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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지금까지의 모습은 연기였지! 자, 이제 새로운 물의 신이 이 앞에 당도했음에 환호하라!"]



"...내가 뭘 해야한다고?"


푸리나는 거울 속의 '그녀'에게서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을 대신해 시민들을 속여야 한다는 이야기,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 비밀을 발설해선 안된다는 이야기,


그리고... 만일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이 생긴다면...


'모두'가 죽어버리는 미래만이 남는다는 이야기.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보게된 푸리나는 그저 눈 앞에서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대는 '그녀'가 두렵고 신기했을 뿐이었다.


"무모한 일이란 것은 알아. 하지만 너 말고는 할 사람이 없는걸."


"그치만..."


푸리나는 거울속의 '그녀', 포칼로스의 대답에 미약한 공포감을 느꼈다.


이 공포감은 순수한 두려움 따위가 아니었다. 좀 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하나의 나무 뿌리처럼,

풀려고 해도 풀리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두려움과 공포감은 서로 뗄 수 없다. 

원인이 있으면 그에 따른 결과가 있듯,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푸리나는 이 공포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해 파악하려고 애썼다. 그래야 그녀의 기대에도 부응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가설은 틀렸다. 정확히는 '잘못 짚었다' 가 맞았을수도 있었다.


푸리나가 느꼈던 두려움은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이 막중한 일을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뿌리 속의 해충들처럼 그녀를 좀먹고 있었을 뿐.


포칼로스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와 벙찐 표정이 스스로를 대신하고 있다는 걸 푸리나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푸리나가 공포에 떨고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포칼로스는 그저 미소를 지을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실패한다 한들, 그녀가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들, 그런 미래는 존재하지 않을것이다.


왜냐면 그녀는 나니까.


포칼로스는 푸리나를 처음 만들때 자신의 신격을 분리했다.

정확히는 신격보다는.. '이타심'을 자신의 몸에서 분리했다고 해야했다.


그렇기때문에 포칼로스는 이기심을 얻었다.

자신말고 다른 사람이 해낼수 있고, 그것조차도 자기 자신이라면 안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기심은 생각을 단순하게 했다. 물론 그녀의 고통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란 것을 알고있었다.


'평소의 나라면, 그녀를 고통받게 두진 않았겠지.'


그렇기에 이타심을 그녀에게 선물로 준 것이었다. 

내가 없어도, 그녀는 이 일을 해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알았어. 할게."


놀랍지도 않은 대답이 부드러운 적막을 타고 흐른다.

포칼로스는 그저 미소를 보였다. 당연했지만, 감정을 숨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고마워. '예언'이 끝난다면, 이 연기를 그만 두어도 될거야."


그녀는 떠나기 전에 푸리나를 안심시켜야 했다.

포칼로스는 그렇게 그녀의 행동이 '성공적'으로 해결되었을 때 찾아올 미래를 푸리나에게 약속하며, 거울 너머의 세계로 유유히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언제까지 해야- 어? 어디갔어?"


푸리나는 그녀가 사라진 거울 속을 계속해서 기웃거렸다.

거울속에 비친 자신이 포칼로스가 아닐까 생각도 해봤지만, 틀림없는 자신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녀는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다,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등 뒤로 고개를 돌렸다.


"...저분이 물의 신?"


"쉿! 이제 이야기 하시려나봐!"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

놀란 푸리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거울이 있던 자리를 다시금 돌아봤지만, 그 자리에 남아있던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지? 뭔가 준비한게 없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모든것이 조금 전의 풍경과 너무나도 달랐다. 

마치 정신을 잃고 돌아온 듯한 이 기시감은 그녀에게 있어 너무나도 기묘한 느낌이었지만, 눈 앞의 관객들은 그런 그녀의 사정을 알리가 없었다.


처음엔 그녀도 진심을 다해 연설했다. 

자신이 새로운 신이고, 자애롭고 정의로운 나라를 위해 힘을 쓰겠다고 진정성 있게, 부드럽게 이야기 했다.


"...이상하다. 생각보단..."


"좀 더 재밌는 분일줄 알았는데-"


푸리나에게 있어 이런 반응은 의외였다. 아무리 호소해도 그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


공허함이 마음속에 울려퍼졌다. 

마치 눈 앞의 관객들에게서 단절된 배우처럼, 모두에게 외면받는 정치인처럼. 순식간에 그녀는 고독을 느꼈다.


그래서였을까. 순간 그녀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그렇다면 너희들이 원하는 내가 될게.'


생각은 순식간이었다. 그녀의 입에선 '푸리나'라면 하지 않을것 같은 말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외로움에서 나오는 공포감? 눈 앞의 사람들을 상실할것 같다는 두려움에서 나오는 패배감?


지금의 그녀에게 있어 그런 상황은 중요치 않았다. 그저 그녀가 외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었다.


["당연히 지금까지의 모습은 연기였지! 자, 이제 새로운 물의 신이 이 앞에 당도했음에 환호하라!"]


순수한 광기의 서곡이 개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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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식때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싶어서 써봤음


하.. 시간이 안나도 너무안나서 미치것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