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주사 채널

민지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진료를 기다린지도 벌써 20분째. 평일 3시면 분명 사람이 없어야 하는데 대기실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안그래도 고열과 기침으로 컨디션이 최악인 민지에겐 인내심이 부족했다. 방금은 한 아이가 잔뜩 울어대는 바람에 민지의 화를 더욱 돋구었다. 퉁명한 간호사, 방음이 전혀 안되는 탓에 들려오는 느릿느릿한 의사의 진료까지.


[하... 짜증나.]


민지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긴 머리를 쓸어넘기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민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한민지 님. 들어오실게요-]


여전히 일하기 싫다는 투의 간호사. 민지는 옆에 놓아둔 핸드백을 신경질적으로 집어들고 진료실로 향했다.


[예- 증상이 어떻게 되시죠?]


나이 지긋한 여의사가 느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민지는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열 때문에 머리가 너무 아프구요. 기침도 계속 했더니 목이 부은 것 같아요.]


민지는 스스로 자신이 건강한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환절기면 이따금씩 감기로 고생하곤 했다. 예전엔 그저 나을 때까지 기다렸지만 대학생이 된 후부턴 병원 약을 빨리 타오는 게 낫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꼈다.


[그렇군요. 증상은 얼마나 됐나요?]


[기침은 며칠 전부터 했는데 열나고 하는건 오늘부터요.]


민지는 오늘 오전 수업 하나만 들으면 됐기에 혼자서 한강바람이라도 쐴 작정으로 제법 꾸미고 나왔다. 하지만 수업이 너무 지루했던 탓일까,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열이 올라왔다.


의사는 마치 주토피아에 나오는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민지의 체온을 제고 목 안 쪽을 살폈다.


[아-]


[... 인후염이네요. 약은 일주일치 드릴게요. 나가서 주사 맞고 가세요.]


잠깐, 주사? 민지는 감기로 주사를 맞아본 게 너무 어릴 적이라 팔에 맞는 주사인지, 엉덩이에 맞는 주사인지 잠시 고민했다. 근데 아마 엉덩이일텐데.


[저, 주사까진 안 맞아도 괜찮아요.]


[항생제를 놔야 빨리 낫습니다.]


뭘 이 정도 아픈걸로 주사를 놓나, 하는 생각에 민지는 따져들었지만 의사의 대답은 예상외로 단호했다.


사실 민지는 주사를 무서워했다. 그 외엔 귀찮은 감정도 있었지만, 아무튼 민지는 코로나 백신을 맞으러갔다 도로 돌아올 만큼 주사를 싫어했다.


[아니, 저...]


민지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의사는 멍한 눈으로 타자만 치더니 문제 있냐는 듯한 표정으로 민지를 응시했다.


[환자분 대기실로 나가서 기다리실게요.]


결국 간호사의 말에 민지는 하는 수 없이 대기실로 나와 의자에 털썩 앉았다. 민지에겐 말다툼할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고, 그저 멍하니 TV 속 뉴스만 쳐다보기로 했다.


[한민지 님-]


정신을 놓고 있던 민지는 간호사의 부름에 토끼처럼 눈이 땡그래졌다. 민지의 또래쯤 되어보이는 젊은 간호사는 민지를 주사실로 불렀다.


간호사를 따라 주사실로 들어온 민지는 머뭇거렸다. 바지를 내려야하나?


[거기 엉덩이 보이게 바지 내리고 기다려주세요-]


간호사는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하나?'싶은 듯한 말투로 대충 말을 던지고는 주사를 척척 준비했다. 민지는 베드에 엎드리고 난 후 입고있던 청바지 버클을 풀어 아주 살짝 내렸다.


엄청 따끔하겠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민지는 주사실을 두리번거렸다. 동네 병원 주사실치곤 제법 넓었는데 하긴, 병원 자체가 꽤 큰 편이니까.


[한민지 님 항생제 맞으실거고 두 번 놔드릴거에요.]


한 대도 아니고 두 대라는 말에 민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엉덩이와 깍지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런데 간호사는 잠시 고민하는 듯 서있더니,


[바지 좀 더 내리셔야 돼요.]


그러곤 간호사는 민지의 골반쯤 걸쳐있던 바지를 양손으로 움켜잡고 힘껏 내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민지는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숨을 흡 들이마셨다.


