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친애하는 메리 B. 오브라이언 부인께


안녕하십니까, 메리 B. 오브라이언 부인. 내무성 산하 감찰국 소속 1등 감찰관 스미스 골드스타인입니다. 얼마 전 신고하셨던 남편 분의 실종 건에 관하여 연락드렸습니다. 우선 기다리시던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점이 굉장히 유감입니다. 현재 저희 감찰국 1부는 남편 분을 수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정부의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정보만으로는 실종에 관한 수사가 지지부진하여 몇 가지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보통의 실종이라면-특히 그가 네오-유토피아의 1등 시민이라면-범죄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굉장히 낮습니다. 부인께서도 아시다시피, 네오-유토피아의 1등 시민에게는 거의 완벽한 수준의 24시간 케어 시스템이 작동 중입니다. 우리의 이성을 녹슬게하는 감정과 같은 부산물 따위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남편 분의 건은 보통의 그것과 거리가 멉니다. 자세한 사항은 국가 보안 사항인지라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저희는 남편 분께서 오랜 시간 동안 EO-DIALECTICUS(에오-디알렉티쿠스:이성을 향해)를 복용하지 않아 감정에 휘둘릴 수 있는 위험분자라는 사실과 여러 요소로 인해 특별 감시대상이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혹여 저희 수사에 실미리가 될 만한 사항이 있으면 지체하지 않고 이 회신으로 연락하여 주십시오. 

A.E.W 32년 6월 22일

내무성 소속 1등 감찰관 스미스 골드스타인 배상 


친애하는 스미스 골드스타인 감찰관께


안녕하세요, 스미스 골드스타인 감찰관님. 보내주신 회신은 잘 확인하였습니다. 회신을 접한 후 잘 생각하여보니 최근에 남편의 행동에 몇 가지 이상한 점이 있어 연락드립니다. 우선 '경계 밖'의 인간들-그러니까 CUBANUS-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ATENA에 의해 자체적으로 운용되는 중앙 어드바이저의 권고 사항을 무시하고 자신이 투자하고 투자처를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 사실을 알고 후에 탐정에게 의뢰해보니 공공연히 경계 밖의 것들을 챙기는 단체에 기부한 것이더군요. 세상에, 그런 기생충들에게 '기부'라니. 이제야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는군요. 이것도 역시 에오-디알렉티쿠스를 복용하지 않은 부작용일까요? 이상한 일은 또 있었습니다. 대략 1달 전쯤의 일이었는데 잠을 자고 나온 저를 보더니 굉장히 반가운-그것이 어떠한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감정의 일종이라는 '반가움'이 틀림없을 것 같네요-표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몸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다친 곳은 없는지, 기억나는 것이 없는지 묻더군요. 평소와는 다른 남편의 모습에 왜 그런지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하지 않고 저에게 이름을 물어보는 겁니다. 대답을 듣고 난 후, 그는 '이름까지...'라고 말하고는 다른 반응은 없이 납득했다는 제스처를 보였습니다. 그의 이상한 점은 이게 다입니다. 혹시 수사에 도움이 될 지 몰라 그가 연구하던 서적과 논문의 목록을 첨부했습니다. 혹시 다른 도움이 필요하시면 또 연락주세요. 


A.E.W. 32년 6월 23일

메리 B. 오브라이언


친애하는 메리 B. 오브라이언 부인께


안녕하십니까, 메리 B. 오브라이언 부인. 내무성 산하 감찰국 소속 1등 감찰관 스미스 골드스타인입니다. 신고하셨던 남편 분의 실종 건에 관하여 연락드렸습니다. 부인께서 주신 자료를 종합해본 결과 그는 '구대륙'에 관한 -그러니까 대전쟁 이전 유럽이라고 불렸던 그곳-강한 흥미를 나타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구대륙과 관련한 이들을 집중적으로 탐문한 결과, 남편 분이 머무는 장소에 관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였고 수색 결과 남편 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에밀 D. 오브라이언 씨는 간단한 조사 이후 곧 귀가하실 예정이며....


"그쯤하고 이 진술이나 마자 하는 건 어떤가? 어차피 보내주지도 않을거, 괜한 사람 기다리게 하지 말고 그냥 사망했다고 쓰게나."

머리가 히끗히끗해지기 시작한 남자가 턱을 괸 표정으로 말했다. 자기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나 지을 수 있는 귀찮은 표정이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에밀 씨. 이것은 당의 규정이니까요."

스미스가 대답했다. 

"뭐 아무튼... 그래, 무얼 원하나?"

