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 북한군 있었다. 처도 얼마나 소탕작전을 개떡 같이 하면 민간이 사상자가 그 따구로 나오냐 . 거기다 선동에 넘어 갔다 처도?? 폭도는 자국민 아니냐 거기다 대고 총으로 쏴갈긴 군대는 정상적인 군대냐 걍 학살이지 , 빌어먹을 독일 새끼들도 자국민 한태 그 짓거리는 안함
이 사람 말대로 당시 전두환은 2성 장군으로 중앙정보부 서리와 보안사 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에 불과해 5.18 작전 지휘 체계에 아무런 관련도 없음. 그럼에도 욕 쳐먹는 이유는 당시 좌파들이 적대시한 신군부의 얼굴 마담이라 그럼 최규하 비서관도 5.18 이전까지 전두환에게 아무런 정권 욕심이 없어 보였다고 2006년 쯤에 방송에서 발언하기도 했음.
최근 자서전은 북한군 개입 금시초문 발언 이후에 출간된 것이라 이전 발언과 배치됨. 광주의 폭도를 진압하는 게 명분이었지 북한군을 진압하는 게 군인을 광주로 보내는 명분이 아니었음. 즉, 북한군 개입설은 최초에 제기된 것이 아니며 전두환의 지지를 얻은 주장도 아님. 최근에 장단 맞추고 있는 것이지. 게다가 뉘앙스뿐이잖어.
전 전 대통령은 2016년 4월 27일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진행된 ‘신동아’ 인터뷰에서 ‘5·18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침투와 관련된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전혀(모른다)”고 답했다. 옆자리에 앉은 이순자 여사는 “각하가 청와대를 경호하는(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장 때 북한 특수군(1968년 김신조 일행의 1·21 침투사건)이 내려온 걸 물리쳤고, 1사단장 하실 때 북한이 땅굴을 파고 남침한 걸 잡아냈죠. 그래서 광주사태 때 간첩을 집어넣어서 광주사태를 악화시켰거나, 또 그걸 기화로 이북에서 사람을 들여보냈거나 그럴 개연성은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증거가 없어요. 그래서 각하는 아예 말씀을 안 하세요”라고 부연했다.
언론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니 공식발표죠. 비공식발표입니까? 글고 전두환이 모른다하고 이순자 여사가 그 주장은 증거가 없으며 지만원과 자신들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증언했는데, 왜 지만원의 주장을 신봉하시는건가요? 북한군 개입설을 지지하시려거든 일단 이순자 여사 주장부터 즈려밟으시라.
518 당시 전두환이 북한군 관련 첩보보고를 받지 못했다라는 것의의미는 당시 작전의 최고 책임자로서 모든 정보를 보고 받을 권한이 있는 사람이 북한군의 개입과 광주 상황을 연결시킬만한 어떠한 정보도 보고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함. 당근 북한군 개입 금시초문이라고 표현 가능함.
웬 말꼬투리 가지고 ㅋㅋㅋㅋ 요약하면 당신들이 북한군 개입설을 지지하려면 일단 전두환 이순자부터 즈려 밟아야함. 저들은 당신들의 주장과 상충되는 발언을 시전한 상황임. 이게 핵심임. 뭐 근거고 뭐고 할 것 없이 직접 일을 시행한 사람이 나는 그런사실 몰라요라고 발언한 상황임. 이상황을 어캐 이해할래?
옆자리에 앉은 이순자 여사는 “각하가 청와대를 경호하는(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장 때 북한 특수군(1968년 김신조 일행의 1·21 침투사건)이 내려온 걸 물리쳤고, 1사단장 하실 때 북한이 땅굴을 파고 남침한 걸 잡아냈죠. 그래서 광주사태 때 간첩을 집어넣어서 광주사태를 악화시켰거나, 또 그걸 기화로 이북에서 사람을 들여보냈거나 그럴 개연성은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증거가 없어요. 그래서 각하는 아예 말씀을 안 하세요”라고 부연했다.
님들하고는 달리 이순자 여사는 개연성과 증거를 구분하고 상황판단을 내리는 기본기를 보여주시네요 ㅋㅋㅋㅋㅋ
전두환은 님들 주장에 대해서 나는 그런 사실 몰라요 라고 발언 ㅋㅋㅋ
위의 제 발언을 제대로 읽으세요. 귀찮아서 몰라요로 줄여서 쓴 것이지만 위에는 상세히 적혀 있음. 글고, 이순자나 전두환도 지지 안하는 북한군 개입설을 왜 지지하시는지? 당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쿠데타까지 일으킨 사람인데 무시하싈?
우습지만 그것이 그동안 5.18들이 부려왔던 패악질이에요. 5.18은 구성하는 몸통 자체가 유언 비어, 물적 증거 없는 증언 투성이입니다. 발생 당시에는 계엄군이 대검으로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니, 강간을 했다느니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씨를 말리느니...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한 유언 비어들이 광주 시민을 분노하게 했죠. [재밌는 건 실제 군복을 입은 민간인(시민군)이 여성을 강간하는 장면을 포착하여 검거한 것이 계엄군이라는 기록이 남아있음] 지금 와서도 화염방사기로 시민을 태워죽였나느니 전일 빌딩 근처서 헬기 사격을 했다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가 공중파, 지상파에 버젓이 나오고 있어요.
보안사령관 당시 북한군 관련 첩보를 못 들었다고 한 거지 북한군 관련 첩보 자체를 들은 바 없다고 한 적은 없는데 끝까지 날조하시네요.
나중에라도 북한군 관련 첩보를 들었다면 '나는 들은바 없다'고 말하나?
전두환조차 벙 찐 표정으로 첫 내뱉는 말이 "600명? 그게 뭔데?" 북한군 개입설 그런게 있다고 설명하니 바로 다음에 나온 말이 "어떻게 왔는데?"
헬기 얘기 더하자면 5.18 단체에선 계엄군이 UH1H를 탑승하고 전일 빌딩 근처서 시민들을 향해 헬기 사격을 했다는 헛소리를 내뱉는데, 재밌는 건 한 명도 기관총이 발착된 헬기 사진을 찍은 적이 없고 증거랍시고 전일빌딩 빌딩 내부 천장 탄흔을 내세우고 있어요. 문제는 헬기가 그 빌딩 내부 천장에 기관총으로 탄흔을 내려면 초 저공 비행으로 위를 향해 기관총을 쏴야하는데 이는 헬기 구조만 알아도 말이 안되는 걸 알 수 있죠. 또한 유사시 헬기 코브라, 500MD로 사격해도 좋다는 문건으로 물고 늘어지는데 탄흔 흔적이 코브라, 500MD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서 이미 논파된 주장이고요. 사실 그들도 알면서 저러는 거죠.
기자: "5.18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침투와 관련된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전두환: "전혀."
이순자: "지금 그 말을 하는 사람은 각하가 아니고 지만원이란 사람인데, 그 사람은 우리하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독불장군이라 우리가 통제하기도 불가능해요. 그걸 우리와 연결시키면 안 돼요."
고명승: "북한 특수군 600명 얘기는 우리 연희동에서 코멘트한 일이 없습니다."
전두환: "뭐라고? 600명이 뭔데?"
정호용: "이북에서 600명이 왔다는 거요. 지만원 씨가 주장해요."
전두환: "어디로 왔는데?"
정호용: "5.18 때 광주로. 그래서 그 북한군들하고 광주 사람들하고 같이 봉기해서 잡았다는 거지."
전두환: "오... 그래? 난 오늘 처음 듣는데"
도대체 정보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대답이 어떻게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는 주장으로 변질되는지 많은 분들이 이해를 못 하실 듯..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두환은 그냥 5.18 보안사령관 재직 도중 5.18 관련 첩보를 듣지 못했으며 북한군 '600명' 침투설에 취재날 처음 들었다.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에요. 애초에 전두환이 북한군 개입설 근원지인데 북한군 개입설 자체에 금시초문이라는 건 말도 안되는 허위 선동이라는 소리입니다.
이순자 여사는 “각하가 청와대를 경호하는(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장 때 북한 특수군(1968년 김신조 일행의 1·21 침투사건)이 내려온 걸 물리쳤고, 1사단장 하실 때 북한이 땅굴을 파고 남침한 걸 잡아냈죠. 그래서 광주사태 때 간첩을 집어넣어서 광주사태를 악화시켰거나, 또 그걸 기화로 이북에서 사람을 들여보냈거나 그럴 개연성은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증거가 없어요. 그래서 각하는 아예 말씀을 안 하세요”라고 부연했다.
