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왜구의 연이은 대규모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왜구를 피해 바다와 먼 내지인 철원으로 천도하려는 시도가 있었음


고려사절요 > 고려사절요 권30 > 신우1 > 우왕 3년 > 5월 > 왜구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천도를 논의하다

음력 1377년 5월 미상

경성이 바닷가에 인접하여 왜구를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지로 도읍을 옮기고자 기로 윤환 등을 모아 동과 지 두 글자를 써놓고 가부를 의논하도록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비록 기꺼워하지 않았으나 이후 만약에 변이 생기면 화가 자신에게 미칠까 두려워하여 모두 동자에 점을 찍고 서명하였다. 오직 최영만이 불가하다고 하며 이내 군사를 징발하여 굳게 지킬 대책을 진술하였다. 이인임이 말하기를, “지금 피폐한 땅이 1,000리에 이어져 농부들이 경작을 멈추고 구름과 무지개만 바라보고 있는데, 또 군사를 징발하여 농사일을 잃게 하는 것은 나라를 위한 계책이 아니오.”라고 하였다. 경복흥과 최영 등이 태조의 진전에 이르러 동과 지를 점쳐서 지자를 얻었다. 우왕이 말하기를, “도적이 매우 가까이에 있는데, 점을 따를 수 있겠는가.”라고 한 뒤 정당문학 권중화를 보내어 철원에 터를 살펴보도록 하였다.


고려사절요 > 고려사절요 권30 > 신우1 > 우왕 3년 > 5월 > 최영이 철원 천도를 막다

음력 1377년 5월 미상

우왕이 철원에 궁성을 쌓을 것을 명하였다. 최영이 말하기를, “여름철에 도읍을 옮기면 농사를 방해할까 두렵습니다. 또한 경성을 적에게 넘기면 나라가 장차 나날이 기울게 될 것이니, 가당키나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일이 마침내 중지되었다.


고려사 > 권113 > 열전 권제26 > 제신 > 최영 > 최영이 왜구를 피해 천도하려는 것에 반대하다

경도가 바다와 가깝기 때문에 왜적이 노략질할까 두려워하여 내지로 천도하고자 가부를 의논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후환을 염려하여 모두 옮기고자 하였으나 최영이 홀로 군사를 징발하여 굳게 지킬 계책을 진언하였다. 신우가 듣지 않고 철원에 궁성을 짓도록 명령하니 최영이 말하기를, “지금 천도하면 특히 농사를 방해하고 백성들을 소란스럽게 할뿐만 아니라 또한 왜적들에게 넘보는 마음을 열게 하여 나라가 장차 날로 궁지에 빠질 것이니 올바른 계책이 아닙니다. 청컨대 태후를 받들어 철원으로 거처를 옮기시고 전하께서는 여기에 머물면서 민심을 진정시키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신우가 말하기를, “태후께서 거처를 옮기시면 내가 어찌 홀로 머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최영이 말하기를, “태후께서는 연세가 이미 많으시니 만약 뜻밖의 일이 생기면 움직이기가 더욱 어렵습니다.”라고 하니, 신우가 옳다고 여겨서 일이 마침내 그치게 되었다.


최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왕이 직접 철원에 좋은 터를 살펴보게 하고 궁성을 쌓을 것을 명하는 등 거의 이루어질 뻔했지만 최영의 결사반대로 태후의 거처만 철원으로 옮기는 것으로 끝나게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