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돌아온 첩보장르 소설 리뷰글이다.

원래는 시간을 좀 들여서 전직 정보기관원, 종군기자, 군인들이 각 잡고 쓴 작품을 리뷰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프레드릭 포사이스, 존 르카레 작품의 줄거리를 까먹어버렸다.

따라서 이번 리뷰는 장붕이들이 사랑하는 웹소설 분야. 그중에서도 첩보장르 작품 하나를 추천하려 함.


전에 쓴 리뷰가 궁금하면? 아래 링크로ㄱㄱ



그럼 시작한다.






국가권력급 내전으로 인해 PIC 직원이 부랄 잡고 오열했던 우가리스탄마냥 씹창난 소말리아.


한 남성이 방으로 들어간다.


방으로 진입한 남성은 '목표'인 사내에게 다가가 생사를 확인한다.




이때 방으로 들어온 남자가 코드를 읊는다. 소말리아의 모처에 억류된 '에녹'이 바로 남자의 목표다.


자신을 미국 정부가 보냈다고 소개한 남자는, 에녹을 데리고 탈출을 시작하는데.


이 순간, 작품의 시점은 D-5로 되돌아간다.


서울시 송파동 자택에서 깨어난 남자가 문자를 확인한다. 13시(오후 1시)에 회의가 있다는 메시지.

남자는 성남에 위치한 회사, '태청무역'으로 출근한다.

그의 정체는 '태청무역 수출입2과 과장 한규호', 이번 작품의 주인공이다.



사장실로 들이닥친 한규호는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왜 불렀냐며 퉁명스럽게 묻는다.

사장의 대답은 간단했다.




미국 애들과 일하라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16개 정보기관으로 구성된 IC(정보공동체)에서 ODNI(국가정보장실 : IRTPA에 근거해 16개 정보기관들을 통제하는 사령탑) 다음으로 입김이 강한 CIA와 일하라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오늘 소개할 소설의 1화 내용이다.


1. 어떤 작품인가?


오늘 리뷰할 작품은 '기프티드', 도서관식객 작가가 집필한 현대 판타지+첩보장르 소설.

웹소설 커뮤니티에서 재밌는 첩보장르 웹소설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작품임.

첩보소설 좀 읽어봤다 싶으면 다들 한번씩은 읽어봤을 거임. 그만큼 유명한 작품이고, 첩보장르 자체가 마이너 취급을 받는 국내 장르소설 분야에서 이만한 명성을 구가하는 작품은 기프티드, 갓 오브 블랙필드가 거의 유일하지.

개인적으로 두 작품 모두 읽었는데 기프티드가 더 재밌었다.

아니, 그냥 첩보소설 읽고 싶으면 기프티드부터 보라고 권장할 수 있는 명작이라고 생각함.

잡썰은 이쯤하고 빠르게 장점과 단점부터 소개하겠음.



2. 장점.
국산 첩보장르 웹소설에서 기프티드가 가진 장점은 명확함. 작가는 작품에 첩보라는 소재를 아주 맛깔나게 녹여냈음.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정보작전을 현실에 근접하게 묘사하되, 뛰어난 서사필력으로 재미를 포함한 여러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았고.

국가정보원이 퇴직자를 중심으로 '회사 바깥'에 세운 외곽단체를 상징하는 태청무역, 정보기관이 억류된 정보관을 구출하는 준군사공작 등등. 기프티드를 읽다보면 곳곳에서 현실에 착안한 묘사 소소하게 볼 수 있음.


예를 들면 2화에서 주인공이 CIA 정보관들과 접선하는 장면.





이때 CIA 관계자들은 오산공군기지에서 대기하는 것으로 묘사됨.

중요한건 오산공군기지다.



실제로 오산공군기지는 미국 정보기관이 대한민국 내로 인력과 물자를 전개하는 창구역할을 하고 있음. 마찬가지로 정보부대가 상주하는 험프리스(정보보안사령부 산하 정보여단들이 있다)도 있고. 이는 2000년대 중반 NSA(미국의 신호정보기관 : 영국 GCHQ에 대응)가 작성한 문건에서도 언급되는 부분인데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



S33221 소속 정보관들은 대구 인근에 위치한 777사령부(COMINT/SIGNT 등 기술정보 전반을 담당하는 국군 신호정보부대) K50 기지에서 PUSHER로 명명된 장비를 확인하고자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FSK(주한미군으로 파견된 정보여단이 있는 곳)와 오산공군기지의 정보수집체계를 타지역으로 이송했다.



소설의 묘사와 일치하는 부분이지?

참고로 미국 정보기관은 해외에 주둔 중인 미군기지로 많은 정보관을 보내고 있음.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독일 등등 존나 많이 보냄.


CIA 같은 정보기관은 해외주둔 미군기지를 거점을 활용. 정보관들이 안전하게 활동하고, 유사시 미군의 자산이 현장에 고립된 정보관을 도울 수 있도록 하고 있음.


이러한 현실을 생각하면, 기프티드의 묘사는 상당히 현실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음.



3. 단점.
※중간에 자료사진이 나올 예정인데 피가 등장하니 주의!
※아래 문단은 개연성/핍진성을 해치는 단점을 논하지 않음.현실성을 따지는 부분이므로 밀스퍼거처럼 '티끌만한 고증오류'조차 넘기지 못하는 예민한 성향이 아니라면 총평으로 넘어가도 전혀 문제 없음! 그리고 소설은 소설로만 보는 거 잊지 말고.