제대로 읽어보세요. 전두환더러 몸을 사리라는 주장이 아니라 전두환이 몸을 사리는 이유를 말한 것입니다. 개연성일 뿐 사실로 확정할 수 없으니까(증거가 없으므로)
님이 말한 내용은 본인의 상상 토대 안에서 개연성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고, 가능성이야 무궁무진한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실제로 북한군이 개입이 되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으며 따라서 무의미한 주장인데 본인은 의미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음. 나도 주장 하나 해볼까? 당시 광주 근교에는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죽음 시골닭이 존재했을 수 있음. 당시 광주 근교에서 북한에서 파견된 고정간첩이 치킨을 사먹었을 개연성이 있음. 당시 광주사태의 배후에는 일본의 간첩이 있을 수 있음.
상상이 아니라 이름 내걸고 증언하는 탈북자들 증언과 석연찮은 수사 결과를 토대로 한 합리적 의심이죠. 상상은 5.18 당시 계엄군이 여자의 가슴을 도려냈고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씨를 말리러 온다, 계엄군이 민간인 수 천명을 학살한다, 계엄군이 강간을 했다고 떠돌던 유언 비어들이죠.
합리적인 의심이고 뭐고 개연성의 범주안에 들어가는 것이고, 증거와 타당한 근거 없는 의문 제기는 첨예한 논쟁 속에 잡음만 남길 뿐임. 추신) 당시 광주시민 가운데에는 전두환이 침투시켜 놓은 쁘락치가 있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으며 이들이 북한군을 참칭하고 교도소를 공격하도록 선동하여 군인의 강제진압 명분을 형성하려던 군부의 계산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
기자: "5.18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침투와 관련된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전두환: "전혀."
이순자: "지금 그 말을 하는 사람은 각하가 아니고 지만원이란 사람인데, 그 사람은 우리하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독불장군이라 우리가 통제하기도 불가능해요. 그걸 우리와 연결시키면 안 돼요."
고명승: "북한 특수군 600명 얘기는 우리 연희동에서 코멘트한 일이 없습니다."
전두환: "뭐라고? 600명이 뭔데?"
정호용: "이북에서 600명이 왔다는 거요. 지만원 씨가 주장해요."
전두환: "어디로 왔는데?"
정호용: "5.18 때 광주로. 그래서 그 북한군들하고 광주 사람들하고 같이 봉기해서 잡았다는 거지."
전두환: "오... 그래? 난 오늘 처음 듣는데"
이해 못하시는 분들을 위해 다시 설명해드립니다. 전두환이 5.18 보안사령관 재직 당시 북한군 개입 첩보 보고를 받은 적이 없고 600명 침투 설에 대해 처음 들었다는 게 인터뷰에 나온 팩트지. 전두환은 북한군 개입설 자체를 '부정'한 적 자체가 없습니다. 애초에 80년에 처음 북한군 개입했다고 주장한 사람이 전두환이고 자서전보면 북한군 개입설에 손 올려주는데 말 같지도 않는 허위 선동이죠. 하긴 이런 사람이 천지니 당시 5.18 광주에서 경상도 출신 계엄군이 여자를 강간하고 가슴을 도려냈다는 선동이 먹혔겠죠. (실제로는 여성을 강간한 시민군을 계엄군이 체포했다는 기록이 있음)
그 성향이 아주 분명한 그런 특정 방송에 나와서, 그것도 모두 "~였다 카더라" 라는 크로스체크가 안된 발언들뿐...
게다가 제대로 검증하거나 기자가 가서 취재하는 등의 사실관계를 밝히기가 불가능한 지역(우리나라에서는 바로 반박 증거 내놓을수 있지만)이다보니...
더더군다나 처음 전두환조차 벙 찐 표정으로 첫 내뱉는 말이 "600명? 그게 뭔데?"
북한군 개입설 그런게 있다고 설명하니 바로 다음에 나온 말이 "어떻게 왔는데?"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의 소행이 아니면 자신들의 인생이 무너지니 어떤 사실이라도 그 들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철저히 거부하고 끝없이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주장합니다. 그 들이 가진 신념중 하나가 '어떤 거짓말도 반복해서 들으면 사실로 생각한다' 입니다. 세뇌가 생활화 된 사람들이죠.
북한군 600명이 휴전선에서 가까운 서울도 아니고 더 남쪽에 있는 광주까지 내려와서 폭동일으켰다는 주장 자체가 우리나라 정부와 군은 600명이나 되는 인원이 서울넘어 광주까지 가는거 알아차리지도 못 할 만큼 무능하고, 북한의 첩보기술은 그만큼 뛰어나다는 북한 뛰워주기 밖에 안되지 않나?
아니 지금도 그렇지만(광주광역시만 해도 가보면 다른 광역시에 비해 좀 포스가 달리다는 게 느껴짐) 당시 호남 쪽은 진짜 논밭 말고는 아무 것도 없을 정도로 초라한 곳이었는데(이걸 정치인들이 이용해서 지역감정이 커진 거고) 도대체 북한군이 그런 촌동네에까지 가서 뭐하냐고? 그것도 600명? 위에 누가 쓴대로 단체로 어쌔신 크리드라도 찍니? 간첩 몇 명이 돌아다녀도 어느 새인가 안기부나, 경찰이 포착해서 총격전 벌이다가 잡혀갔던 세상인데 도대체 뭘 해야 600명이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저렇게 제대로 무장한 상태고 그런 촌동네에까지 가냐고. 전남도청에 금괴를 쌓아두기라도 했냐?
그리고 탈북자들 특징이 뻥을 되게 잘 친다는 거다. 그래서 이들의 말(북한군 실태, 지도사 상황, 주민들의 마약 중독)에서 진실을 뽑아낼 때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 교차검증이다. 이해 관계가 없는 사람 여럿한테서 말 들어서 모두 비슷한 말 하면 그 때 가서야 진실로 간주하는 거고. 그런데 5.18은 쫄따구 몇몇이 하는 말은 쳐들으면서 최고위직이었던 황장엽의 '뭐 혼란이 계속되면 끼어들려고 했는데 결국 북한은 거기에 관여한 바 없었다'라는 식의 말은 듣지도 않고. 등신이냐?
솔직히 광주에 북한군이 왔다는 건 통일되어서 북한쪽 비밀문서가 해제 되기 전에는 완전한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 근데 정황상 박정희 대통령 시해 후 권력 공백기에 북한이 아무것도 안했다는 것도 1.21사태나 웅진 삼처 무장공비, 강릉 무장공비등 꼭 북한 군이 아니더라도 남한 내 고정간첩 들도 있을테니. 정황상 의심스러운 게 많아 삽시간에 40군데 극비인 무기고를 턴다든지 수차례 비전향 장기수들이 복역하고 있는 교도소를 공격한다든지 장갑차를 조종하고 전남도청 밑에 다이너마이트 뇌관을 설치한다든지. 예를 들어 기총소사, 대량 암매장은 수 차례 조사를 해도 안 나왔는데도 계속 조사하는데 왜 북한군 개입은 조사하면 안돼지? 앞에겐 수차례 재조사 하고도 안나오고 또 조사 하는데 아마 나올 때까지 계속 할지도 모르겠네 북한군 개입여부는 조사를 시작도 못하게 해?
광주사태 때 무슨 연고대생 600명인가가 존재함. 근데 이 연고대생이 갑자기 증발 해 버려. 한번에 600명이 아니더라도 여러차례 산발적으로 고정간첩이나 공작원이 뒤에서 배후조종 했을지 모르지. 울진 삼척 사태 때도 북한군 침투했던 것도 사실이잖아. 당시 극비인 은신 되어 있는 40여개의 무기고를 4시간 만에 털어버림. 광주 주변에 40여개의 은신 무기고를 도로도 당시는 비포장도로야 그걸 몇시간만 다 털었다면 사전에 위치를 다 파악하고 있었다는 거 그전에 사단장용 차량을 급습해서 탈취한 것도 그렇고 그 당시에는 운전면허도 흔한 시절이 아닌데 장갑차를 조종한다든지 전남도청에 몇kg분 다이너마이트 뇌관을 다 설치한다던지 솔직히 의심가는 정황이 너무 많음. 그리고 사망자가 다수가 계엄군이 가진 m16이 아닌 무기고에서 탈취한 카빈소총에 그것도 뒤에서 쏴서 죽음. 근데 이걸 왜곡이다 망언이다 프레임 씌워서 입도 뻥끗하지 마라??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 학문의 자유는? 다른 의견을 허용 안하는 게 민주주의고 민주화임??
뇌관설치 > tnt설치, 뇌관은 기폭약임. 어제 오늘 여기 글 거의 다 읽어 봤는데.. 전체적인 흐름을 가장 잘 아시는 듯.. 연대생600 얘기는 없구 대대규모니 특수부대니 하는 얘기만 주구장창.. 북한군 개입설 단초가 여기서 시작되었는데.. 여기서 첨으로 연대생 얘기를 들어봄..
좌익 쪽에서 국정교과서를 반대할 때 논리가 뭐였어? 국가가 역사해석을 독점하면 안된다면서 그게 논리였잖아 왜 518 광주에 대해서는 정부가 역사해석을 독점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좌익에게 불리 할 때는 국가가 역사해석을 독점하면 안되고, 유리 할 때는 이미 끝난 거니까 정부의 역사해석과는 다른 말을 하지 마라????
