그렇기에 잃기 싫은 그 마음에 부응하며 살아가는것이 삶이고, 혹은 죽음을 택한다. 그래서 세상은 일부러 한가지씩 부족한 점을 때어놓은 것이다. 욕심은 그래서 생기는거다. 우리가 부족하기에 따라서 불완전하여 생각을 하게된다. 만약 세상이 완벽했다면 정말 재미없는 세상이 됐을거라는 말···. 그런데 왜 난 이게 더 재미없지. 세상은 완벽하면 재미없다고? 그럼 꿈은? 꿈은 완벽해서 재밌는게 아닌건가? 꿈이란 뭐든 할수있잖아. 그런데도?

그때는 분명 이해하기엔 일렀는지 읽을때도 뭔소린지 모르겠었다. 그때. 그녀석이 우리집으로 찾아왔고, 또 말없이 날 붙들고 어디론가 데려가는것이다. 어쩐지 조용하드라. 왜 안끌고 가나 했네. 라고 생각할때 걔가 평소와 분위기가 다른단걸 눈치채고 말았다.


“어떻게, 아리··· 아리야···. 나···.”


그러더니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주위를 살펴봤다. 그런데 도착한 곳은 다름아닌 그 공원. 그 공원에 도착한 나와, 울고있는 이녀석. 상황파악 하는데 오래걸렸지만 왜인지 자세히 보니 알 수 있었다. 이녀석이 안고있는 품속을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아기고양이가 있었다. 그런데 시름시름 앓고, 자꾸만 토를 하는 그런 아기고양이가, 그녀석 품에. 그런데 그녀석, 어째서 날 부른거지. 의문이 들었다. 그때 난 그 책 한문장이 떠오른다. 욕심은 충족하면 기쁨, 아니면 슬픔. 그럼 이녀석은 그저 날 보고 안심이라도 하려고? 뭐지, 대체. 그리고 난 그렇게 울고있는 그녀석을 달래고 고양이를 내려놓고 보았다. 입가에 초콜릿 자국 발견. 그리고 난 주위에 풀을 뜯어 고양이 입에다 넣는다. 그러자 토를 하고 먹었던 것을 이제 제대로 토하기 시작했다. 토할때 그녀석은 끝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내 행동을 지켜만 본다. 믿는건가.


난 한동안 그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매일와서

공원을 들렸고, 그녀석의 표정을 보고 또 보고 하여

마침내 고양이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걸어 생기를 되찾게 됐다. 그때 그녀석의 얼굴도 여태까지 표정은 어디가고 내게 미소를 짓는다. ‘정말 고맙다고’ 하면서. 내게 초콜릿을 줬다. 분명 이걸로 고양이를 힘들게 했으면서.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거지. 난 다시 그녀석이 보는 앞에서 초콜릿을 까 그 아기 고양이에게 건네줬다. 그러자 고양이는 도리도리, 계속하자 내 손에 있던 초콜릿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그녀석은 떨어진 초콜릿을 바라보더니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아리야. 초콜릿은 안되는거야?” 하고.


그녀석은 그후로 고양이에게 초콜릿을 주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내게 주지 않았다. 유독 초콜릿을 보면 기피라도 하듯, 눈을 피한다. 난 책의 내용이 이를 보며 무엇을 말해주는지 알게됐다. 현실은 따분하다. 그래서 흥미로운걸 찾으려고 노력하지. 꿈은 흥미롭다. 하지만 대부분은 허상이야. 그래서 결국엔 부족한건 양쪽에 존재하지. 보이지않는 허상에 끙끙 앓으며 살고있는 저녀석은, 현재의 따분함을 유지한다. 아까부터 따분함, 따분함. 그것은 평화란 단어다. 평화는 완벽은 아니더라도 그와 가깝지. 한마디로 재미없어. 꿈도 재미지. 근데 허상이 꼭 좋은 쪽을 말하는건 아니야. 악몽도 있었지. 악몽은 되살아나, 우리에게 목매여온다. 보이지않아, 근데도 두려워해. 사실 ‘재앙’이 현실이 될까봐. 그런거지. 이해가 안간다고? 괜찮아. 그녀석과 다름없겠지.



사람은 너무 많은걸 생각하다 도리어 자신의 존재를 잃는 존재니까.


봐봐. 넌 이 글을 보는데도 이해가 안가잖아.


난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있는 것 같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따분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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