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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북대도호부(평안남도 안주)에 집결한 고려의 삼군(三軍, 대략 3만 5천 명)은 이제 전투 준비를 거의 다 끝마쳐가고 있었다.


병졸들은 병장기를 닦았고, 갑옷을 정비했으며,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각자의 병종에 따른 각자의 방식대로 곧 있을 전투를 준비했다.


앞서 나가서 적과 싸우는 병졸들이 주로 무기 같은 것을 정비한다면, 병졸을 지휘하는 장수들은 작전을 정비한다.


그들이 전략을 어찌 짜고, 군사를 어떻게 움직이냐에 따라 전투의 승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안북성 관사에 모여 있는 삼군의 장수들은 안북성과 그 인근 지역이 그려진 지도를 보며, 서로 머리를 싸매고, 때로는 격한 논쟁까지 해 가며 전략을 짜고 있었다.


"저 몽고 오랑캐들과 정면에서 싸우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아, 승리를 감히 장담할 수가 없소.


저들의 주된 전력은 기병이오. 보병이 대다수인 우리 삼군과는 달리 기병은 빠르게 기동할 수 있고, 또 빠르게 진에 파고들어 공격할 수도 있소."


삼군 총지휘관 대장군 채송년은 이리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몽고군과 야전을 벌이기보단 성벽 뒤에서 방어하는 것을 선호하는 모양이었다.


"하니 나는, 성을 나가 저들과 직접 정면으로 맞붙기보다는 삼군이 성 안에서 공성전을 벌여 적을 지키게 하는 것이 옳은 계책이라 보오. 제장들은 어찌 생각하시오?"


채송년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중군진주 대집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소리쳤다.


"대장군 각하, 외람돤 말씀이오나, 대장군 각하께서는 적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계십니다!"


방금 박차고 일어난 장수의 그 말에, 대장군은 물론 모든 장수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중군 진주, 지금 과대평가라 했나?"


"그러합니다. 각하, 외람되고 송구스러운 말씀이나, 저들은 패잔병 무리들입니다. 비록 본군과 합류했다 해도, 이미 패잔병들이 동선역에서의 패전을 알렸으니, 오랑캐 군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헌데 각하께서는 패전으로 사기가 떨어지고 지친 군사들을 상대로 어찌 그리 약한 모습을 보이십니까?"


채송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열불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지난번 동선역에서 상장군 이자성과 함께 몽고군을 막아낸 이후로, 몽고군의 주 전력이 기마군임을 알게 되었다. 


본디 유목을 하는 이들은, 어릴 때부터 가축과 함께 지내며 말을 타는 것을 쉽게 배우고, 어릴 때부터 말을 타며 말에 익숙해진 유목민들은 더없이 훌륭한 전사들이 된다.


또한 중원, 삼한과는 달리 초원에서는 식량을 구할 길이 오로지 목축뿐이기에, 서로 싸우고 싸우며 각자의 식량을 빼았고 그조차 부족하다면 아예 이웃을 침략하며 노략질하기도 한다.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난 유목인들은, 본래 그 성품이 어떠했든 성인이 된다면 결국 훌륭하디 훌륭한 전사로 자라나는 것이다.


특히, 보병과 달리 말과 물아일체가 된 듯 한 기병이라면, 기동성도 빠르고 돌격의 위력 또한 강해 적에게 막대한 피해와 공포를 안기어 준다.


당장 동선역에서도 삼군 중 하나인 우군이 몽고군의 공격을 이기지 못해 무너질 뻔했으나 간신히 버티지 않았던가.


그만큼, 몽고군과의 야전은 승산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동선역에서 삼군이 승리한 것은 지형이 험준하여 몽고군이 기마군을 제대로 사용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코 삼군이 몽고군보다 강해서 이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눈 앞의 이 자는, 겨우 한 번 이긴 것으로 적을 이리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보시게, 중군 진수."


"..예, 대장군 각하."


"그대는 어찌, 단 한번 이긴 것으로 적을 그리 과소평가하는가?"


"..예?!"


대집성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장수로써 단 한번의 승패로 적의 강약을 판단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그대의 선조가 그대에게 장수로써의 능력을 물려주지는 않은 모양이네."


그러면서 채송년은 살짝 코웃음이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대집성은 화가 난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으나, 그의 본 인상이 그리 위엄 있지 않았던지라 오히려 그 꼴이 퍽이나 우스웠다.


대집성은 노기 가득한 목소리로 소릴 질렀다.


"대장군께선 그리도 싸움이 두려우십니까?!"


채송년이 이번에는 얼굴을 찌푸렸다. 부하 장수들 역시 얼굴을 찌푸리며, 그의 예의가 어긋난 행동을 지적하고자 했으나, 대집성의 말이 더 빨랐다.


"적을 앞에 두고 이리 소극적인 모습만 보이시니, 적보다 더 많은 군사를 두고도 전투에서 질 판국이 형성된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정 대장군께서 삼군이 나가는 것을 허락치 않으신다면, 저희 우군만이라도 나가 싸우겠습니다! 


혹여나, 같이 성 밖에 나가 싸우고자 하는 분이 계신다면, 일어나 주십시오!"


그러나 그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저 가만히 않아 있을 뿐이었다. 대집성은 짜증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들 모두가 겁쟁이구려! 좋소, 우리 우군이 나중에 적의 수급을 수없이 베고 나서 하나 달라 하지나 마시오!"


"아니, 이보게!"


대집성은 투구를 쓰고는, 다른 장수가 말리는 것도 무시하고서 곧바로 관청 건물의 문을 세게 열고 박차고 나갔다. 건물 밖에 대기하던 대집성의 부관들이 대집성이 나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급히 달려오며 대집성을 따라나갔다.


"저놈은 제 조상과는 딴판이로구먼."


"제 시조는 나라를 세웠고, 중시조는 나라를 구했는데, 어째 저놈은 소인배나 다름없으니 참 묘합니다 그려."


대집성이 나가자마자, 다른 장수들이 그의 뒷담을 실컷 까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번 모습은 의외긴 합디다, 허구한 날 술만 쳐먹고 장수로써 싸움은 피하던 놈이 단정하게 갑주를 입고서는 스스로 나가 싸우겠다 하니."


"싸우긴 무슨! 공은 저놈의 성격을 아직도 모르십니까? 저놈은 제 부하들은 사지로 내몰면서 자긴 안전한 곳에서 기생이나 끼고 놀아재낄 놈이거늘!"


이 장수가 한 말이, 그대로 실현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