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절요 > 고려사절요 권1 > 태조신성대왕 > 태조 2년 > 3월 > 양경의 불교 시설을 개창 및 보수하다

음력 919년 3월 미상

3월. 도성 안에 법왕사·왕륜사 등 10개의 사찰을 창건하고, 개경과 서경의 탑묘와 소상 중 허물어지거나 이지러진 것들을 아울러 보수하게 하였다.
사신이 말하기를, “태조는 창업을 이룬 후, 겨우 해를 넘겼을 뿐인데도 도성에 10개의 사찰을 세우고 개경과 서경의 탑묘를 수리하였다. 아아, 경중과 완급 조절의 마땅한 이치에 어두웠는가? 그렇지 않으면 화복과 인과를 말하는 설을 두려워했는가? 이때는 두 큰 강국이 아직 평정되지 않았고, 여러 성들 중에 아직 항복하지 않은 곳이 또한 많아서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백성들의 고통이 아직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어찌 무익한 일을 하는 데에 급급하여 이러한 상황에 이르렀는가?..."


고려사절요 > 고려사절요 권1 > 태조신성대왕 > 태조 26년 > 5월 > 왕이 서거하다

음력 943년 5월 20일 정유,
양력 943년 5월 20일

사신이 말하기를, “태조는 너그러움으로써 아랫사람들을 다루었으니 어질고 지혜로운 자들이 호응하였고, 성심으로써 남을 대하였으니 멀고 가까운 이들이 모두 따랐으며, 살리기를 좋아하는 인덕은 타고난 성품에서부터 나왔고, 백성들을 가엽게 여기는 마음은 지극한 정성에서부터 일어난 것이다. 견훤이 부자간에 서로 상하게 하니 정벌하여 그 땅을 거두어들였고, 김부는 임금과 신하가 함께 귀부하여 오니 예로써 대우하였다. 거란과 같은 강자도 동맹국을 침공하여 멸망시키니 곧 그들과 관계를 끊었고, 발해와 같은 약자도 영토를 잃고 돌아갈 곳이 없게 되니 곧 그들을 위무하였다. 자주 서경에 행차한 것은 근본이 되는 땅이기 때문이요, 몸소 북쪽 변두리 땅을 순행한 것은 사납고 억센 풍속을 잇대어 교화시키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왕업을 처음 일으켜 고쳐 시작할 때에 비록 미처 예악에 힘쓸 겨를이 없었지만 그 도량과 심오한 지략, 깊은 인덕과 후한 은택은 진실로 이미 500년 나라의 명맥을 배양시킨 것이다.”라고 하였다.


고려사절요 > 고려사절요 권2 > 혜종의공대왕 > 혜종 2년 > 미상 > 왕규가 왕요와 왕소를 참소하다

음력 945년 미상

왕은 왕규가 왕요와 왕소를 해치려는 징조라고 생각하였으나 또한 왕규에게 죄를 묻지 않고, 도리어 장공주를 왕소의 처로 삼아 그의 세력을 강화시켰다. 공주는 어머니의 성을 따라 황보씨라고 하였다. 이후로 동성에게 시집간 이들은 모두 그 본래 성을 피하고 외가의 성을 불렀다.
사신이 말하기를, “아내를 맞아들임에 동성을 취하지 않는 것이 예이니, 비록 100세대가 지나더라도 혼인을 하지 않는 것이다. 혜종이 공주를 아우에게 처로 삼게 한 것은 어째서인가. 당시의 풍속이 그러했던 것이다. 태조는 세상에 드문 임금으로서 옛 법을 본받기 시작하고 풍속을 교화하는 데에 뜻을 두었으나, 습속에 젖어 바꾸지는 못하였다. 이때부터 그 이후로는 이를 가법으로 보아 답습하며 평온히 이상하게 여기지를 않았으니, 중엽 이후에 비록 4·6촌 사이의 혼인은 금지하였으나, 동성 간의 혼인은 끝내 금지하지 못하였다. 『좌전』에 이르기를, ‘남녀가 성이 같으면 그 후손이 번성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동성 사이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지친임에랴. 지금 고종과 이종 자매를 취한 자들을 보면 대체로 후손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그 세대가 500년이 지나더라도 종파와 지파가 끝내 수 십 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뒤에야 선왕이 예를 정한 뜻이 깊음을 알게 될 것이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고려사절요 > 고려사절요 권3 > 현종원문대왕 > 현종 22년 > 8월 > 강감찬이 사망하다

음력 1031년 8월 미상

사신은 말하기를, “두텁도다, 하늘이 이 민을 사랑하심이여. 국가에 장차 재앙이 닥쳐오려고 하면 반드시 세상에 이름난 현자를 낳아 대비하시는구나. 기유년-1009년과 경술년-1010년에 역신들이 변란을 꾸미고 강대한 적이 침입해 와서 안팎이 어지럽고 혼란해져 나라의 운명이 위급해졌는데, 이때에 강공이 없었다면 장차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을지 알 수가 없다. 공은 들어와서는 모의에 참여하고 나가서는 정벌을 담당하며 재앙과 변란을 평정하고 삼한을 회복하여 이로써 종묘·사직과 생민들이 영원히 힘입도록 하였으니, 하늘이 낳으신 자를 통하여 이 사람들의 재앙을 대비한 것이 아니라면 그 누가 능히 이와 같이 할 수 있었겠는가. 아아, 성대하도다..."


옛날 사람들이 더 예전의 행적들을 평가하는 게 흥미로운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