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숫자가 보고도 믿겨지지 않아 무심코 금액을 소리 내어 몇 번이고 읽어버렸다.



[ 기증자 '박서준'의 신체평가액 총합 '864,000,000원' ]



"당신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상태를 포함한 종합적인 신체데이터와 주위 인간관계를 분석한 후, 

관련된 모든 요소들을 구매자에게 양도하는 조건으로 당신이 받을 수 있는 금액의 총합입니다."

"거래를 승인하실 경우 위에 적혀있는 금액은 계좌를 통해 전산 상으로 즉시 지급되며,

당신은 1년 동안 자신의 자의식을 가진 채로 남은 기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유예기간이

주어질 겁니다."


"유예기간이 끝난 이후, 수술 날짜가 결정되면 정해진 절차를 통해 신체 이식이 진행될 것이며,

도중에 신체 양도자의 기억은 모두 소거된 채로, 새로이 신체를 이식받는 '구매자"의 기억, 

인지능력 등을 포함한 모든 자의식이 당신의 신체로 이식될 겁니다,"

"몸을 양도받은 이식자는 당신의 몸을 통해 새로운 삶을 보내게 될 것이고, 

당신이 국가로부터 공인받은 신상정보는 변하지 않겠지만 

본래의 신체에 남아있던 기증자의 자의식은 모두 소멸됩니다, 


그것이 돌아올 일은 두 번 다시없을 것이니 1년의 유예기간이 끝난 이후

사실상 죽음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시는 게 맞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


일순간 사고가 정지되었다, 앞서 의사가 말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들어서는 안 되는, 또는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되는 이야기를 듣는 듯 한 낯설음이 느껴졌다.


“설명이 조금 어려우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거래이기 이전에 과학적인 기술로 진행되는 수술이기에,

함부로 미사여구를 사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

“쉽게 풀어 돈과 유예기간을 받은 후에, '박서준' 씨의 몸에서 영혼만을 제거한 채로, 남은 몸을 

‘구매자’에게 양도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


“대체 어떤 사람들이 귀한 자신의 몸을 버리고 남의 몸을 이런 거액을 주며 구매한다는 겁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눈앞의 앉아있는 의사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날카로운 지적이십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게 이와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일체 함구되어 있습니다.

또한 후에 신체를 판매하겠다는 계약을 맺으셔도, 박서준 님의 신체를 구매한 분의 신상정보는

절대로 알려드리지 않는 것이 계약의 조건입니다.“

“그나마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평생 여기며 살아갈 건강, 외모, 성별, 

태어난 국가, 주어진 환경, 등 하나의 인간을, 한 사람의 의식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누군가에겐 절대로 당연하지 못한 채, 평생 그것만을 쫓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그것들을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

“구매자들은 이런 사람들 중 상대적으로 재력이 풍부한 사람들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거액을 들여서라도, 자신의 몸이 아니더라도 

그저 살고 싶다는 희망 하나만으로 성사될 확률이 매우 낮은 신체 이식을 받기 위해

상당한 액수의 계약금을 지불하며,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


“박서준 님이 자신의 신체평가액을 보고 놀라시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아마 자신은 뛰어난 외모나 신체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살아오며 사회나 타인을 위해,

특별히 의미 있는 행동도 해왔던 적이 없기에 자신을 이렇게나 높은 가치로 평가하는 것에 의문점을

가지시리라 생각됩니다. 실제로 거래 상담을 받으신 많은 분들이 그래왔으니까요, “

“하지만 저희 기관이 중시하는 인간의 ‘신체’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점은 그런 형태가 없는

감정적인 것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겉으로 드러나는 기본적인 육체적 건강과

사회적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평가됩니다. 기본적으로 신체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은 

서준 님이 당연하게 여기고 계실 기본적인 삶의 요소들을 누리지 못하기에 거액을 들여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는 것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박서준 님의 건강상태나, 

인간관계는 저희가 요구하는 조건에 거의 완벽하게 부합했습니다.”