민지의 엉덩이 대부분을 가려주고 있던 바지는 이제 민지의 허벅지 윗쯤에 아슬아슬하게 걸쳤고, 간호사에겐 은밀한 곳까지 보일만큼 내려갔다.


[엉덩이 힘 푸시고- 따끔합니다. 따끔-]


민지가 놀란 가슴을 진정할 새도 없이 간호사는 민지의 엉덩이를 탁탁탁 치고는 주삿바늘을 꾸욱 찔러넣었다. 주사는 민지의 생각보다도 더 따갑고 뻐근했다.


민지는 눈물이 찔끔 나오는 걸 느꼈다. 이게 주사가 아파서인지, 간호사가 엉덩이를 세게 때려서인지, 아니면 지금 이 상황이 치욕스러워서인지 알 수 없었다.


[이번엔 반대쪽- 따끔-]


곧바로 두번째 주사기를 뽑아든 간호사는 민지의 왼쪽 엉덩이도 힘차게 탁탁 내리쳤다. 그리곤 몇 분 문지르라는 말과 함께 주사를 놨다. 그때 주사실 바깥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하나야, 그때 슬리퍼 어디 뒀다 그랬지?!]


[금방 갈게요!!]


간호사는 급하게 민지의 엉덩이에서 주사기를 뺐다. 순간 엄청난 아픔에 민지는 "아야!" 하며 급히 엉덩이를 문질렀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정도의 통증이었다.


민지는 고개를 돌려 간호사를 쏘아보려 했지만, 간호사는 그런 줄도 모른채 허둥지둥하며 주사실 문을 활짝 열고 뛰쳐나갔다.


[엄마! 저 누나 엉덩이 아야했어!]


민지는 머리가 하얘졌다. 대기실의 예닐곱 살쯤 돼보이는 꼬마부터 아줌마, 할아버지까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민지에게 향했다. 봉긋하게 튀어나온 엉덩이의 하얀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채.


민지는 눈가를 닦을 새도, 엉덩이를 문지를 새도 없이 황급히 바지를 끌어올렸다. 그리곤 일어나 주사실 문을 쾅 닫았다. 민지의 심장 박동은 엄청나게 빨라졌고, 얼굴은 금새 달아올랐다.


[하이...씨. 뭐야 저 새끼는.]


민지는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는, 머리가 아픈 것도 잊은 채 잔뜩 화가 난 상태로 문을 박차고 나왔다.


방금 그 간호사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무척 당황한 걸로 보이는 다른 간호사만 데스크에 앉아 있었다.


[저기요, 환자가 안에 있는데 그냥 막 나가버리는게, 하 진짜.]


너무 화가 난 탓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민지는 열심히 항의했다. 소란이 있자 그 하나 라는 간호사와 나이가 꽤나 들어보이는 간호사가 급하게 달려왔다.


[저...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꼭 조심하겠습니다.]


[예, 제가 잘 교육하겠습니다. 환자분 화 푸세요.]


아니, 뭘 다음부터 조심하겠다는 거지?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인지 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과하는 사람 앞에서 더 화를 낼 성격은 또 아니었다.


[아, 예...]


[제가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나이든 간호사는 혹여나 민지가 다시 화를 낼까, 천연덕스러운 말투로 민지의 카드를 받아들었다. 삐빅-


[여기 저희가 먹는 비타민인데 받으세요. 미안해서 그래.]


간호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타민 포 몇 개를 민지의 손에 쥐여주려 하자, 민지는 언짢은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민지는 간호사가 멋쩍어하며 건네준 카드를 확 집어채고 어기적어기적 병원을 나섰다.


[미안해요 아가씨!!]


지금 뭐 광고하는 건가. 안그래도 방금 상황부터 민지가 병원을 빠져나오는 지금까지 사람들의 시선은 민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꽤 잘생긴 남자도 보였는데, 제길.


민지는 너무 정신이 없는 나머지 엘리베이터를 탈 생각도 못하고 계단을 씩씩대며 내려갔다. 그러다 왼쪽 엉덩이가 따끔하자 민지는 화들짝 놀라 급히 바지를 내려 엉덩이를 확인했다. 속옷에 피가 살짝 묻어있었다.


[하- x발.]


그때 아래층에서 계단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민지는 재빨리 바지를 다시 추켜올리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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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써보는 소설이라 많이 부족하고 클리셰가 많지만 가볍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