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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세계관:

국정원 5급 사무관, '대악마' 기사단장 그리고 콤비네이션 피자

1: https://arca.live/b/monmusu/56612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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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https://arca.live/b/monmusu/64667155


네이비씰 대원, 고위 서큐버스 심문관 그리고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

"왜 그냥 포기하지 않는거야? 영원한 쾌락이 눈앞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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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전투에 따른 유혈 묘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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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슈우-


저 멀리 이세계의 밤 하늘을 밝히는 푸른색 광원 마법을 바라보며 켈은 중얼거렸다.


"시작 됐구만. 모두들, 무기 준비해라."


그녀의 말에,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수인들이 여러 전장과 함께한 자신의 도끼, 방패와 검, 장검들을 소리 없이 꺼냈다.


퍽- 챙그랑-


사방으로 인간들의 불빛이 둔탁하게 터지는 소리들과 유리 깨지는 소리가 거리로 퍼져나감과 동시에, 켈이 몸을 숨긴 건물의 골목에서 고개를 슬쩍 내밀어 '고대 인류' 들의 길거리를 바라보자 인공으로 만들어낸 불빛 들이 차례차례 어두워지며 사라져 가는 것이 보였다.


그 때, 켈의 붉은 귀가 사방에서 들리는 유리 깨지는 소리에 희미하게 섞여 들리는 낯선 소리에 쫑긋거렸다. 


"잠깐. 저 위에서 소리다."


동시에 순식간에 전투 태세를 갖춘 켈이 하늘을 눈으로 훑고, 그녀 주변의 수인들도 칼과 도끼를 바로 잡고 사냥꾼의 눈으로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고, 긴장된 침묵이 전사들을 감쌌다.


곧이어 푸드덕 하는 날갯짓 소리와 함께 풍성한 갈색빛 깃털을 가진 하피가 그녀가 있는 골목 쪽으로 내려 앉았다.



"뭐야, 하피 정찰대였나..."


맥없이 경계를 푸는 켈 부대장을 보고 말없이 경례를 올린 하피는, 새의 것과 같은 발톱으로 쥐고 있던 석궁을 날개 끝에 달린 손으로 옮겨 잡아 길 반대편 골목에서 빛나고 있는 가로등을 향해 석궁을 겨누었다.


통- 하는 소리와 함께, 희미한 빛을 발하며 밤 하늘을 꿰뚫고 날아간 화살은 둔탁한 퍽 소리를 내며 가로등의 불빛에 직격하며, 작은 불꽃놀이와 같은 불씨들을 사방에 뿌렸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횃불 10개보다도 밝은 빛으로 인간들의 검은색 암석 도로를 밝히고 있던 가로등은, 이제는 거리에 어둠 만을 뿌리고 있었고 간간히 타닥- 하면서 튀는 작은 불씨만이 그 이전의 역할을 증명할 뿐이었다.


"거기 하피 언니, 솜씨 좋은데!"


그녀의 사격 실력에 휘파람을 불며 작게 환호하는 수인 전사들 근처로, 갑자기 인간들의 진지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붉은색 섬광들이 날아와 도로와 가로등 주변을 거칠게 할퀴었다.


"씹, 머리 숙여!"


수인 전사들이 네모진 건물 벽에 달라붙어 웅크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들의 무기는 아무도 없는 어두워진 도로에 몇 번 더 의미없는 섬광 세례를 뱉어낸 뒤 분노를 다 쏟아냈다는 듯 잠잠해졌다.


더 이상 날아오는게 없는지 고개를 들어 인간들의 진지를 슬쩍 바라본 하피 궁수는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것 처럼 익숙하게 다리춤에 위치한 화살대에서 은은한 노란 빛을 띄는 화살을 꺼내 석궁을 재장전했다.

 

장전을 끝낸 석궁을 다시 양 발톱으로 잡은 하피 궁수는 켈 부대장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뒤, 왔던 것 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날갯짓 소리 만을 남긴채 다시 밤 하늘로 사라져갔다.


"다들 열심이군."


켈이 다시 시선을 돌려 바라본 거리에는 여전히 유리 깨지는 소리와, 인간들의 무기가 타타타- 하며 붉은 빛으로 빛나는 화살을 요란스럽게 뱉어내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었지만, 어느새 거리를 비추는 조명은 대부분 사라진 채 이상한 모양의 넓은 판자모양 조명들 만이 인간들의 건물들에 달린 채 빛을 발하며 거리를 띄엄띄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젤렌년, 실력 하나는 알아줘야 된다니깐... 저 빛나는 것들이 못해도 수백 개는 되어 보였는데, 몇 분 안에 저걸 다 깨부술 생각을 하다니..."


