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천 전투일려나?


고려군 선발대 지휘관
정윤 왕무-2대 국왕 혜종장군 박술희


고려군 본대 지휘관
최고 지휘관
고려국왕 왕건
좌강 지휘관
상보 견훤
대상 박술희
대상 견권
대상 황보금산
원윤 강유영
지천군 대장군 원윤 능달
원윤 기언
원윤 한순명
원윤 흔악
정조 영직
정조 광세
중군 지휘관
명주 대광 왕순식
대상 긍준
대상 왕겸
대상 왕예
원보 인일
대상 유금필
원윤 관무
원윤 관헌
우천군 대장군 원윤 정순
정조 애진
천무군 대장군 원윤 종희
간천군 대장군 김극종
원보 조간
우강 지휘관
대상 김철
대상 홍유
대상 박수경
원보 연주
원윤 훤랑
보천군 대장군 원윤 삼순
원윤 준랑
정조 영유
정조 길강충
정조 흔계

고려군 삼군원병 지휘관
장군 왕함필대장군 대상 강공훤원윤 이능필


백제군 지휘관
최고 지휘관
백제국왕 원수 견신검
휘하 지휘관
청주성주 견양검광주성주 견용검이찬 장군 능환장군 박영규-내응자
좌장군 효봉좌장군 덕술좌장군 애술좌장군 명길
장군 흔강장군 견달장군 은술장군 금식
장군 우봉장군 부달장군 소달장군 구도


음력 936년 02월 미상
병신 19년 봄 2월. 견훤의 사위인 장군 박영규가 투항을 요청하였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 뜻을 전하면서 또 말하기를, “만약 의로운 병사들을 일으키신다면, 내부에서부터 응함으로써 왕의 군사들을 맞아들일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왕이 크게 기뻐하며 그 사신에게 후하게 상을 내리고, 돌아가 박영규에게 보고하게 하며 말하기를, 
“만약 그대의 은혜를 입어 가는 길에 막힘이 없게 된다면, 먼저 장군을 뵙고 나서 당에 올라가 부인께 절을 올릴 것이며, 형처럼 섬기고 누이처럼 높여 반드시 끝까지 후하게 보답하겠습니다. 하늘과 땅의 귀신들이 모두 이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음력 936년 06월 미상
여름 6월. 견훤이 청하여 말하기를, “이 늙은 신하가 멀리 거친 바다를 건너와 성스러운 교화에 의탁하였으니, 그 위엄과 높은 덕에 의지하여 역적 아들을 죽이기를 원합니다.”라 하였다. 왕이 처음에는 때를 기다려서 움직이고자 하였으나, 견훤의 거듭된 요청을 가엾게 여기어 그의 말을 따랐다. 
이에 먼저 정윤 왕무와 장군 박술희로 하여금 보병과 기병 1만 명을 이끌고 천안부로 속히 가게 하였다.


음력 936년 09월 미상
가을 9월 왕이 삼군을 거느리고 천안부에 이르러 병력을 합하고 일선군으로 나아가자 신검이 무력으로 역공하였다.


