ㄹㅇ 이제 남라는 문재앙 까려고 들어오다 팩트 전혀 없는 선동글보고 현타오게 만드는게 일상이네... 이러니까 개념 똑바로 박힌 보수도 욕을 처먹는거 아니냐... 주작이랑 선동질하면 쿵쾅이랑 다를 게 없는 걸 왜 모르냐? 하다못해 답이 없는 윾튜브 걔도 엑윽노인들 손절하는 이유가 있다니까?
난 광주에 특수부대는 대대급 병력이니 그런 말 안 믿는다. 현실성 없는 가설을 어떻게 믿냐? 그건 그거구 김신조와 간첩을 비유하는 게 맞냐? 김신조야 말로 진짜 특수부대고.. 간첩이 전부 특수부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겟지? 설정 자체가 다르다는 거구.. 그리고, 단정 斷定하고 특정特定은 다르다. 특수부대든 간첩이든 통금이 얘들 이동하는 데 별 지장을 줄까? 특수부대인데.. 음.. 낮에 이동하는 게 걸릴 확률이 적을 수도 있겠네~!
그래서 그 허수아비 아닌 대통령께선 국방을 담당하는 군대와 중앙정보부를 장악하고 계셨겠죠? 형식상 대통령이라도 실권이 없는데 전두환이 한 걸 최규하가 한 걸로 물타기를 하는 건 좀 추하지 않냐? 형식상 독립국인 만주국도 일제의 괴뢰국이 아닌 독립국이라고 우길 생각인가? 비시 프랑스도 그런건가?
전두환은 본인 회고록에다 광주사태 북한군 개입했다고 썼음. 그런데 광주사태가 들어가있는 1권만 검열당하고 출판 금지당함. cia는 군사행동 기미 없다고 했지만 막줄에는 한국이 혼란 상태가 가속될수록 북한은 더 과감하게 움직일것이다 이랬는데 계엄령 전국 확대를 옹호한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웃긴게 북한 침투설 나오면 욕먹는건 전두환이라니까?
그당시에 계엄 사령관에 온갖 중책들 다 맡고 있는 새끼가 북한이 침투한걸 광주까지 가는걸 모르면 직무 유기야 새캬. 그렇게 안보 강조한 새끼인데. 차라리 니들이 종북몰이 하는것처럼 종북주의자가 선동했다는게 더 신뢰성 있겠네 ㅅㅂ.
그 북한군들이 침투했다는게 안둘기 가지고 침투했다고 하면 걍 니들 머리가 빡대가리인거 인증이니까 닥치고 있자. 공기 부양정이나 잠수함? 500명 가량이 그거 타고 오는게 눈에 안띄일거 같냐. 시발 전라도면 한반도 남단이라고 병신들아.
그건 지 자서전에 나중에 쳐 넣은거고. 첨에 인터뷰에선 자기도 모르는 말투였는데 뭘 ㅋㅋㅋㅋㅋ
그것보다 지가 뭐라고 주장하든 그때 군의 실질적인 수장이였으면 남한땅에 북한 애새끼들이 침투해왔다는걸 몰랐다는게 문제인겨. 우리 국방을 책임지는 국군인데 말이돼? 시발 누가 객관적으로 봐도 말 안되는거 알거다. 그 특수부대가 클로킹 쓰고 오지 않는 이상
병신도 아니고 반박하는거 위키에 있으니까 들어봐라등신아
https://namu.wiki/w/5.18%20%EB%AF%BC%EC%A3%BC%ED%99%94%EC%9A%B4%EB%8F%99/%EC%99%9C%EA%B3%A1/%EB%B6%81%ED%95%9C%20%EA%B0%9C%EC%9E%85%EC%84%A4#s-2.11
2.11. 탈북자의 증언?[편집]
사실상 위의 반론들이 격파된 이후 우익들이 꺼내든 마지노선이 바로 탈북자 임천용씨를 비롯한 몇몇의 증언(?)에 따른 주장들이다.
북한의 고위층이 포함된 탈북자들의 증언이니 100% 진실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허점 투성이며 사실이라 보기에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다.
애초에 이들의 주장은 매번 달라져 일관성이 하나도 없다.
