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실험기록 제 1번- ‘아인화 바이러스’ 엘프화

 

 “끄윽.... 너무 마셨나...”

 

 “현태야.... 괜찮냐?”

 

 야심한 새벽. 두 남성이 서로의 우정을 과시하듯 어깨를 들써 맨 채 고깃집에서 나오고 있다. 흘겨오는 술냄새는 공통 분모였지만, 현태라고 불리는 남성은 흐트러진 양복을, 현태라고 부르는 남성은 마치 마실을 나온 동네 아저씨의 옷차림을 하고 있어 어둑한 밤임에도 신분 차이가 드러날 정도였다.

 

 “재형아... 다시 한 번 생각해주라~”

 

 현태는 취기어린 무언가의 부탁을 재형에게 건넨다. 마치 돈을 빌려달라는 투의 말을 하듯, 반쯤 차오른 구토의 기운이 물씬 담긴 떼어린 부탁이었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별 다른 것은 없었다. 자신이 엉겁결에 부여받은 국가적인 프로젝트 (라고 하지만 영 믿음이 안가는)에 인턴이나 아르바이트라도 지원해달라는 것. 어깨 동무한 팔에 힘이 자꾸 풀려가지만, 어떻게든 현태가 주차해 놓은 장소까지 가야 했기 때문에 재형은 세상이 고꾸라지는 와중에도 현태의 어깨를 놓지 않았다.

 

 “말씀은 참 고맙네요.... 내가 무슨 염치로 네 똥꼬를 빨아 쓰겠냐...”

 

 “짜식... 그래! 너 꼭 잘돼라! 이 몸만 믿어!”

 

 남자로서의 존심은 오늘날엔 별 소용없는 짓이었다. 인터넷도 잘 터지고, 세상 물욕을 두 평 남짓한 집에서도 즐길 수 있는 시대에, 괜한 유교적 자존심을 부려봤자 손해라는 것을 아는 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현태와 재형은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온 동네 친구 사이였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그저 놀이터에서 잠시 스쳐 지나칠 인연으로 끝날 줄 알았다. 머리가 조금 큰 시점부터 현태와 재형은 자신들의 부모님, 어머니 아버지 네 분 모두 같은 회사에서 근무한다는 것을 안 시점부터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서로 외동, 동갑이었기 때문에 형제처럼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식 날 터진 불의의 사고는 모든 것을 앗아갔다. 네 명의 부모님이 근무하던 연구 시설에 누출사고가 발생했고, 결국 성인이 되자마자 둘은 고아가 되어버렸다. 정부 기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막대한 지원금과 사후 보장 제도가 이루어졌지만, 슬픔을 딛고 일어난 현태는 안간힘을 다해 대학에 진학, 부모님의 뒷 길을 이어 국가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반면 재형은 현태의 뒷바라지 겸 가족 일을 자청해 처리했다. 양 가의 부모님 사이의 일, 현태의 대학 진학 등 많은 것을 뒤에서 밀어주었고, 현태가 무사히 졸업해 제 갈길을 가게 되었을 때에는 마치 자신이 성공한 것 마냥 기뻐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보험금으로만 살아온 자신과 그에 비해 스스로 노력해 우수한 성적을 낸 현태의 모습을 보니 점점 소극적인 성격이 되었고, 지금은 방구석에서 컴퓨터나 만지작대며 죽기를 바라는 백수 청년이 되어 있었다.

 

 재형과 현태 모두 난머리는 있어 두뇌회전이 빨랐다. 현태는 그것이 일찍이 사회적 사고능력으로 발전해 직장을 찾아가는데 썼지만, 재형은 돈을 굴리거나, 집안일에 소비하는 정도로 소비하지 못했다. 남 앞에 나서는 것이 힘들었던 재형은 현태를 제외한 그 어떠한 사회적인 관계도 맺지 않고 있었다.

 

 오늘, 두 사람의 부모님 기일에 맞춰 아침 일찍이 성묘를 간 후 밤늦게까지 서로 술을 먹어댄 재형과 현태. 슬픔도 기쁨도 공유하는 형제같은, 아니 형제보다 더 형제같은 둘은 이윽고 현태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널찍한 공터로 도착했다.

 

 “끅... 잠깐... 나 토좀하고....”

 

 “대리는 불러놨어. 곧 올거야.”

 

 “야. 재형아.”

 

 “왜.”

 

 “... 아니다. 생각나면 연락주라.”

 

 라는 말을 끝으로 현태는 입에서 분비물이 끝까지 차오르더니 보통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수평 구토’를 뿜어냈다. 재형은 그런 부머의 토사물을 피하며 엎질러지려는 현태의 어깨를 다시 감싸 맨다. 곧이어 대리기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도착했고, 목적지를 알려주며 현태를 뒷좌석에 태웠다.

 

 “끅... 또보자....”

 

 “그래. 니 차에 토하면 니만 손해다.”

 

 부우웅

 

 동네의 한적한 공터. 그곳에 남은 것은 명품 차의 유쾌한 매연과 이따금 불어오는 차가운 봄바람 뿐이었다.

 

 재형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무언가 뒤지더니 껌을 꺼내 씹는다. 숙취가 오지 않으려면 이렇게라도 해야하는 생활 습관이었다.

 

 ‘연락이라...’

 

 재형은 공터 구석에 있는 간이 의자에 앉아 봉투를 열어본다. 인턴 계약서. 그저 공란에 싸인을 하고 신분증과 이 사본을 스캔해 현태에게 보내만 준다면 바로 국가기관 산하의 연구 시설 인턴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 이런 것도 할 용기가 없다니....’

 

 단물이 어느새 다빠진 껌을 뱉으려다 멈칫하고는 주머니에서 껌종이를 꺼내 싸서 도로 집어넣는다.

 

 ‘쓸데없는 자비심인가... 아니면 진심인가.’

 

 낡아빠진 신발은 뒷굽창이 벗겨져 발목을 찌르고 있었지만 신경쓰지 않고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서는 재형. 그때였다.

 

 무언가가 자신의 앞을 빠르게. 아니 빨라보이게 지나갔다. 이상했다. 사람의 형상이 지나갔는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야.’

 

 아무도 없는 공터인줄 알았는데 누군가 있었다는 것을 안 재형은 약간의 부끄러움이 들면서도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왜’라는 느낌이 척수를 탔기 때문에 두리번거리는 것을 포기하고 공터의 도롯가로 걸어갔다.

 

 스윽

 

 ‘?’

 

 가로등을 지나는 시점. 어떠한 형체가 앞을 가로막았다. 고개를 숙이고 가던 재형은 아직 취기가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앞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죄... 죄송합니다.”

 

 바로 사과의 말이 나오는 재형의 태도. 괜시리 불란을 만들지 않을 사회의 선빵필승 전략이었다. 일단 사과하기. 그러나 돌아온 것은 공허한 바람소리 뿐.

 

 ‘?’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보는 재형. 재형의 바로 앞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한 3~4M 떨어진 지점. 높디 높은 가로등의 절반정도 크기는 되어보이는,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치고는 너무 큰 인간 형태의 무언가가 재형을 등지고 서있었다.