"응? 대장, 이거 다 하피들이 깨고 다닌것 아니야?"


그녀 옆에서 진한 남색 털빛의 늑대 수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켈은 혀를 차며 대답한다.


"인마, 우리가 보는게 다가 아니라니깐... 아마 대부분은 마도사들이 전선 후방에서 젤렌이 기록해 두었던 조명들의 위치에 위력 마법을 써서 깬걸거다. 하피 궁수들은 이제 마도사들이 미처 부수지 못한 남아있는 불빛들을 끄는게 주 목적일거고."


"엑... 이거 못해도 수백개는 다 되어보이는데, 이걸 다 기록하고 위치를 계산한 다음에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마법을 썼다고?"


"그래. 안 그러면 마도사들이 직접 전선에 서서 눈에 보이는 것들만 부술수 있을테니깐. 그걸 미리 하피 정찰대랑 마도사들을 보내 기록한 다음에, 이제 안전한 곳에서 한번에 터뜨리는 거지. 말은 쉽지만 수백개의 위치를 다 계산하고 동시에 마법을 썼다는 걸 생각하면... 괜히 마지스터 등급까지 올라간게 아니야."


"맨날 남자 꼬시는 창녀처럼 입고 다녀서 그런 것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진짜 대단한 아인종이었네."


"서큐버스들 얕보지 마라. 괜히 걔네들이 칼 같은거 안들고 다니는게 아니야. 상급 마도사 이상 서큐버스한테 정신계 마도술 잘못 걸리면... 아마 너 정도는 죽을 때 까지 토하게 할 수도 있을걸."


"욕정을? 크흐, 그정도면 괜찮게 죽는 방법 아닌가. 난 서큐버스 정도면 암컷끼리여도 괜찮은데."


"멍청한 놈, 그냥 진짜 계속 토하다가 네 토사물에 목이 막혀 죽을거라고. 걔네들이 너한테서 뭐 얻어낼 정보 같은게 있어야 흡정을 하던가 하지."


그 때,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마지막으로 어둠을 밝히고 있던 커다란 판자 형태의 조명들이 요란스러운 스파크들을 사방으로 튀기며 박살나 빛을 잃기 시작했다.


"야, 강아지, 닥치고 앞에 봐. 이제 진짜 전투니까."


"전장에서 몇 번이나 싸웠는데 아직도 강아지래..." 


갑자기 심각해진 켈의 목소리에 진한 남색 털빛의 늑대 수인은 작게 투덜거리며 들고 있던 방패와 한손검을 바로 잡았다.


"다들, 계획대로 싸운다. 알겠나? 멍청하게 전투의 열기에 휩쓸리다간 순식간에 죽는거야."


그 말에, 여유 있게 허리 춤에 찬 단검이나 물약들을 점검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전사들도 있었고, 무기를 꽉 붙잡은 채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는 전사들도 있었다.


그 직후 들려온 콰직- 소리를 마지막으로, 인간들의 길거리는 어둠에 빠져들고, 골목에 있던 수인 전사들의 긴장된 눈동자들만이 어둠 속에서 밝게 깜빡인다.


인간들도 무언가 큰게 오고 있다는 걸 직감한 건지, 방으로 무턱대고 무기를 뿌려대던 것을 멈춘 채 조용히 상황을 관망하는 듯 인간들의 진지도 어둠과 침묵으로 일관했다.


"좋아, 이제 젤렌의 마도사들이 안개를 깔기만 한다면 돌격..."


뿌우-


수십 미터 떨어져 있는 곳, 그러나 확실한 아군 전선 쪽에서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울려 퍼지자 켈 부대장의 고개가 홱 돌아간다.


"뭣... 어떤 멍청한 놈이야! 안개가 깔리기 전에 돌격하면 안된다고 했잖아! 다들 돌격하지 마라! 작전 대로 안개가 퍼지면 움직여!"


예상치 못한 돌격 나팔 소리에 혼란스러워 하는 전사들에게 소리치며 돌격 나팔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뛰어가던 켈 부대장의 맞은편에서, 양손검을 든 미노타우르 수인이 급히 달려왔다.


"부... 부대장님! 그, 와이번 습격대의 대장이 자기 멋대로 가지고 있던 돌격 나팔을 불며 돌격중 입니다!"


"젠장, 그 멍청한 년, 대체 왜 그런거야! 당장 막아야해! 난 그 미친년 멈추러 갈테니, 너희들은 나머지 병력에게 모두 돌격을 멈추라 전해라!"


켈 부대장이 건물 사이의 골목을 질주하듯 달리며 담장을 뛰어 넘자, 그녀의 예민한 청력이 와이번 습격대장이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전원, 공격해라! 인간들에게 복수를 할 때다! 이런 어둠을 틈타 적의 의표를 찔러야 한단 말이다! 모두 공격해!"