음력 936년 09월 미상
가을 9월. 왕이 삼군을 통솔하여 천안부에 이르러 군대를 합치고 일선군으로 진격하였다. 신검이 군대로 막아서니, 일리천을 사이에 두고 진을 쳤다. 
왕이 견훤과 함께 병사들을 사열한 후, 견훤과 대상 견권·박술희·황보금산, 원윤 강유영 등에게 마군 10,000명을 거느리게 하고, 지천군대장군 원윤 능달·기언·한순명·흔악과 정조 영직·광세 등에게 보군 10,000명을 거느리게 하여 좌익군으로 삼고, 
대상 김철·홍유·박수경과 원보 연주, 원윤 원량 등에게 마군 10,000명을 거느리게 하고, 보천군대장군 원윤 삼순·준량과 정조 영유·길강충·흔계 등에게 보군 10,000명을 거느리게 하여 우익군으로 삼았으며, 
명주의 대광 왕순식과 대상 긍준·왕렴·왕예, 원보 인일 등에게 마군 20,000명을 거느리게 하고, 대상 유금필과 원윤 관무·관헌 등에게 흑수·달고·철륵 등 여러 오랑캐들의 정예 기병 9,500명을 거느리게 하고, 우천군대장군 원윤 정순과 정조 애진 등에게 보군 1,000명을 거느리게 하고, 천무군대장군 원윤 종희와 정조 견훤 등에게 보군 1,000명을 거느리게 하고, 간천군대장군 김극종과 원보 조간 등에게 보군 1,000명을 거느리게 하여 중군으로 삼았다. 
또 대장군인 대상 공훤과 원윤 능필, 장군 왕함윤 등에게 기병 300명과 여러 성에서 모은 군사 14,700명을 이끌게 하여 삼군의 조력 부대로 삼았다. 
이윽고 삼군이 북을 울리면서 전진하는데, 홀연히 칼과 창 같은 형상을 띈 흰 구름이 아군 위에서 생거나더니 적진을 향해 흘러갔다. 
백제의 좌장군 효봉·덕술·애술·명길이 아군의 위세가 대단히 성한 것을 보고는 투구를 벗고 창을 집어던지고서 좌익군에 항복하니, 적군들이 사기를 잃어버리고 감히 움직이지 못하였다. 왕이 효봉 등을 치하하고 신검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효봉이 말하기를, “신검은 중군에 있으니, 왕께서 좌우의 부대를 합쳐서 공격하신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공훤에게 명하여 곧장 중군을 치게 하고, 삼군이 일제히 나아가 좌우에서 공격하니 적군들이 크게 무너졌다. 장군 흔강·견달·은술·영식·우봉 등 3,200명을 사로잡고, 5,700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적군이 무너져 달아나자, 아군이 황산군까지 추격하여 탄령을 넘어 마성에 진영을 쳤다. 신검이 양검·용검 및 문무관료들과 함께 항복하여 오니, 왕이 그를 위로하였다. 
사로잡은 백제의 장수와 병졸 3,200명은 본토로 돌아가라고 명하였으나, 다만 흔강·부달·우봉·견달 등 40명은 그 처자들과 함께 개경으로 보냈다. 
그리고 능환을 불러 꾸짖으며 말하기를, “처음에 양검 등과 더불어 임금이신 아버지를 가두도록 모의한 자가 너이니, 신하된 의리가 이러하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능환이 머리를 숙이고 대답을 하지 못하니, 마침내 그를 처형하라고 명하였다. 
신검이 참람하게 왕위에 오른 것은 다른 사람의 위협을 받아 그러한 것이지 자신의 본심이 아니었으며, 또한 투항하여 죄를 애걸하므로 특별히 용서하여 주었다. 견훤은 근심하고 분개하다가 등창이 나서 얼마 후에 황산에 있는 한 사찰에서 죽었다. 
왕이 백제의 도성으로 들어가 명령을 내리기를, “괴수가 이미 복종하였으니, 나의 백성들을 침해하지 말라.”라고 하고, 장수와 병졸들을 위로하고 그 재능을 헤아려 임용하였으며, 군령을 엄정하고 명백히 하여 터럭 하나 만큼도 침해하지 않으니, 주·현이 평안해지고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신검에게는 관작을 내려주고, 양검과 용검은 진주로 유배보내었다가 얼마 되지 않아서 죽였다. 
왕이 박영규에게 말하기를, “견훤이 나라를 잃고 멀리 떠나오니 그의 신하와 자식들 중 한 사람도 위로하고 도와주는 이가 없었는데, 오직 경의 부부만이 천리 길에 소식을 보내어 정성스러운 뜻을 전하고, 아울러 과인에게 귀부하였으니, 그 의로움을 잊을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좌승으로 제수하고 밭 1,000경을 내려주었으며, 역마 35필을 써서 집안 사람들을 맞아오도록 허락하고, 그의 두 아들에게도 관직을 주었다.


전근대 한국사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전투들 중 하나이고, 양군 측 모두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전투인데다

승자 측은 향후 몇백년간 한반도를 지배하는 권세를 누리게 되지만, 패자 측은 몰락하는 것이 결정된 전투라는 점에서 일본의 세키가하라 전투와 유사한 면이 있는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