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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라의 화석, 프로남창 별자리텀블러이다.


내 지정성별은 남자다. 1998년 9월의 일이다. 그때야 그냥 다들 성이란 타고나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나는 어렸을 때부터 딱히 남자라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도 없고, 딱히 내가 남자라서 더 자연스러운가 그런 느낌도 없었다. 성별보다는 나 그 자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겁이 많아서 잘 울었다. 그럴 때마다 아빠나 할아버지는 '남자가 짜잔하게 울고 있냐' 이랬다. 아니 그럼 남자는 울면 안 되고 여자는 울어도 된단 말인가? 할머니 집에 있는 성경을 펼쳐본 적도 있는데,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말을 보고 '왜 여자는 남자한테 순종해야 하지?' 이렇게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이것은 아마 내가 원래 고지능자로 태어난 것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아빠가 술주정을 부리며 엄마한테 쌍욕을 하고 시비를 거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2000년대의 일이다. 현재의 사람이 어렸을 때의 나를 보면 '와 애기가 성평등도 아누' 이랬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대에 성평등이란 막연한 것이었고, 2010년대 중반부터 페미니즘 커뮤니티가 등장하며 뭇 젠더 관련 논의에 큰 불을 지핀 것과 달리 그때는 딱히 그런 거를 논의하게 해줄 기폭제 자체가 없었다. 페미니즘의 페 자도 나돌지 않던 시절이었다. 특히 서울도 아니고 국토 최남부의 낙후된 소읍에서라면 더더욱 젠더와 젠더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아는 게 어려웠겠지.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불합리한 제한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그냥 내 머릿속에서 생각해낸 것이었다. 뭐 거창한 걸 보고 영감을 얻거나 공부한 게 아니고.


초등학교 후반~중학교 시절, 나는 유행하는 온라인 게임도 일절 하지 않고, 축구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급우들이 나에게 장난을 치면 나는 그들을 응징하지 못하고 당했다. 내가 힘이 약하고 겁이 많기 때문에 나는 응징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는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내가 처음 자살 기도를 한 적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동네는 중학교가 남중 여중이 나뉘어 있어서 남중을 다녔는데 그때는 본격적으로 폭력적이고 무서워보이는 애들이 등장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일진과 찐따로 급이 나뉘어있었고 물론 나는 찐따였다. 그들은 축구를 좋아하고 PC방을 좋아하고 까불기를 좋아하고 섹스 온 더 비치 노래를 좋아하고(...) 그런 애들이었다. 걔들은 급식시간에도 대놓고 새치기를 했다. 그리고 그런 애들은 지적이지 않다. 남자의 세계에서는 저런 자들이 우월한 자라는 것이 나는 아주 싫었다. 원체 본인이 어렸을 때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적기도 했거니와, 이런 연유로 인해 남자애들과 잘 어울리는 것은 어려웠다. 아, 중학교 땐 친구가 있긴 있었다. 약한 아이들의 그룹이라 그러지.


그래서 남자애들에게 그렇게 친근감이 들지 않았다. 여자애들이랑도 친해지고 싶었다. 여자애들은 남자애들에 비하면 사람을 존중할 줄 알고, 지적이고 진취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하지만 결국 '지정성별 남자'이기에 여자애들과 친해지는 것은 어려웠다. 여자애들은 여자들끼리의 그룹을 구성하였으니까.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것이 슬펐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외톨이를 안 좋게 보잖아. 뭐 꿋꿋하게 혼자서 밥 먹는 독한 이도 한 명 있었는데(나는 걔랑 친한 편이었음) 고딩 때는 대놓고 괴롭히지만 않을 뿐이지 여전히 은근히 놀림감이 된다거나 하는 일은 여럿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사회든 어느 사회든 인맥이 있어야 제대로 된 사람 취급을 받는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친구 없이 끝나면 나는 정말 인맥도 없는 사람이 되기에 그야말로 속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다만 선생님들은 나를 좋게 봐줬다. 일단 공부를 잘하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에 관심이 많았기에 선생님들은 나를 좋아했다. 그나마 말년에는 오타쿠들과 친해졌다. 걔들은 남자였지만, 힘을 과시하지 않는 이들이었으며, 그나마 나를 있는 대로 바라봐주었다. 그래서 걔들이랑 아직까지도 단톡도 있고 연락도 한다. 나는 씹덕물을 본 적이 없지만 이상하게도 걔들한텐 친근감이 든다.


대학교를 와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남자애들한테는 나도 정이 안 가고, 그러다 보니 걔들도 나를 신경쓰지 않고 혼자 내버려두었다. 걔들이랑 친해지곤 싶지만, 적성에도 안 맞는 롤과 옵치를 하고 축구를 하면서까지 친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여자애들과 선배들에게 동기들과 친해지고 싶다고 말을 하며 입을 털었다. 그러나 말년에는 '너가 노력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친구가 되겠냐'라며 나를 향한 시선만 안 좋아졌다. 물론 여자애들과도 깊이 친해질 순 없었다. 지정성별이 남자이지만 남자의 문화에는 끼지 못하고, 그렇다고 여자의 문화에서도 거절당해 그야말로 고립무원이었다.