그럼 너넨 북한 주도의 민주화 운동이라고 봐야 속이 편한거니?
그리고 너네는 그렇게 봐라 이말이야. 근데 그걸 남에게도 강요하니까 문제 아냐. 그리고 운전 면허가 흔하지 않았다니 자가용 보급했던게 80년대인데 자꾸 그당시 사람들 차 못모는 바보로 만드네? 아니 그리고 광주광역시에 군대 갔다온 사람중에서 장갑차 못몰 사람이 없을까. 그리고 뒤에서 쏴서 죽었다니 무슨 개소린지 모르겠다. 응? 그리고 니네가 좋아하는 증거중에서 신뢰성 있는거로 연고대생 600명인가 존재한다는거 가져와보렴? 그것도 사실이 아니라 추측이면서 사실처럼 말하지 말고.
그리고 무슨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정부가 역사 해석을 독점해. 그걸 정부가 독점해서 우리한테 나눠주니? 증거들이 객관적으로 나와있으니까 사람들이 납득한거지? 구지 계엄 사태에 반대해서 일어난 시위를 북한이랑 결부 시켜야겠니? 시발 뭔 심보냐고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여기다가 쳐 써지를 수 있고 그걸 검열 안먹고 쳐 고문 안당하고 공개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거, 지금 하고 있네! 출판의 자유? 니가 돈들여서 책을 발간시켜보던가. <솔로몬 앞에 선 5.18> (2010년) 지만원 저서다. 시발 이게 불온서적으로 정간당했냐? 제제먹었냐? 욕먹더라도 일단은 시중에 쳐 나온거거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문의 자유. 뭔 학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최소한 나한테 이렇게 논박당할 학문이면 존나 허접쓰레기 같거든? 편집증 환자같은 니네나 납득할 논리 말고 사람들이 공감할 정보와 논리를 가져와보세요 좀.
니네는 국방부 추가 조사에서 헬기 사격했다는둥 무기고 탈취랑 계엄군 발포명령이랑 시차 안맞는것도 쳐 안들으면서 그냥 같은 주장 계속 말하고 있잖냐.
울진 삼청 무장공비 침투사건 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3일에 걸쳐 울진·삼척 지구 연안을 통하여 북한측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 꼭 600명 아니더라도 산발적으로 남한 내 고정 간첩이나 북한에 포섭된 공작원이 유언비어 같은 걸 터뜨렸을지 모르지 광주 때 무슨 경상도에서 전라도 씨를 다 말려 버린다 대검으로 유방으로 도려내고 임산부의 배를 갈라서 태아를 꺼냈다 이런 유언비어가 돌았잖아 사단장 차량 탈취, 40여개 무기고 탈취, 교도소 수차례 공격, 전남도청 다이너마이트 설치 등등 광주에는 지휘자나 지휘부가 없는데 어떻게 이런 계획적인 일을 하지???
그래 17세에 저 시위를 지휘를 참 잘했겠네. 17세의 나이로 5.18에 참가한 당사자. 5.18의 이후 보상금 전액을 모친에게 주고 외국 여행 중 영국 대사관을 통해서 북한으로 갔다. 꺼무위키 들고와서 미안한데 시간없어서 그냥 붙여본다.
그리고 그 지휘자 이름? 내가 아까 물어봤지. 파리 코뮌은 뭔 지휘부가 있어서 파리에서 쳐 농성했냐고. 꼭 지휘부가 그것도 리더가 있어야 성공할거라 생각하는거냐. 그럼 닌 4.19때 지휘자 누군지 특정해봐. 6월 항쟁때 지휘자 누군지 특정해봐. 응? 특정해보라고. 애초에 시위였던걸 시민군으로 저항하게 한 그 저항권 발동하게된 이유 말해보라고. 그게 지휘자가 쳐 나오겠냐? 광주 토박이들이? 그걸 모르겠냐고 시발년아
시발 저 파리 코뮌도 그냥 폭동이라고 하지 그러지. 고정 간첩 그래 일단은 진짜로 발각된것도 있으니까 존재 자체는 부정 안하마, 근데 내가 봤을때는 광주 안건들고 산업시설 있는곳에 사보타주 하겠다 이말이다. 그냥 4.19때도 고정간첩 있었고, 6월 항쟁도 고정간첩 있었으니 죄다 선동했겠네. 부마 항쟁도 그렇고 그냥 독재 정권에 항의한 모든 시위는 북한이 배후 조종한거로 처리하면 되는거네? 시발 니 논리 확대하면 그리 되잖냐. 그럼 또 답변에 난 광주만 특정해서 말했는데 다른 사건들은 왜 언급하냐고 말하겠지. 에휴
난 말했어.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여기다가 쳐 써지를 수 있고 그걸 검열 안먹고 쳐 고문 안당하고 공개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거, 지금 하고 있네! 출판의 자유? 니가 돈들여서 책을 발간시켜보던가. <솔로몬 앞에 선 5.18> (2010년) 지만원 저서다. 시발 이게 불온서적으로 정간당했냐? 제제먹었냐? 욕먹더라도 일단은 시중에 쳐 나온거거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문의 자유. 뭔 학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최소한 나한테 이렇게 논박당할 학문이면 존나 허접쓰레기 같거든? 편집증 환자같은 니네나 납득할 논리 말고 사람들이 공감할 정보와 논리를 가져와보세요 좀. 니네는 국방부 추가 조사에서 헬기 사격했다는둥 무기고 탈취랑 계엄군 발포명령이랑 시차 안맞는것도 쳐 안들으면서 그냥 같은 주장 계속 말하고 있잖냐. 그대로 복사한건데.
하여튼 이새끼들 무기고, 교도소, 다이너마이트 이거 셋 가지고 우려먹는게 하루 이틀이어야지... 그 당시에도 예비군 있고, 예비군이 아니더라도 TNT는 광부같은 흔하게 다루는 직업이 있고, 무기고나 교도소가 보안시설이지 기밀시설이라 겉에서는 알아볼 수 없는것도 아니잖아. 한날 한시에 털렸으면 또 몰라 몇날 며칠에 벌어진 일을 어디다 갖다붙이냐?
거기다 무슨 지도자, 지휘자 이야기 하는데, 니들이야 독제가 너무 아름다우셔서 지도자 없으면 그냥 꿀꿀대고 가만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눈 뒤집힌 사람들은 "수감된 사람 꺼내줍시다" 외치면 교도소로 몰려가고 "우리도 무장합시다" 그럼 무기고 가고, "저 시설 날려버립시다"그럼 터뜨리는거다. 오히려 니들이 미는 간첩설이 유효하려면 이렇게 움직여야지, 듣도보도 못한놈이 지도자라서 그걸 지휘했는데 체포해 보니 간첩이었다면 대서특필감이지. 안그러냐?
거기 들어간 사람들이 죄수 하나하나 면담해서 정치범이면 풀어주고 아님 다시 넣고 이런 거 기대하는 거 아니지? 전국 모든 교도소 중 정치범이 정확히 몇명 수감됐는지 말할 수 있는 교도소 뭐 있냐? 하나도 없지? 정치적 이유로 수감된 사람들이 있는 거 같으니까 구한거지. 프랑스 혁명 당시 바스티유 감옥은 뭐 전원 정치범이라서 해방시키겠답시고 몰려갔다니?
동률로 놓고 아니고야 생각 서로 다르니 그렇다 치고, 똑같은 교도소 습격인데 그 당시 시위대는 고귀하고 박식해서 정치범 숫자를 파악한 거 같냐고? 아님 뭐 영국에서 온 간첩이 바스티유 감옥의 정치범 숫자를 시민혁명군 지휘관한테 전달했거나? 근데 혁명 당시 지휘관이 있긴 했다니?
두 분 다한테 답변. 5.18이랑 프랑스혁명이랑 동률이라고 주장하는게 아니고, 그 당시 바스티유 습격이랑 여기 교도소 습격이랑 양 시위대가 질적으로 달라보이냐고요. 122.43한테 특히. 관점이야 자유라니까? 근데 그래서 그 배후로 지목된 브루주아 지휘관 이름 하나라도 아시나?
