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논쟁은 두 가지 주장으로 나뉘어져 왔다. 하나는 잘못된 외래어 표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논쟁.

이 논쟁은 잘못된 외국어 표기법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혼동을 줄 수 있으니 개정해야 한다는 논쟁이다.

다른 하나는 잘못된 외국어 표기법이라고 해도 그대로 고수하자는 입장이다.

이 입장이 내세우는 논리는 은근히 간단한데, 외국어 표기법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 외국어를 모르는 편이 많으며 잘못된 외래어 표기법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그 외국어를 알고 있는 편이 많아 굳이 외래어 표기법을 이용할 필요가 없으니 외국어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도, 모르는 사람에게도 잘못된 외래어 표기법의 개정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대체로 후자의 의견을 존중한다. 실제로 후자의 논리가 실생활에 적용해보면 가장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어 만큼은 전자를 지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나의 생각이자 이번 글의 논지이다.

왜 하필 러시아어인가? 러시아어의 외래어 표기법은 심하게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어의 외래어 표기법에서 적용하지 않고 있는 발음 규칙은 다음과 같다.(이외에도 더 있지만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기에 이 두 가지만 다루겠다. 다른 발음 규칙은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강세

구개음화

이 두 가지의 원칙은 러시아어를 발음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되는 요소이지만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은 이 두 가지의 원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 두 가지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논지를 펼치기 이전에 이 두 가지 원칙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하겠다.

강세란 말 그대로 강세가 붙은 모음의 발음을 집중 시켜주는 것으로 쉽게 말해서 원래 발음을 존중해주고, 더 두드러지게 발음하는 것이다.

쉬운 이해를 위해 러시아어에서 사용하는 문자인 키릴문자의 알파벳 О(오)를 가지고 설명하겠다.

О의 원래 발음은 오 이다. 이 발음은 О에 강세가 붙은 경우 당연히 이 발음을 존중하고 더 두드러지게 들리도록 강하고 경우에 따라 길게 발음해야 한다.

그러니 강세가 붙지 않은 경우에는 О의 발음은 오 가 아닌 아 로 바뀐다.

예시를 하나 가져와 보자면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의 철자는 Москва 이렇게 된다. Москва에서 О는 강세를 갖지 않는다. 그래서 실제 발음은 모스크바가 아닌 마스크바가 된다.

이렇게 강세란 한 단어의 발음을 좌지우지 할 만큼 매우 중요한 발음 규칙이다.

문제는 강세는 단어에 있는 여러 모음 중 딱 하나에만 붙으며 그 규칙은 존재하지 않아 단어를 외울 때마다 따로 강세가 붙은 모음을 외워줘야 한다는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Ё라는 모음이 있는 단어이다. 이 철자는 항상 강세를 지닌다.)

그래서 이 강세는 외래어 표기법으로 표시하기에는 매우 까다로운 발음 규칙이다. 하지만 적용하지 않는다면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아주 극단적인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다.

Оймякон 이라는 지명이 있다. 이 마을은 러시아에서 가장 추운 마을로도 유명한 오이먀콘이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당연히 오이먀콘이라고 표시하는 게 맞다.

하지만 실제 발음은 아이미꼰이다. 강세를 적용하자 완전히 다른 발음이 되었다. 러시아어 원어민들은 모두 아이미꼰으로 발음하며 오이먀콘이라고 하면 알아듣지 못한다.



이 영상 속에서 그 예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곽튜브가 오이먀콘으로 발음했을 때 한번에 알아듣는 러시아인은 이 영상에서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또 Яйцо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계란이라는 뜻으로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야이초라고 발음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발음은 이이쪼 이다.

이렇게 강세의 비적용은 큰 혼란을 줄 수 있다.

다음으로 구개음화의 적용의 필요성에 대해 서술하겠다. 구개음화도 강세 못지않게 러시아어를 발음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러시아어 구개음화의 원리는 한국어와 비슷한데 좀 더 극단적으로 단순화 되어있다.

러시아어에서는 무조건 지 라고 발음해야 한다. 예외는 없다.(외래어를 제외하고)

구개음화가 적용되는 자음과 모음은 다음과 같다

Д,(데) Т(떼)

И(이), Е(예), Ё(요), Ю(유), Я(야)

ь(연음기호 мягкий знак은 모음은 아니지만 구개음화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ди는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디 로 발음하지만 지 라고 발음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러시아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Владимир Путин)의 발음은 블라지미르 뿌찐이다.

이와 같이 구개음화를 제대로 표기 하지 않으면 아예 다른 발음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데 강세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외래어 표기법에서 적용하지 않는 것이 큰 문제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이러한 주장이 틀렸다는 반론이 존재할 수 있다. 결국 러시아어를 아는 사람만이 이 문제를 인지할 수 있고 러시아어를 알기 때문에 외래어 표기법이 필요 없지 않느냐.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간과하고 있는 점이 하나 있다. 바로 해외여행. 러시아로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모두 러시아어를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이 러시아어의 잘못된 외래어 표기법이 적용된 예를 들어 지명이나 단어를 사용해 러시아인들에게 질문할 상황이 온다면 당연히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위에 첨부한 영상을 보기 바란다. 곽튜브는 심지어 러시아어 전공자임에도 잘못된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자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어의 외래어 표기법은 다시 말하지만 일본어나 영어 등의 언어 표기법에 비교해서 심각하게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러시아어의 외래어 표기법은 개정되어야 한다는 게 나의 소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