그녀가 마지막 골목을 빠져 나오자 마자, 어둠 뿐인 거리 한 가운데서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한손 검을 쳐든 채 다른 와이번들과 뛰어가며 소리치는 와이번의 모습이 보인다.


"너... 이 썅년, 지금 뭐하는거야! 아직 돌격할 때가 아니라고!"


켈 부대장이 그녀의 멱살을 잡으려 도로를 육중한 다리로 박차고 튀어오르자, 와이번 습격대장은 급히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라 그녀의 억센 손톱을 간발의 차로 피한다.


"부대장, 당신이야 말로 뭐하는 겁니까? 지금처럼 인간들이 어둠에 겁먹어 있는 시점을 틈타 습격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멍청아, 불빛 수백개를 거리에 깔아 놓은 놈들이 정말 숨겨둔 조명 몇 개가 없겠냐? 그래서 안개까지 깔렸을 때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잖아!"


켈 부대장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와이번 습격대장은 어둠속에서 조소를 희미하게 띈 채 비웃듯 입을 연다.


"하, 부대장... 그렇게 사냥개 처럼 물어오라는 것만 물어왔다가는, 사냥감도 모두 사냥꾼한테 빼앗겨 버린다고요? 뛰어난 지휘관은 임기응변에 강하다는 것, 모릅니까? 지금이야 말로 인간들이 허둥지둥하는 동안 순식간에 적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란 말입니다!"


"지랄말고, 당장 내려와. 적을 얕보았다간-"


"전 인간따위 두렵지 않습니다. 진정 두려운 것은, 멍청한 명령에만 휘둘리다가 동료들의 복수를 하지 못한 채 명예롭지 못하게 죽어 저승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것이지요! 전원, 돌격! 인간들의 눈동자가 보일 때 까지 멈추지 마라!"


그렇게 광기에 가까운 발언을 내뱉은 와이번 습격 대장은, 날개를 펄럭이며 인간들의 진지를 향해 날아갔다.


"야! 멈추라고, 이 멍청한 도마뱀 새끼야!"


이빨을 드러낸 채 쌍욕을 뱉어내는 켈 부대장 옆으로, 검은 털빛의 늑대 수인이 재빠른 발걸음으로 뛰어와 그녀에게 보고한다.


"부대장님! 북쪽 공격선에 있던 전 병력에 돌격 중지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돌격한 병력은?"


"최전방 공격선에 있던 20명 정도의 전사들이 돌격 중지 명령을 받기 전에 벌써 와이번 습격대와 같이 인간들의 진지를 향해 돌격했다고 합니다."

 

"이런 씹... 차르나, 넌 돌아가서 병력들 대신 지휘하고 있어. 난 걔네들 개죽음 당하기 전에 다시 데려오고 갈테니."


"알겠습니다, 부대장님. 부디 몸 조심하십시오."


고개를 꾸벅 숙인 검은 털빛의 늑대 수인은 빠르게 어둠 속으로 조용히 달려나갔다.


켈 부대장은 인간들의 진지를 향해 뛰어가며, 그녀가 늦지 않았기를 빔과 동시에 그 도마뱀을 어떻게 쥐어패서 예절을 주입할지 분노했다.


그녀가 작은 건물들 사이로 나있는 도로 끝으로 빠져나오자, 건물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인간들의 방어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진지와 병력들이 숨어있던 길거리 사이에는 엄폐물로 삼을만한 건물들이 많이 있었지만, 


인간들의 건물들로 빼곡 했던 거리와는 달리, 인간들의 방어선 가까이로는 그저 짧은 풀만 잔뜩 심어져 있는 네모진 들판과, 인간들의 도로 위에 보이던 강철 수레들이 열을 맞춰 서 있는 넓은 광장만이 넓게 퍼져 있었다.


사방은 어둠 뿐이지만, 수인 특유의 뛰어난 야간 시야 덕에 희미한 월광 만으로 와이번들이 진지를 향해 날아가는 모습과 그 뒤로 수인 전사들이 방어선을 향해 달려나가는 모습을 파악한 켈 부대장은 그들을 향해 외치며 뛰어나갔다.


"멈춰! 당장 공격 개시선으로 돌아가라! 지금 개죽음 당하기-"


켈 부대장의 외침에, 귀를 쫑긋인 몇몇 수인 전사들이 얼굴을 돌려 그녀를 바라본 그 순간, 펑-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갑자기 밤하늘에서 어둠이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섬광에 켈 부대장은 도끼를 들어 눈을 황급히 가렸고, 돌격하던 와이번들과 수인 전사들도 눈을 가린 채 머뭇거리는 것이 그녀의 시선 구석에서 보였다.