 

 ‘뭐지?’

 

 술김에 헛것이 보이나 싶어서 눈을 깜빡거리고 고개를 흔들어 앞을 쳐다 보았지만, 자신 앞에 드리운 그림자는 분명 가로등에 비쳐 가려진 사람 형태의 그림자였다.

 

 공포감이나 불쾌함 그런 것은 들지 않았다. 주변은 생각보다 밝으니까. 조금 떨어진 지점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육교가 있으니까. 범죄나 날치기 같은 것이 일어나는 곳은 아니었다.

 

 재형은 그림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도로가 좁기도 했고, 갈 길이 그 곳 밖에 없기도 했으니까.

 

 조금 걸어가자 거대한 인간 형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어! 됐다고!”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리자 처음 놀랐고, 앳된 여성의 목소리임에 두 번 놀랐다. 그리고 거대한 형체가 몸을 돌려 1M 남짓한 거리에서 돌연 박차고 뛰어와 세 번 놀랐다. 그리고 세 번 째 놀란 시점에 무언가 둔탁한 것이 재형의 머리를 쳤고, 자신이 형체를 알아본 그 자리로 멀찍이 날아가 버렸다.

 

 ‘으 으헉...’

 

 그렇다. 재형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은하수처럼 떨어지는 거대한 여성의 눈물과 아직 초봄이라 쌀쌀한 날씨임에도 거대한 패딩을 둘둘 매고 있는 그 모습을 기억하는 것을 끝으로 고통과 취기에 몸을 맡긴 재형은 눈을 감고 말았다.

 

-----------

 

 “죄송합니다...”

 

 “네.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턱수염을 매만지며 경찰서를 나오는 재형. 아무래도 술을 너무 과음해 중간에 쓰러져 잠이든 모양이었다. 재형은 주머니를 뒤져 자신의 지갑과 집열쇠가 안전하단 것을 알고는 짹짹거리는 참새 소리를 들으며 경찰서의 문지방을 지났다.

 

 너무 생생한 경험이지만, 너무 비현실적인 일이 닥쳤다고 생각하니 오늘도 인터넷에 썰 풀 내용이 가득해졌다고 느낀 재형은 괜시리 웃음기가 터져 나왔다. 꿈도 그런 꿈을 꾸다니.

 

 감지 않은 머리와 떡진 옷가지에선 썩은 내가 났지만, 숙취 해소제를 사러 들어간 편의점의 알바생의 표정이 썩는 것을 재형은 개의치 않았다. 조금 사회적으로 무리가 있는 행동을 보이는 재형.

 

 집에 와 샤워를 마치고 숙취해소제를 들이키는 재형은 남들이 출근할 시간에 잠을 자는 전형적인 백수의 전형이었다. 돈이야 보험금과 보조금이 있고, 욕망이 없어 여자친구도 없고, 술은 일년에 한 두 번, 기일과 생일에만 마시나, 돈이 줄어들지 않는 현실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재형.

 

 원래라면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지만, 전날 있었던 기이한 일은 아무래도 꿈이 아닌 것 같다 싶은 생각이 괜시리 들곤 했다.

 

 ‘뭐... 내가 미쳤나보지 뭐.’

 

 하기야. 전봇대의 절반 크기면 270~80Cm 정돈데.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어딨냐. 라는 식으로 바로 자기 합리화하며 그날 밤까지 컴퓨터를 놓지 않았다.

 

 “으아. 벌써 10시냐. 먹을게 있나~”

 

 넘어지면서 났던 혹이 가라앉고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의 ‘병원에 가보시라’ 명령은 어겨버린 재형. 냉장고를 열어도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고, 컴퓨터를 하느라 시장한 줄도 모른 배가 울려대니, 귀찮아도 나가서 무언가를 사와야 했다. 배달은 비싸니까.

 

 오전에 숙취해소제를 샀던 편의점에 들러 먹을 것을 사 가지고 밖으로 나온 재형은 어둑해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어제보다 조금 쌀쌀해진 날씨에 입김이 나온다. 한 손에는 도시락과 각종 먹을 것들. 다른 한 손은 주머니에 쑤셔 넣은 채 동전을 이리저리 굴리며 길을 걸어간다.

 

 ‘야옹’

 

 ‘와 씨 고양이다.’

 

 귀여운 것은 사족을 못쓰는 재형은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그 곳으로 바로 시선을 돌렸다. 고양이는 육교의 난간. 그것도 도로를 지나는 부분 높은 곳에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고양이가 반대 편 끝에 다다르는 순간, 거대한 덤프트럭이 아래를 지나갔고, 세찬 바람이 갑작스레 고양이를 덮쳤다.

 

 ‘냐... 냐아아아~!’

 

 그런 고양이를 멀찍이서 쳐다보며 무심코 육교를 걸어 올라간 재형은 다급해진 상황을 보고 발걸음이 빨라져 육교의 반대편으로 뛰어 갔다.

 

 ‘뭐야... 설마...’

 

 덤프 트럭 소리가 점점 멀어져가고, 재형의 주변에는 작게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만 들려왔다. 고작 이런 일로 작은 생명이 낙사한다니.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다. 육교의 정상에 올라 반대 방향으로 떨어진 고양이의 모습을 살피려 고개를 빼들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작은 고양이 소리.

 

 ‘냐아.’

 

 6M를 알리는 육교의 중앙 부근을 지날 쯤에 들려온 그 소리는 떨어진 것 치고는 너무 편안한 고양이의 울음 소리였다. 

 

 “조심해야지.”

 

 아. 고양이는 무사하구나. 소리로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재형은 괜히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려 왔던 방향으로 걸어왔다.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고양이는 자신이 올라온 육교의 반대 방향에서 모습을 보여 떨어졌는데

 

 고양이의 소리는 자신이 왔던 방향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소름이 돋는 재형. 들떴던 마음이 갑작스러운 미스테리한 분위기에 요동치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날아가서 반대 쪽으로 떨어졌나? 고양이의 목숨은 9개라는데.... 혹시...? 발걸음이 빨라지는 재형. 얼른 자신이 가려고 한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래에서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한파도 아니지만 두터운 비니 모자를 쓰고, 넓은 육교의 계단을 메우는 제법 큰 덩치. 그리고 아리따운 향기. 기억나는 목소리를 가진 형체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놀란 재형은 봉지를 쥔 손을 꼭잡고 눈을 깔았다. 길거리에서 낯선 누군가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은 실례라고 느낀 재형은 이런 상황에서도 발휘하고 있었다.

 

 비니를 쓴 여성은 중간 쯤 올라오다 대뜸 계단에 걸터 앉았다. 여성은 재형을 보지 못한 듯 했다. 키가 큰 여성을 조심스레 지나가는 재형은 한 걸음 한 걸음 씩 계단 아래로 발을 내딛었다.