그렇다고 장점만 있느냐? 아쉽지만 고증 분야에 한해서 단점이 존재함.

스포일러 방지 차원에서 1, 2화를 기준으로 단점을 꼽자면 '외곽단체를 운영하는 국정원'이 있음. 옛날에는 퇴직자들이 회사 차려서 국정원으로부터 외주 받고 그랬는데... 현재는 전부 사라진 상태다.

퇴직자가 개인적으로 (전)직장동료의 연락을 받아서 도와주는 경우는 있어도, 퇴직자가 차린 위장회사에 활동비를 지급하는 건 옛말이지.

만약 국가정보원이 CIA 합동작전에 사람을 보내야한다면, 분명 아프리카로 파견된 지역담당관들을 보냈을 거임. 군사쪽 인력이 필요하다면 정보부대에서 끌어왔을 거고. 굳이 정식 직원도 아닌 외부인력을 그 자리에 꽂을 이유가 없지만.

주인공이 워낙 특출난 인물이라서 뽑힌 거니까 작품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이유를 알 수 있음(스포일러니까 직접 보러ㄱㄱ)


그리고 또 하나 더 뽑자면



'CIA가 외국 정보기관 산하 단체와 협력'하는 장면이 있네.

사소한 고증 오류이긴 한데 나름 치명적인 부분이기도 함.

일단 정보기관은 기밀 유출을 경계하고, 기타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억류된 자국 정보관 구출' 같은 정보작전은 외국 정부와 협력하지 않음. 작전에 대해 아는 사람이 늘어나면 보안유지가 어렵거든.



더군다나 무력을 동반한 구출작전(준군사공작의 범주에 포함)은 들킬 위험이 그 어떤 정보작전에 비해 높기로 유명함. 들키면 좆되기도 하고. 이런 '들키면 안되는 정보작전'을 국가정보학에서는 비밀공작이라고 규정함.

구출작전은 7개 비밀공작을 통틀어 가장 난이도가 높고, 동시에 들켰을 때 후폭풍이 큰 작전임.

따라서 이런 정보작전은 외국 정보기관에 맡길 수 없고, 맡겨서도 안됨.



작전실패나 배후가 들키는 건 둘째치고, 만약 정보관을 구출한 외국 애들이 걔를 탐문해서 정보를 가져가거나

(2023년 9월경 공개된 러시아의 선전영상, 우크라이나군을 기습한 SSO 오퍼레이터가 통신기기 및 서류를 탈취하는 장면)


억류된 시설을 SSE(수색)해서 방첩기관에 넘어갔던 자료를 홀라당 탈취해버리면 대참사가 일어나거든.

???:그걸 니들이 왜 가져가 씨발새끼들아!



그래서 CIA나 SVR 같은 정보기관들은 구출작전처럼 무력이 필요한 정보작전에 대비해 무력전담부서를 따로 두고 있음.

(사진은 본문과 아무런 연관이 없음. 아무튼 그럼.)

이런 부서들은 정보기관 내부 부서/국방부 산하 특수정보부대, 혹은 델타나 씰처럼 정보작전을 병행하는 군 특수전 부대가 대부분임.

특히 델타나 씰은 SCI/SI로 분류되어 야전부대조차 함부로 열람할 수 없는 정보기관 자료들을 자주 접하고, 접근할 권한이 있어서 부담 없이 투입할 수 있거든. CIA 내부만 놓고 봐도 SAC 소속 PMOO(준군사공작관), GRS팀(정보관을 현장에서 경호하는 계약직 직원들 : 영화 '13시간'의 주인공이다) 등등 뭐 많어.

이걸 고려하면 이미 실전으로 검증된 자원들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는데 굳이 외국인을 데려와야 하나? 싶은 의문이 들 수도 있지. 오산에서 외국인을 데려올 시간이면 아프리카 파병나간 오퍼레이터들 헬기에 태워서 소말리아로 날리고도 남았거고.

아쉽게도 이런 부분에서 소설은 오산공군기지 파트와 달리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주곤 함.

사소한 부분이긴 해도 국가정보기관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될 판단이라 나름 치명적인 오류임. 대역물로 치자면 영의정이 네온 사인 가죽재킷+메카-할리데이비슨에 앉아서 네오-주상전하를 만나는 것 정도?
*다만, 이 단점은 작품이 전개되면서 궁금증이 해소되는 부분임(왜 CIA가 SAC를 두고 주인공을 선택했는지). 그러나 중대한 스포일러라서 리뷰글에는 적을 수 없었음.



4. 총평 : 5점 만점 기준, 최소한 4점은 가볍게 넘어가는 명품 웹소설.
단점을 강조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기프티드는 명작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소설임. 사소한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작품이거든.

불모지 같은 국내 첩보장르 분야에서 이 정도의 현실성을 갖춘 작품은 없고 필력도 매우 뛰어난 작품임.

존 르카레, 프레드릭 포사이스, 톰 클랜시, 빈스 플린 등등 내로라 하는 첩보장르의 거장들조차 '호흡이 너무 길다'는 평가를 받는데, 기프티드는 인물의 조형/세밀한 묘사/사건의 전개로 이를 커버하고 있음. 위에 언급한 단점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우수한 필력은 상상력과 낭만을 자극하는 소재와 맞물려 폭발적인 시너지를 발휘하고, 독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검증된 소설.

첩보물을 좋아하든, 장르소설 자체를 사랑하든, 기프티드는 모든 장붕이에게 추천할 수 있는 명작 중의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굉장히 만족스러운 소설이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네.

꼭 봐보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