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안먼 항쟁에 대해 두 가지 평가를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톈안먼 항쟁이 권위주의적인 중국 국가를 비판하고 서구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체제를 대안으로 삼은 투쟁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학생 지도부의 일원이었던 왕단과 노벨평화상을 받은 류샤오보 등이 그렇게 주장합니다. 이 항쟁이 민주적 권리들을 요구한 것은 맞지만 서방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삼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말이 아닙니다. 항쟁 지도자들의 일부가 서구 자유민주주의에 환상을 가졌다는 것은 참말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은 항쟁의 목표와 지향에 대해 모호했습니다. 그리고 민주적 권리들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항쟁 참가자들은 생활수준의 안정도 요구했습니다. 이런 요구는 사회경제적 요구로, 자유민주주의의 일부로 간주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평가는 항쟁이 개혁파의 시장화 정책에 대한 반대였다는 것입니다. 특히 중국 신좌파가 이렇게 평가합니다. 당시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개혁개방이 초래한 모순들에 반대해 거리로 나선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는 착취와 권위주의적 억압을 하는 관료의 지배에 도전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지배계급의 다른 분파가 대중의 요구에 응답하리라는 기대는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당시 심각한 위기 속에서 변화를 제공할 수도 양보를 할 수도 없던 지배계급은 진퇴양난 속에서 피의 학살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 신좌파의 평가는 중국 체제와 공산당에 대한 근본적 비판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중국 신좌파 대부분은 2000년대에 국민국가간 경쟁에서 자국 편을 들었고, 마침내 국유기업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해서 중국공산당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돌아섰습니다. 중국 정부는 여전히 톈안먼 항쟁이 “외부 세력에 의해 조직된” 것이었다고 비난하고, 당시 학생 시위를 ‘동란’이라고 규정한 것도 조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톈안먼 항쟁은 민주주의를 염원한 학생들과 이에 고무 받은 노동자들의 대체로 자발적인 저항이었습니다. 노동자와 학생들은 지배 관료들의 부패와 불평등에 반대하며 민주적 권리와 생활수준의 안정을 요구했고, 지배계급을 위협하는 거대한 힘을 보여줬습니다.
톈안먼 항쟁은 위대했지만, 약점과 한계도 있었습니다. 계엄령에 맞서 5월 22일 총파업을 하자는 공자련의 제안이 학생 지도부에 의해 거부된 것이 그런 사례입니다. 만약 총파업이 철회되지 않고 실행됐다면, 그래서 노동계급 고유의 경제적 힘이 발휘됐다면, 항쟁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바이케이트 저항에 밀려 일시 후퇴했던 정부가 다시금 공세에 나섰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톈안먼 항쟁에서 학생들이 보여 준 투쟁의 역동성과 노동자 대중이 살짝 보여준 집단적 힘은 중국에서 진정한 변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공자련은 강령에 해당하는 임시장정에서 민주주의 요구와 더불어 국유기업에 대한 통제권과 일터 민주주의 같은 사회주의적 지향을 보여 주었습니다. 노동자와 학생들이 장악한 베이징 거리는 당시 중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자유롭고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중국 지배자들은 1989년 노동자와 학생들의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할 수 있었지만, 언제 다시 그런 저항이 벌어질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톈안먼 항쟁을 발생시킨 원인들을 무지막지한 폭력을 사용해 눌러 놓은 데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루무치나 라싸에서 소수민족의 반란이 벌어질 때, 농민공들이 파업을 벌일 때,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이 저항할 때마다 지배 관료는 톈안먼 항쟁의 유령이 나타날까 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중간계급 사람들도 현재의 생활 조건에 불만을 느끼고 있으며 미래를 낙관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반대로 실업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만연해 있습니다. 최근에는 대만과 전쟁이 발발하면 물가가 급등하고 사회적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이민을 가겠다고 말하거나 미래를 비관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탕핑”(躺平)을 주장합니다. 그렇다고 대중이 탈출구를 찾을 수 없다고 가정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해 말 정부의 제로 코로나 통제·봉쇄 정책에 반대하는 대중 행동과 폭스콘 노동자들의 파업은 대중이 때가 되면 집단행동을 할 것임을 분명히 증명했습니다. 봉쇄·통제 정책의 극적인 종식과 함께 ‘백지 시위’는 끝났지만 투쟁 과정에서 대중의 자신감은 크게 증가했습니다. 동시에 대학과 지식인 청년들(해외에 있는 중국 유학생 포함)이 사회의 미래에 대해 활발히 논의할 조짐도 보입니다. 지난 2~3년 동안 중국 본토에서 혁명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청년들의 온라인 그룹들이 생겨났습니다. 상하이와 베이징 같은 도시에서는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젊은 여성들이 백지 시위 기간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국가의 통제와 인터넷 감시가 극도로 엄격한데도 진보적인 청년들의 사고가 활성화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발전입니다. 지금 중국의 현실을 보면 제2의 톈안먼 항쟁이 벌어질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런 가능성이 현실이 되도록 또 그 투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지지와 연대를 보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