 

 분명 맡아본 향기였다. 어젯 밤. 날 치고 간 거대한 형체의 주인. 그 정체가 확실하다고 느껴진 형태는 더욱 고개를 푹 숙인 채,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된 주먹을 더욱 세차게 쥐고 그녀를 지나쳤다.

 

 ‘...’

 

 여성은 고개를 푹 숙인채 떨고 있었다. 작은 움직임도 큰 행동으로 보일 만큼 덩치가 있었다. 눈을 흘겨 그녀의 형체를 살며시 쳐다보는 형태.

 

 패딩은 거대했다. 아마 재형이 쓴다면 팔 한쪽만 넣어도 널널해질 정도의 빅사이즈. 그러나 그녀가 입은 것은 유아용 수준으로 보일 정도.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늘어진 비니 사이로 무언가가 삐죽 튀어나와 비니의 솔깃을 후비고 있었고, 그런 패딩을 더욱 크게 만들 정도의 겹겹이 쌓인 옷 사이로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조금씩 새어오고 있었다.

 

 하체는 길었다. 말 그대로 길었다. 허벅지는 수평으로 3계단 정도, 종아리는 수직으로 4계단 뻗어 있었다. 그것도 조금 불편했는지 무릎이 조금 위로 솟아있었다. 앞으로 왜인지 알 정도로 흉측하게 잘려진 청바지는 밑단이 모두 터져 있었고, 종아리는 맨살이었다. 신발은 흔히 보이는 삼선 슬리퍼였지만, 발가락과 발바닥 중앙 부분을 가리는 정도로 작았다. 바지의 벨트는 살짝 풀려있었고.... 실례인 줄 알면서도 여성의 국부 부위를 보고만 재형은 다 찢어져 있다는 것 역시 알아버렸다.

 

 여성의 가슴 팍에서 약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웅크린 채로 고개를 숙인 채 폰질을 하는 것인가.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런 기이한 형체를 애써 눈에서 지우려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는 재형은 바로 자신이 왔던 편의점으로 되돌아가려 계단 아랫 부분에서 몸을 돌린 시점이었다.

 

 “조심해요!”

 

 무언가가 재형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휴대폰이었다. 거대한 형체가 재형에게 팔을 뻗었다. 역시 몹시 길었다. 하지만 중력의 속도 앞에 떨어지는 휴대폰을 잡는 것은 무리였다.

 

 탁

 

 재형의 비닐 봉지에 휴대폰이 쏙 하고 들어갔다. 약간의 비틀거림이 있었지만 휴대폰은 무사했다. 그리고 머리에 물음표가 뜬 것처럼 보이는 재형의 머리 위로 자신이 흘겨 본 비니 모자의 여성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죄.... 죄송.... 합니다....”

 

 

 자신에게 사과하는 여성. 분명 어제 들었던 그 목소리가 맞았다.

 

 “아... 네...”

 

 비닐 봉지 안은 휴대폰의 충격으로 도시락 뚜껑이 파손된 정도였지만,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 들어올리는 재형. 그것이 비니 여자의 것임을 눈치채고는 자신도 원래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보였다. 일반 사람이라면 분명 당사자가 내려오거나 자신이 올라가는 것이 맞았지만...

 

 휴대폰을 잡은 손을 무심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뻗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성은 몸을 살짝 숙여 재형이 뻗은 손으로 향했다. 

 

 탁. 

 

 “가... 감사합니다....”

 

 깨지지 않은 액정을 확인한 여성이 몸을 숙여 서서히 재형과 멀어진다. 멀어져도 너무 멀어진다. 이목구비가 흐려질 정도로 상체가 멀리 꺾였다. 뻗은 손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재형. 배시시 웃는 얼굴이 사라지자 뻗은 손 역시 아래로 축 처졌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저... 저기 잠시만!”

 

 서둘러 육교의 계단의 위를 쳐다 봤지만, 무시무시할 정도로 긴 다리는 벌써 건너편을 건너고 있었다. 

 

 그제서야 조금 전 있었던 고양이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뇌내 짐작이 되었다.

 

 비니를 쓴 거대한 여성은 자신의 뒤를 따라 걷고 있다 떨어지는 고양이를 보고 저 무시무시한 몸을 날려 고양이를 구하고 자신이 있던 방향으로 다시 온 것이 아닐까. 되도 안되지만, 방금 전의 상황을 느끼자 별의 별 생각이 다나는 재형이었다.

 

 ‘다시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거리가늠이 안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반대 편에서 사라진 그녀의 형체를 애써 눈에 담으려고 했지만, 인간의 속도로는 따라잡을 수 없었기에, 특별하면서도 강렬한 경험으로 삼고자 한 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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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

 

 “재형아. 잘들어. 진짜 잘들어.”

 

 “...”

 

 “너가 보고 들은 거 혹시 누구한테 이야기한 적 있어?”

 

 “아니 없어.”

 

 재형은 듣도 보도 못한, 거대한 여성, 팔척 귀신을 방불케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현태한테 이야기해주니 처음은 못믿는 눈치였지만, 구체적인 상황 설명, 정확히는 ‘한 겨울도 아닌데 너무 꽁꽁 싸매고 있다.’ 라는 말을 듣자 태도가 돌변한 현태였다.

 

 “그럼. 바로 우리 연구소로 와야겠어.”

 

 “왜...? 혹시 강제로 이력서 써버리려고?”

 

 “아니... 니가 와서 봐야할... 아니... 검사를 해야 할 수 있어.”

 

 덜컥 겁이 난 재형. 자신의 신기한 경험을 이야기 했는데, 대뜸 이상한 소리로 맞받아 칠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조... 조금만 생각해보고. 아무튼 다음에 연락하자 응?”

 

 “하.... 일단 나도 박사님한테 여쭤보고 다시 연락줄게. 그치만.... 하...”

 

 “그래. 일 적당히 하고.”

 

 뚝

 

 전화를 붙든 손이 갈 곳을 잃고 어플을 켰다 껐다를 반복한다. 재형은 하루가 지났지만 연 이어 있었던 기이한 만남을 지울 수 없었다. 거대한 여성.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행동. 그러나 목격자는 자신 뿐. 자기가 특별한 존재라고 느껴짐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신뢰하는 형제에게서 들은 ‘조심해라’ 라는 전화는 재형의 의심을 더욱 키우기 충분했다. 

 

 ‘내가 정신병이 생긴건가?’

 

 그렇지만 방 가운데 탁상에 얹어진 찌그러진 도시락 뚜껑은 아무도 설명해주지 못한, 재형만이 변호할 수 있는 문제였다.

 

 인터넷에 글을 쓸까?

 경찰에 신고할까?

 

 그러나 누군가를 조리돌림하거나 증오하는 것은 재형의 성격에 맞지 않았다. 오히려 잘못한 것 없는 그녀에게, 고양이를 구해준 사람을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뭔가 이상했다.

 

 그러니 더욱 정신 질환을 의심할 수밖에. 항간에 그런 말이 있었다. 한 번 경험은 우연이다. 두 번 경험도 운이다. 세 번 경험은 실력이라고.