스미스가 대답하기도 전에, 에밀은 말을 이어갔다.

"뭐 우리 조직 정보라던가, 에오-디알렉티쿠스 해독.. 실례. 중화제라고 하지. 자네들은 저 거지같은 걸 워낙에 아끼니 말이야. 여하튼. 중화제 제조법, 혹은 원료를 원하겠지. 안타깝지만 그건 힘들겠군. 기억 삭제가 가능한 건 정부만이 아니거든. 다른 건?"

"그렇다면 스미스 씨, 경계 밖의 것들을 따로 챙긴 이유는 무엇입니까? 경계 밖의 위험요소를 제거하고자 노력하는 당의 방침과 어긋납니다."

에밀은 약간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이런, 우리 부인께서 그것도 알아버렸군. 부인께는 처벌이 가지 않게 해주게.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건 제가 결정할 사항은 아닙니다, 스미스가 말했다. 에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끄덕인 후 말했다.

"우선 이거 하나 물어보세. 자네 이름이 뭔가?"

"스미스 골드스타인."

에밀은 무언가 놀릴 거리를 찾은 악동 같은 표정을 짓고 말했다.

"골드스타인 가라. 구대륙에서 꽤나 이름 날리던 가문이었지. 자네 조부.. 아니면 더 선대의 분들은 구대륙 출신이라는 말 일세. 그건 나도 매한가지고. 사실이 그런데 경계 밖에서 온 이들에게 빵 좀 쥐어주는게 뭐가 대수라고."

"잘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벌레들에 대한 동정이다. 뭐 이런 말 아닙니까?"

"흠, 동정이라. 좋은 감정이지. 하지만 그것 뿐만은 아니네. 자네는 내 풀네임을 알고 있겠지."

"에밀 '드레퓌스' 오브라이언."

어른에 대한 경칭은 날려먹은 친구구먼, 에밀이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그래. . 자네야 잘 모르겠지만 에밀과 드레퓌스, 오브라이언은 꽤나 유명한 인물들이라네. 드레퓌스는 유대인-취급이 더 좋은 '경계 밖' 인간들이라고 생각하면 되네-출신 장교였지. 그는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짓지도 않은 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처벌을 받았네. 그 처벌이 불공정한 것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고. 하지만 정말 일부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판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네. 하지만 에밀 졸라는 용감히 소리쳤지. 이것은 불공평하다. 이것은 잘못되었다. 어떻게 사람을 그 출신 하나만으로 갈라놓는가? 라고 말이야. 그리고 오브라이언은..."

에밀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명백히 하려던 말을 하지 못한 듯 보였다.

"내 이름에서 바꾸지 못해 아쉬운 유일한 부분이지."

삐비비비빅. 차가운 버저소리가 조사실을 울렸다. 잠시간 우울한 얼굴이던 에밀은 억지로 유쾌하게 말을 했다.

"이제 이 시간도 끝인가 보군. 아무쪼록, 자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네. 자네의 이름을 꼭 뛰어넘게나. 꼭."

스미스가 대답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노력하겠습니다."

에밀이 웃으며 답했다.

 "껄껄! 좋은 자세구먼! 이건 내가 자네에게 주는 선물이라네."

말을 마친 그는 스미스의 팔에 무엇인가를 써주었다. 스미스는 그에게 목례하고 조사실을 나갔다.



 

감옥에서 대기하던 에밀에게 내려진 판결은 기억 말살형이었다. 에밀은 그가 보는 앞에서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자신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가족, 친구, 이웃.... 마지막 순서는 그의 아내였다. 마취한 채 누워있는 그녀의 안구에서 초소형 카메라와 도청장치를 제거하는 것을 보았다. 기억을 잃어가는 이들의 모습을 비추던 스크린에서 그녀의 안구를 통해 그가 끝임없이 감시당하고 있었음을-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의 손아귀 안이었다는 것을-안 그는 정신을 잃었다. 




"....인! 부인! 여기에 서명 좀 부탁드립니다."

"아 네... 여기에 하면 되나요?"


메리 "빅 브라더" 오브라이언




기억 말살형에서 제외된 유일한 사람이 있다. 스미스 골드스타인. 에밀이 어떻게 '말소'되었는지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인 그는 잠시간 반역자의 홀림에 흔들린 자신을 반성하고 다시 반란자를 찾으라는 국가의 명을 충실히 시행하였다. 그러나 그의 팔에 적힌 문구는 여전하여, 그는 그것을 볼때마다 간사한 혓바닥에 놀린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의 팔에 적힌 문구는 이것이었다: "나는 고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