그러다가 여자친구를 만났다. 우연히 들어가게 된 총학생회에서 맺어졌다. 본인의 뇌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온 터라 언급을 안 할 수가 없다. 여자친구를 통해 페미니즘, 비거니즘, 퀴어, 인권 등 많은 것을 제공받았다. 그러면서 나는 기존에 내가 만들어온 사상관을 이들과 비교하고 접목하며 더 잘 갖추어진 형태로 만들어나갔다. 이 점을 들어 나는 걔를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은 인간을 존중할 줄 알고 지적이고 진취적인 인간이다. 그리고 그런 여자친구는 이미 타들어갈 대로 타들어서 소위 '멘헤라'인 내 정신상태를 견디지 못해 하며 나를 찼다.


그 때부터 큰 충격을 받아서, 나는 다시는 누구에게 사랑을 갈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랑을 받고 싶어서 했던 짓들의 결과가 헤어짐이니. 그리고 '내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면,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재평가해줄 것이다'라는 마인드로 살기 시작했다. 교육실습도 그럭저럭 넘겼다. 그리고 나는 깨달음의 시간을 더 가지기 위해 1년간 휴학을 결심했다. 어차피 그 멘탈로는 임고 공부도 할 수 없기에 정신을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줄어드니 이제 내가 뭘 하며 먹고 살아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임고는 떨어질 수가 있잖은가? 그래서 버스기사를 도전하려고 일단 운전면허부터 땄다.


깨달음의 시간은 나를 돌아보고, 나의 지적 세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에 쓴다. 실없이 남간에서 '젠더퀴어'를 검색해봤는데, 거기에는 데미젠더라는 것도 있었다. 즉 남성이나 여성의 젠더를 가지고 있더라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왠지 이 개념이 나를 더 잘 설명해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든 생각 중, 나는 남자들의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데 왜 여친이 '남자들은 ~해서 싫어'라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발끈했다. 왜 싫었을까? 나는 답을 찾았다. 일단 내 지정성별은 남자니까 그 비판의 대상에 들어갈 거고, 나라는 존재는 '남자'라는 특성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데 그저 내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나의 모든 것을 무가치하게 바라본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남성의 젠더를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나를 성별에 구애시키지 않고 그냥 나 자체이길 원하는 마음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편 내 신체가 여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이전부터 조금씩 들었다. ㅂㅈ가 없고 유방이 크지 않아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애들의 옷차림이 친숙해 보이고, 여자애들이 입는 옷을 입어보고 싶단 생각도 든다. 그리고 나는 귀여운 인형을 좋아하고 여리여리한 내면을 가지고 있다. 여자로 패싱되는 사람을 볼 때 더 친근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아름다운 곳을 구경하러 가는 것이 좋다. 즉 나에게는 여성의 젠더, 그리고 여성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나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은, '불완전한 남자이자 불완전한 여자이며, 본인을 성별로 정의하지 않고 싶어하기도 하는 무언가'이다. 여자친구의 말 중 '퀴어의 종류는 무한하며, 논퀴어의 범위는 매우 미세하기 때문에 사실은 현재의 모든 인간이 퀴어일 수도 있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래서 나를 저렇게 복잡하게 정의하는 데에 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성을 남녀 이분법적으로 나누려고 하는 문화를 뿌리뽑는 것을 인생의 소원 중 하나로 삼을 거다. 또한 퀴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비정상으로 여겨지지 않게 되는 것을 인생의 소원 중 하나로 삼을 거다. 전진하는 젠더퀴어! 멋질 것이다!(고닥체로 썼지만, 나는 고닥체가 너무 인상 깊어서 진지한 발언에도 고닥체를 사용한다)


대체로 사람들이 주민등록번호를 깔 때는 성별을 까고 지역코드를 가리는데, 나는 지역코드를 공개하고 성별을 가린다. 내가 보성 출신인 것은 자랑스러우나, 나의 의사와 관련없이 기존의 문화가 알아서 정해준 지정성별은 자랑할 만한 것이 못 되기 때문이다. '내 성씨는 백인 농장주가 지어준 성씨이며 진짜 성씨는 알 수 없다'며 X라는 성씨를 사용한 맬컴 엑스 같은 심정이랄까? 그리고 게임 같은 데서 상대방이 '남자예요 여자예요' 이런 말 하면 '젠더퀴어일 수도 있잖아'라고 받아친다.


아 그리고 누군가가 만약 '아니! 넌 그저 남자일 뿐이야! 빼애액!' 이러면 퀴어 혐오하는 TERF로 간주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