 

 무언가에 홀린 듯, 재형은 어제, 그제 왔던 길을 다시 걸었다. 현태를 실어 보낸 공터부터 좁은 골목길. 그리고 육교까지. 그러나 돌아본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해가 져버릴 때까지 동네를 돌아다닌 재형의 몸에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고양이가 추락했던 육교 지점에 다다르자, 땅거미가 져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제 그녀가 앉아서 흐느꼈던 지점에 현태가 앉아있다.

 

 ‘...’

 

 휘잉

 

 바람이 세차다. 고양이도 그렇고, 그 여자의 휴대폰도 그렇고. 분명 바람에 날려 날아갔으리라 생각한 재형은 엉덩이를 툴툴 털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계단 아래를 쳐다보았다.

 

 멀리서 비니를 한 형체가 쭈그리고 있었다.

 

 ‘냐아’

 

 고양이 소리가 들려왔다.

 

 ‘...’

 

 딸깍딸깍

 

 지잉

 

 어둠이 드리운 육교 거리에 가로등이 켜졌다. 서서히 뻗어가는 그림자. 일으키는 몸뚱이의 손에는 다먹은 고양이용 참치 캔이 있었다. 몇 번 탈탈 털더니 옆에 있던 공중전화박스 안의 쓰레기 통에 넣는다.

 

 전화박스는 그녀의 허리 춤에 닿을락 말락한 크기였다. 쭈그린 상태로 애써 쓰레기통에 무언가를 넣으려는 모습이 조금 애처로울 정도였다.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신체와 행동거지. 얼마나 상냥한 마음씨를 가졌는지.

 

 자신이 구해다 준 고양이가 걱정되어 먹이를 주는 모습을 멀리서 감상한 재형은 이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사랑? 호기심? 아니다. 그것은

 

 동경과 존경이었다. 

 

 왜? 라는 의문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그랬다. 성욕도, 고마움도 아닌 새로운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발견의 즐거움이었다.

 

 거대한 여성은 몇 번 고개를 뒤흔들더니 이내 수풀 사이로 난 길로 들어갔다. 재형은 웃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내가 잘못본게 아니었어. 날 친 것도, 저 고양이를 구한 것도. 저 이상한 여자가 분명해.’

 

 ‘냐아아’

 

 새끼 고양이는 입맛을 다시며 그루밍을 하고 있었다. 마치 어디를 가리키듯.

 

 그 때였다.

 

 정체 불명의 검은 색 밴이 몇 대 나타나더니 자신의 앞에서 차를 세웠다. 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방독면을 쓴 사람 몇과 방역복을 입은 사람 몇이 내렸다.

 

 “접촉하셨습니까?”

 

 “엥?”

 

 “이봐. 근처 CCTV 다 확인했어?”

 

 “잠시만요... 네 확인했습니다. 저 사람 말고는 없습니다.”

 

 “그렇군. 그말은 즉 이 사람 동선도 확인했다 이거지?”

 

 “네. 편의점 한 곳 말고는 없습니다.”

 

 “좋아. 아직까지 2차 감염의 징후는 없다니까 방역 후 사후 보고해.”

 

 “네.”

 

 순간적인 드라마틱한 전개에 넋을 잃고 상황을 지켜보는 재형. 재형에게 방독면을 쓴, 정장입은 여성이 말을 건네온다.

 

 “실례하겠습니다. 김재형씨 되십니까.”

 

 “네...? 네.... 근데 어떻..”

 

 “국정원입니다.”

 

 “네?”

 

 푸드드득

 

 새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무언가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와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 옷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지만 수 초 내로 잠잠해졌다.

 

 부우웅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차량은 마치 우주 발사체를 싣고 가는 특수목적 차량처럼 생긴 거대한 트럭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여러 명의 사람이 무언가를 들춰맨 채 나타났다.

 

 
 “찾았습니다.”

 

 거대한 여성이 의식을 잃은 채 들 것에 실려 수풀 사이로 나오고 있었다.

 

 ‘샤아아!’

 

 고양이가 꼬리를 세우고 이들에게 맞서려고 했지만, 덩치 큰 남성의 위협에 곧잘 꼬리를 내리고 수풀로 사라졌다.

 

 “사라진지 3일이나 지나서 겨우 발견하다니...”

 

 “동행해주시길 바랍니다. 긴급 사항입니다.”

 

 “네...? 네....?”

 

 그리고 재형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거대한 트럭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아무 죄없는 사람이다. 각별히 대해. 모든 건 국민을 위해서다.”

 

 “네. 알겠습니다.”

 

 “방역 철저히 하고. 당분간 이 도로와 육교는 폐쇄한다. 이 일대에 치명적인 감염병이 돌았다고 전해.”

 

 “네.”

 

 창 밖으로 보이는 국가 공무원의 모습은 일사 분란, 일사 천리였다. 그나저나 ‘치명적인 감염병’이라고 알리면 도리어 위험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위협일수록 우리나라 국민은 협조적이라는 것을 입맛을 다시면서 깨닫는 재형이었다.

 

 ‘꿀꺽’

 

 침을 삼키는 재형은 생각보다 넓은 트럭의 짐칸에 조금 긴장했다. 하얀색으로 둘러쌓인, 마치 병실을 방불케하는 공간. 그곳에는 자신과, 이미 기절한 거대한, 비니 모자를 쓴 여성이 누워있을 뿐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자신이 들어온 방에 조명시설이 없어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점이었다. 혼란스러운 상황. 누군가를 관찰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치익

 

 연기같은 기체가 차체에서 새어나왔다. 재형은 몸이 서서히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

 

 똑똑

 

 “죄송합니다 재형 씨. 귀하의 목숨은 저희가 반드시 책임지겠습니다.”

 

 “모셔가.”

 

 “실험체가 어떻게 핸드폰을 입수했는지 철저히 조사해.”

 

 탕탕

 

 차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그 말을 끝으로 재형과 비니 여자를 실은 트럭은 서울을 지나 한참을 밟고서야 멈춰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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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은 들었지?”

 

 “하....? 잘 모르겠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서.”

 

 병실처럼 보이는 공간에 얇은 유리벽을 맞대고 두 남성이 마주보고 있다.

 

 하얀 가운을 입은 현태는 누가봐도 죄지은 사람처럼 울상, 죄책감으로 가득찬 표정이었다. 그에 비해 재형은 능청스럽게 의자에 앉아서 코나 후비고 있었다.

 

 “뭐... 내가 죽을 병이라매. 그리고 검사도 다 했잖아. 결과 알려주려고 부른거 아니야?”

 

 벌써 4일지 지났다. 시설에 도착한 후 암실의 통로를 지나 정체모를 마취를 받고 깨어나고 피를 뽑고 기절하고를 3일간 반복했다.

 

 재형은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이리저리 말을 했지만 맨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떠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꺠어난 4일 째. 상태가 호전되고 의료진의 경악스러운 표정과 두 번의 피뽑음이 또 이어지자 슬슬 수상함을 느낀 재형이 시설과 의료진을 의심한 것이었다.

 

 “다짜고짜 사람을 데려와서 이것 저것 시키더니....”

