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영웅들의 시대


8) 바둑 중달


귀인이라 불리는 자와 승상 조조의 면담으로 인래 승상부의 업무는 오늘 오전동안 사실상 없는것이 되어버렸다.


간만에 한시름 놓인 정욱과 마찬가지로 운 좋게 잠시 쉬게 된 순욱은 사이좋게 차를 한잔 하고 있었다.


"흠...승상께서 인재를 탐하시는건 알았지만, 내 살면서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로군, 안 그런가 문익?"


여름이라는 계절에 제 맞는 시원한 차를 조심스레 마시는 그 한명의 인물이 바로 순욱이였다.


"뭐, 그러는 날도 있는 법이죠. 시간이 지나면 강산이 변하듯, 사람의 마음이란것도 변하는법 아니겠습니까?


마치..우리들처럼 말이죠."


-상서령이자 조조 최고의 심복 순욱-


정욱은 아침에 본 그 젊은 사내의 정체가 궁금해져 안절부절 거렸다.


"하... 대체 저자가 누구인가? 이래서야 관심을 끌래야 꿀 수가 없구만!"


순욱은 다 마신 찻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사마의라고 합니다. 사마씨의 그 사마입니다. 동탁이 낙양을 불태울 때 가세가 기울뻔했지만 어찌저찌해서 살아남은 모양이더군요."


"사마씨...역시 그 정도의 집안은 되어야..아니 그것도 뭔가 이상하군. 어째 사대삼공의 원소에게도 무릎 꿇지 않는 승상이...?"


"저는 수없이 많은 사람을 이 눈에 담고 살아왔습니다. 간신, 역적, 효웅, 현자, 소인배, 대인배, 영웅...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마땅한 평가를 내릴 수 있죠. 하지만 그의 경우 조금 다릅니다.


그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이 아닌, 알아도 다 알 수 없는 깊은 바다와도 같습니다."


정욱은 순욱의 말에 한탄하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잣대로는 감히 평가할 수 없는 자들이 나타나겠군.


순욱이 그의 말을 덧붙였다.


"사마의는 다르죠, 확실히 우리의 잣대로는 평가하기 힘듭니다. 눈이 침침해지는것 같아 안타깝군요."


한편 승상부에선 진지한 말솜씨보단 묵묵한 바둑돌이 판 위를 오가고 있었다.


"병은 나았는가? 요저번엔 중풍에 걸려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안 사람의 도움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갓 태어난 아들도 있었고요."


조조가 이전에 사마의에 대한 명성과 순욱의 추천 때문에 그를 초빙하려 했지만 병이 걸렸다는 소식에 그럴 일은 없게 되었다.


"과연...역시 사마중달이로구만."


보기보다 바둑에 대한 조예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조조는 매우 흥미로운 감정을 느꼈다.


"훌륭하구나. 이 수는 전국시대의 명사들에게서나 볼법한것인데...자네. 꽤 하는구만?"


사마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다음 바둑돌을 놓는다.


"과찬이십니다, 승상. 다만 서른이 다 되도록 이런 잡다한 것에만 관심을 가지니..안 사람의 손가락질이 무섭습니다."


조조 또한 다음 수를 놓는다.


"그렇다면 자네에게... 주부의 자리를 맡기겠네. 승상부에 일하면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마의는 곧바로 자신의 바둑돌을 올려놓았다.


"승상, 제가 이겼습니다."


변두리의 빈틈을 공략한 틀림없는 사마의의 신의 한수.


"..허허."


그는 자신의 말이 끊긴것보다 방심을 했다는 스스로가 더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한편으론 기회를 챙기는 그의 면모에 더욱 더 흥미가 갔다.


"아무튼 나오도록 하게."


"승상, 저는..."


"마구간에서 말을 돌보고, 내 아들 자환과 바둑을 두시게."


사마의의 눈은 휘둥그레지며 넙죽 절을 했다.


자환이라면 현 조조의 적자이자 오관중랑장 조비, 즉 어쩌면 후계자가 될 수 있는 인물,


"중랑장과 말입니까?"


볼일을 다 본 조조는 그만 일어나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그래, 자네에게 맡기도록 하겠네, 겸사겸사 그와 바둑을 두면서...나름대로 심도 있는 이야기도 해보게나.


학문이나 병법에도 관심이 많은것으로 아는데, 분명 자환에게 도움이 될걸세."


"관심이 많긴하지만 어디까지나 취미일뿐입니다. 이리 조인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여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조조는 승상부를 배회하며 홀로 생각하고 중얼거렸다.


"바둑...바둑 주부라...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무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통쾌한 웃음. 어찌되든 그의 첫 관직은 바둑을 통해 하사되었다.


그 후 그날밤..


"자네가 어떻게 나오든 결국 승상이 강제로라도 포섭할줄은 알았다만...설마 이렇게 될줄이야."

-사마의의 친구이자 홍농 태수 가규-


허도에 잠시 볼일이 있어 방문한 가규는 사마의의 소식을 듣고 승상부에서 물러가자마자 그를 역관으로 데려가 오래간만에 식사를 하였다.


"그래, 왜 이제서야 조정에 온건가? 자네에 대한 입소문 덕분에 한직이라도 받아내는건 어렵지 않았을텐데..."


사마의는 이에 진중히 답했다.


"이제부터 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질테니까 말이네. 안에서도 밖에서도."


평소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가규는 그 의미를 이해하곤 오래간만에 웃었다.


"거기에 내가 끼어도 되련지?"


"마음대로 하게, 단 멈출 수는 없어."


훗날, 그를 추종하는 이들중 사적으로 사마의와 친했던 이들은 그를 [바둑 중달]이라고 불렀다.


선발대와 채씨를이용한 형주 진공 작전이 실패하자, 조조는 다시 유표가 죽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약없는 나날이였지만 그리 긴 시간은 아닐것이라 예감했기에 주변 사람들을 만나며 시간을 즐기고, 다가올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금."


"네 승상."


비록 박망파에서 하후돈과 함께 철저히 패배하긴했지만 관도대전에서 소수로 원소의 군대를 한차례 격파한 그의 실력은 조조의 신임을 굳건히 만들어주기 충분했었다.


"남은 정예병들을 이끌고 황하 근처에서 수군 훈련을 시키도록 하게."


"승상..저는 이미 유비한테 진 패장입니다. 너무 과분한 일을 맡기시는 것 아닌지..."


"문제 없네! 내 조인만큼 신뢰하는 장수가 바로 자네일세!"


하북을 손에 넣으면서 넘어온 원소의 병사만 수십만, 이들을 전부 남 쪽 환경에 적응시키려면 시간이 걸렸겠지만 일부 정예병 정도라면 단 기간에 완료시킬 자신이 있었다.


아니, 확신이 들었다.


고작 그정도가 아니라, 천하가 그에게 모두가 그에게 무릎 꿇을 수 있단 생각이.


이후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아 결국 올것이 와버렸다.


수백년동안의 천하의 흐름이 정해질 순간.


양양으로 보냈던 손건이 신야성으로 돌아오는 그날이였다.


"주공!!!!!"


-유비의 외교관 손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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