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스토리를 막 클리어 했을 땐 스스로도 스토리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 없었음.

그래서 이 부분은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한 결과 내 나름대로 얻어낸 결론과 그로 인해 이해한 선데이의 인물상을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겸 해서 공유하고 싶다고 생각함.




먼저 선데이가 플레이어의 선택을 묻는 부분에서

선데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어느 쪽 선택이 옳다 그르다가 아님. 왜냐하면



어느 쪽을 선택해도 등장인물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걸 피할 수 없기 때문. 즉 선데이가 말하고자 하는 건 



화합의 가르침으로는 결국 한계가 있어서 약자를 구원할 수 없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 실제로 로빈의 말은 이상적이지만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수 없고 사람에 따라선 선의의 폭력이 될 수도 있음. 예를 들어



로빈은 자신의 몸을 바쳐 화합의 가르침을 실현하려 했지만 그 마음이 통한 것은 그중에서도 일부였음.

걔중에서도 로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로빈의 손길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임. 또



현실의 항암치료로 대입해보면 완치 가능성도 가능성이지만 치료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고통이 동반됨. 

그리고 그렇게 완치되었다 하더라도 그 어르신의 남은 여생은 얼마 남지 않았을 것. 

나이도 많이 들어 보이는데 과연 치료될 지 어떨 지 모르는 가능성을 위해 자신의 여생과 목숨을 걸고 싶어 할까?



어릴때부터 로빈은 생명이 무언가를 추구하여 쫓아가는 모습을 동경해 왔고,

선데이는 그 꿈을 쫓는 과정에서 희생되어 가는 약자들에 감정이입을 했음.

그리고 두 사람의 의견은 합의점을 찾아, 함께 낙원을 만들기로 했음.

선데이는 두 가치관이 충돌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낙원을 위해 노력해왔고 

그게 선데이가 관리하는 페나코니임.

현실에 지친 사람들을 보듬어주며 잠시 아늑한 새장에서 쉬게 하고,

다시 날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날아가고, 정착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정착할 수 있음. 



다만 문제는 이 페나코니가 근본적으로 스텔라론으로 인해 세워진 곳이었다는 사실임.


스텔라론에 의해 나약함이 더욱 증폭되고 사람들은 꿈에 더 의존하기 시작함.

원래부터 꿈의 세계에 정착하러 온 사람은 물론이고, 그저 휴양 기분으로 잠시 쉬러 온 사람도 

스텔라론의 영향에 의해 판단력을 잃고 꿈세계에 붙잡혀 앞을 향할 의지를 잃어가고 있었다는 것임.



실제로 같은 꿈 세계지만 스텔라론의 영향에서 벗어나 암초에 있던 사람들은 언제나 꿈에서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음.

반면에 황금의 순간에 있던 사람들은 스텔라론의 영향도 있어 영원히 황금에 순간에 있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됨.

이는 계속 페나코니를 관리하며 그들을 지켜보던 선데이에게도 확신을 주었을거라 생각함.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지는 이유를 '현실이 힘들어서 깊은 잠으로 도피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라고.



하지만 결국 현실의 페나코니는 돈을 받고 운영하는 휴양시설일 뿐이고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물질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음.

선데이가 바라는 낙원은 사람들이 물질적인 고뇌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임.



위는 선데이가 말하는 주 0일제에 대한 설명인데 이는 단순히 평생 놀고 먹는 사회가 아님.

현실로 예를 들어보면 어릴 적에는 소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도 있었고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었던 사람도 있었을 거임.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적, 물질적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거나 포기하고 자신의 장래를 바꿈. 성공하는 건 극히 일부임.

선데이가 말하는 사회는 그런 물질적 한계에서 벗어나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세상임.



선데이가 순수히 약자를 구원하고자 하는 선의로 이 일을 벌였다는 것은 3페이즈의 대사에서 알 수 있음

위 대사를 보면 신인 에이언즈나 에나에 대한 존경심 따위는 눈꼽만큼도 없음. 

질서의 뜻을 따르고 있음에도 에나를 그저 인간을 위한 도구로밖에 보지 않음.

오히려 너보다 인간이 위대하니 그 몸을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바쳐라. 라는 말로도 해석됨.



또한 우리에게 자신보다 더 나은 길을 제시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면 자신을 물리치라고 이야기 함.

물론 자기 행동에 자신이 있어서 하는 말이겠지만 자신의 목숨이나 가치관보다도 

인간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대사라고 봄.



그런데 싸우는 과정에서 로빈의 노래로 인해 잠든 사람들의 깨어나고자 하는 개척 의지가 자신을 공격하는 것을 보게 됨.



이에 선데이는 혼란스러움을 느낌. 자신은 분명 사람들이 원하는 깊은 잠을 주었지만 사람들은 깨어나려고 함. 

'그렇다면 깊은 잠에 빠지는 이유가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닌 건가? 그럼 왜 깊은 잠에 빠지지?'



이 부분이 사실 내가 가장 고민한 부분임. 척자의 대사로 선데이는 무엇을 깨달은 걸까?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꿈은 깨어나기 때문에 안식이다. 언젠가 꿈이 깰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 놓고 깊은 잠에 빠질 수 있다'

'만약 꿈이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꿈을 안식으로 여기고 잠들 수 없을 것이다.' 

라는 것임.



이에 선데이는 자신의 행위가 의미가 없었음을 깨닫고 납득하게 됨.

에나의 힘을 이용해 자신이 만든 꿈세계는 안식처가 아니라고. 꿈은 언젠가 깨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로빈은 여러 행성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좌절하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봐 왔을 거고,  

선데이는 페나코니의 관리자로서 평생을 살며, 스텔라론의 영향을 받아 꿈속에 안주하려던 사람만을 봐 왔을 것임. 


결국 두 사람이 함께 있었다면 두 사람의 가치관은 이렇게까지 멀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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