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 채널

우선 제 소개부터 해야겠네요.


이제 막 서른줄을 바라보는 트젠입니다.


그냥 그런, 중소기업에 다니며 디자이너 작업을 하고 피곤한 야근에 찌들려 커피나 달고 사는 그런 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중 한명이에요.


그냥 적당히 연애도 해보고 썸도 타보고 취미생활도 이따끔 하며 잘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누구나 그렇듯 가끔은 본인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싶어하는 평범한 직장인 A


긴 프로젝트 아닌 프로젝트도 끝나서 자축할 겸 간 수치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한잔 한 채 쓰는 그런 두서없는 이야기지만 이제는 이쪽 커뮤니티는 기웃거리지도 않을 그 아이에게 직접 전하지는 못하니 우연히 보아주었으면 하여 써 보려 합니다.


한 병원에서 F64.0 진단서를 받은 스물 셋의 여름 쯤 이제는 말해도 틀딱이라고 취급당할 게임인 스타라는 게임 안 유즈맵인 가족놀이라는것에 한창 빠져있었죠.


흔히들 가놀이라고 칭하는 역할극 안에서 전 제가 그토록 바라던 여성의 성별을 연기하며 좋은 말로는 많은 남성분들과 친목질 나쁜 말로는 좆목질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죠.


그렇게 정말 가까웠던 사람들에게 커밍아웃도 하고 다행스럽게도 큰 거부감 없이 받아주시며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을 펼치고 있었어요.


이따끔 메이플도 하고 타 게임도 하며 스카이프를 병행하기도 했었는데, 어느 날 어떤 한 남성분께서 얼굴도 모르는 제게 고백하더라고요.


얼굴도 모르던 제게 그렇게 급격히 거리를 좁히며 다가온 그를 경계하기보다는 저는 오히려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았죠. 아직도 그 사람에게는 감사해요. 그 아이를 만나는 다리를 놓아주었으니까요.


그렇게 그와 제 생애 첫 연애를 시작했어요. 아직 패싱조차 제대로 되지도 않고 애매모하고 중성적인 외모를 지닌 저였지만 진심으로 절 사랑해준다고 느낄 정도로 절 따스히 안아주었죠.


어느 가을날이였던가요, 우리가 전화나 영상통화로 그치지 않고 만남을 약속했던 날 그날 정말 기뻐 행복감에 젖어 있을 때.


우리가 주로 스타에서 모이던 채널로 한 아이가 찾아왔었어요. 자기 지인을 찾으려 갑작스레 나타난 그 아이는 남다른 친화력으로 모두와 금새 가까워지며 좋은 관계를 형성하듯 했어요. 저 또한 그 아이를 긍정적으로 보기는 마찬가지였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신은 그 아이를 경계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갑작스레 나타난 아이가 당신과 내가 기껏 형성해논 채널에 아무 무리 없이 적응을 한걸 보고 말이죠.


그 아이와 인맥들과 친하게 지내고, 우리가 약속한 그날이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최대한 이쁘게 입어본다고 노력도 하고 잘 안쓰던 향수도 뿌리고 그 모습이 당신의 눈에 어찌 보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어중간하게 꾸민 남폼으로 보였을지, 아니면 보이시한 여폼으로 보였을지는..


당신을 만난 첫날은 조금 당황스러웠던것같네요. 영상 통화의 보정 탓일까 살짝은 못 알아볼뻔했고(농담이에요) 그걸로 놀리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나가며 행복한 데이트를 펼쳐나갈것만 같았죠.


솔직히.. 행복했어요, 정말 내가 이토록 부모님에게마저 사랑받아 본 적 있나 싶을 정도로 당신을 너무너무 사랑했어요. 같이 영화도 보고 팝콘도 먹고 룸카페에 가서 끌어안은 채 옅은 입맞춤도 나누며 서로의 체온을 공유했었는데 그렇게 마냥 행복해하며 평생 당신을 믿고 의지하기로 했었죠.


하지만 당신은 아니였나봐요. 뭐라고 해야할까 날 부끄러워한다는게 정확한 반응이였겠네요. 사람들이 없는 으슥한 골목에서나마 당신과 손을 잡고 걷고 싶었는데 당신에게 손을 건네 잡으면 잠시 경직된 웃음을 짓고는 슬며시 몇걸음 걷다가 손을 놓아버리는 당신이 조금은 미웠지만 그래도 난 괜찮았어요.


내가 아직은 여폼이 안되었나보다 좀 더 노력해야하나보다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당신과 꿈만같은 당일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에 몸을 싣고 한시간쯤 갔을때였나요.


당신이 내게 이별을 고했죠. 우리는 아닌것같다고 이런 만남을 이어가는건 도저히 힘들거같다고 내가 생각하던 너와 내 모습은 이런게 아니였다며 말이죠.


이해해요 솔직히.. 당신 입장에서는 내가 그런 어중간한 그래요. 속된 말로 괴물로 보였을 수 있었죠.


그런데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정말 눈물밖에 나지 않더라고요. 배신감에 숨이 틀어막혔고 내 첫사랑이 이렇게 무력하게 무너지는구나 내가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와 홀린듯 침대에 누워 노트북으로 스타를 키고는 당신이 접속해있는지 확인했어요. 하지만 우리 채널에도 내 친구창에도 함께 매일 매일 우리 연애일자를 바꾸며 꾸며둔 스타 프로필에도 나와 당신의 흔적은 없었어요.


그렇게 씻지도 않은 채 노트북을 켜놓고 얼굴을 배게에 파묻으며 정말 세상 떠나갈 듯 울었어요. 난 정말 당신을 사랑했는데 당신은 아니였다는게 난 그저 조금 신비스런 장난감이였다는게 정말 정말 힘들었어요.


그렇게 정말 힘든 나날을 보내며 알 수 없는 의무감과 미련에 스타만 켜두고 당신의 흔적을 어떻게든 찾으려 애를 쓰던 그때였어요.


유달리 친절하고 분위기의 변화를 잘 읽어내던 그 아이는 어느덧 상황을 지레 짐작한 채, 우리의 연락수단이던 라인을 통해 위로를 건네왔어요.


서툴지만 사려심깊고 배려깊은 그 아이의 위로탓에 어쩌면 지금의 내가 완성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토닥거림 그리고 사랑스러움 가득했던 그 위로는 절 깊은 심연 아래서 끌어올려주었고.


이별의 탓에 깊어진 디스포리아에 허덕이며 고생하던 저를 따스히 안아주었어요. 결국 그 탓에 남매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지게 된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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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오늘은 여기까지  쓰게 되었네요.


제 마음속에 담아두는 이야기를 쓰는것이라, 불편한 분들도 계실것 같고 보기 거북하신 분도 있을테지만


그냥 서른줄을 바라보는 이제는 아줌마가 되어버린 사람의 주책이라고 생각하며 봐주셨으면 해요.


뭐.. 질문 하실게 없으시겠지만 질문도 남겨주셔도 되고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네요. 댓글에 남겨주시면 정말 기쁠거같아요.


아마 본격적인 그 아이와의 이야기는 두번째 게시글에 쓰게 될것같네요. 


그럼 다들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