그리고 님은 전후사정을 모르네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대통령이 죽었으니 계엄령이 내려져요 이건 당연한 수순이에요 광주사태 직전에 서울의 봄이라고 김대중 같은 사람이 5월 20일인가 언제까지 최규하 하야 안하면 민란 일으키겠다 내각 까지 다 구성하고 명단도 발표합니다. 서울에서 버스로 지그재그 운전해서 진압하는 경찰인가가 깔려 죽어요 소요사태로 이래서 원래 제주도만 계엄하가 아니었는데 제주도까지 전국계엄확대하고 도저히 경찰로는 안되니 군이 나서기 시작해요 김대중이 최규하 언제까지 물러나라 아니면 민란 일으키겠다 내각 명단 구성까지 맞쳤다 이러는데
전 프랑스 혁명은 폭동으로 봅니다. 프랑스 혁명은 너무 많은 사람을 단두대에 죽였어요 프랑스 혁명이랑은 달라요 그거는 왕이압제했던 정치범들을 가두는 곳이기도 했구요 광주에 있는 교도소는 비전향 장기수나 범죄자들 많은데 왜 수차례 거기를 공격해서 그런 범죄자를 해방 시켜요? 좌익사범이나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니 자유고, 전국 모든 교도소 중에 비전향 장기수, 좌익사범, 정치범 숫자를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교도소 하나라도 있냐고? 오히려 정치범만 수용된 교도소만 정확히 골라 습격했다면 백퍼 간첩이 위치를 조사해서 선동한거지. 근데 아니잖아. 니가 말하면서도 간첩설이랑 시민 움직임이 다른 거 모르냐고?
아니 애초에 처음에 사단장 차량이 몇시에 어디를 지나는 게 이게 극비인데 이걸 입수 해서 사단장 차량을 급습해서 탈취해서 그 사단장 차량으로 아시아자동차 군용차 공장으로 바로 가서 또 군용차량 탈취 이걸로 또 몇시간 만에 40여개의 무기고 탈취 이걸 즉흥적으로 했다고요 지휘부 없이요?? 그 당시에는 마이카 붐 전 운전면허도 흔하지 않았는데 비포장 도로 극비리인 무기고 위치를 다 파악해서 지휘 없이 즉흥적으로 단 몇시간 만 다 턴다고요??
교도소를 왜 공격 하냐고요 범죄자 그리고 비전향 장기수들이 많은데 왜 민주주의 민주화인데 교도소를 공격해서 복역하는 죄수들을 왜 풀어줘요?? 이유가 뭡니까 그리고 교도소도 엄청 무장 되어 있는 시설입니다. 그래서 수차례 공격하다가 다 실패하고 사상자도 많이 났죠 근데 여기서 난 사상자들 시체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겠네요
다이너마이트 뇌관 설치 하는 사람이 흔했다고요 그거 전남 도청에 몰래 들어가서 해체한 사람은 무관이었나 그랬는데 공무원 5급이었나 당시 광주에서 그거 해체할 수 있는 공무원 그 사람 정도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들어간 거고 공무원 중에서도 다이너마이트 뇌관 해체하는 사람이 흔하지 않았는데 흔했다고요??
폭탄 해제는 전문가만 가능한 어려운 작업이지만 만드는건 아니야. 군대 갔다왔지? 크레모아 설치할 줄 알지? 그거 누가 못해. 근데 설치된 크레모아 뇌관 안전하게 뽑는 건 몇이나 할 줄 아냐? 우리가 설치한건 스위치 우리가 잡고 있으니 가능한거잖아. 그치? 면허 이야기는 참 기도 안차고... 누가 들으면 뭐 5.18이 60년대 사건인 줄 알겠네. 80년이면 누구나는 아니더라도 귀한것도 아니다.
1950년대 까지 서울의 자동차 수는 인구 10만명당 5대 정도의 비율로서 총 1만대를 넘기지 않았다. 1960년대 말까지 증가는 하였으나 이 때에도 인구 10만명당 10대 정도로서 총 대수는 5만대를 넘지 않았다. 서울의 자동차수가 20만 대를 넘어선 것은 1979년이었으며, 이 때는 인구 10만명당 25대의 꼴로 자동차가 등록되었다. 자동차가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은 80년 후반에서 90년 상반기 동안으로 1986년 50만대를 돌파하였고, 1990년에는 100만대를 넘어서서 인구 10만 명당 100대 이상의 비율로 자동차가 보급되었다. 1995년 2,043,458대로 1990년과 비교하여 5년간 두 배가 늘었고, 10년간 약 160만대가 증가하였다. 자동차 등록대수는 외환위기 이후인 1998년 다소 감소하였으나 1999년 다시 증가하여, 2001년 현재 총 2,550,441대, 인구 10만명당 234대의 자동차가 등록되어 있다.
전체 자동차 등록대수 증가에는 특히 승용차 증가가 크게 기여하였다. 승용차 등록차량의 증가율은 승합차나 화물차와 크게 차이가 나게 높으며, 전체 자동차 등록대수 증가 추이와 비슷한 형태를 보인다. 전체 자동차 가운데 승용차의 구성비는 1958년 51.4%에 그쳤으나 30년 후인 1988년에 70%를 넘어섰으며, 2000년 현재 전체 차량의 75.2%가 승용차이며, 약 180만대에 달하고 있다. 승용차의 증가가 가장 크게 나타난 시기는 80년대 후반 이후인데 이는 이때 후반부터 승용차 소유가 보편화되기 시작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승합차의 비율은 시기에 따라 증감을 거듭하였으나 전체적으로 감소의 추세를 보인다. 1950년대 18%이상의 비율을 점유하였으나 1990년대에는 10%미만에 머물다가 2000년 현재 약 289,000대로서 11.8%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화물차는 1960년대와 1970년대 30%이상까지 차지하였으나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비중이 감소하여 2000년 현재 14.5%의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2000년 현재 총 352,801대의 화물차가 등록되어 있다.
다이너마이트 설치도 쉽지 않은데요 8T 분량을 뇌관을 연결해서 손쉽게 광주시를 날려 버릴 수 있게 지하에 설치하는 게 단순한 작업 갔나요? 그럼 그 무관이 몇날을 밤새워서 해제했겠나요? 그 정도 분량을 지하에 바로 터트릴 수 있게 조립 설치 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에요 해체만 어려운 게 아닙니다
5.18 당시 이성전을 비롯한 화순광업소 직원 13명은 계엄군이 광주에서 잔혹하게 시위를 진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계엄군의 광주진입을 막아야 겠다는 마음에 화순광업소에 있는 폭약을 조립하여 5월21일 밤 광주시민들에게 전달했다고 합니다.
도청에 옮겨진 다이너마이트의 경우 떡밥과 뇌관을 연결했지만, 마지막 과정으로 도화선을 연결하지 않았죠. 다음은 당시 다이너마이트를 관리한 신만식씨 증언입니다.
(신만식 증언) 떡밥과 뇌관 결합작업을 벌인것은 사실이지만 도화선을 연결하진 않았다. 형식적으로 다이너마이트 인근에 연결된 것처럼 보이게 해뒀을 뿐이다. 만약 담뱃불이라도 떨어지는 날이면 광주시내가 온통 불바다가 될게 뻔한데 그런 위험한 일은 할수가 없었다. 애초부터 다이너마이트는 위협용이었지 사용돼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시민군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http://cafe.naver.com/enature/21
도청에 계엄군이 진입할 때 터뜨렸다면 계엄군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을 터인데, 폭발하지 않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광주시민 측에서도 위험성을 알고 자제했다고 봐야죠.
2. 일반 시민이 어떻게 다이너마이트의 조립이 가능하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는데, 폭약을 가져온 곳이 화순광업소이고, 폭약 제조를 담당한 사람이 화순광업소(화순광산) 직원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화순광업소 앞에 있는 5.18 민중항쟁사적비를 찍은 사진입니다.
한번에 답하려고 했는데 작성 눌렀네... 운전이라는게 도로에서 문제 없이 타고 다니는거만 생각하는데, 일단 차 움직이는건 엑셀, 브레이크, 헨들, 시동만 알면 된다. 변속이야 시동 몇번 꺼뜨리면 아는거고. 면허가 있어야만 차를 잡는 건 현대의 생각이야. 시골에서 경운기, 트렉터 모는 애들이 전부 면허 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엑셀 브레이크 핸들 시동만 알면 되요 근데 왜 10대들이 면허 없어서 교통사고 일으키는 사건사고가 자주 보도 되죠. 그렇게 간단하면 굳이 어렵게 운전면허 시험 안봐도 되겠네요 면허 없어도 되니까 장갑차도 몰았구요 장갑차는 면허 있어도 운전 가능한 지 모르겠고 몇시간만에 비포장도로를 털었어요 네비가 있던 시절도 아닌데 몇십군데를
5.18 당시 이성전을 비롯한 화순광업소 직원 13명은 계엄군이 광주에서 잔혹하게 시위를 진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계엄군의 광주진입을 막아야 겠다는 마음에 화순광업소에 있는 폭약을 조립하여 5월21일 밤 광주시민들에게 전달했다고 합니다.
도청에 옮겨진 다이너마이트의 경우 떡밥과 뇌관을 연결했지만, 마지막 과정으로 도화선을 연결하지 않았죠. 다음은 당시 다이너마이트를 관리한 신만식씨 증언입니다.
