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

 

 

 

 이름

A:김관홍 

B:홍가혜

 

 

 

공통점

세월호 참사 발생이후 피해자 구조를 위하여 사고현장과 가까운 진도로 이동함

 

 

 

 

경력및 자격 장비 유무

A: 산업잠수사 출신 1996년부터 오래된 교각의 안정성 점검 및 수리, 유물 발굴이나 수중 시신수색 경험  개인장비 지참

 

B:악세서리 판매(카카오스토리) , 패디마스터(거짓판명) 

레저용 오픈워터, 핑크오리발,물안경(당시미보유) 스마트폰

 

 

 

 

 활동 

 

A: 김관홍은 맹골수도 세월호 현장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4월23일 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의 예상대로, 작업 가능한 현장의 잠수인력은 7~8명에 불과했고 5월10일이 넘어서야 25명이 겨우 채워졌다. 말로는 민·관·군 합동 작전이었지만, “해경 잠수부는 선체에 진입할 능력도, 장비도 없는 상태라” 선체에 들어가 시신을 수습하는 건 온전히 민간잠수사들의 몫이었다. 산소탱크를 메고 갈 만큼 통로가 확보되지 않아 불가피하게 ‘표면공급식’(바지선에서 수중의 잠수사에게 호스를 통해서 공기를 전달하는 방식) 잠수를 했다. 공기를 전달하는 생명줄이 꼬이거나 걸려도 안 되고, 바지선 위의 스태프와 호흡을 맞춰야 하는 정교한 작업이라 능숙한 산업잠수사에게도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원문보기: 한겨례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64693.html#csidxd7ed9e3eacf53daa0ce48205bd6b050 

 

B: 진도에 도착하여 카카오스토리로 현장중계, SNS업로드용 사진및 동영상 촬영 그와중에 카카오스토리 이벤트 관리, 잠수작업 지원서에 패디마스터라 적고 서명함 4월 18일 문제의 그 인터뷰 발언 (잠수사들이 갑판에서 생존자와 대화 성공, 해경의 의도적으로 구조작업 방해 등등) 그 이후 "저희 민간"이라 불렀던 동료 잠수사들과 진도에 남아있는 피해자가족 곁을 떠남

 

 

 

 

 

A:민간잠수사로서 구조팀에 참가하여 292구의 시신을 수습 목숨을 걸고 물 속에서 라인을 연결하고 선내 집기를 정리하여 희생자 유품을 수습 과정에서 물살에 휩쓸려 정신을 잃고 긴급하게 병원에 이송되었으나 응급처치만 받은 후 사흘 만에 현장에 복귀 작업 지속

 

B:해경명예훼손 관련 재판이후 광화문에 나타나 세월호 유가족 격려및 집회참가

일부 유가족 및 정치인등 유명인과 인증샷, 세월호 관련 집회및 시위 참여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관련 1인시위

 

 

 

 

이후 

 

A: 세월호 참사 당시 입었던 신체적 외상 및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려왔다. 후유증으로 본업인 잠수사 일을 그만두고 낮에는 아내의 꽃가게 일을,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생계 활동을 이어왔다. 정부로부터 민간잠수사로 인정받지 못해 구호비용을 지급받지 못했고, 그로 인해 육체적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고인을 기리는 사촌 형(김형주씨)의 글에 따르면 김관홍은 후배들의 생활고를 부담하였고 이것이 그의 경제적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는 일이 되었다.

 

B: 해경 명예훼손 재판 (현재 무죄로 종결) 세월호 참사당시 자신을 비판,비난한 네티즌 약 800~1000명 고소 합의금,위자료 등 명목으로 약 수천만원~수억 받아냄(추정) 또한 언론사를 대상으로 고소를 하여  1000만원~8000만원 배상  재판중

 

 

 

 

 

 

 

 

 

 

현재

 

 

 

 

 

 

 

결론

A: 산업잠수사 출신으로 본업을 미루고 잠수팀에 합류하여 단 1회 잠수만으로도 목숨이 위험한 바다속을 하루에 4~5회 잠수하여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해  시신및 유품 수습, 그와중에 일부 언론으로 부터 언딘소속 또는,시신당 수백만원씩 돈을 받고 일한다는 의심 비난 받으면서도 작업을 계속함 수색 종류 이후에도 사고 후유증과 트라우마의 고통으로 본업에 복귀하지 못하고 생활고를 겪음 2016년 6월 17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

이후 간간히  고인 추모및 의인으로써 희생을 기념하는 시도가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와 그이후 사건들 (B인물관련 사건) 기타 여러가지 요인에 묻혀서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심각히 낮음

(그나마 민간잠수부중에서 가장 알려진 사람)

 

 

B: 참사 이전 자세한 경력은 잘 알려진바가 없음 ( SNS활동으로만 추정가능)

SNS 내용상 본인의 잠수능력을 자신하며 민간잠수사로 지원하러 진도에 옴

18일 인터뷰이후 참사 현장을 떠나기 전까지 자원봉사를 했다던가 하는 이력이 없음(파악불가) 인터뷰 때문에 경찰 조사를 받고 자신의 발언으로  상처 받았을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함 법원 1심 무죄 판결이후 자신을 비난한 네티즌 고소로 다시 주목을 받음

 

페이스북 개인 계정과 페이지를 이용해 대중들의 여론을 따라 당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이슈와  사건등을 다루며  비판하고  자신의 대한 세월호 관련 논란을 묻어버리고 평가를 반전시킴 

일부의 세월호 학생 유가족, 연예인, 정치인 등 유명인과 사진을 찍는등 세월호 참사 전보다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게됨, 확고한 팬덤이 생김 

 세월호 민간잠수사 -> 정치운동가

 

 

 

 

 

 

 

 

 

 

 

어록

A: 뒷일을 부탁합니다.

 

 

 


 

 

 

 

 

 

 

 

 

 

B:

 

 


 

 

 

 

 

 

동시간대에 하고있던 일

A

 


 

 

 

 

B

 

 

 

 

 

 

 

 

 

 

.........

 

관련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64693.html

 

http://www.nocutnews.co.kr/news/4398498

 

 

https://drive.google.com/file/d/0ByDzwczm1e9dODhUcHc2Ml9peFk/view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13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