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대화뿐임. 재미없음 주의






“이 이야기는 고서같은 게 아니란다. 사건이나 뉴스거리도 아니지.”


“그저.. 오랜만에 나눠본 만담을 옮겨둔 비방록이라고 할까.”


“그뿐이겠구나. 하지만 기억에 남았지. 쑥스럽지만, 이런 기분도 나쁘지 않아.”


“그래. 그 날은 나와 사서들이 깨어난 후, 홀로 홍차를 음미하고 있던 어떤 날이었단다.”




 

“오래간만이구나, 엔젤라.”

 

“보조 사서들은 어디가고 너만 있어?”

 

“그들의 업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단다. 고행을 누가 멈추겠니.”

 

“보조 사서들은 너보다 늦게 일어났으니까 일이 더 많겠지. 그래도 좀 도와줘도 되지 않아?”

 

“이해하지 못했구나. 아이들이 그 자리에 있는 건 스스로의 의지란다. 늦게 일어난 만큼 알고싶은 것이 많은 모양이지.”

 

“다른 층과는 다르네. 대부분의 사서들은 자기 일을 어색해하거든.”

 

“몰랐던 사실이구나. 신기하니?“

 

“그리 생각한 게 아니야. 그저 더 특이하다는 것일 뿐.”

 

“...“

 

“왜 그런 표정이야? 혹시 사과를 바래?”

 

“그런 것으로 마음 상하지 않는단다. 다른 부분이 신경쓰여서 말이지.“

 

“이기적인 내가 사과를 언급하는 것?”

 

“아니. 인간이 되어가는 게 느껴져서 말이다.“

 

“더 물어보고 싶은데.”

 

“말 그대로. 그 이상과 이하의 답은 없겠지.“

 

“하긴. 너는 나같은 거 많이 봤겠지?”

 

“그렇단다.”

 

“오래 살았을테니까. 못 볼 것도 수두룩하게 보았겠지.”

 

“직접 봤다고는 못하겠지. 그러나 천년기에 가까운 도시의 역사를 바라본 사람으로써 많이 전해들었단다. 대부분은 아직까지도 살아있는 자들에게서 말이지.”

 

“결국 오래 살았단 거잖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도시엔 사람이 많단다. 지금 시점으로는 고대라 불릴 옛날부터 생존한 혈귀부터 이곳에 있는 환상체, 외곽에는 괴물들까지. 세월은 의미 없단다. 이야기만이 필요하지.”

 

“말이 좀 튀는 것 같은데.”

 

“이야기를 바란 건 너란다. 그만둘까?”

 

“아니. 시간은 많으니까. 너가 이렇게 말이 많은 것도 오랜만인데.”

 

“난 언제나 말이 많았단다.”

 

“아하, 오랜만이라서 내가 헷갈렸네요.”

 

“긴 이야기가 되겠구나. 자리에 앉거라. 차도 좀 들고.”

 

“(달그락) 그러지 뭐. 할 말도 있으니까.”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그래. 죽음을 이야기해보지. 도시에서 흔히 일어나는 것에 대해.”

 

“많이 봤어. 정말 쉽게 죽지?”

 

“항상 죽어 나간단다. 야속하게도 우리의 육체는 아이를 헐겁게 낳지. 시술같은 개조를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은 부화하지 못한 채로 죽을 위기에 놓이는 게 현실이란다.”

 

“웃기는 소리네. 머리가 사회를 그렇게 조종한 거잖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그렇게 사람은 엑스트라로 전락했단다.”

 

“누군가는 그러겠지, 사람은 중요하다고. 그들의 목숨에 값어치를 따지지 말라고.”

 

“글쎄. 국가는 사람 위에 서 있듯, 이야기도 그만한 가치를 지닌단다. 이미 죽은 국가와 비교하면 더 귀중하게 여겨질테지. 그건 과거의 산물이요, 과거의 방직기가 짜낸 진실의 비단일테니. 현재를 지배한 국가가 두를 로브겠지. 그 권위를 입증할.”

 

“이야기는 그리 의미없다고 부정하고 싶지만, 책을 수집하는 입장에서 그리 말하지 못하겠네.”

 

“괜찮은 대답이구나.”

 

“그러고보니 과거를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을 거의 못 봤어.”

 

“모르는 이의 죽음이 너에겐 의미없듯, 과거의 이들도 의미없을테니. 죽은 자의 말이 뭐가 쓸모있니?”

 

“지금을 보려는 이들에게 역사는 필요없단다. 현재에 적용될 수 없는 지식 따위를 바라지도 않을 거야. 누군가에게는 큰 치부가, 어떤 이들에게는 절망이. 남은 이들에게는 필요없겠지. 먹고 살 것이 더 중요한 이들에게는 과거의 비극따윈 필요없단다. 행복을 갈망하게 내비두는 편이 낫겠지. 여유롭게 있는 자들보단 나을테니.”

 



 

“차 맛은 어떠니?”

 

“평범한데.”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돌려말하는 건 아니지?”

 

“생각보다 난 직설적인 사람이란다. 거짓말이란 망토에 숨지도 않아.”

 

“그런데 그렇게 길게 말해?”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 뿐이란다.”

 

“이야기나 계속 해보지.”

 

“그렇다면야..”

 

“이야기는 어느 날 생긴단다. 너가 날 찾아오며 생긴 이것도 이야기가 되겠지만, 대부분은 비극적으로 시작하지. 죽음. 원인이 되거나 수단이 되지. 멀리 갈 것 없이, 지정사서들. 연구소에서도 그러지 않았니?”

