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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그 아이와 이별한 무더운 여름이 한꺼풀 더 가까워졌네요


다들 몸 조심히 생활하시길 바래요


아마 한두편 내외로 마지막 이야기가 될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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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날이 지속되고 쨍쨍한 열기에 더위가 한꺼풀 더 겹쳐질 무렵.


그 아이의 훈련은 짙어지고 제 몸의 변화는 가속되어만 갔죠 처음 HRT를 시작할때와 다르게 화장도 늘고 머리도 단발까지 길어지고 가슴도 점차 모양을 잡아가고 여목도 안정적으로 변해갔어요 그래요 제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흔히들 말하는 패싱이 되어가기 시작한 무렵이였죠.




뭐랄까 가놀을 쭉 즐겨했었는데, 그 아이와 목소리를 트고 나서는 가놀을 하며 보내는 시간보다는 함께 통화하며 유즈맵을 즐기던 시간이 더 많아졌던것같아요. 그렇게 담소를 나누고 말도 놓아가며 서로 알지 못했던 비밀을 공유하며 한층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었죠.




그리고 살림에 방문 일정이 잡혔을때 마침 그 아이는 서울에 저녁 약속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만남을 약속했어요.


아 어찌나 심장이 터질듯 뛰었는지 몰라요 얼굴도 모르는 아이인데 심장은 진정할 줄 몰랐고 그 전날 새벽까지 긴장감과 기대감에 잠들지 못한채 한참을 뒤척였었죠.




그리고 결전의 날 아침이 밝았어요 아 이렇게 말하니 이상한가요? 제겐 그렇게 느껴졌는걸요 그 아이가 좋아한다던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을까, 아니면 정말 편한 복장을 입고 갈까 고민하던 중 그 아이가 기차를 타고 출발했다는 메세지를 보내왔어요.




살림을 거쳐 서울역까지 마중을 나가야했기에 부랴부랴 옷을 입었죠 한참을 고민하던 원피스는 내버려 둔 채, 레이어드 티셔츠를 간단히 말아 한쪽만 롤업하고 남은건 슬랙스에 밀어넣고 간단하게 화장을 얹은 다음 슬립온을 발에 맞춰 끼우곤 발걸음을 재촉했어요.




그렇게 살림에 도착해서 진료를 받을때도 계산을 할 때도 서울역으로 향할때도 제 머릿속은 온통 그 아이로 가득했어요. 두근거리는 설렘을 안은 채 역사 내 플랫폼에서 그 아이를 기다렸죠.




그리고 그 아이의 전화가 제 핸드폰을 울리고 KTX 한대가 들어오며 짦은 머리칼이 바람을 스치고 지나가 안정되어 내려올 때 귓가에 핸드폰을 댄 그 아이가 천천히 기차에서 걸어 내려왔어요(외모에 대한것은 생략할게요 그 아이에게 실례일 수 있으니까요).




전 단번에 그 아이임을 직감했어요 잠시 목소리를 다듬고 전화도 받지 않은 채 그 아이의 이름을 불렀죠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그 아이는 시선을 제게로 옮겼고 싫은 티 하나 없이 제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어요.




오느라 피곤했지?




'아니야 어차피 한번 왔어야했는걸'




그래도 고생 많았어 점심 안먹었지? 식사부터 할까?




'응 그러자 누나 뭐 먹고싶은데?'




난 서브웨이




'...어 그러자'




어색하면서도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가며 간단하게 서브웨이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한 그 아이와 저는 서브웨이에 도착했어요 익숙하게 주문하며 그 아이에게 어떤걸 먹을건지 물어보려던 찰나 부끄러운 얼굴로 제게 말하더라고요.




'나 서브웨이 처음와봐.. 그러니까 누나가 아무거나..'




웃음이 터져나왔어요 어린 연하남과 데이트는 이런걸까요 그 아이의 것까지 주문하며 쿠키 두개와 콜라 두개 샌드위치를 받아온 우리는 구석 자리에 앉아 웃으며 눈을 마주한 채 대화했어요 이따끔 여목이 흐트러져 제 목소리가 나올때도 그 아이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그저 웃음지으며 자연스레 대화를 이끌어주었어요 참 사려심깊은 아이였었죠.




그렇게 간단히 식사가 끝나고 그 뒤로는 그 아이와 볼링장도 가보고 그렇게 그 아이가 기겁하며 싫어하던 노래방도 억지로 끌고갔어요 되게 노래를 못 부르던 아이였는데 이상하게도 제 귀에는 정말 감미롭게 들리더라고요 그렇게 사진도 찍고 놀러다니길 잠시 지친 몸을 카페에서 쉬게 해주었어요.




'누나는 기운도 넘치네 아 힘들어'




운동도 하면서, 몸은 좋은데 체력이 떨어지네




'아니.. 그건 아닌데 사람 많은곳가면 기 빨려'




이제 곧 가야하지?




'응 저녁식사 약속이 있어서 어쩔 수 없네'




오늘 즐거웠어!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겠지?




'나도 즐거웠어 다음에 꼭 시간내서 올게'




지금인가? 지금 고백해야할까, 어떡해야할지 모를 제 마음이 쿵쾅거렸어요 머리와 가슴은 어서 말하라고 했지만 제 입은 떨어지지 않았고 결국 그 아이를 버스정류장까지 마중보내면서까지도 제 마음을 전하지 못했죠 아아, 이때 고백했으면 미련이라도 남지 않았을텐데 정말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안타까워요.




그렇게 그 아이를 약속장소에 보내며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했어요 아직은 내 용기가 부족하구나 그렇게나 멋진 너의 옆자리에 서려면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구나라며 스스로를 다시금 다잡던 밤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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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달달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 되었네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는 제 주접인가봐요


다들 좋은 밤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