한국논단 인터뷰
2006년 기자회견
뉴스한국 인터뷰
세 번의 주장 모두 침투경로와 다시 돌아간 경로, 그리고 투입된 병력 수도 다르다. 결국 신뢰성이 없는 자료인 것이다. 게다가 투입된 병력들도 가장 적게 잡은게 400명 이상. 1개 대대에 준하는 수준이다. 상식적으로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18]
1968년 1/21 청와대 습격 사건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20~30명의 규모도 주민들의 신고로 발각되는 현실에 어떻게 400명씩이나 내려올 수 있었을까. 대한해협 해전에서 전멸한 북한군의 수가 대략 600명이다. 다 더해도 10척이 안 되는 전투함,소해정,상륙정이 해군력의 전부이던 시절에도 후방으로 쳐들어오려던 부대를 잡아냈는데 30년 후의 군대가 400명을 못 잡아낼까? 애초에 이만한 수의 무장간첩들이 내려올 수 있었다면, 그리고 이들이 대한민국의 가장 아래지역인 전라도, 광주까지 와서 봉기를 일으킬때 까지 몰랐다는 건 이 설을 지지하는 몇몇 우익세력들이 옹호하는 신군부의 무능만 증명하는 꼴이 된다. 에초에 400명씩이나 되는 정규군 특수부대원들이 내려왔는데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했다는건 군인으로서는 최대의 치욕이자 최대의 직무유기다. 만약 이들이 광주로 가지 않고 에초에 청와대로 가지 않은것 부터가의문이지만 청와대로 가 정부가 마비되었다면, 이건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의 책임이 막중하다. 아니, 애시당초 정통성 없는 놈들에게 뭔 유능함을 바라는 거야?? 그냥 전라도 사람에 콩깎지 씌우고 본다는 말이지
만약 정말로 400명 이상의 특수부대가 광주에 침투했다면 이건 이미 침투가 아니라 상륙작전 수준이다.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가지고 작정하고 월남하여 제 2의 한국전쟁을 계획하려 한 게 아닌 이상에야 불가능한 인원수다.
또한 이 무장간첩설이라는게 신군부의 당시 주장으로서 제시되는 그리고 일부 사이트에서 지금도 제시되는 79년 말 거제도 지역의 간첩사건과 일본 정보부 정확한 소속은 하는 사람 입마다 다른게 미스테리의 첩보에 의한 80년대 남침 음모설과 짬뽕되었던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때도 침투 관련 자료는 단 3명이었다.
또한 탈북자의 증언이 화제거리가 되자 다른 탈북군인 협회에선 이 주장이 현실성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마찬가지로 탈북자 출신인 주성하 기자 역시 북한개입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 여기서 언급했듯이 이런 식으로 일부 탈북자들이 고의로, 혹은 다른 세력에게 악용당해서 이런 왜곡을 행하는 사례가 5.18 외에도 여럿 있다. 이에 대해서는 북한이탈주민 문서의 '일부 탈북자들이 일으키는 사회문제' 소항목을 참고할 것.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은 이 특수부대들이 서로가 공수부대와 시민군으로 분장하고 소요를 일으키고 실제 해외 언론에 보도된 잔학행위는 모두 이 사람들이 저지른 일이다. 그리고 이런 잔학행위를 찍어서 실시간으로 북한에 생중계해 북한 사람들도 그 상황을 알았다는 이야기다. 북한 아틀란티스설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북한에서 심도있게 보도한 건 사실이고 광주를 소재로 한 여러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도 사실이지만 거기서 묘사된 광주는 다분히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평양에서 재현한 것에 불과하다.
만약 이들이 광주로 가지 않고 에초에 청와대로 가지 않은것 부터가의문이지만 청와대로 가 정부가 마비되었다면, 이건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의 책임이 막중하다. 아니, 애시당초 정통성 없는 놈들에게 뭔 유능함을 바라는 거야?? 그냥 전라도 사람에 콩깎지 씌우고 본다는 말이지 만약 정말로 400명 이상의 특수부대가 광주에 침투했다면 이건 이미 침투가 아니라 상륙작전 수준이다
맞춤법이랑 띄어쓰기를 태어날때 애미 난소에 놓고 왔나 이런 개병신같은 작문은 또 첨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니새끼들은 증언해도, 다른 사진으로 유추를 해봐도 구지 자료가 필요하구나? 응? 그 복부 자상이든 대가리가 깨진거든 그게 문제 있는거거든?
「김경철 씨는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할 수 없는 장애인이었다. 갓 백일이 지난 딸이 있는 평범한 가장이었던 그는 친구들과 점심식사 뒤 집으로 돌아오던 중 공수부대의 눈에 띄어 무차별 구타당했다. 부상당한 그는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9일 03:00에 사망했다. 검찰 검시조서에는 후두부 찰과상 및 열상, 뇌안상검부열상, 우측 상지전박부 타박상, 좌견갑부 관절부 타박상, 진경골부, 둔부 및 대퇴부 타박상 등이 사인이며, 사망진단서에는 후두부타박상에 의한 뇌출혈이 직접사인었다. 그의 시신은 군 당국에 의해 광주통합병원 영안실로 옮긴 후 상무대 내 101사격장에 매장됐다가 가족들에 의해 망월동에 안장했다.
