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바나나 혁명 1

 

현재 대한민국은 무정부상태이다.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폭주족들이 거리를 달리고, 뒷골목에선 매일같이 살인이 일어난다. 모든 것은 바나나가 멸종했기 때문이다. 플랜테이션 농법으로 인해 지나치게 유전적 구성이 단순해진 바나나는 신종 식물성 바이러스에 맥없이 죽어나갔다. 그렇게 바나나 가격은 미친 듯이 치솟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바나나우유의 가격은 그대로였으며 바나나우유에 바나나가 없다는 걸 알아챈 국민들은 정부를 상대로 유례없는 시위를 일으켰다. 정부는 급하게 바나나 마스코트를 제작하여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려 했지만 그 사이에 대통령이 먹다 남은 바나나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영상이 SNS에 퍼져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모두가 바나나를 먹지 못해 슬퍼하는 와중, 대통령은 국영채널을 통해 대국민 담화를 내보냈다, 이럴 때일수록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는 뻔한 내용이었다. 대국민 담화가 끝나고 사건은 어느 정도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대통령은 카메라가 꺼진 줄 알고 그만 “바나나가 없으면, 딸기를 먹으면 되잖아?”라고 말해 버렸다. 이에 국민들은 폭동을 일으켰는데, 바나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까지 참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통령은 급히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로 밀어붙이려 했으나 군인들은 이미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린 뒤였다. 그들은 탱크를 몰아 포탄 대신 바나나 마스코트 인형을 장전하여 청와대로 쏘았다. 인형 안에 들어 있던 바나나 우유가 터져 청와대가 바나나우유 냄새로 가득차자 결국 대통령은 이틀 만에 항복하고 하야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는데, 청와대에서 흘러나온 바나나우유 때문에 서울시 여기저기서 바나나우유 냄새가 풍겨 나왔고, 신선한 바나나의 향긋한 향기를 그리워했던 사람들은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발작을 일으키는 시민으로 가득 찬 병원은 넘치는 환자들을 모두 수용하기엔 역부족이었으며, 여차저차 병원까지 후송되었더라도 의사들이 할 수 있는 응급처치는 고작 바나나를 잘게 썰어 환자의 인중에 붙여주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수입되는 바나나는 병원에 우선적으로 공급되었고, 세간에서는 병원 창고에 바나나가 쌓여 있다는 루머가 돌았다. 결국 청와대 함락 후 두 달 만에 방독면과 바나나우유 수류탄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가 병원을 공격하여 바나나를 훔쳐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는 병신같이 바나나가 가득 든 트럭을 몰다 교통사고를 냈고, 트럭이 스펙타클하게 넘어지다 그만 바나나를 고정한 끈이 풀려 바나나 수백 개를 마포대교 위에 흘리고 말았다. 한편 바로 옆 도로 위에는 발작 때문에 병원으로 가는 차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는데, 옆에서 풍겨오는 신선한 바나나의 향기는 차 안에서도 느낄 만한 수준이었다. 그들은 차에서 뛰쳐나와 바나나를 향해 달려갔다. 바나나에 열광한 시민들은 서로 자기가 바나나를 먹겠다고 소리질렀고, 마포대교 위에서 한바탕 싸움이 일어났다. 바나나를 입에 물고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사람, 바나나를 바지 주머니에 터지도록 넣는 사람, 바닥에 으스러진 바나나를 핥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바나나를 맛보았다. 시민들은 자신이 먹은 바나나의 후기를 SNS에 올렸고, 이에 따라 사람들은 너도나도 병원을 공습했다.

 

결국 이 세계는 병원을 공격하는 것은 미덕, 않는 것은 악덕이 되어 버렸고, 이렇게 약탈한 바나나는 가공되어 마약상에게 비싸게 팔렸다. 이에 위협을 느낀 병원은 군인들에게 병원의 보호를 요청해야 했는데, 군인들은 시급 대신 신선한 바나나를 원했다. 웃기게도 군인들은 이렇게 얻은 바나나를 마약상에게 되팔았고, 안정적인 공급처를 얻은 마약 조직은 손쉽게 세력을 키워 나갔다. 결국 마약 조직은 바나나로 번 돈으로 군인들을 매수해 역으로 병원을 쳤다. 이렇게 바나나 시장을 독점한 마약상과 군인들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바나나 장사를 했고, 결국 이 나라는 폭망해 버렸다.

 

우리의 주인공 송재민은 16살의 어린 소녀이다. 그녀에게는 바나나 발작으로 쓰러진 동생 병훈이가 있다. 오늘도 재민이는 동생에게 바나나를 먹이기 위해 공사장에서 일한다. 시급은 6600원. 신정부가 책정한 최저시급의 절반도 안 되는 수치다.

 

“어이, 거기 제대로 안 하나!”

 

공사장 담당자가 확성기에 대고 소리질렀다. 호통소리 바로 뒤에 바나나를 쩝쩝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린다. 공사장의 인부들은 거의 모두 침을 꼴깍 삼켰다. 이 공사장의 인부들은 대부분 바나나를 사기 위해 일한다. 한 달을 꼬박 일하면 생활비를 제하고 검지 손가락 한 마디만큼의 바나나를 살 돈이 나온다. 그렇게 바나나를 사면 그 날은 일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바나나를 음미하는 일에 집중한다. 그렇게 바나나를 먹다 삼켜 버리면 허탈감에 빠져 그만 자버리면서도 결국 다음날 다시 공사장에 나오는 것이다.

 

물론 재민이는 바나나를 먹어 본 적이 없다. 부모님이 어릴 적부터 바나나 먹는 것을 멀리 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바나나 발작은 신선한 바나나의 향기를 그리워할 때 일어나기 때문에 재민이 입장에서도 그럴 듯한 교육 지침이었다.

 

병훈이도 물론 부모님께 바나나를 먹지 말라는 말을 귀에 박히도록 듣고 살아왔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갑자기 사라지신 후에는 불량한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바나나 가루를 맡게 되었고, 일주일 만에 이상 증세를 보이다 쓰러졌다. 병훈이가 깨어났을 때, 재민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병훈이에게 물어 보았지만 병훈이는 차마 자신이 바나나에 중독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고 그저 매일 밤 바나나의 향기를 잊으려고 노력하며 끙끙 앓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병훈이는 재민이가 자는 새에 부모님이 남겨놓은 비상금을 들고 도망쳐서 바나나를 사 먹었다.

 

몸의 고통은 가셨지만 재민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던 병훈이는 집에 쉽사리 들어가지 못했다. 재민이가 병훈이를 찾아낸 건 가출한 지 한 달 만에 집 앞 다리 밑에 바나나 발작으로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할 때였다. 병훈이는 그때까지 잘못을 숨길 수 없었고 결국 자신이 바나나를 먹었다는 걸 고백했다.

 

재민이는 그 당시에는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몰랐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동생을 용서했다. 인격이 성숙해서 그랬다기보다는 험난한 생활 속에서 원망할 존재를 두는 것 자체가 재민이에게는 큰 짐이었다. 그리고 재민이는 완벽한 여자아이이고 싶어했다. 어릴 때 들었던 백설공주나 신데렐라처럼 고난을 이기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여주인공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현재 힘든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그것이 공주가 어릴 때 맞닥뜨리는 고난의 일부라고 생각해야 했고, 자신이 그런 공주이려면 어리석은 동생을 욕하는 일 같이 쪼잔한 일에 빠져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어떰?

객관적인 평가좀

반응좋으면 2편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