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년 2월 19일에 일어난 부령 지진은 추정 규모 6.7, 추정 최대 진도 8~9의 대지진이었음


일성록 > 순조 > 순조 10년 경오 > 1월 27일

함경 감사 조윤대의 장계에,
“지난 12월 모일 명천 부사 이춘희가 올린 첩정에 ‘이번 달 16일 미시에 본부의 성 안팎으로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집이 흔들렸습니다.’ 하였고, 전 경성 판관 강세응의 첩정에 ‘이번 달 16일 미시에 지진이 일어나 성첩과 포루가 무너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랑사 부포 지역의 산기슭 한 곳이 무너져서 사냥을 하던 창군 1명이 깔려 죽었고, 오촌사의 민가 2호가 무너졌고, 북면사의 민가 2호가 무너졌고, 용성사의 민가 5호가 무너지고 깔려 죽은 사람이 3명입니다.’ 하였고, 전 부령 부사 이민수의 첩정에 ‘이번 달 16일 미시에 본부 청암사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수남리는 7호의 민가가 완전히 무너지고 18호의 민가가 반쯤 무너지고 1명의 아이와 말 2필이 깔려 죽었습니다. 수북리는 완전히 무너진 민가가 5호, 반쯤 무너진 민가가 8호입니다. 16일부터 29일까지 지진이 일어나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하루 밤낮 사이에 혹은 8, 9차례 혹은 5, 6차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간혹 땅이 함몰하거나 우물이 막히는 일이 있었습니다.’ 하였습니다. 회령 부사 이신경의 첩정에 ‘이번 달 16일 미시에 지진이 일어나 공해와 민가를 막론하고 모두 흔들렸습니다. 흙으로 만든 벽이나 돌로 쌓은 담장이 저절로 무너지기도 하였는데, 잠시 후에 곧 멈추었습니다.’ 하였습니다.
이번에 지진이 났다고 보고한 것은 참으로 놀랍고 괴이합니다. 부령부는, 열나흘 동안 연속으로 지진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 것이 실로 의아스럽고 게다가 그곳의 땅이 함몰하였다는 등의 이야기는 더욱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상세하게 서둘러 보고하라는 뜻으로 제송하였습니다. 방금 해당 부사의 첩정을 보니 ‘본부 청암사는 바닷가에 있는데, 그중에 수남리와 수북리 두 곳이 바다와 특히 가까워서 집 문을 나서면 곧바로 큰 바다가 있습니다. 때문에 이번 재변에 치우치게 피해를 입었는데, 열한 곳의 우물이 모래에 덮혔습니다. 또 세 곳의 땅이 갈라지고 함몰하였는데, 그 둘레와 깊이가 각각 몇 파 남짓이었습니다. 또한 바닷가에 있는 산 위에서 큰 바위 하나가 떨어져 중간이 갈라졌는데 그 절반은 바닷속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금년 1월 12일까지 날마다 지진이 일어나 백성이 모두 놀라고 두려워서 편안히 살지 못합니다. 지진은 결코 여러 날 계속될 리가 없으니, 바다에 잇닿아 있는 까닭에 해뢰의 재해가 있어 그런 듯합니다.……’ 하였습니다.
감영의 등록을 가져다 살펴보니 지진을 장계로 보고한 전례가 이미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근년에는 매번 겨울부터 봄까지 땅이 흔들리고 요동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고 고을 수령은 애초에 감영에 보고하지 않았으며 도신 또한 급히 장계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부령 청암사에서 27일 동안 계속 지진이 일어났다고 한 것은, 예전의 문건을 살펴보아도 사례가 없는 일이었고 노인들에게 물어보아도 들은 적이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https://db.itkc.or.kr/dir/item?itemId=IT#dir/node?grpId=&itemId=IT&gubun=book&depth=5&cate1=&cate2=&dataGubun=%EC%B5%9C%EC%A2%85%EC%A0%95%EB%B3%B4&dataId=ITKC_IT_W0_A10_01A_27A_0006A

나무위키에 나온 기록들에는 사상자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없어서 직접 일성록을 찾아보니까 꽤나 자세한 기록이 있더라

그래도 다음해인 1811년에 산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서 가옥이 무너지는 바람에 매몰되어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를 정도라고 말하는 걸 보면 최소 이 기록에서 나온 것 이상으로 피해를 입었던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