- 12.12, 5.17, 5.18 국방부 보고서 70쪽」
「1980. 5. 18.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민오 씨는 광주일고에서 있었던 동문 체육대회에 참여했다가 주변에서 쫓아온 공수부대원들을 피해 광주일고 교장관사까지 도망쳤다. 하지만 교장관사의 안방까지 추격해 온 공수부대원들에 의해 구타당한 뒤 광주 서부경찰서를 거쳐 상무대로 연행됐다. 5. 19. 밤 상무대 영창에서 심각한 복통과 구토를 호소한 그는 이날 24:00경 광주국군 통합병원으로 옮겨졌다. 후송 당시 구타 후유증으로 췌장 및 비장 파열, 복막염 등이 발생하여 위험한 상태였다.
- 12․12, 5․17, 5․18사건 조사결과보고서, 70~771」
3공수특전여단의 진압은 곤봉세례와 최루탄 사용에 그치지 않는다. 화염방사기까지 시민·학생들의 시위진압에 동원된다. (88년 청문회 과정에서 당시 지휘관들은 화염방사기를 진압에 사용한 사실은 시인했으나 물감을 넣어 사용했을 뿐 살상용 화염방사기 사용은 없었다고 부인한다.) 방위병 신분으로 시위에 참여했다 화염방사기 공격을 받은 최병옥 씨(당시 21세)는 간신히 화염을 피하긴 했지만 고열로 얼굴이 익는 피해를 입는다.
"차를 타고 가던 중 공수부대의 공격을 받자 인근 주택 화장실로 피신했다. 이미 3명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곳까지 쫓아온 공수가 갑자기 화장실 창문으로 화염방사기를 대고 불을 뿜어냈다. 순간 숨이 꽉 막혀 뛰쳐나가 그 집 안방 장롱 속에 숨었으나 이내 붙잡히고 말았다. 끌려간 다음 날부터 얼굴은 껍질이 벗겨지고 진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화염방사기의 등장은 곧 공수부대의 진압이 이성을 잃었음을 의미하며(...)(302 ~ 303쪽)
『正史 5·18』, 광주매일 正史 5·18 특별취재반, 1995
사실 합리적인 분석은 "둘 다"라는게 가장 맞지 않나 싶다. 주 세력은 당연 광주시민들이지만 북한도 그런 혼란 상황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이용 안했을리는 없으니 북한 쪽에서도 그쪽에 숨어서 가담했을 수 있지. 80년대면 남한에 고정 간첩도 많을 시절인데 전혀 없어다고 하는게 오히려 비합리적임
이래서 정치극단주의를 항상 경계해야 한다. 한 정치적 논리에 세뇌되어 버리면, 눈에 뵈는게 없어진다. 설령 같은편인 자가 '그건 아니다' 라고 못박아줘도 그것을 부정하는게 극단주의자다.
단적인 예로, 5.18 광주 사건에 대해 진압을 명령한 전두환 조차 "처음 듣는 얘기다"라며 부인했음에도 꿋꿋이 날조된 주장만을 펼치는 이 글을 들 수 있다.
1980년도면 한국군은 지금에 비해 구데기 수준이었고 그냥 알보병수준이었다. 당시 정찰자산은 전부 미국(주한미군)에 의존하던 시대인데, 당시 냉전이라서 미국정보력이 극한 찍던 시절인데, 한두명도 아니고 특수부대 500명이 미군 정찰망을 완벽하게 뚫고 내려와 시가지에서 전투를 한다음 감쪽같이 흔적을 다 지우고 다시 북한으로 올라갔다고??? 북한군이 정신력이 강해서 사이오닉스톰도 쓰고, 다크템플러처럼 클록킹도 하고 아주 프로토스급 군사력이네
대대면 고작 500명인데, 많은 인원이 아님. 거기다 당시 감시기술한계로 바다에서 진입하는걸 전부 감시하는데 한계가 있지. 실제로 잠수함 무장공비 침투사건도 군인이 발견한게 아니라, 어부가 신고해서 발견한걸 토대로 군대에서 포위망 좁혀서 잡은거임. 무슨 맵핵킨듯이 북한의 동향을 전부 파악할순 없는 일이지. 거기다 걸리지 말라고 훈련시킨 특별대원인데 쉽게 걸리면 의미가 있나.
그렇게 개별적으로 은밀하게 진입한 500여명의 간첩이 광주로 일제히 집결해 광주 시민을 선동해서 폭동을 일으켰다고? 캬~ 이건 이거대로 대단하네 역시 첩보전은 북한에게 한수 접어줘야겠다. 그리고 애초에 북한군 개입설 주장하는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뭘 하다 왔는지도 불분명하고 증언때마다 침투인원,침투경로가 계속해서 바뀌는데 그런 진술이 설득력이 있다고 봄? 5.18이 폭동이라고 주장하고 싶으면 증명된 팩트를 들고와. 애초에 신뢰성없는 음모론을 자꾸 개연성 있게 재구성하려들지말고. 그래봤자 좌파들에게 힘만 실어주는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