“먼저 저희 기관에서 정의하는 ‘건강 상태’는 기증자의 정신적 건강 상태도 포함하는

범위로 간주합니다. 이식하는 것은 뇌 자체가 아닌 기존 이식자에 뇌에 저장되어있던 

수많은 기억들과 정보들이니까요, 이것들을 전기적 신호로 변환한 후, 다시 기억과 정보를 소멸시킨

기증자의 뇌에 새겨 넣는 것입니다. “

“또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과 다름없는 처사인 신체 이식 거래를 계약하는 사람들은, 

아주 큰 빛에 시달리거나 삶의 의미를 잃어버려 여기까지 도달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

“이러한 상태의 사람들은 신체는 겉으로 보기에는 어느 정도 건강해 보일지언정,

정신적으로는 크게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며 자신의 뇌를 손상시켜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

“정신적 질환으로 흔히들 언급되는 ‘우울증’도 결국에는 뇌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 과 ‘노르에피네프린’ 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뇌에서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서

만사에 의욕을 잃고, 지속되는 우울 감을 느끼며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


“신체를 기증받는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고장이 난 하드디스크에 자신의 기억을 새겨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죠. “


“또한 두 번째로 중요시 되는 기증자의 인간관계는, 건강상태와는 반대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지 않고, 스스로를 가두면서 외롭게 살아간 이들이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

“만약 결혼을 해서 아내가 있고, 많은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일 경우,

기증자가 갑작스레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같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릴 경우, 

주변 사람들과 신체를 양도받은 이식자 모두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

“심하게는 주변 사람들이 크게 변한 이식자를 보며 그의 정체성을 의심하고 

저희 기관의 존재에 대해 파고들며, ‘신체 구매자’의 원활한 일상생활을 크게 방해하는

경우도 생길 것입니다. “

“그렇지만 타인과 제대로 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며 외롭게 살아간 이들은,

결국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가 드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어버리는 것이죠. “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희 기관은 박서준 씨를 제법 오랫동안 조사해왔습니다.

자신이 가진 직업의 종류에 특별히 구애받지 않은 채, 일정 금액을 모은 후 원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목표를 가지며 외로이 살아온 박서준 씨는, 극단적으로 고립된 인간관계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을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계셨습니다. 

영양 밸런스를 생각한 식사를 직접 만들어 여러 영양보조제와 함께 섭취하고 계셨죠, 

인생의 목표가 일정한 금액 이였던 만큼 건강한 육체를 보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훨씬 돈을 아끼는 방향 이였다고 생각했던 것이라 여겨집니다. 

“8억6천4백만 원이라는 평가금액은, 사실 여러 기증자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하는

평가금액입니다. 그만큼 박서준님은 저희 기관이 원하는 인간상에 엄청나게 적합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


“...”


“인간의 영혼을 이식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이라면, 차라리 그 기술력으로 신체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의 몸을 고치는 것에 쓰는 것이 모든 면에서 합당하다고 생각됩니다만, “


“하하하.. 백번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저는 이와 관련된 사항은 함구하도록 되어있는게

원칙이라 서준 님의 질문에는 답변해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이해를 해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

“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의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 상황은 한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멀쩡한 또 다른 한 명의 인간을 죽여 버리는 시술을 영업하고 있는 셈입니다. “

“실제로 제가 박서준님의 신체를 거래하는 계약을 성사시킨다면, 일반적인 직장인들의 연봉을 

아득히 뛰어넘는 성과급을 받게 됩니다, 그럼에도 저는 무엇이 옳은 일인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건강한 자신의 몸을 팔아넘기는 행위가 대단히 비정상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겠죠. “


“저는 기관의 요청을 받고 ‘신체 양도 계약’의 과정과 정의를 설명 드렸을 뿐입니다. 저는 제 앞에 

앉아계신 박서준님이 무엇보다 행복해지는 선택을 하시기를 진정으로 소망합니다.

하지만 삶의 가치나 행복에 대한 기준은 주관적인 것이죠. 거액의 보상금을 받고

남은 1년을 호화롭게 보내실지, 오늘 있었던 일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 돈에 의지하지 않는

기나긴 여생속의 행복을 찾아 나설지는 당신의 선택입니다. 

“참고삼아 말씀드리자면, 일시적인 감정으로 계약을 성사시킨다 하더라도 기관은

당신의 의사결정력이 온전하다는 상태를 입증할 수 있는 환경에서 여덟 번이 넘는 계약 재확인을

계속해서 요구해올 겁니다. 또한 계약금을 받은 상태로 신체 이식을 계속해서 거부할 경우

기증자가 지급받은 돈은 기관에서 ‘빌린 것’ 으로 간주되어 돌려받지 못한 금액은 

채무로 전환됩니다. 빚을 지게 되는 것이죠. 


저 때문에 기분 나쁜 하루를 보내게 되셨다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현명한 대답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