 

 “정말 미안해.”

 

 “난 니가 의사란게 더 놀랍다 야.”

 

 국가 공무원인줄 알았던 현태가 사실은 국가의 비밀 시설에서 일하던 특수요원이었다니.... 세상 참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곧 책임자가 등장한다고 하니 마지막으로 이 상황극에 놀아줄 생각인 재형. 실은 속으로 자신이 이런 일을 겪은 것에 대한 분노가 서서히 생기고 있었다.

 

 달칵

 

 “박사님.”

 

 “그래. 현태. 저 친구구나. 니가 말한 그...”

 

 “네. 제 형제나 다름없는 재형이가 저 친구입니다.”

 

 “이런.... 미안해서 어쩌나.”

 

 나이든 중년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유리창을 너머 재형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의료 차트를 넘겨 본다.

 

 “세상에....”

 

 “네. 박사님. 세상에입니다.”

 

 “그래도 방심하면 안돼.”

 

 “저... 박사님.. 그래서 말인데...”

 

 “응? 뭔가?”

 

 “부탁이 있습니다.”

 

 “현태가 부탁? 니가?”

 

 박사의 등장에 조금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재형은 의자에서 일어나서 유리창으로 다가갔다.

 

 똑똑

 

 “저... 죄송한데 박사님... 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박사님. 사실 뭘 전달받긴 했는데 너무 가물가물 해서요....”

 

 “현태. 설명 안해줬어?”

 

 “사실 제가 부탁과 동시에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아... 날 기다렸다?”

 

 “...”

 

 재현과 형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현은 형태에게 어려운 부탁을 할 것이었고, 형태는 이런 이상한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었다. 무엇보다 최고 책임자라는 ‘박사’라는 양반이 재현의 부탁을 들어주나 그것이 재현의 관건이었다.

 

 “저 친구를 ‘아인 감찰관’으로 채용해주십시오”

 

 “....뭐?”

 

 “박사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현대 의학으로는 그들과 접촉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단 것을!”

 

 “...흥”

 

 “형태는 검사 결과, 면역으로 밝혀졌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기적이죠.”

 

 “....어?”

 

 형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무슨 면역이니, 좀비사태에서나 들릴 법한 말이 들려 왔다.

 

 “하아..... 우리 사정을 잘 아는 니가 그런 말 하니 안받아 들일 수도 없고..”

 

 “어?”

 

 찍히는 도장. 팩스로 들어가는 문서. 엄지를 내비치는 박사와 재현의 손놀림에 형태는 그만 의자에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무슨 일인지 설명이나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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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형의 역할은 어렵지 않았다. 그저 당분간 사회로 나갈 수 없는 대신, 건설된 시설 안에서 자신들의 업무를 돕는 것. 화려하지도, 낡지도 않은, 그리고 아무도 없는 개인실을 제공받고, 시간에 맞춰 방금 취조한 방에 가는 것. 거기서 지시대로 하는 것. 그것 뿐이었다.

 

 첫 날. 무균 소독실을 지난 재형은 의자에 앉아 녹음기로 추정되는 장비와 글로 쓰여진 서류를 창구를 통해 건네 받았다.

 

 “아.... 아... 들립니까? 에.... 매뉴얼 대로 읽으면 된다라....”

 

 “음음. 실험 일지 1번. 읽겠습니다아아.”

 

 “에.... 실험체 번호 제 1번 1호. 병칭 ‘엘프화 증후군’”

 

 “증후군?”

 

 “그냥 말씀하세요.”

 

 “아. 네. 흠흠 병칭 ‘엘프화 증후군’. 현대 의학으로 밝혀낸 바. 신종 바이러스로 추정되는 물체에 감염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해당 증상은 인간에게만 감염되는 경우로, 조류, 양서류, 파충류, 어류 등에 실험을 투여했으나 모두 증상이 보이지 않았다.”

 

 “인간과 유사한 영장류에도 같은 실험을 했으나 약간의 감기 증상 외에는 인간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인간이 감염될 경우 즉각적인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헤에...”

 

 “감염 1주일 차. 몸이 서서히 나른해지고 안면 근육이 이완된다. 감염 8~10일 차, 감염된 사람 이하 세 명은 모두 수면 상태에 빠짐. 후 2일간 렘 수면 상태에 돌입함.”

 

 “수면 중 감염 증상 발현. 머리카락과 눈썹 등 안면에 존재하는 모근층을 제외한 ‘털’이라고 지칭 이 대부분 소멸. 상체, 등, 하체, 음부 모두 모공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음.”

 

 “재형씨. 한 줄 건너 띄었어요.”

 

 “...머리카락이 급속도로 성장함. ‘엘프화’에 감염된 남성은 현재 불명으로 감염된 개체 A, B, C 모두 여성인 관계로 여성에 특정한 상황임을 명시한다.”

 

 “신체 내부의 에스트로겐과 바이러스가 결합하여 특수한 효소 물질을 뇌하수체에서 분사. 신체의 모근에 영향. 척수와 뇌와 가까운 신경계를 제외한 모든 모근층이 소멸함을 확인했다. 신체 내부의 노폐물을 배출하는 땀샘, 피지샘 등 역시 모두 사라짐을 확인. 피부 조직의 구조적인 변화가 발현됨을 확인할 수 있다.”

 

 “바이러스 증상 발현 2일 차에 세 감염자는 모두 의식 회복. 극심한 공복 증상이 발현되어 식사 제공. 그러나 실험체 모두 거부. 실험체 A의 외형에 변화가 생김을 기록한다.”

 

 “실험체 A 이하 A라고 칭한다 는 머리카락이 탈색되어 밝은 노란색이 되었고, 머리카락은 허리정도에 올 정도로 길어졌다. 입소 전까지만 해도 어깨에 닿던 머리카락이 2일 사이에 50cm 가량 자랐다.”

 

 “조금 신경질적인 모습이 보이지만 A, B, C 모두 안정을 취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동물성 식품에 극도적인 거부감을 보이며, 오로지 식물성 유기물을 섭취함을 요구한다.”

 

 “...실험에 강경적인 K 박사의 조언에 따라 동물성 단백질이 함유된 추출물을 실험체의 식사에 섞어 배분했다. 그러자 세 실험체 모두 극심한 복통을 호소했으며, 체내의 구멍, 그러니까 구강과 항문, 요도를 통해 혈전이 배출되는 것을 확인. 즉시 마취작업과 위 세척 작업. 그리고 K 박사의 경질이 이루어졌다.”

 

 “증상 발현 10일 차. 시설에 안정적인 식물성 단백질 제품이 공급되자 세 실험체가 적극적인 섭취를 요구함.”

 

 “증상 발현 11일 차. 의사소통을 위해 별도로 마련된 멸균처리실에 소통 창구를 설치함. 몇 가지 질문을 함.”

 

 “T 박사의 질문. 당신들의 사정을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십시오 에 대한 답변. A가 답한다. 저는 강원도 강릉에 사는 XXX입니다. 지난 여름 가족과 함께 알래스카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저는 길을 잃었다가 가까스로 길을 찾아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국내로 온 시점에 방역 기관에 걸려 치료를 받던 중 이 시설로 왔습니다.”

