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9년-1785년 2월 10일

능행 후 사하리에서 모의 전투를 시행하여 포상하다


강릉에 전알하고 친히 제사를 지낸 다음 태릉까지 전알하였다. 회가가 사하리에 이르러 각신, 승지, 옥당에게 선찬하였다. 장전 앞에 용호영의 초요기를 세우자 금군 별장 이득제가 금군을 이끌고 급히 달려왔는데, 주상이 마병 별장 조학신에게 은밀히 명하여 난후별대를 이끌고 싸우게 하였다. 주상이 말하기를,
“중과부적이다. 징을 울려 진을 파하라.”
하였다. 남색 초요기를 세우고 깃발을 흔들며 북을 치자 금위대장 서유대가 기병 50명을 이끌고 급히 말을 달려 서쪽에 진을 펼치니, 주상이 금군 별장 이득제에게 명하여 기병 50명을 이끌고 동쪽 장전 앞에 진을 펼치게 하였다. 이어 북을 치고 천아성을 불며 남색 초요기로 왼쪽을 가리키자 금위영의 진에서 고함을 지르며 금군의 진 쪽으로 달려가 싸웠다. 
주상이 은밀히 마병 별장 조학신에게 명하여 휘하 기병 50명과 무예 출신을 이끌고 기병을 조직해 양쪽 진영 사이를 치게 하고 또 가전과 가후에게 명하여 동쪽으로 나아가 이를 에워싸게 하였다. 추격한 지 몇 경이 지나자 말을 사로잡은 자에게는 말을 주고 사람과 말을 사로잡은 자에게도 똑같이 하였으며 깃발을 빼앗은 자에게는 면포를 주고 조학신에게는 사복시의 말을 주었다. 이어 대취타를 연주하도록 명하여 군사들로 하여금 각각 신지로 돌아가게 하였다.
주상이 가전과 가후와 무예 출신 및 별대 마병에게 명하여 둥근 진을 치게 하고 대기치로 사면에 문을 만들게 하였다. 금위대장과 금군 별장에게 명하여 단신으로 말을 몰아 채찍과 몽둥이를 들고 진 속으로 들어가 싸워서 서로 무기를 빼앗게 하자 서유대와 이득제가 함께 말에 뛰어올라 곧장 둥근 진으로 돌격하니, 모두가 고함을 치며 말을 돌려서 그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선전관 김희에게 명하여 주마를 타고 미전을 가지고 진문으로 들어가되 마치 신전을 받들고 명을 전달하는 것처럼 하다가 방심하는 사이에 이득제의 수기를 빼앗게 하자 김희가 말을 몰아 이득제의 수기를 빼앗아 장전 앞에 와서 바쳤다. 주상이 내취에게 명하여 개가를 연주하게 하였다. 
김희를 특별히 6품으로 올려 주었다. 이득제가 서유대의 수기를 빼앗자 서유대가 다시 이를 빼앗았다. 잠시 후 서유대가 말을 몰아 양쪽 진영 사이를 빠져나오자 이득제도 말을 몰아 가후의 진에서 나왔다. 서유대와 이득제에게 입시하도록 명하고, 유시하기를,
“이번에 추격하도록 명한 것은 바로 시재하려는 것이었다. 근래에 장신들이 말 모는 기술을 익히지 않는데 경들은 말을 능숙히 모니, 매우 가상하다. 앞으로도 반드시 말타기를 잘 익혀 스스로 안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고, 이어 서유대에게는 표피를 하사하고 이득제는 공과 실이 서로 같다고 하여 논상하지 않았다.


당시 모의 전투 기록이 상세하게 나오는데 원진을 펼치는 기록도 나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