(신만식 증언) 떡밥과 뇌관 결합작업을 벌인것은 사실이지만 도화선을 연결하진 않았다. 형식적으로 다이너마이트 인근에 연결된 것처럼 보이게 해뒀을 뿐이다. 만약 담뱃불이라도 떨어지는 날이면 광주시내가 온통 불바다가 될게 뻔한데 그런 위험한 일은 할수가 없었다. 애초부터 다이너마이트는 위협용이었지 사용돼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시민군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http://cafe.naver.com/enature/21
도청에 계엄군이 진입할 때 터뜨렸다면 계엄군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을 터인데, 폭발하지 않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광주시민 측에서도 위험성을 알고 자제했다고 봐야죠.
2. 일반 시민이 어떻게 다이너마이트의 조립이 가능하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는데, 폭약을 가져온 곳이 화순광업소이고, 폭약 제조를 담당한 사람이 화순광업소(화순광산) 직원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화순광업소 앞에 있는 5.18 민중항쟁사적비를 찍은 사진입니다.
다이너마이트는 계엄군을 가까이 오지못하게 하는 수단이었을뿐 공격용 무기는 아니었다. 5.18기간동안 엄청난양의 다이너마이트가 유출됐지만 계엄군 공격을 위해 사용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성전씨등은 다이너마이트를 손에 넣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증언한다.
그냥 니들은 이것도 거짓말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렇다네. 당사자들이 그렇다는데 뭘 더 왈가왈부하니
이 똥멍청이들이 아직도 광주 북한군 침투설을 믿고 있네.
대체 뭔 수단으로 휴전선을 넘어 광주까지 간다는 거냐, 그것도 대대급이 움직였으면, 니들은 한국군은 물론이고 아직도 엄연히 조직되어 있는 유엔사나 미군도 호구로 보냐? 지금도 그랬지만, 그 시절도 미군 눈을 벗어나 남한에, 그것도 후방에 침투하는건 북한 능력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야. 공비들이 왜 대부분 강원도에서 못 벗어났는지 이해 못하냐?
저는 전방보다는 했다면 해안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동해랑은 또 다르게 서해는 섬도 많구요 해안선이 무지 복잡해요 갯벌이나 이런 것도 있지 않을까 조수 밀물 썰물도 있구요 또 꼭 600명이 아니더라도 남한내 고정간첩이나 포섭된 종북 공작원도 있을 수 있죠 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3일에 걸쳐 울진·삼척 지구 연안을 통하여 북한측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
전남 도청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 대형 살인 테러 미수범의 말은 무조건 믿어야죠 암요...교도소 테러에 대한 의견도 궁금한데요? 왜 5.18 단체들이 그 자랑스러운 사건에 대해 본인들이 주장헀다는 소리를 한 번도 안 할까요? 오직 북한군 탈북자들만 자기들이 했다고 하는데
떡밥과 뇌관 결합작업을 벌인것은 사실이지만 도화선을 연결하진 않았다. 형식적으로 다이너마이트 인근에 연결된 것처럼 보이게 해뒀을 뿐이다. 만약 담뱃불이라도 떨어지는 날이면 광주시내가 온통 불바다가 될게 뻔한데 그런 위험한 일은 할수가 없었다. 애초부터 다이너마이트는 위협용이었지 사용돼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시민군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http://cafe.naver.com/enature/21 박찬혁님께서 직접 따 오셨다. 그리고 묻는 건 좋은데 너 어느 학설 미냐고? 또 나한테만 물을거면 그만 지껄여라. 학설 듣고 대답한다.
"저" 분 이야기 주소 좀 붙이고 이야기할래? 난 그냥 역대 탈북자들 이야기하는 줄 알았네. 누구 말하는거냐? 그 사람 60대 넘었어? 아닌 거 같은데? 그 당시 스물도 안 된 사람이라면서 그 때 들은 이야기를 정확히 기억했다가 증언한다는 이야기를 믿니? 넌 40년 전 들은 인상깊은 이야기 지금 할 수 있어? 난 33이라 40년 전 이야기는 물론 못하지만 23살에 들은 이야기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너희 입장에서야 시민군들 말을 믿는 내가 이해가 안돼겠지. 근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너희들 이민갈 때 내가 고국에서 재산도 지위도 없었습니다. 하면 받아주겠냐? 안받아주겠지? 근데 이민국에서 내가 실제로 어땠는지 조회할 방법이 없네? 그럼 곧이곧대로 말할까? 이력도 지위도 부풀리겠지. 탈북자들 상태가 딱 이래. 근데 왜 믿나 나야말로 이해가 안 가.
본문에 자유북한군인연합 대표라고 적혀 있는데 탈북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지위를 부풀려서 대표를 합니까.. 말 같지도 않는 소리 하시네요.. 그리고 이력? 여기서 말하는 이력이란 뭐죠? 우리들이 5.18 사건의 대남 갈등을 유발하여 국론 혼란을 주성했다?? 저 사람들이 저걸 주장해서 무슨 이득을 얻죠? 오히려 욕만 먹는데
1탈북자들이라고 서로간에 잘 아는 사람들 아니다. 해외동포나 비슷한 처지지. 너 복무할 당시 이웃부대 장교 이름 전부 외우고 있었니? 난 1중대장은 기억해도 소대장들 이름은 기억 못하는데? 2이득이 없다고? 아니? 정말 그랬다면 대남작전전문가로서 매우 귀중한 인재인데? 그런 인재가 국정원과 일을 안하고 대중매체에 떠벌린다는 거 자체가 별로 가치 없는 정보만 들고 있었다는 증거야.
2차 대전 당시에 각 첩보기관에서 가장 포섭하길 원했던 인재가 상대 첩보기관의 경력자야. 일단 확보하면 미국이나 독일의 경우처럼 완벽한 2차 신분으로 어떻게든 신원을 감추고. 그 정보가 들통나면 가치없어지거든. 근데 저렇게 대놓고 떠벌리고 다닌 사람 치고 첩보원 근처에도 가본 사람은 없었지. 한국-북한 첩보기관 사이도 비슷해.
너도 직접 말했네. 국정원에서 환영할 리 없는 주제라고. 진짜 첩보전이었으면 결정적 승리인데 말을 안 할 리가 없거든. 그런 전문인력이랑 재산을 작전 한번에 다 말아먹은건데. 한 자리 못해먹은것도 마찬가지. 진짜 가치있는 정보를 내놓을 수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지. 북한에서 월북한 미군 애지중지하는것처럼. 그 사람은 아니었다는거야. 그 지위니 뭐니, 그 사람 주장 말고 증거 뭐 있었냐고. 북한에 신원조회라도 했대? 북한이 장교 한사람 빈대? 검증없이 신뢰한다는 개념 자체가 더 신기하다. 신입사원도 그정도로 믿어주진 않겠다야.
아니 5.18 북한군 개입설 자체가 높으신 보수 분들이 달가워 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5.18 자체가 좌파들의 신성인데 어딜 국정원이 건듭니까? 말 같지도 않는 소리를...그리고 저 사람이 국정원이랑 독대까지 해서 여러 번 대화 나눈 사람인데 무슨 계급 거짓말을 쳐요. 휴민트 모르세요? 국정원이 검증할 방법은 다 있음.
임천용 저 분은 본인이 1980년 당시 특수부대라고 주장한 적 자체가 없어요. 이분 또 그러시네..본인이 침투했다고 한 적도 없는데 뭔...사건 발생 수 년 후 부대에서 배치되어 김정일 사촌 김선일과 같이 7년간 근무하며 김선일과 대대장이 대화하는 것을 엿 들은 것이 최초의 북한군 개입 확인이다 < 이 소리죠. 침투했다는 건 본인들이 아니라 다른 탈북자들이 증언한 것이라는 소리에요 내용 조금만 더 읽으시면 될 텐데
졸리니깐 이만 하겠습니다. 어느 정도 정보가 이미 꽤나 나온 상황이고 5.18 단체나 저 분들이나 증거보단 증언이 태반인 상황에서 누구를 믿느냐는 개인 자유지요. 그리고 애초에 탈북자 저 분들은 무고한 광주 시민은 피해자라는 게 기본적인 스탠스인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광주 시민이 총기를 들고 폭동을 일으켰고 그들이 악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긓이 북한군 개입설 자체를 부정하죠. 그리고 저 분들 주장은 검증할 방법이 아직 없어서 문제지만 5.18 단체들은 말 같지도 헛소리들을 내뱉는다는 게 문제죠. 일례로 최근에 주장한 계엄군이 UH1H를 탑승하고 전일 빌딩 근처서 시민들을 향해 헬기 사격을 했다는 헛소리를 하는데, 재밌는 건 한 명도 기관총이 발착된 헬기 사진을 찍은 적이 없고 증거랍시고 전일빌딩 빌딩 내부 천장 탄흔 등을 내세우고 있어요. 헬기가 빌딩 내부 천장에 기관총으로 탄흔을 내려면 초 저공 비행으로 위를 향해 기관총을 쏴야하는데 이는 헬기 구조만 알아도 말이 안되는 걸 알 수 있죠. 또한 유사시 헬기 코브라, 500MD로 사격해도 좋다는 문건으로 물고 늘어지는데 탄흔 흔적이 코브라, 500MD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서 이미 논파된 주장이고요. 사실 그들도 계엄군 시민군 교전 흔적인 걸 알면서도 저러는 거죠.... 8T짜리 TNT를 설치해 전남 도청 일대를 쑥대밭으로 초토화시키려던 사람들의 "사실 도화선은 연결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믿겠습니까? 5.18은 북한군의 잘못이고 광주 시민은 피해자다"라는 전직 탈북자 군인을 믿겠습니까..? 본인 자유죠
5.18단체에서 과장한다는건 실제 있는 일이지만, 간첩 침투는 그거랑 경우가 달라. 지구공동설이나 지구평평설 수준밖에 안돼. 탈북자의 증언 신뢰수준 자체가 심리학 박사가 물리학 박사에게 의문점 토로하는 수준이야. 그래도 같은 박사라고 신뢰하는 꼬락서니가 같은 북한에서 왔다고 신뢰하는거랑 똑같아. 심리학 박사는 물론 엄청난 지식을 쌓은 전문가지만 물리II 시험 치면 물리학 학부생도 못이긴다. 탈북자라지만 자기 복무했던 부대 상황이면 모를까 자기들 수준으론 접근도 못할 특수부대 상황을 안다는거 자체가 헛소리나 다름없어. 나이가 60도 안됐다면 더욱.