 

 “B가 답한다. 저는 부산 출신입니다. 나이는 55세로 평범한 주부입니다. 가족은 남편 뿐이고 자식은 없습니다. 어느날 남편이 지독한 독감에 걸려 병원에 데려갔는데, 결국 숨지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어떤 상자를 발견했는데, 그 상자를 열자 곧바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그 후 깨어나 보니 이 시설이었습니다.”

 

 “C가 답한다. 저는 나주 출신으로 나이는 82세입니다. 오랜 시간 섬에서 홀로 살며 낚시하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어느 날 떠내려온 유리병에 무언가가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집에 와서 열어보고 그 뒤로 기억이 없습니다.”

 

 “증상 발현 13일 차. 실험체들의 외모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원격 검사를 실시했다. 타액, 소변, 원격 채혈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신체의 정보를 획득한다. 우선 실험체 B와 C는 연배 들어 보이는 외모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외견상 주름이 사라지고 신체 나이가 서서히 젊어지는 것이 보였다.”

 

 “A는 20대로 외모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으나, 증상 발현 16일차, 외견이 10대 사춘기 청소년의 외모 수준으로 회귀한 것을 확인했다.”

 

 “이후 B와 C 역시 나이 순으로 시간이 더 걸리긴 했지만 10대 중순의 외모로 회귀한 것을 확인했다.”

 

 “증상 발현 25일 차. 신체의 변화가 재진행되었다. 즉시 신체 샘플을 채취해 분석했다. 바이러스는 소멸하지 않고 대뇌조직과 척수에 자리잡아 신체와 완전히 동화를 이루었다. 바이러스는 신체 내부에 들어온 모든 외부 바이러스, 외부 물질에 대한 극도의 저항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들어온 외부 물질, 체내 독성 물질을 급속 정화가 가능하고 물과 식물성 유기물만 충분하다면 골수에서 바이러스의 배양이 가능한 것을 확인했다.”

 

 “증상 발현 26일 차. A, B, C의 귀 조직이 변화되었다. 음.... 마치 신화나 동화에 나오는 ‘엘프’의 외형과 같다. 귀의 길이는 약 15~20 Cm 로 귀 뒤쪽, 그러니까 뒤통수 방향으로 뻗어 자랐다. 귓불은 그대로나 귓바퀴가 뒤로 뻗은 형태로 자라 마치 동화 속 인물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실험체의 외모가 남성 기준으로 아주 매혹적인 형태로 변화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증상 발현 31일 차. 신체의 변화가 재진행되었다. 그동안 실험체들의 인권을 너무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아 사회문명의 혜택을 적극 지원해줄 예산이 배정되었다. Tv, 게임기 등 다양한 장치를 반입하고 의복과 비건 식단 등 다양한 방면으로 지원을 약속하였다. C가 의복에 관심을 가지고 의복 ‘청바지’를 입자 극도의 고통을 호소. 방역복을 입은 직원을 투입해 급히 상황을 진정시켰다.”

 

 “이후 세 실험체를 진정시키고 피부 조직을 검출. 분석 결과, 피부가 마치 신경계 역할을 해 공기의 흐름, 물건의 움직임 등 신체 전 조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음을 확인. 반면 식물성 유기물로 이루어지지 않은 의복이 피부와 접촉할 경우 극도의 스트레스성 반발 증상이 발현, 피부 유기물의 급속적인 거부반응으로 인한 발열로 인해 고통이 수반되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 역시 확인되었다.”

 

 “또한 피부 세포 조직 사이에 새로운 분비층이 형성됨을 확인함. 체내 호르몬과 혈액의 일부가 결합해 태양의 빛 에너지를 흡수, 신체 활동 일부분에 그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을 뜻밖의 계기로 확인함. 이는 실험체 C가 자신의 방에 나있는 창에 정좌한 채로 나체의 모습으로 햇빛을 쬐는 행동을 하기에 연구원이 원격으로 질문. 본인도 모르는 사이 본능적으로 했다고 증언하였다.”

 

 “이로 인해 발생되는 열 에너지 중 신체에 부족한 동물성 단백질의 자연 재구성이 진행되어 피부 세포, 외부 점막 등 노출된 신체 구조의 탄력과 수명을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 귀결됨. 추가적으로 이것을 통해 생성된 열 에너지 중 일부가 기존 각질층을 대신해 계면활성제와 비슷한 성분의 합성물이 형성. 식물의 꽃에서 추출할 수 있는 성분과 유사. 냄새, 효과 역시 비슷함.”

 

 “결론적으로 실험체들에게는 기존의 의복과 더불어 부드러운 식물성 소재를 이용한 천을 이용한 의복만을 제공하기로 했다.”

 

 “증상 발현 60일 차. 나이가 제일 많은 C에게서 신체 반응이 검출되었다. 그간 한 달 동안 실험체 본인은 물론, 연구원들 역시 ‘나이가 들어 축소된 허리가 펴졌다’ 정도로만 알려져 온 실험체의 신장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을 발견. 이후 검사단이 투입되어 원격 정밀 검사를 실시함.”

 

 “신장 152->190 으로 크게 증가함. 동시에 신체 비율 역시 하체의 비율이 70%에 육박할 정도로 조정됨. 반면 체중은 40->50으로 크게 증가하지 않았지만, 외형적으로 ‘말랐다’라는 느낌을 주지 않음. 이는 체내 존재하는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신체의 부피와 내용 물질의 밀도가 크게 변화되었다는 것을 증빙함.”

 

 “인간의 근육량에는 월등히 못 미치는 수준의 근력이 관찰되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인해 극도로 압축된 골밀도에서 나오는 인력이 근력을 대체하는 것이 관찰됨.”

 

 “증상 발현 80일 째. B와 C는 뜨개질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지만 A는 사회로 나가지 못하는 불만을 표출하는 중. 바이러스는 성장판을 지속적으로 자극해 10~20일을 주기로 신체의 성장을 야기함. 대부분 신장의 증가, 손과 발 크기, 하체, 종아리, 허벅지 등 다양한 신체부위의 점진적인 성장을 야기함. 가장 최근 신체 측정 기록을 여기다 정리함.”

 

 “실험체 A의 기록은 본인이 직접 측정 장비를 사용해 기록을 전달하는 형식으로, 무게 약 1Kg의 실험복을 착용한 채로 진행됨을 명시.

 

 신장 279cm 체중 85kg

 

 모발 길이 정수리 기준 205cm

 

 신체 정보는 바닥부터 측정

 

 발크기 410mm

 

 종아리 길이 85cm

 허벅지 길이 92cm

 인심(사타구니까지) 180cm

 하체 총 길이 192cm

 

 어깨 높이 258cm

 머리 높이 279cm

 

 머리 둘레 51cm (여성 평균 값 53)

 팔벌린 길이 234cm

 손바닥 크기 38cm

 

 크기 및 신장 측정은 정밀 첨단 기계를 이용하려 했으나, 본인이 적당한 방법을 안다고 지점토에 찍어 연구원에게 전달. 이를 토대로 측정한 것이라 손, 발의 크기는 ‘작게’ 측정됨. 