간신히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본 밤하늘에는 한 낮의 태양 만큼이나 밝게 빛나는 무언가들이, 저 높은 하늘에서 사방을 밝게 비추며 천천히 땅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세번째 전투단'의 마도사 들이 인간들에게서 힘겹게 빼앗아 다시 밤에게 되돌려준 어둠에도, 인간들은 아랑곳 않고 그저 만들어낸 태양과 같은 불빛들을 하늘에 올리는 것으로 대답한 것이었다.


"돌격! 멈추지 마라! 여기까지 와서 후퇴하는 놈은 스스로를 종족 연합군의 전사라 칭할 자격도 없다!"


홀린듯 그 밝은 불빛들을 바라보던 켈 부대장을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이미 한참 앞에 서서 외치는 와이번 습격대장의 목소리였다.


"이 멍청한 자식들, 당장 공격 개시선으로 돌아와! 지금 돌격 하는건 자살행위일 뿐이란 말이다! 작전대로 움직여!"


켈 부대장이 온 힘을 다해 외치자, 달려가던 수인족 몇 명이 다시 켈 부대장의 목소리를 듣고 머뭇대며 달려가는 속도를 줄인다.


그때, 진지에서 섬광과 함께 인간들의 무기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돌격 나팔과 앞서 나가던 전사들의 함성 소리를 덮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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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안경으로 짐승과 사람이 섞인 듯한 괴물들이 캠퍼스 건물 뒤 쪽의 넓은 주차장을 건너 사람이 달리는 것 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빠르게 가까워 지는 것을 보며, 김 중위는 점점 빨라지는 심장 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국방색 수화기에 외쳤다.


"당소 북극성 하나! 첫번째 조명탄 식별! 좌표 수정, 남쪽으로 이백미터! 동일하게 조명탄 두 발 사격 요청, 이상!"


"당소 멧돼지 하나, 수신 완료. 좌표, 찰리-폭스트롯, 오-여섯-넷-칠, 공-둘-팔-칠. 조명탄 두 발 사격. 이상."


탕- 탕- 탕- 투타타-


"11시 방향, 주차장 쪽으로 넘어온다! 기관총은 계속 제압사격 해!


병사들이 외치는 소리와, 건물 북쪽의 창틀과 난간에서 울려퍼지는 기관총과 소총의 격발음에 귀가 먹먹했지만, 김 중위는 계속해서 국방색 수화기를 목숨줄 이라도 되는 것 처럼 붙들고 있었다.


아니, 지금 시점에서는 사실상 목숨줄 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대피소 주변이 어둠으로 뒤덮이는 동시에, 근처에 32사단 포병대대 주둔지가 있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 김 중위가 급히 무전기를 붙들고 명령체계고 뭐고, 고폭탄이면 몰라도 조명탄도 못 쏴주냐고, 이 중대가 전멸한다면 당신 책임이라며 고래고래 외치며 사단 포병대대에 항명에 가까운 무전을 날려 155mm 조명탄 지원을 요청한 덕분에 저 괴물들의 기습을 몇 분 차이로 대비할 수 있었으니.


조명탄이 내뿜는 강렬한 붉은 빛으로 밝혀진 주차장의 한 가운데로 도끼를 양 손에 든 채 선두에서 달려오던 늑대와 사람을 섞은 듯한 수인 하나가 M60 기관총의 사격에 비명 소리도 없이 아스팔트에 그대로 풀썩 쓰러지지만, 그 뒤로 달려오는 수인들은 그 모습에도 아랑곳 않고 이 곳을 향해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 때, 옥상에 있던 김 중위의 귀로 낮게 으르릉 대는 듯한 엔진 소리와 함께, 철제 궤도가 아스팔트를 짓누르며 내는 쇳소리가 건물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북대전 대피소가 포위 되기 전 합류한, M48 전차였다.


"당소 태백 하나, 적 포착! 사격 하겠다!"


김 중위가 뭐라 응답하기도 전에, 김 중위의 시야가 흔들리며 사방이 한 순간 밝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십 미터는 떨어져 있던 진지 옥상으로 아스팔트 조각 몇 개가 후두둑 떨어지고, 먹먹해진 고막이 점차 다시 전장의 소리를 김 중위에게 전달해주기 시작했다.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에 얼얼한 정신을 부여잡고 간신히 전방을 보자, 뒤집어진 승용차와 파여 있는 주차장의 아스팔트 바닥 주변으로 쓰러져 있는 수인 전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세상에 나온지 반세기는 되었지만, 여전히 움직이는 철과 화약의 성은 보병의 사신이라는 걸 입증하는 듯한 M48 전차의 화력에 조용히 감탄하려던 그 때, 머리 양쪽으로 황소 같은 뿔이 돋은 수인 하나가 성인 남성 키 만한 거대한 철제 방패를 들고 힘겹게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모습을 본 김 중위는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김 중위가 보병 학교에서 배웠던, 성인 주먹보다 조금 작은 수류탄의 살상 반경은 10 미터였다. 