저는 전방보다는 해안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한번에 600명이 확 온게 아니라 산발적으로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왔다면 말이죠 북한 애들이 바보도 아닌데 600명이 한번에 확 보내겠어요 저라면 남한내 고정간첩 포섭된 종북세력 공작원 등등을 이용하겠어요 이거는 통일되서 북한 비밀문서 해제 되기 전에는 완전한 부정도 긍정도 안돼요 통일되서 북한 문서 해체되야 개입 여부를 정확히 알겠죠
해안이라면 배나 잠수함, 잠수정인데, 그걸로 한번에 오는 한계는 20명 정도. 600명 중 상당수가 포섭된 한국인들이라고 해도 6~8번을 같은 경로로 왕복하는동안 한번도 안들켰다고, 그정도로 해군이 무능하고, 그 침투한 애들이 광주까지 가는 동안 한번도 안들킨다고 육군이 무능하면 딱히 시위할 거 없이 최규하 목을 따는 게 더 쉽다는 생각 안 해봤니?
님아 나는 전방 철책선 근무 서 본 사람이에요 gop gop에서 사수는 전방보고 부사수는 측후방 보게 되는데 사실은 사수랑 부사수 둘다 북한군 보다는 간부한테 안 뚫리는 건 신경써요 졸기도 졸구요 가라도 많이 칩니다. 노트귀순 터졌을 때 우리도 능히 그럴 수 있다고 봤어요 중대장이 그랬어요 귀순오면 그냥 쏴서 죽이래요 부대 발칵 뒤집힌다고 근데 전방보다 해안선이 적어도 3,4배 넓죠 전방부터 아니라 후방부대는 병력도 적은 거 아시죠? 해안가는 섬도 맡고 갯벌에 밑물 썰물도 있죠
님아 전두환이랑 광주사태는 별로 관계가 없어요 사실 전두환은 지금으로 말하면 기무사령관 국정원장인데 기무사령관이랑 국정원이 군을 지휘하나요? 당시 계엄사령관 이희성 국방부장관도 있었고 기무사령부는 방첩부대라서 작전을 지휘하는 라인이 아니에요 진압에 동원된 공수부대랑 광주인근 사단도 다 지휘관 있었어요 당시 대통령은 최규하입니다. 그리고 전두한 회고록 안 읽어 보셨네요 딱 보니까 전두환이 광주사태 회고하는 내용 있는대
기무사령관이잖아. 첩보전 지휘하는 수장이잖아. 대규모 침투를 못 막았으면 해임되었어야 하는 위치잖아. 반대로 사전에 막았으면 승승장구했어야 하는 위치고. 전두환 본인 발언의 신뢰도부터가 바닥이지만, 믿어준다고 해도 자기가 업무를 재대로 못 해서 일을 만들었는데 어떻게 살아남았냐고.
님아 그러면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는 어떻게 했어요 그 때 120명 왔다고 하는데 님아 군생활 해봤을 지 모르지만 전방 철책선도 뚫을려면 뚫리는데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데 해안선은 후방부대에요 더 적은 병력이 훨씬 몇배나 되는 지역을 커버 해야 되는데 우리나라 군대를 비하 하면 쉽지는 않지만 그 지역을 말 그대로 군대 말대로 완전작전 한다구요 그럼 울진 삼척 무장공비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왜 일어나요? 노트귀순 같은 것도요
아냐. 서해가 중국이랑 닿아있어서 소나망이 훨씬 촘촘해. 그러니까 강원도로 침투하는거야. 일단 목적지까지 가능한 한 사람 안만나는게 훨씬 유리하거든. 간첩은 대부분 신고가 가장 껄끄러우니까. 그리고 말을 잘 이해 못했는데, 2006년은 뭐야? 2006년에 울진-삼척 사건이 있었다는 건 아닐테고. 다시 좀 설명해줄래?
니가 직접 이야기했네. 천안함. 한번 안들키는거랑 여러번 안들키는게 난이도가 다르니까. 천안함은 한번 침투해서 벌이는 테러였고 대대규모 인원을 움직일 작전조를 여러번 침투시키는건 서해에서 벌일 일이 아니라는거지. 그리고 야. 니 말대로 2019년이랑 2007년은 별로 안달라. 근데 60년대랑 80년대 차이가 같다고 보니? 경제 규모부터 다르다. 군의 질도, 경찰의 질도 다르고. 지금이야 사회변화가 적으니 고작 10년으로 뭔가 안바뀌지만 그 당시는 현대화가 진행 중인 때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나온 그때라고 이 화상아.
님아 쏘냐가 만능이에요? 그럼 잠수함은 다 잡겠네요? 님아 미국이랑 소련이 상호파괴 학증이 왜 되었는 줄 알아요 제일 결정적인게 잠수함이에요 핵잠수함. 딴 거 표적은 다 없애도 잠수함 하나로 보복 가능하니까 상호확증파괴가 된 거에요 당시 미국은 핵레일도 깔고 24시간 365일 비행기 띄웠어요 핵보복하게 소냐만 많이 하면 잠수함 다 막을 수 있다구요??
얌마. 평균깊이가 2km가 넘는 대양이랑 60m도 안돼는 서해가 상황이 같겠니? 2km범위 커버하는거랑 60m를 커버하는건 난이도가 달라. 동해만 해도 평균깊이 200m다. 서해보다 3배가 깊어. 그러니까 잠수함같은 덩치 큰 물체가 안걸리고 침투하지. 그리고 1996년이고 나발이고, 여러번 사용한 루트를 차단했다는 발표 인생에서 한번이라도 들었냐고. 왜 있지도 않은 대대 규모 침투루트를 뇌피셜로 있다고 하냐니까? 대대 침투용 땅굴 그런 거 믿고 사시나?
임진강 하류도 취약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북한에서 불과 1.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임진강 하류지역입니다.
이곳은 고무튜브와 같은 간단한 수영장비만으로도 손쉽게 침투가 가능한 지역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임진강 하류는 또 간만의 차가 커 밀물때 물의 흐름만 타면 4시간 만에 임진각까지도 도달할 수 있습니다.
강화도 해안은 북한과 가깝기 때문에 간첩들이 이용하는 황금루트로 통합니다.
침투는 주로 반잠수정이나 소형 선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특히 썰물 때는 수심이 약한데다 암초가 많아 경계활동에 어려움이 많은 지역입니다.
이렇게 침투 취약지로 꼽히는 지역들은 지형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경계허점이 많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침투조 몇명은 모를까, 20명 단위 대규모 침투는 어렵고 한다고 해도 수십명을 내려보낼 작전은 불가능하고, 에초에 그 당시에 내가 간첩이었소 증언한 인간도 없고, 전두환이 첩보전 지휘자면서 간첩 침투 못막았다고 책임 진 적도 없다고. 회고록? 오늘도 통장엔 29만원 뿐이지만 먹을 거 걱정은 안하는 인간 말을 왜 안믿어주냐고 따지는거냐 지금?
강철서신 김영환 쳐 보세요 그 사람이 운동권에서 nl로 유명한 사람이에요 운동권에서도 끝말 날리던 운동권도 지도부랑 밑에 시다 있는데 그 사람은 지도부 쪽이었고 잠수정 타고 북한 직접 가서 김일성도 만난 사람이에요 뭐 김영환 말고도 운동권 중에 잠수정 타고 북한 간 사람 많을걸요 국정원에 쪽지인가 털린 사건도 있던데 책 중에 진보의 그늘이라는 책 보면 그 사건 나옴
아 그사람이구나. 북한 잠수정으로 안내받아 돌아간거. 그건 이야기가 좀 다른게, 북한 잠수정이었으니 중국 경계망을 통과할 수 있지, 한국 소속 잠수정이면 매우 어려워. 이것도 거의 불가능은 아니지만. 그리고 이것도 일회성이지, 이게 몇십명이 왕복할 정규 루트였다는 증언은 못 봤는데.