 

 실험체 A에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무거운 물체를 드는 실험에 참가가 가능한지 여부를 물음 긍정적인 대답을 얻어 실험을 재개함

 

 한 손 팔로 무게추 들기 최대 58Kg

 양 손 팔로 무게추 들기 최대 85Kg

 레그 프레스 미실시 본인이 거부의사를 밝힘

 

 신체 조건에 비해 근육, 골밀도의 힘은 강하지 않는 것으로 보임. 기타 신체 측정을 재개함.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식물성 천으로 만든 측정 기구를 사용.

 

 윗가슴둘레 143cm

 아랫가슴둘레 108cm

 허리둘레 82cm

 윗엉덩이둘레 172cm

 아랫엉덩이둘레 124cm

 허벅지둘레 95cm

 

 신체의 둘레 모두 신장에 비해 작은 느낌을 주나, 하체의 비율과 둘레가 상대적으로 상체에 비해 큰 편으로 측정됨. 전반적으로 일반 여성을 상하로 길게 늘어뜰인 모습이나, 하체의 비율이 크기 떄문에 특히 다리의 길이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지는 증상이 보임.”

 

 “증상발현 93일 차. A가 외출을 요구함. 장소는 인적이 없는 야산. 상부의 동의 절차를 구하고 실험체를 위한 차량을 공수받음. B와 C는 동행하지 않고 시설에서 TV를 보기를 원함 추신 B는 감자칩, C는 다량의 콜라를 요구함. A의 신장은 성장세가 더뎠으나 3M를 넘는 신장을 지님. 정부에서는 실험체의 정신 건강을 위해 특수차량을 파견. 무균무해가 보장되는 특수시설을 탑재한 차량을 통해 근처 숲으로 이동. 거대한 체구마저 작게 보이게 하는 삼림에 A는 극도의 흥분과 기쁨을 감추지 못함. 이따금 무언가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 연구원이 질문을 했으나 묵묵부답. 해가 떨어지자 추위를 호소 및 발을 닦을 수건을 요구.”

 

 “증상발현 100일 차. 그날 외출 이후 A의 행동이 뜸해짐. 신체 조직 샘플을 채취하고 청취 실험을 진행. T가 A에게 그날 무슨 일을 했냐고 질문하자 자연은 모든 해답을 알고 있다며 의미없는 대답을 반복. 이후 대부분의 실험을 거부. 이후 B와 C의 집중적인 실험이 진행됨.”

 

 “증상발현 120일 차. 외부에 실험체들이 살 수 있는, 외부와 격리된 특별한 시설이 완공됨. 이 시간 이후 시설에는 새롭게 입소하는 감염자를 제외한 기존 1호의 세 실험자는 특별한 시설 ‘에덴’으로 이송. 그 곳에서 실험체들을 감시, 관리를 진행하기로 함.”

 

 “이것도 읽습니까? 슬슬 목이 마른데.”

 

 “물 마시고 읽으면 되지 않습니까.”

 

 “흠흠 네.”

 

 물마시는 소리

 

 “후. 계속 할게요. 에덴 입소 1일차 및 증상 발현 121일차. 더 이상의 신체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으나, 지속적으로 체내 세포의 교체가 관찰됨. 교체된 세포는 새롭게 형성된 구강내 기관을 이용해 무색무취의 액체로 변환, 무의식 중 침과 희석되어 위장에서 소멸, 장내로 배출됨을 관측하였다. ‘엘프화’로 명명되어 회춘과 면역의 원인이 곧 ‘바이러스’라는 결과로 도출되는 것이었다.”

 

 “결론. ‘엘프화’ 바이러스는 모종의 형태로 인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에게 접촉을 통한 감염으로 진행되며 그 형태는 구강, 호흡, 섭취, 접촉 등 모든 형태로 가능한 것을 확인. 2차 접촉으로 인한 감염 사례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나 만의 하나를 상정해 이들과 접촉할 경우 특수 방호구 착용을 필수로 명시함.”

 

 “ ‘엘프화’ 바이러스의 증상 결론.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수 일 이내 급격한 수면 상태에 돌입, 척수와 근접한 모공을 제외한 털의 소멸. 신체 노화 방지 및 성장기와 사춘기의 세포 활성화 시기로 체연령을 회귀시킴. 감염 50~60일 경 질병과 외부 이물질에 대한 극도의 저항성을 보유 및 신체 형태의 변화. 세포 재분열이 심한 귀 조직 세포가 변화. 신체 성장판의 자극으로 인한 신체의 급격한 성장. 상하체 비율의 조정이 이루어짐. 하체의 길이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짐.”

 

 “다음은 실험체 A에 대한 비고 기록입니다. A는 에덴 입소 첫날 무단 이탈을 감행. 이탈 중 착용한 의복이 소실되는 사고가 발생. 기록 당시 외부 온도는 8도로 실험체의 동사 우려. 추적 중 불행 중 다행으로 접촉자가 없는 것으로 판명. 실험체는 의료 수거함에서 옷을 억지로 껴입으며 체온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임. 인공물질에 의한 극심한 고통에도 추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살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에서 ‘자연의 목소리’를 들으며 버텼다고 주장. 3일 간 추적을 통해 1명의 접촉자 외 별다른 접촉자가 없음을 확인. A의 신변 확인. 시설로 재수감.”

 

 “이거 제 이야기네요.”

 

 “네. 재형 씨 이야기네요.”

 

 “음.... 계속 읽을게요. A는 반성의 모습을 보이며 자신 때문에 같은 시설에 입소하게 된 신입 연구원 김재형에 대한 지속적인 면담을 요구하는 중이다.”

 

 “어.... 그래요?”

 

 “네. 다 읽으셨죠? 읽으신거 다 녹음되어 컴퓨터에 저장될거에요.”

 

 “여기 앞에 녹음된 게 하나 있는데 들어도 되나요?”

 

 “뭐... 그건 재형 씨 자유죠. 녹음 기록 고생하셨어요. 오늘은 돌아가서 쉬셔도 되요.”

 

 “네. 이거 들어보고 갈게요.”

 

 창문 너머 목소리는 이내 문을 열고 사라졌다.

 

 탁

 

 “아. 본 실험의 취지는 북극 빙하의 융해로 인한 고대 바이러스의 대기 노출 및 그 영향에 대한 분석이다. 다만 모든 실험 참가자는 자발과 동의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며, 부득이한 상황에서만 공권력이 투입됨을 명시한다. 또한 모든 실험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으며, 이로 인한 피해 발생이 없을 것을 맹세한다.”

 

 “...우리 연구팀은 미국 공동 연구 조사 중 구 소련의 기밀 자료를 입수할 기회가 생겼다. 그 자료에는 북극 빙하 저층부에 고대 바이러스가 숨겨져 있었고, 이를 추출하려다 대규모로 피해가 발생, 그대로 매장당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는 근거를 통해 결과값을 도출할 뿐이었다. 그것이 사실임을 알기 위해서는 사료가 필요했다.”

