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는 오늘도 눈발이 휘어 나리고 있습니다. 경성에서는 미처 알지 못한 눈들은 고요로 세상을 덮을 듯 합니다. 이렇게 침묵이 퍼지듯 깔리는 날이면 저는 작은 방 안에 누워 빈 천장을 바라보곤 합니다. 빠리의 예술가라면 경이에 차 영감을 노래할 아름다운 모습이지마는 반도의 가난한 시인은 쿠더브레한 내음의 사람들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는 떠도는 이들이 많습니다. 거처를 잡았음에도 떠도는 이들은 꽃눈이 나리던 산들을 찾아 해메입니다. 바람에 사정없이 찢기다 지쳐 잠드는 이들에게는 어김없이 쿠더브레한 흙의 내음이 납니다. 신의주는 그들이 찾던 따듯한 흙이 없는 까닭입니다.

어두운 거리 위로 불빛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하면 저는 기다리던 자시(子時)가 되었음을 알고 몸을 일으켜 작은 상 앞에 앉습니다. 알량하게 끄적이던 원고지는 저리로 밀어버리고 가물거리는 가스등을 벗삼아 소주를 마십니다. 꼭 이런 날이었을 겁니다. 그대를 홀로 남겨두고 훌쩍 떠나던 날이.

알알이 옭아매던 사슬을 끊어버리고 저는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대와 함께라면 노서아도, 오랑캐령도 삼수와 갑산도 기꺼이 떠나고자 했을 겁니다. 허나 당신께서 제게 주신 것은 따듯한 소주 한 잔과 짦던 겨울의 하룻밤. 그리고 이별이었습니다.

고요한 자시의 밤, 자야에 소주를 마시며 묻노니. 자야, 그대는 잘 계시는지요. 가을의 낙엽처럼 쓸쓸히 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갈 수 없는 그대의 따듯한 품을 찾아 헤매이는 남신의주의 백석이, 경성에 있을 자야를 그리며 편지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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