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이챈러스 채널

프레임이란 액자와 같은 것이다. 야외에 있을때에 내가 보는 것은 야외의 풍경이다. 그러나 실내에서 네모난 창문을 통해 보는 풍경은 창문이라는 프레임을 통해서 보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효과를 나타낸다. 왜냐하면 프레임이라는 것은 어떤 대상이 다른 무언가에 담겨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풍경을 밖에서 볼때에는 커다란 감흥을 느끼지 못할때도 있다. 왜냐하면 그냥 눈 앞에서 펼쳐지는 것이기 때문에 감상적이 되기보다는 그냥 평소와 같은 일상을 겪게 된다. 프레임 내에서 그것은 나와는 어느정도 거리를 둔 것이 되기 때문에 관찰과 감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지게 된다. 어떻게 보면 프레임이라는 것은 그 대상이 주인공이 아니라 그 대상이 투영하는 대상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프레임 내부의 것에 집중하게 된다. 사실 프레임 내부와 외부중에서 어떤 부분이 더 중요한지는 경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

 

 

 

 

 

 

미술에 모든것을 바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사람은 모순이 있을까 없을까?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의 예술과는 큰 상관이 없을까? 그 사람의 문제는 예술을 해서 생긴 문제일까? 그렇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모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떤 예술이 완벽하다고 한다면, 그 예술은 논리정연하고, 모순이 없을 수도 있다. 모순이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일단 완벽한 아름다움을 만들었다면 적어도 문제점과 단점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이 때때로 저항의 상징이 되는것을 넘어서, 완벽한 예술을 하는 사람은 현실의 모든 문제를 초탈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해버린다고 해도, 예술을 포기해버렸다고 할 수는 없다. 예술도 결국 기술의 일종이다.

 

심리적 연상은 그냥 생각나는대로 떠오르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에는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에 따라서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 사람의 주된 심리적 상태가 무엇인지에 따라서 다른 결과를 보일 것이다

 

 

 

요즘 우주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지구의 존재자체가 신의 존재이유라고 한다. 만약에 지구가 존재하기 위해 세상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지구가 존재해야하만 하고, 지구 밖 우주는 우주의 물리법칙을 준수하는 공간과 시간인 것이다. 과연 태양계에서도 지구에서만이 생명체가 번성하고 있는것은 특이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온도를 맞춰주고 기압과 공기조성과 물이 있으면, 생명체가 있어서 지구처럼되고 만약에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냥 돌덩어리 가스덩어리 행성이 된다는 건데 알다시피 우주에 생명체가 있는 행성을 찾기가 정말 힘들다. 그러니 신이 사람들의 보금자리인 지구를 만들기 위해 세상을 만들었다고 한다면, 일면 타당하다. 어떻게 아미노산이 존재할 수 있고, 생명체의 조직을 구성하는 유연한 화학적인 방식과 구조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을 만들려고 주기율표가 작정을 한 것이 분명하지 않을까? 만약에 우주가 재수가 없어서 지구와 같은 환경을 지닌곳을 행성과 혹성을 포함해서 단 한곳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우주는 돌무더기 가스덩어리 세계가 되는걸까? 그렇다면 그 우주를 경험할 사람이 없다면...... 그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을 누가 알 수 있을까?

 

과연 빅뱅이 일어날 당시에는 우주에 정말로 아무도 없었고, 그저 가스무더기 돌무더기였을 때였다. 인간이 나타나서 비로소 빅뱅이라는 가설을 '증명'이나 해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교묘한 오류라고 생각한다. '인간적'이라는 것이 그렇게 특별한 것인가? 지구가 '지구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지구적이라는 것이 엄청 특별해서 지구가 우주의 업적인 것인마냥 생각될 수 있을까? 지구는 그냥 우주의 상태일 수 있다. 굳이 경이로워 하고싶다면 우주의 물리법칙과 화학법칙에게 경이로움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지구에는 어딘가에서 비가 내리고 있을것이고 지금은 밤이지만 어딘가는 낮일 것이고 우리는 밥을 먹고있지만 다른곳에서는 빵을 먹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음악도 울려퍼지고 있을 것이다. 어딘가는 과학기술을 만들어내는데에 몰두하고, 어떤 곳은 기술의 편리함을 만끽하고 어떤곳은 독재자로부터 억압받고 있어서 저항하고 이겨내는 것이 주된 관심사인 곳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세상은 제법 복잡하다. 그런데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세계의 목적이 '복잡하게, 더더욱 복잡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 확신을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세계의 목적이 단순하게 복잡해지려고만 한다는 것이 과연 맞는일인지 의문스럽기는 했다. 지구는 확실히 복잡한 계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천왕성이나 해왕성은 그냥 푸르딩딩한 덩어리일 뿐이고 거기에 대기와 지층이 있을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좀 재미없는 구조일 것이다. 그것들은 지구에 비해 단순하다. 세계는 어떻게 보면 복잡하게 보이지만 또 어느순간 너무 단순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이것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그냥 내 생각의 전개이다. 나도 확신하고 있는것이 아니다.)

 

그것도 결국 사람의 감정일 뿐이다. 세계는 그냥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종교를 믿지않는 상당수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슬럼프를 극복하려면 어떤 짓을 해야할까...... 1번 푹 잠을 잔다. 2번 깊게 심호흡을 한다. 3번 친구들을 만나서 술을 마신다. 4번 혼자 술을 마신다. 5번 나무라이브 꺼라

 

아메바마저 복잡하다. 어렵다가도 쉽게 느껴진다. 멀리있는 창문에 비추어진 작은 세계가 신비로워 보인다. 물론 그것은 자극적인 효과일 뿐이라서 큰 의미는 없다.

 

큰 의미라고 한다면 아마도 현시대에 대면한 사회문제나, 혹은 현대에 영향을 끼치는 현대사에 대한 지식이나 혹은 최근에 개봉한 영화나 뮤지컬에 대한 평가와 멜론차트와 PC방 게임순위나 한국의 월드컵 진출 가능성 같은 것이 아닐까

 

나는 자면서 가끔 꿈을 꾼다. 예전의 꿈에서는 내가 길거리의 어떤 서점에 들어갔는데 서점 내부가 매우 적절하게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다. 가히 2050년의 인테리어 기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감정적으로 황홀감을 느끼면서, (그것은 마치 세상경험이 부족한 아싸가 별것도 아닌것에 호들갑 떠는 것과 비슷했다)서점을 둘러보았다.

 

착한 아싸는 사실 인간관계에 서툴러서 악한행동을 잘 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착하다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지적 판단력을 요구한다. 그들의 선한 가치관은 고귀한 것이다. 그런식으로 폄하되어서는 안된다. 사실 내 친구중에서 착한 아싸가 있어서 그렇다. 나는 내 친구들을 변호하고 싶다. 내가 절대로 착한 아싸라서 이런 글을 쓰는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