살상반경이란 '단순히 그 안에 떨어지면 아플 수도 있다' 라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실험을 통해 '이 안에서는 내장이 헤집어지거나, 팔 한쪽이 날아가거나, 뇌진탕을 입든 아무튼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전투 불능이 된다' 라고 검증된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 인 것이다.


주먹보다 작은 수류탄도 그 정도인데, 105mm 전차 포탄은 말할 것도 없었다.


비록 수 미터 떨어진 곳에서 터졌다 하더라도, 보통의 인간은 파편과 화염이 없이 충격파 만으로도 이미 온 몸의 장기가 기능을 상실해 즉사 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 남성 한 명이 겨우 가슴팍에 올 정도의 거구와 머리 양쪽으로 돋아난 거대한 뿔을 가진 이 인간과 짐승의 모습이 섞인 생명체는, 다시 수십 키로는 될 법한 철제 방패를 들어 올리며 일어난 것이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황소 수인이 온몸이 피로 물든 채 신음하는 호랑이 수인 하나를 총탄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튕겨나가는 거대한 방패 뒤로 숨긴 채 서서히 뒤로 물러나는 모습에, 김 중위는 일종의 경외감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괴물들 인줄 알았는데, 전우애인지, 가족애인지... 아무튼 의리 하나는 대단하구만."


만약 그의 항명에 가까운 무전이 몇 분이라도 늦었더라면 지금쯤 저 괴물들한테 어둠속에서 목이 썰리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김 중위의 목으로 마른 침이 저절로 삼켜졌다.


어떤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괴물들은, 아니면 최소한 저들을 지휘하는 개체는 우리의 화기가 시야가 확보된 상태에서만 뛰어난 사거리를 이용해 제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유추해냈다. 


그 사실에 기반해 우리의 약점인 근접전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전술을 택했고,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주변의 조명을 모두 깨버려 시야를 줄이는 방법으로 그 전술을 실현했다. 


지금 그가 싸우고 있는 건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짐승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략과 전술을 이해하고 있는 '군대' 였다.


"정신 차려! 1시 방향! 열 명 정도 하늘에서 날아온다!"


"2분대, 지상 말고 공중에서 오는 병력부터 사격해!"


실제로 보게 된 전차의 화력과, 그 화력에도 비틀거리며 일어나 동료를 끌고 다시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로 사라지는 황소 수인의 모습에 총을 쏘는 것도 잊은 채 주차장을 바라보고 있던 몇몇 병사들의 정신이 이내 선임병들과 부사관들의 일갈에 전장으로 돌아왔다.


퉁 퉁 퉁 퉁-


김 중위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어느새 위치를 옮긴 K6 중기관총이 육중한 파열음과 함께 12.7mm 크기의 죽음들을 1분에 500발씩 힘차게 어두운 밤하늘로 내뱉고 있었다.


그 예광탄 세례에 걸린 괴물 하나의 날개가 찢겨져 날아감과 동시에, 그대로 주차장에 있는 SUV에 처박혀 SUV의 천장이 종잇장 처럼 구겨지는 모습이 창문에서 고개만 내민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난간 위에 거치한 기관총들의 사격과, 자리를 잡은 중기관총반의 총열이 벌개질 정도의 대공 사격에 이 곳을 향해 날갯짓 하는 실루엣들의 수가 점차 줄어갔다. 


저것들도 무적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의 숨을 내쉬려는 찰나, 병사 한 명이 급박하게 소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저기, 위에서 온다!!!"


황급히 시선을 돌리자, 아까 중기관총에 찢겨나간 것과 비슷한 날갯짓 하는 실루엣 열 개 정도가 수백미터 위에서 이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내려 찍듯 날아오는 모습이 김 중위의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한다.


"씨발, 2분대! 저기 위에 날아오는 놈들 부터 쏴!"


"기관총반, 뭐하는거야! 빨리 사격해!"


"씹... 각도가 안나옵니다! 너무 위에 있습니다!"


다급해진 목소리로 소리치는 병사들의 명령이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하고, 이내 다양한 크기의 사격음이 그 다급한 목소리들을 덮어버린다.


