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히로크


1946년,2차 세계대전이 1945년 9월에 종전한 이후, 양대 국가로 거듭난 미국 vs 소련의 다방면 경쟁, 일명 냉전이 극도로 치닫기 전 이었다.


당시, 미국은 1945년 8월에 적성국(이었던)일본 제국에 2발에 원자폭탄을 투하함으로서 핵무기로 유사시에 소련을 타격하자는 의견들이 많이 나왔다. 


그 시각, 소련에서도 미국의 원폭 투하에 겁을 먹었는지, 한쪽에선 핵무기를 만들고, 한쪽에선 그걸 나르기 위한 거대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당시에는 핵무기를 상대 적진에 떨구는 방법이 2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비행기를 이용하는 방법,또 하나는 로켓을 쏴서 상대 적진으로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이 2가지의 방법들 중, 가장 유리한 것은 후자였다. 로켓은 비행기보다 빨랐고, 무엇보다 비밀스럽게 발사하는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소 양국 모두 후자를 택하고 이를 위한 로켓을 만들게 되는데, 이게 바로 ICBM이다.


ICBM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미소 양국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많은 궤도행 로켓들이 만들어졌고, 이것은 이후 일어날 인류의 외계 진출에 기여를 하게 된다.


그 노력들 중 하나가 바로 아틀라스 시리즈이다.


1946년 4월, 미국 정부와 ‘콘베어’라는 회사는 약 1900만 달러의 ICBM 시험기 제작 계약을 체결한다. 이 ICBM 시험기는 9m의 높이에 2m의 지름, 당시 쓰이던 에탄올과 액체 산소를 연료료 하는 것이었다. 


이 시험기의 이름은 바로, MX-774,RTV-A-2 “히로크 였다.


그러나,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해리.S.트루먼이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하고, 미군의 예산이 2900만 달러에서 1300만 달러로 삭감되는 일명 “검은 크리스마스” 사태가 일어나면서 미군은 히로크 로켓을 거의 포기했다.


그러나 콘베어 사는 끊임없는 집념으로 마침내, 1947년 7월 13일, 화이트 샌드에서 히로크의 첫 발사를 단행한다. 


이후 3번 정도 더 발사를 시험하게 되고, 예산 문제로 인하여 프로젝트는 막을 내릴뻔 했으나…?


-2부 : 냉전기의 아틀라스 1파트에서...



-MX-774의 모습

-MX-774에 쓰였던 XLR35-RM-1 엔진

- MX-774의 설계도


자료 출처
NasaSpaceflight A Photo-History Of Atlas Precursors (다운로드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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