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 성주 고말로의 영정



고려사절요 > 고려사절요 권3 > 현종원문대왕 > 현종 15년 > 7월 > 탐라의 주물과 고몰 부자를 관직에 임명하다

음력 1024년 7월 미상

탐라의 추장 주물과 아들 고몰을 아울러 운휘대장군 상호군으로 삼았다.


고려사절요 > 고려사절요 권3 > 현종원문대왕 > 현종 20년 > 6월 > 내조한 탐라의 세자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음력 1029년 6월 미상

6월. 탐라의 세자 고오노가 내조하니, 유격장군을 제수하고 도포 1벌을 하사하였다.


고려사절요 > 고려사절요 권4 > 정종용혜대왕 > 정종 9년 > 12월 > 탐라국 성주가 후계 왕자의 책봉을 요청하다

음력 1043년 12월 미상

12월. 탁라국의 성주인 유격장군 가리가 아뢰기를, “왕자 두라가 근래에 사망하였으니, 호잉을 왕자로 삼기를 청합니다.”라고 하고는 방물을 헌상하였다. 탁라는 곧 탐라이다.


고려사 > 권111 > 열전 권제24 > 제신 > 임박 > 임박이 「정심론상」 20조를 올리다

공민왕 16년-1367년에 제주선무사가 되었는데, 임박이 제주에 이르러 만호에게 이르기를, “달달목자는 배반하기를 좋아하니, 그대는 마땅히 진심으로 어루만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다. 

또 성주와 왕자에게 이르기를, “그대들은 신인의 후예인데, 신라에 들어와 성주가 되었고 본조에 들어와 왕자가 되었소. 역대 임금들을 섬겨 복종하였고, 역대 임금들 또한 그대들을 매우 후하게 대우하였으니, 그대들은 마땅히 각각 한 마음으로 복종하여 섬길 것이며 목자와 더불어 변란을 부채질하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성주·왕자·군민들이 모두 엎드려 말하기를, “감히 명령에 따르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기록들을 보면 탐라 제후 부자를 대장군 상호군에 임명하는 등 고려 조정에서는 꽤나 인정했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