투타타타- 퉁 퉁 퉁 퉁-


김 중위도 자신의 K2 소총을 들어 조명탄과 예광탄 줄기들로 붉게 빛나는 밤 하늘의 검은 인영을 가늠쇠로 조준 한 뒤 한 발 한 발 끊어 방아쇠를 당긴다.


누구의 것인지 구분은 할 수 없지만, 수많은 예광탄 줄기들에 휘저어지는 도중 실루엣이 하나 둘 씩 땅으로 곤두박질 치는 모습이 보이지만 - 생명체가 낸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방어선과 거리를 좁히는 정체 모를 습격자들의 기세에 김 중위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저 멀리 있던 검은색 실루엣들의 형체가 어느새 뚜렷하게 김 중위의 눈에 들어온다.


분명 인간의 얼굴을 했고, 인간과 비슷한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졌지만, 팔과 다리에 매끈한 피부와 일반적인 손가락 대신 마치 공룡의 것과 같은 큼직한 갈고리 같은 손톱과 두꺼운 비늘, 그리고 사람 한 명은 덮을 수 있을 것 같은 큼직한 날개 한 쌍.


은빛으로 빛나는 철제 흉갑과 어깨, 허벅지 보호대를 찬 채 2미터는 되어 보이는 두꺼운 창을 들고 이 곳을 향해 강렬하게 날갯짓하는 노란색과 푸른색, 초록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들과 김 중위의 시선이 마주쳤다.


"산개! 전원 산개해!"


급히 소리치며 병사들이 난간에서 뒷걸음질 치며 건물을 향해 날아오는 와이번 습격병들을 향해 총을 쏘자, 옥상을 향해 날아오던 와이번 중 하나가 펄럭거리던 날개의 균형을 잃으며 그대로 2층 창문을 성대하게 깨부수며 추락했지만, 아직 하늘에 남아 있는 절반 정도의 와이번들은 마치 중세 시대의 말 위에 탄 기사처럼, 속도를 잃지 않고 창을 내 뻗은 채로 옥상 위의 병사들을 향해 그대로 격돌한다.


와이번 중 하나가 정면으로 날아오는 것을 보고 뒷걸음질을 치며 소총을 들어 올리던 병사 하나가 공포에 질린 단말마와 함께 그대로 창에 관통당한 채 와이번과 함께 옥상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옥상 여러 곳에서 비슷한 광경들이 눈 앞에서 벌어지는 걸 본 김 중위는, 이를 꽉 문 채 소총을 고쳐 잡고 벌써 붉은 조명탄 빛으로 물든 밤 하늘로 날개를 펄럭이며 사라지는 와이번 습격병들의 실루엣을 향해 탄창이 빌 때까지 방아쇠를 당긴다.


"엄폐물 뒤에 숨어서 쏴! 멍청하게 도망치다간 저것들 한테 그대로 찔려 죽는다고!"


첫 공격의 충격에서 벗어난 병사들이 다시 각자의 화기를 들고 밤 하늘의 날개 달린 실루엣 들을 향해 반격을 가하자, 이국의 언어를 소리치며 2차 공격을 위해 창을 쳐들고 오던 와이번들이 하나 하나 실이 끊어진 인형과 같이 통제를 잃고 추락한다.


이제 탁 트인 곳에 무방비하게 서있는 병사들이 보이지 않자, 아까와 같은 히트 앤 런 전법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인지, 남아 있는 와이번들은 일제히 창을 옥상의 병사들에게 던진 뒤 허리춤에 찬 칼집에서 한손 검을 꺼내들고 각자 흩어지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창에 급히 난간에 쌓인 모래주머니 뒤로 몸을 숨긴 병사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모래 주머니에 꽂힌 창을 보고 안도의 한 숨을 쉬는 순간, 갑자기 강력한 날갯짓과 함께 총탄을 피하기 위해 옥상 아래로 사라졌던 와이번 습격병이 그의 눈 앞으로 강력한 날갯짓과 함께 올라온다.


병사는 급히 총을 들어 올리며 소대원들에게 위협을 알리고자 소리를 치려 하지만, 목에서 터져나온 그의 외침이 단어 하나를 이루기도 전에 푸른 빛의 세로 동공을 빛내며 거리를 좁힌 와이번은 순식간에 날카로운 한손검을 그의 가슴에 찔러 넣었다.


"전방에...! 커... 커헉..."


"오 일병! 이 개새끼가...!"