운동권 중에서 김영환 혼자만 북한에 갔겠어요 그것도 단발로 모르긴 몰라도 많을껄요 독일 통일 되고 동독 문서가 해제 되면서 동독 간첩 겁나 많았어요 몇만명이었는데 예상보다 알고보니 옆집 사는 사람이 동독 간첩. 서독의 야당 대표인가 여자비서가 동독 미남계에 걸리고 서독에 간첩이 그렇게 많았는데 님도 안철수 처럼 요즈음 세상에서 무슨 간첩이야 다 국정원 조작이야 간첩이 어딨어 이런 파인가요?
거 이야기가 평행선인데, 대규모 작전 한번을 위해 그 가치있는 루트랑 몇번씩 침투를 성공한 정예 인력을 쓸 가치가 있냐는 이야기다. 서울도 아니고 고작 광주에 말이지. 그정도 루트랑 인력을 보잘것없는 작전에 낭비할 당위성이 어딨고, 그런 앉아서 첩보전 승리를 떠먹여 준 북한에 대해서 왜 그 당시 증언들엔 이야기가 없냐고. 특히나 그 당시 직접 광주에 들어가 시민들과 인터뷰를 했던 기자들한테서 말야.
아니 광주는 엄청 북한에게는 중요한데요 북한군이 개입했다면 엄청 성공한 작전이죠 광주를 아예 탈취해서 해방구로 만들었으니까 계엄군이 외곽으로 다 빠지고 치안 공백 상태였는데 그리고 광주로 인해서 광주비디오 돌려보고 엄청나게 운동권이랑 좌파가 생겼죠 광주가 성공해서 광주사태 진압 실패로 광주같은 사태 치안공백이 전국으로 확대 되었다면 글쎄 상상이 안가네요 어떻게 될지 북한입장에서는 광주는 아주 큰 사건인데 사실 한국한테도 큰 사건이구요
님아 조갑제가 이 사람 책 썼어요 자서전 같은거 물론 여기서 조갑제가 광주 북한 군 개입 부분을 다 편집했다고 하네요 참; 그래서 마이클리도 이걸 뭐라 하던데 자기 마음대로 짤랐다고 이 책 보면 cia가 이 사람은 전직 cia라고 미국 이익에 걸린 거는 발설 안했다고 이 사람은 지금도 미국 이익에 반하는 거는 발설 안합니다.
님아 강릉 무장공비 침투 때 잠수함이 어선 그물에 안 걸렸으면 안걸렸는데 그 루트를 한번 썼겠어요 그전에도 여러번 취약한 강릉을 오고 갔겠죠 그때는 재수 없이 그물에 걸려서 걸린거구요 그물만 없었다면 무사히 북으로 갔다니까요 잠수함이 해안부대한테 걸린게 아니라 그것도 택시기사가 그물에 걸려서 바다위로 올라온 걸 보고 신고해서 걸린 거에요
잠수함 잡는 거 일반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어려움. 현재에도 대잠전력 운용해도 탐지확률이 10~20%정도로 봄. 림팩훈련에서 우리 잠수함이 미국함들을 격침하는 것도 우리군 실력도 실력이지만 원래 많이 격침되는 거구.. 또 탐지했더라도 잡아내는 것두 어렵구. 98년도에는 탐지하고 폭뢰를 수십억 퍼부었어도 결국에는 잡지 못했음. 군사력이 약한 돈없는 나라에서도 잠수함을 도입하는 것 다 이런 이유다.
미국 CIA 문서에 따르면 북한군 침투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고 광주에서 살던 미국인들도 5-18이 민주화 운동이라 밝혔다. 또한 지만원이 북한군 특수부대로 지목한 사람 중 한 명이 현재 여성 탈북자 김정아 대표인데 당시 4살이었다. 그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신동아와 한 인터뷰에서 북한군 개입 사실을 그 인터뷰를 통해서 처음 알았다는, 한마디로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그가 북한군 개입을 부정한 것이다. 에초에 북한군이 개입했다 하더라도 나라를 지키는, 그것도 보안사령관이라는 사람이 북한의 침투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군인으로서 최악의 직무유기가 되는 것이다. 만약 군이 그 사실을 알면서도 전두환에게 보고를 하지 않는 거면 그 군 또한 최악의 직무유기를 한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5-18을 기념하기에 북한의 개입이 사실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북한은 4-19 혁명과 6월 항쟁도 기념하고 있다.(아무리 극우여도 4-19혁명과 6월 항쟁에 북한군 간첩들이 일으켰다고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5-18 민주화운동이 자신들의 혁명전사들이 일으켰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이들은 4-19 혁명, 6월 항쟁, 부마항쟁 등 모든 민주화 운동을 지들 입맛대로 왜곡한다. 북한을 그렇게 못 믿던 분들이 이런 거에 있어서는 찰떡같이 믿는다.
또한 현재 우익 활동가이신 조갑제 당시 기자가 찍은 사진에는 광주 시민들이 '북괴는 오판말라'라는 현수막을 들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탈북자들의 증언의 신뢰도도 매우 낮은 것이 각자 침투경로, 침투인원들이 모두 달라서 일관성이 매우 떨어진다.
우익 내에서도 여러가지 프레임이 다양하지만 전 남한 내 주요 소요사태에 북한이 직갑접적으로 개입했다고 봅니다. 4-19나 6월도 마찬가지. 북한 입장에서는 민주화 하면 합법 공산 종북 정당 획득하기 쉬우니까 민주화라면서 학생, 노동, 농민 등등 종북 세력이 합법적으로 정당 정권 획득하기 용이하니까
난 조갑제 말로 못 믿겠는데 조갑제 말은 아예 북한이 바보처럼 다 우릴 잡아가시요 라면서 600명이 왔다든거 한번에 그리고 당시 전방 철책선이랑 그에 몇배나 되는 해안선 까지 완전 밀봉 상태였대 ㅋㅋ 군생활 전방 철책 서본 사람이면 밀봉 상태 이런 말 못할텐데 그럼 노크귀순을 왜 일어나나 김신조 일당은 어떻게 들어왔고
님아 해외 특파원 예를 들어 베틀린 장벽이 무너진다 그러면 기자가 그 현장에 있다 칩시다 베를린 장벽 겁나 넓은데 거기 현장에 있다가 기자가 베를린 장벽 무너지는 다 파악 가능한가요? 조갑제가 현장에 있으면 뭐 아예 없던 사람보다는 현장 잘 알 수 있겠죠 근데 조갑제가 광주 전체를 다 파악할 수 있어요 현장에 특파원 보내도 외국에서 본사에서도 정부 줍니다. 기자 혼자서 현장을 어떻게 다 파악해요 아무리 현장에 있어도
님아 북한군 개입이 솔까 통일되서 북한 비밀문서가 해제되기전에는 완전 부정도 완전 긍정도 못해요 추측만 할 뿐이지 도리어 아예 부정하는 게 참 그래요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으니까 여러 의혹을 제기하는 거지 아직 다 밝혀 지지도 않았는데 절대 없었다 내 목숨까지 걸겠다 안왔다 이런 조갑제를 난 이해가 안가는데요 도리어
그 의심스럽다는게 천안함 음모론, 달 착륙 음모론, 지구 평면설 수준밖에 안돼니 안듣는거지. 위에도 썼는데 못봤나 싶어 말하는데, 그 마이크 리인가 미카엘 리인가 하는 사람, 분명 미국의 첩보기관 CIA소속이었다면서 데일리 NK말고는 그 어디에도 설명이 없다. 그 데일리 NK에서는 "한국 방송에서 증언했다더라"수준 보도고. 실존 인물은 맞냐?
에초에 이사람 한국인이야? 첩보기관에 외국인을 요원으로 임명한 기록은 못봤는데. 어디까지나 협력자지. 근데 고작 CIA국장한테 편지를 보냈더니 요원으로 임명했다고...? https://www.ciaagentedu.org/ 아무리 현대로 오면서 빡세졌다고 가정해줘도 좀 너무 부실하지 않니...?
Be United States citizens. 미국 시민이어야 함. Possess a bachelor’s degree with a minimum GPA of 3.0. 필요 요구 학위에서 3.0이상 성적 (Criminal justice, Criminology, Sociology, Emergency management, Homeland security, Police science, Criminal justice administration, Psychology 전공 중 하나).
Must possess at least three years of criminal investigative experience focused on complex matters 최소한 3년 이상의 단순 수사 이상의 범죄 수사 경력. 이게 요구조건인데 그걸 편지로 통과했다고 주장하는 인사를 믿으라고 지금...?