 

 “중국 공동 연구팀이 수상한 자료가 있다며 우리에게 분석을 요구했다. 미국 연구진과 한국, 일본, 중국의 팀이 모여 중국에서 발생한 희귀 질환에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현지로 파견되었고, 티베트 구석인 부탄 국경에 사는 한 노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중국 팀이 보내준 자료의 시기를 잘못 해석한 우리의 잘못이었다. 2차대전 중 일본군이 중국인을 상대로한 실험자료였을 줄은 몰랐다. 무려 80여 년 전 이미 우리 인류는 이 바이러스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불로불사. 그것을 염원한 인류의 꿈이 부덕한 실험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우리는 이곳 히말라야 산맥의 한 시체를 보고 깨달을 수 있었다.”

 

 “...그대들은 ‘아인종’이라고 하면 믿겠는가? 그렇다. 내 젊은 제자가 좋아한다는 그 ‘퍼리’와 같은 것. 인간이면서도 아닌, 인간의 형태를 한 무언가를 말이다. 내가 본 시체가 그러했다.”

 

 “단서를 찾아 히말라야 산맥의 어느 절간을 특정해 방문했지만, 인간의 근력으로는 열 수 없는 문이 닫혀 있었다. 무엇보다 80여 년간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한 지역이었다. 일본 팀이 가져온 장비를 이용해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우리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영하 30도의 설산에 피어난 화려한 꽃밭과 아직도 흐르는 정원의 물결. 그리고 추위에 떨던 우리에게 따뜻한 온기가 스쳐 지나올 정도로 생명력이 넘치는 작은 목조건물을 발견했었다.”

 

 “그 안에는 다소곳이 누워있는 한 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뿜어나오는 따뜻한 온기와는 반대로, 생명의 기척은 없었다. 우리는 그 여성에게 가까이 갈수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성의 발이 침대 밖으로 삐져나와 있어 침대가 작은 줄 알았지만, 여성이 지나치게 큰 것이었다. 마치 걸리버 여행기를 보는 것과 같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는거지만 대략 4M에 가까운 기형적인 신체였다.”

 

 “그러나 여성은 숨쉬고 있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심장박동을 확인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죽은 것이었다. 그러나 언제 죽었는지 우리는 특정할 수 없었다. 그녀의 등 부분에서 뻗어나간 식물의 줄기가 정원까지 이어져있는 것을 본 우리는, 그녀의 생명이 사라졌다기 보다는, 또다른 생명이 되었다고 생각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신의 주변 상황을 짐작했을 때, 사망한지는 30여 년이 흐른 것 같았지만, 잠자는 중학생 소녀의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현장을 건드리지 못했다. 우리는 그날 본 것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이 범접할 영역이 아님이 확실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것에 대한 극도의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고, 이 사실을 세계에 공표하는 대신, 그것이 가져올 인류 사회의 혼란을 막기 위해, 우리가 동분서주할 원동력을 제공해준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연구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되었고, 현장을 보존한 채 그대로 나왔다. 중국 팀 역시 중국 당국에 정보를 넘기지 않고 그대로 미국으로 망명한 것은, 우리에 대한 신뢰와, 그날 본 시신에서 얻은 경외스러운 정보가 공산당 정부에 넘어가면 어떻게 될 것인지 분명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찾은 지표는 이미 사망한 표본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이었다. 사료는 여전히 부족했고, 실험의 지원조차 힘든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번에 얻은 자료를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정부 관계자를 만나 설득할 예정이다. 미국 팀은 우선적으로 감염병을 빌미로 각 국의 교통로의 방역을 강화하며, 특히 북극에 접근하거나 원인 미상의 질병이 검출되는 상황에는 특수 팀을 파견하기로 합의를 봤다.”

 

 “만약 이 녹음을 듣는 사람에게 고한다. 우리 인류를 멸망시킬지, 아니면 또다른 세계를 열어낼 것인지. 그것을 위한 위대한 실험에 참여했다는 자부심을 가지도록. 이상”

 

 툭

 

 “하....”

 

 알지도 못하는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녹음을 듣자니 이미 엎어진 인생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명령하는 저 말투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재형은 녹음기를 엎어놓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디보자.... 녹음은 끝났으니... 그 사람을 만나러 가볼까?”

 

 그의 손에는 시설연락용 소형 단말기가 들려 있었다. 그 곳에는 현재 시설에 수감중인 실험체들의 정보가 들어 있었다.

 

 거기엔 북극 빙하에 잠들어있던 여러 가지 바이러스의 희생자들의 명단이 빼곡하게 쌓여있었다.

 

 “바이러스가 많다고는 했지만.... ‘아인종’이라고 부를 정도면 얼마나 많은거야?”

 

 혼잣말을 하면서 단말기를 이리저리 눌러보는 재형은 이윽고 ‘엘프화’ 단락에 손가락이 멈췄다. 자연스레 발걸음도 멈춘 재형은 터치판을 눌러 감염자 목록을 훑어보았다.

 

 ‘위나? 서위나? 이름 특이하네.’

 

 실험체 A의 이름은 서위나. 현재 실험지 탈주로 인한 경고 조치를 받은 채 독방에 수감된 상태라고 한다. 독방이라고는 하나 왠만한 1인 가구보다 좋은 형편이라고 하니 걱정은 들지 않았다.

 

 감염되기 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실험 기록을 보고있자니, 이런 곳에 갑작스럽게 갇혀 온갖 실험을 받고 자유가 예속된 상황에서 벌인 치기어린 행동이 한편으로 이해는 가는 재형.

 

 술취한 그날 밤. 그녀는 어디로, 누구와 통화한 것일까? 정황상 시설과는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녀는 무엇을 한 것일까? 시설은 그것을 추궁하기 위해 재형을 ‘아인 감찰관’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리고, 신의 장난인지, 또는 우연인지, 그는 위나와 신체 접촉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바이러스도 검출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내일 할 명단도 받았지.”

 

 위나의 방문 앞에 도착한 재형은 단말기의 하단으로 스크롤했다. 그곳에는 재형이 할 실험 보조 목록이 가득했다. ‘엘프화’ 부분은 이미 처리했다는 의미로 취소선이 그여 있었다. 

 

 재형은 목록을 훑어보고는 이내 숨을 고르고 방문을 두들겼다.

 

 ‘까짓거. 이미 이상하게 꼬인 인생. 괴문서 소재에 써먹을 만한 일이 생겼으니 이런거라도 열심히 해보자고.’

 

 똑똑.

 

 “위나 씨 계십니까?”

 

 재형의 손에는 미처 전원 버튼을 누르지 못해 꺼지지 않은 단말기의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손틈 사이에 보이는 글자는

 

 ‘수인화’

 

 라고 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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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챈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눈팅쟁이가 술먹고 똥글한번 싸지릅니다

재밌게 봐주시고 반응좋으면 더써보겠으니다

아님 말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