주변을 둘러싼 인간 병사들의 외침에도 아랑곳 않고, 지체할 시간도 없다는 듯이 힘 없이 축 늘어진 병사를 발로 밀어내며 칼을 뽑아낸 와이번은 가장 가까운 또 다른 병사에게 달려들었지만, 이내 총성과 함께 어깨 한 쪽이 뒤로 처지며 칼이 콘크리트 옥상 타일 위로 탱그렁- 하며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무기 손대지마! 엎드려, 이 새끼야! 움직이면 쏜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쏜다는 거부감인지, 아니면 미지의 존재에서 비롯된 공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력화 된 채 미처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소리치던 병사들을 향해 와이번이 분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역겨운 고대 인간 놈들...!"


"씨발, 뭐라는거..."


혼란스러운 표정의 병사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와이번은 바닥에 떨어진 칼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분노에 찬 표정으로 손톱을 내뻗은 채로 총구를 겨눈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같이 지옥으로 가자, 이 악령들아!!!"


"쏴! 있는대로 갈겨!"


하지만, 그 분노에 찬 포효는 수 미터도 가지 못한 채 이내 수십 발의 총성에 침묵 당할 뿐이었다.


회색빛 옥상 타일 위에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풀썩 쓰러진 와이번은, 조용히 무언가를 중얼거리고는 마지막 숨을 몰아 쉬었다.


"고향의... 복수를..." 


주변으로, 병사들 몇 명이 긴장된 표정으로 쓰러진 와이번에게 여전히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구를 겨누며 수군댔다.


"...죽었나?"


"방금 저거, 말한거 아냐...?"


"씨발, 어느 나라 말을 하든 우리 모가지를 따려고 하는데 뭔 상관이야!"


"무슨 날아다니는 공룡이랑 인간 섞어 놓은 것처럼 생겼는데... 외계인이야, 뭐야...?"


"외계인이든 뭐든 존나게 튼튼하네... 한 탄창은 들이부은 것 같은데..."


그것도 잠시, 이내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총 소리와 고함 소리에, 병사들의 관심과 시선이 옮겨진다.


수십 미터 떨어진 건물 옥상의 반대편에 칼을 들고 내려 앉은 다른 와이번 습격병의 실루엣에 반사적으로 병사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소총을 들어 올리지만, 이미 엄폐물 뒤에서 조준 사격을 준비하고 있던 기관총병의 예광탄 세례에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는 다시 총구를 내린다.


"끝인건가?"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중대장님, 1소대 구역내 적 격퇴 완료했습니다. 본부 건물 옥상, 북쪽 주차장 모두 적 공격 더 이상 없습니다.


"수고 많았다. 아군 피해는?"


"1소대에서 4명 사망, 5명 실종, 4명 부상 입니다."


"그래... 알겠다. 부상자는 본부 건물 의무반으로 이송하고, 1소대는 탄약 재분배 실시해. 전방 경계 계속하고, 2차 공격 대비할 수 있도록."


1소대장의 사상자 보고에, 김 중위는 안도감을 먼저 느꼈다. 저 갑작스러운 공중 에서의 공격이 일으킨 혼란과 소란에 비해서는 적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정말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 내가 지휘하는 병사들이 죽었는데, 다행이라니.


다시금 상황의 무거움을 실감한 김 중위는 가슴이 죄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서 그저 우울한 표정으로 땅바닥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을 탓할 시간마저 지금은 사치였으니.


저 5.56mm 소총탄을 온 몸에 박아야 멈추는 괴물들이 방어선 사방에서 수백 단위로 밀려 들었다면 한 자릿수 사망자가 아니라 머지않아 중대 전멸 판정이 내려졌겠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적은 기껏해야 서른 정도에 불과한 병력으로 방어선 정면에 그대로 돌격한 뒤 기습 공격으로 가져갔던 우위가 끝나자마자 아군의 압도적인 화력에 그대로 격퇴되었다. 


김 중위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쉽사리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자신들의 강점인 근접전을 위해 대피소 주변의 조명을 모조리 깨뜨릴 정도의 전술적 식견과 행동력을 가진 적의 지휘관이 왜 이렇게 격퇴될 것이 뻔할 정도의 병력을 그대로 방어선 전면에 던진 것인가?


"본부! 본부 응답바란다!"


김 중위의 생각은 이내 가슴팍의 무전기에서 흘러 나오는 급박한 목소리에 잠재워졌다.


"중대장이다! 무슨 일이야?"


"당소 2소대! 전방에 짙은 안개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밤 중에 무슨 안개..."


다급한 무전기의 말에 황급히 2소대가 방어하고 있는 남쪽 건물을 향해 몸을 돌리자 눈 앞에 보이는 광경에, 김 중위는 얼굴에서 피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뒷목을 타고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조명탄의 불빛을 받아 붉게 빛나는 거대한 짙은 안개의 파도가 이 곳을 향해 천천히 밀려오고 있었다.


