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밤에도 찬란하게 빛나는 거리, 고향인 페나코니에는 언제나 꿈세계에서 꿈을 이루고자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자연스레 사람들이 드나든다.


화려한 색채가 시야를 가득 체우고 꿈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어둠 하나 찾아볼 수 없는 풍경, 낮이나 밤이나 형형색색의 불빛이 도시를 비추고.


어김없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빛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카메라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을때.


나는 몰려오는 생각에 잠겨 쓸쓸한 기분으로 과거를 회상한다.


***


밤꾀꼬리 가문이 주최한 어느 큰 축제에서 어쩌다보니 오빠하고 떨어지게 되어 고퍼우드씨의 저택을 홀로 둘러보고있던 때.


복도에서 넘어져 울고있던 나를 일으켜준 아름다운 황금빛 눈동자를 지닌 잿빛머리의 무명객 소년.


그가 손수건을 건내자 나는 자연스레 뺨 두쪽이 모두 붉어지고 말았다.


일상에서 절대 벌어질 수 없고 어쩌면 그렇기에 더 달콤하게 와닿는 사랑 이야기.


그것이 신기했는지 내가 무심코 손을 뻗어 만지려하자 소년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고 그는 황급히 소년을 붙잡고 물었다.


“아..! 마지막으로 이름이라도 알려줘!”


무명객 소년이 답했다.


“무명객으로서 보답은 바라지 않아, 카일루스, 그게 내 이름이야.”


그게 소년이 내게 남긴 유일한 말이었다.


***


“로빈, 책 읽고 있어? 무슨 책이야?”


“고퍼우드 씨가 그림책을 주셨어! 조화를 이루는 현에 관한 이야기야.”


“만약 조율사가 된다면 난... 행복과 기쁨을 느낄 수 있게 사람들과 함께 노래하며 우리의 소원을 널리 알릴 거야!”


“그렇구나. 그럼... 나도 너와 함께 할께.”


“오빠는...오빠만의 소원이 없어?”


“당연히 있지. 다만... 그 소원엔 모두의 소원이 담겨 있어, 난 진정한 낙원을 세우고 모두에게 평안을 줄 거야.”


“그런 다음 모두에게 우리의 공연을 선보일 수 있는 무대도 하나 만들자. 그러면 하모니 성가대의 힘을 빌려서 우리의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거야.”


오빠는 천진난만하게 나와 약속을 하며 손가락을 걸었다.


“좋아, 그럼 약속한 거다?”


“응, 약속! 근데 어떻게 해야 조율사가 될 수 있을까?”


선데이는 동생의 말에 잠시 곰곰히 생각을하더니 이내 자리를 떠나 여동생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며칠 후 로빈은 두눈을 동그랗게 뜰 수 밖에 없었다.


“오빠, 이건…”


“요새 즐겁게 노래한 적이 없잖아. 널 위해 무대를 만들어줄게. 지금 재료를 구할수가 없어서 좀… 초라하지만.”


로빈은 걱정 섞인 목소리로 무대를 만들어주던 오빠를 말리려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나와 안 맞는다고 하셨는걸…”


고마운 마음보다는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 나머지 로빈은 그때 차마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 난 네 노래가 정말 좋거든!”


실망한 로빈를 다독여주던 선데이는 팔레트의 물감을 짜내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로빈은 기운을 차렸는지 그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함께 무대를 구상했다.


“언젠간 꿈을 이루고 넌 앞으로 더 큰 무대에 오르게 될 거야, 그럼 더 많은 사람이 네 노래를 듣고 너와 함께 노래하겠지?”


“아냐, 오빠. 사람들은 우리와 함께 노래할 거라고!”


“...그래! 우리와 함께”


오빠가 다정하게 내 손을 꼬옥 잡으며 나를 무대위로 이끌어주었던 그날, 미숙하게나마 만들어준 간이 무대에서 공연한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었다. 


***


수년이 흘러 반짝이는 무대 위에 선 그녀는 무대 아래 수많은 팬들을 내려다보던 중 잠시 다른 생각에 잠겼다.


가수로서 꿈을 좇는 그 기나긴 여정에서 나는 오빠의 믿음이 담겨있는 눈빛과 자신의 첫 번째 콘서트를 잊은 적이 없다.


화려한 조명도 메이크업도 없지만 어느 한 아이가 꿈을 좇는 다른 아이를 위해 만들어 준 무대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오빠는...’


밝은 거울 속에서 어느덧 세월이 흘러, 풋풋했던 소녀는 여유로움과 우아함을 지닌 은하에서 상당한 유명세를 떨치는 가수가 되었고.


나는 거울 속에 있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지만, 그 청록빛의 아름다운 눈은 변치 않는 신념을 말해주듯 여전히 잔잔한 물결처럼 고요한것만 같았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로빈씨.”


“맞아요… 아주 중요한 공연이 있으니 기대되더라고요.”


나는 쓸쓸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그녀에게 답했다.


“그렇죠, 조화의 축제의 리허설이 곧 시작되니 로빈씨도 슬슬 준비실로 이동해주세요.”


곧 메이크업실을 나와 등불이 찬란하게 빛나는 극장과 멀어져갔다.


‘이제 우리의 꿈이 모두 이루어졌어.’


‘하지만… 그걸 여전히 우리의 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로빈은 마이크를 꽉 쥐었다. 다음 노래를 시작하기 전, 그녀는 슬픔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이제는 쓸데없는 과거회상이야.’


무대가 끝나고 나서야 그렇게 되뇌이며 집으로 돌아가려던때 뒤에서 귓가에 익지만 낮선 목소리하나가 그녀를 가로막았다.


“또 만났네요, 아가씨.”


그는 장난스럽게 쓰고있던 모자를 벋고 로빈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른이 되어 만난건 처음인걸요?”


나는 간절한 눈으로 카일루스를 바라보았다.


무명객들은 자유롭게 우주 속 수많은 세계를 유람한다고 들었다.


‘저를 데리고 나가줄 수 있나요?’


마음 한켠에서는 그런말을 하고싶었으나 결국 자신은 도망칠 수 없었다.


꿈세계의 유명한 가수와 무명객의 만남은 마치 인연처럼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