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그거 알아요? 내가 너를 공주님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비록 당신이 나를 귀찮아하고 성가셔하고 때때론 없어져 버려도 좋다고 생각할지라도,

당신 이름에 담긴 의미가 너무나도 아름답고도 섬세해서, 

봄에 움트는 꽃봉오리처럼, 항상 꿈에 가득 찬 당신의 이름을 감히 부르는 순간 입술에서 바스러져 버릴까 봐

공주님이라고 부르는 거랍니다.


나는 사람들이 사랑에 관한 이야길 할 때마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에요.

물론 내가 당신에게 품은 사랑을 응원해주고, 인정해주는 친구들도 많지만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 역겹다고 비웃을 때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역겹다고 말하는 줄은 상상도 못하거든요.

그리고 그런 말을 들은 저는, 그들과 똑같은 가면을 입술에만 살짝 걸치거나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여요.

지금 당장은 그게 나를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기 전에 밀려올 후회와 죄책감을 알면서도 무시합니다.


나는 내가 무지개로 만든 감옥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누구도 나에게 물을 뿌리기 전에는, 또는 내가 뿌리는 물을 보기 전에는 내가 무지개에 갇혔다는 사실을 모를 거에요.


내가 나에게 뿌리는 물은 양과 온도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어요.

따뜻한 물을 적당히 뿌려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예쁘고 선명한 색을 가진 무지개를 보여 주면,

시간이 흘러 무지개가 사라져도

그 사람들은 내 무지개의 찬란함과 아름다움을 또렷이 되새길 수 있답니다.


남이 나에게 뿌리는 물도 있어요.

따뜻한 물을 뿌려주는 사람은 나쁘지 않아요.

가끔씩 화상 자국이 남을 정도로 너무 뜨거워서 화들짝 놀라긴 하지만요.

안타깝게도, 뜨거운 물은 금방 증발해 버려서 뿌린 사람이 본 내 무지개는 그닥 또렷하지는 않을 거에요.

그저 사랑 이야기를 하기 전에, 흐릿하더라도 내 무지개를 한번쯤만 떠올려준다면 정말 고마울 거에요.


정말 나쁜 사람들은 일부러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이에요.

찬물을 끼얹은 무지개는 색도 칙칙해보이고 뿌린 사람도 그것을 좋게 보려고 노력하지를 않아요.

더욱이 찬물이라서, 칙칙한 무지개가 더욱 오래 가기 마련이죠.

난 남에게 튄 찬물을 한 방울쯤 맞아보았는데, 정말 기분이 안 좋고 확 사라져버리고 싶은 느낌이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무지개 감옥을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요.

찬물을 뿌린 사람들일수록 무지개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절대 못 벗어나게 감시하거든요.


그래서 나는, 찬물이 두려워서,

언젠간 마주하게 될 그 서늘한 공포가 너무나도 두려워서 숨바꼭질하는 어린아이처럼 옷장 속에 꼭꼭 숨어 있어요.

가끔씩 두 세번정도 맞은 뜨거운 물이 남긴 화상 자국을 볼 때마다,

옷장 밖에서 내 무지개의 이야기를 해주는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옷장 밖으로 얼굴만 내서 스스로 물을 뿌려 본답니다.


언젠간 옷장 밖으로 완전히 나와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당신에게도 물을 뿌려주고 싶어요.

옷장 밖으로 나오자마자 내가 찬 장맛비를 우산도 없이 맞는다 해도,

설령 당신에게는 무지개가 뜨지 않는다고 해도 절대로 당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거에요.

비 온 뒤의 갠 하늘에 걸린 내 무지개는, 우리 두 사람의 몫을 충분히 채우고도

온 세상을 비춰줄 만큼 더 밝고,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날 거니까요.


비록 그것이 감옥이라 할지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