마치 바닷가를 때리기 전 높이 일어난 파도와 같이, 4층짜리 건물도 쉽게 덮어버릴만한 높이의 안개들이 서서히 거리의 건물들을 하얀 연기로 덮어버리며 이 곳을 향해 흘러오고 있었다.


"여기는 3소대! 남쪽에서 짙은 안개들이 올라오고 있다! 듣고 있나? 응답 바람!"


"아, 씨발..."


거의 공포에 가까운 무력감이, 김 중위의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른다.


"1소대 입니다! 전방 관측조에서 안개 같은 것들이 밀려 오는게 보인다고 합니다!"


"본부! 여기는 2소대! 안개가 20미터 앞 까지 밀려왔습니다! 안개 속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떡해야 합니까? 명령 내려주십시오!"


김 중위의 무전기로, 점차 절박함이 커지는 목소리들이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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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짙은 하얀색 안개로 뒤덮인 인간들의 길거리로 켄타우로스 기사들이 창을 치켜든 채 빠르게 대형을 갖추는 모습을 보며, 엘리아노르 기사대장은 투구를 썼다.


질서 정연하게 대열을 이루어 방패와 창을 일사불란 하게 든 켄타우로스 기사들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그들의 등에 얹힌 안장에 늑대와 표범 수인들이 전장의 흥분을 잔뜩 얼굴에 머금은 채로 각자의 칼과 도끼와 같은 무기들을 들고 있는 모습이 안개 속으로 보인다.


인간들이 하늘을 밝혀 어둠을 몰아낸 인공 태양의 붉은 불빛은 다행히도 웬만한 성벽의 높이만한 안개의 벽을 뚫지 못한 채 위쪽 만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아까 전 공격 신호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저 반대편 북쪽 공격선 에서 들려온 돌격 나팔 소리에 이어, 인간들의 무기들이 밝은 불빛을 내며 밤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그녀 답지 않게 가슴이 철렁 했지만, 이내 급히 날아온 하피 전령이 멍청하게도 와이번 습격대장이 제 무리를 이끌고 신호를 기다리지 않고 무작정 공격한 것이라는 말에 안도감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 와이번 습격대장이 정말 동족들의 복수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명예, 출세욕 때문에 명령도 무시하고 돌격한 것인지는 아마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이 사실 만은 확실했다. 


그들은 개죽음을 당한 것이었다.


"...같이 죽어간 와이번 병사들만 불쌍하군."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조용한 날갯짓 소리에 급히 창과 방패를 들어 올린 엘리아노르 기사대장의 시선이 향한 짙은 안개 너머로 젤렌과 비슷한 의식 복장을 걸친 빨간 피부의 서큐버스가 기품 있는 날갯짓으로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 카론 부관이었나."


사뿐히 땅에 내려 앉은 뒤, 엘리아노르 기사대장에게 숙련된 동작으로 꾸벅 예를 갖춘 인사를 한 서큐버스가 절제된 목소리로 말했다.



"'큐레이터' 카론, 마지스터 젤렌님의 말씀 전달 드립니다. '전장의 안개 전개는 끝났어요. 40분 뒤에는 사라질 겁니다. 저도 곧 합류 하죠.' 이상입니다."


기사대장의 호칭을 교정하듯, '큐레이터' 라는 단어에 살짝 힘을 줘서 말한 붉은 피부의 서큐버스는 또박 또박 그녀에게 주어진 전언을 읊었다.


"알겠네. 공격은 바로 개시하겠다고 전하게."


다시 꾸벅 인사를 올린 서큐버스가 안개 속으로 사라지자, 이제는 짙은 안개로 앞이 가려져 보이지 않는 인간들의 진지 쪽을 바라본 엘레아노르 기사대장은, 옆에 있는 부관 기사대원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향해 경례를 올린 부관은, 이내 허리춤에 차고 있는 돌격 나팔을 꺼내 들어 힘차게 돌격 신호를 불었다.


빰- 빰- 빰-


"와아아아!!!"


마치 안개 속으로 퍼져나가듯, 비슷한 나팔 소리가 여러 군데서 들려오는 소리를 시작으로 세 자릿수의 켄타우로스 기사들과 수인 전사들이 함성을 외치며 안개 속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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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 출처: https://www.pixiv.net/artworks/95532781



마참내 썼다... 


대놓고 고어 이런건 싫어하는데, 이런 장면에서 유혈 묘사를 아예 안하면 상황의 무게감이나 절박함이 잘 묘사가 안되는 문제가 있어서 어떻게 써야하나 좀 고민이 많았음...

특히 몬챈이 폭력이나 누구 죽고 이런건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 수위 조절하느라 썼다 지웠다 여러번 했음


그래도 다들 많이 기다려줘서 ㄳ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