미국 이민 후 2년 동안 백화점 점원을 하던 그는 당시 CIA 국장이었고 훗날 미국 대통령을 지낸 조지 부시에게 편지를 보냈다. 502군사정보단에서 일을 하면서 정보요원이 될 훌륭한 자질을 갖추게 됐는데 자신을 백화점에 두는 것은 인적 자원 낭비이고 미국 정부가 보석 세공을 채석장에 맡기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조지 부시 CIA 국장은 직접 마이클 리를 CIA 직원으로 채용했다. 미국 시민권이 없는 사람을 CIA 직원으로 채용한 최초의 사례였다. 마이클 리는 그 후에도 자신의 채용과 같은 일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사례라는 것이다. 1976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에게 시민권이 나온 것은 79년이었다.
<이 책에서 언급된 모든 내용과 견해와 또는 분석이 저자의 판단이며 미국 CIA나 어느 정부 부처의 공식 입장이나 의견을 반영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이 책의 내용 어느 것도 미국정부나 CIA가 진위를 인증하거나 시인한 것이라고 추론하면 아니된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기밀정보의 누출을 방지하기 위하여 미국 CIA가 검열하였다. 그리고 이 책이 출판되면 CIA의 자료연구 도서에 포함이 된다.>
개인적인 의심. 그거 좋지. 근데 별로 합리적이지도 않은 걸 가져다가, 그것도 조사결과도 아니고 의문점만 덜렁 내놓고 "이상하지 않나요 여러분?"소리만 하는 걸 음모론이라고 부른다. 의혹 제기가 아니라 진짜 결과를 내놓은 사람들이랑 맞먹으러 드는 거 자체가 웃겨. 정말로 의문점을 조사해서 밝혀내겠다면야 당연히 지지를 받아 마땅하지만 의혹만 달랑 내놓고 대우해달라는 소린 기대를 마.
님아 그러면 헬기기총 사격, 대규모 암매장 이것도 몇번을 조사해도 안나오는 음모론인데 이건 왜 문재인 대통령이 또 조사하죠 이것도 음모론이잖아요 몇번 조사해도 계속 안나와요 전두환 발포 명령도 마찬가지. 이것도 음모론 이니까 조사 안해도 되겠나요 북한군은 한번도 제대로 조사도 안했는데 이건 조사를 몇번해도 안나오는 음모론인데 왜 계속 조사하나요?
97년도 역사 바로세우기가 희대의 코미디인건 너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지. 헬기기총사격은 얼마전에 고층건물에 난 총탄 흔적이 건물보다 높은 곳에서 쏴야 나타나는 모양인데 당시 그 건물보다 높은 건물이 없었으니 확실한 의심이 갈만한 심증이 존재해서 다시 조사한거고, 물론 암매장 이런건 다소 뻘짓이긴하다만. 발포명령은 결국 은폐해서 모르는거고, 전두환이 의심받는건 5.17 계엄확대조치 이후 실질적지휘권자가 전두환이니 전두환이 발포하라한거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는거지. 뭐 전두환이 발포하라 하지 않았어도 계엄군 조종하고 내란일으킨건 전두환이기에 당연히 사형을 언도받아야 하는거고.
님은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광주사태 때 계엄사령관은 이희성이에요 그리고 20사단장 정웅이고 공수부대가 투입 되었죠. 전두환 군 지휘라인이 아니에요 지금으로 말하면 기무사령관 국정원 서리인데 기무사령관 국정원장이 군을 지휘합니까? 작전라인은 따로 있는데 전두환이랑 사이 안 좋았던 계엄사령관 이희성도 전두환이 나 제끼고 했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다 전두환은 광주와 무관하다 이랬어요
민주제도연구소 명단 은 있어도 예비내각 명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문화', '언론사회', '종교교육', '민족재생', '민주정치', '도의정치' 와 같은 정부 부처는 존재할 수가 없고, 내각을 구성한다고 하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국방부'나 '법무부' '외무부'와 같은 부서는 보이질 않는다. 이 세 부서는 권력 장악을 위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부서인데도 말이다. 또한 참여인사 면면을 보자. 문익환 목사, 장을병 성균관대 교수, 송건호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백낙청 서울대 교수, 서남동 목사, 탁희준 성대 교수 등등...명단을 훑어보면 80년대 재야세력 어벤져스라고 할만큼 삐까뻔쩍한 사람들이 많다. 제도권에 드러난 수준을 넘어서 제도권의 중심에 서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권력을 가진것도, 군권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내란이나 정부전복은 그냥 말로만 하는게 아니다.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의 주동이 누구였는지 생각해보자. 아니, 불과 6개월 전에 정부를 전복시키고 권력을 잡은게 누구였는지 생각해보자. 한마디로 주동세력으로 지목된 인물들은 학문적, 도덕적인 존경을 받기는 했지만, 무력으로 정국을 장악한 신군부를 몰아낼 힘은 전혀 없었던 사람들인 동시에, 사회의 기득권 층으로서 급격한 무력봉기나 혁명이 일어나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을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내란을 기도했다고?
40년 가까이 조사해서 민주화운동이라고 했을 정도면 끝난거지 뭔 개소리시죠? 몇십년 동안 몇십명의 법관들이 지나갔는지 모름? 전두환이 자서전에서 부정했다고 아닌게 되나요? 장도영이 박정희 제끼는소리하고 자빠졌네요. 전체주의 사회에서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아니라고 하는데 대체 님들은 ㅋㅋㅋㅋ
님아 역사를 잘 모르고 이야기 하시네 삼십제대가 있지만 크게 광주사태 성격 규정한 게 두번 삼십 포함 6번이에요 80년대 대법원에서는 김대중의 내란음모 사건이다 이걸 일사부재리 소급법 씹고 무슨 자연법 여론법으로 시위대가 준헌법기관이다 부화내동죄 등등 이상한 거 다 동원해서 전두환의 내란이다 뒤집은 97년 역사 거꾸로 세우기 소위 바로 세우기 재판 이 두번 이에요 그 이후로는 갸우이걸 토대로 안ㅍ바꿨는데도 아예 이후로 민주화라라고 깔고 갔는데 뭘 헬기기총이나 대량암매장 전두환 발포 명령 이거야 말로 매번 조사해도 안나오는 거고
1981년 보안사가 작성한 '증언참고자료' 문건입니다. 기무사가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던 문건 목록엔 전두환 씨가 대통령이 된 이후 보안사 비서실이 작성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문건에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작전 내용과 당시 군 지휘부가 무력 진압을 결정하게 된 배경 등이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마지막 장에는 '광주사건시 각종조치 및 결실에 이르기까지 국방장관과 해·공군 참모총장 등이 수차례 회의를 통해 상황분석과 가용방책을 검토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대책 회의 참석자에는 보안사령관이라고 나오고 '전두환 장군'이라고 이름이 따로 적혀 있습니다. 전 씨는 1980년 당시 광주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어 5·18과 무관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문건에는 광주에 'UH-1H 22대를 비롯해 각종 항공기 40여 대를 지원'하는 내용도 적혀있고, 이를 결정한 것도 문건에 기재된 지휘부로 돼있습니다. 헬기 사격은 없었고, 있었다 해도 자신과는 관계없다는 전 씨의 주장과 배치됩니다. 문건에는 또 5월 18일부터 광주에 특전사와 20사단을 투입하는 명령도 당시 군 지휘부 회의에서 결정됐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달 5·18 특별법에 따라 구성될 진상규명위원회가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앞 집단·조준발포 명령자를 규명하는데도 중요한 단서가 될 전망입니다
아니 근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왜 글의 논리에는 반박하지 않음? 글의 논리에 좀 논리적으로 반박해서 무엇이 틀리고 어디가 틀렸는지를 알려주셈. 무슨 cia 요원의 책만 갖다대지 말고 정확히 어떤 구절에 어디에서 그 요원이 증언을 하는지, 그리고 저 글의 어떤 논리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일일이 설명해주셈. 부탁입니다. 왜냐면 제가 저 글을 쓴 사람이거든요
https://news.joins.com/article/23376317 -법원은 “인터뷰 당시 북한군 개입을 부인하다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지만원의 주장을 인용한 것은 자기 모순적 주장”이라고 했다.
-법원과 미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부정한 사실을 개인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변하는 사실은 없습니다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면서 정부가 역사해석을 독점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폈잖아요 아니 근데 왜 광주사태에 대해 정부와 다른 역사해석 다른 의견을 내는 걸 탄압하고 출판의 자유까지 침해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거야 말로 민주화랑 거리가 멀지 않나요 토론하고 사실이 아니면 반박하면 되지 무슨 처벌하고 책도 출판 금지 시키고 다른 의견 입도 뻥끗하지 말라니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고 억압하는 게 민주주의고 민주화인지 도리어 그 반대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