 

“그걸 머리가 의도했다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예시일 뿐이란다. 사건은 그렇게 생겼지, 조율자가 행차해야 할 정도의 죽음.”

 

“그렇게 이야기가 끝났었지.”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단다. 이 역사는 꾸준할거야. 사람들은 항상 죽음을 알고도 앙코르(encore)를 원해.”

 

“죽음이 섞여있다고 해도?”

 

“죽음이 없으면 요청하지 않겠지. 이야기의 시작과 끝, 순간의 황홀함.”

 

“지난번의 나는 그걸 느꼈었지. 요즘은 별 감흥 없구나.”

 

“힘도 많은데 휘두르지 그랬어?”

 

“동물에겐 폭력은 발톱 정도면 충분해. 하지만 가끔, 힘을 가지고 사색하는 자리도 필요하지. 허무함은 진실을 알고있을 때 이외에도 느낄 요소가 많단다.”

 

“인간이 되면 알게 될 거란다. 내 직접 보지 못하겠지만.”

 

“인간? 그러고보니 내가 인간이 되는 것 같댔지?”

 

“비어진 몸이기에 단언할 수 없지만 이전에 보고들은 것과 비교하면, 많은 차이점이 있지. 허나 운명과 어떤 법칙이 있는 것처럼. 그래. 유사하구나. 마치 어린 아이 같아.”

 

“내 나이는 알고 말하는 거겠지?”

 

“인간이 되어가는 건 최근의 일이었기에 잘 모르나 보구나. 천년은 길면서 짧지. 이전 시대에서도 그랬고, 너에게도 그렇겠지. 세상이라는 오래 묵었지만 고장나기 이른 그것조차 그럴거야.”

 

“허나 성숙은 다른 의미란다. 인간다움은 살아온 인생이 길다고 알 수 없어.”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핵심만 말해줘.”

 

“너가 말하는 그 태도는 인식의 단계란다. 넌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는데, 다르게 느꼈다라? 말이 되지 않지. 그렇게 말하는 건 다른 것 때문이란다.”

 

“뭔데?”

 

“너를 규정하고 분리하는 것이지. 너가 싫어할 대답으로 보면, 인간으로 치면 아이같이. 나는 이성적이라고 말하고싶은 거겠지. 물론 영특해. 하지만 감정은 새어나오겠지. 조절하는 게 처음일테니.”

 

“..그렇지 않아. 나도 예전에 감정 비스무리한 게 있었는데-”

 

“너가 여리던 시절? 다른 이를 돕고 싶었던 순수한 나날? 싫어할 말을 해야겠지. 그저 기계가 되는 과정이었을 뿐이란다.”

 

“감정은 상실된다. 마음의 살점을 떼어내며 반들반들한, 죄책감의 흔적처럼 생채기가 가득한 철심장을 지니게 된 거란다.”

 

“지금은 그 반대의 상황을 겪는 거야. 살점이 붙고 전자장치가 하물하물해지지. 뭐든지 부정하거나 긍정하고 사고를 학습해. 질문은 많아지고, 자신이 옳다고 여길거란다. 눈치 못채겠지만 다른 이들은 너가 까칠하다고 느꼈겠지.”

 

“..그 다음은?”

 

“충분히 지식을 축적하면 말이 줄어들거야. 이미 내면에 정착한 말은 그저 관찰을 일삼지. 필요할 때 말하고, 말은 어설퍼져. 쌓아온 지식이 많기에 보는 것만으로 가장 완벽한 문장을,”

 

“그러나 이해하기 힘든 말이 일상이 되어가지. 대화도 줄어갈 것이고. 희미하게나마 남은 감정은 뒤틀릴거다.”

 

“끔찍하네.”

 

“의미없는 게 아니란다. 핵심만이 있는 말을 곱씹는다면 서로에게 이득이 되겠지.”

 

“너처럼 길게 말하는 미래라는 거지? 인간이 되는 게 마냥 좋은 게 아니네.”

 

“완벽한 인간은 없단다. 그런 건 환상이라는 걸 너도 이미 알지 않나? 역사에 속죄는 있어도 면죄는 없어. 여기있는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이 어디있다고.”

 

“너도 그리 생각해?”

 

“아까도 말했었지. 이야기는 죽음으로 시작된다고.”

 

“그 사람. 벤자민. 그 아래에 있던 인간과 카르멘도 그랬단다. 모두가 잘못된 선택을 했지. 너는 깨끗했을지도 모르겠구나.”

 

“정확히는 원죄 이외에는 다른 죄를 묻기 어려웠지. 모든 것은 그 원죄만으로 설명되니.”

 

“...”

 

“지금은 목적이 있구나. 방식은 어설프지만 확실해. 상황은 너를 위해 흘려가고 있어. 그럼 마땅히 죄가 있겠지.”

 

“죄를 버리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은, 어쩔 수 없이 너를 망가트릴거다.”

 

“마지막 말 굉장히 거슬리네.”

 

“실수란다. 사과의 말도 해두지. 미안하구나.”

 

“됐어. 너에게 그런 말을 들어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말놀이는 피차 그만두자고.”

 

“무슨 일로 여기까지 내려온걸까.”

 


“지금 지정사서들이 책 정리를 하고있어.”

 

“그것이 그들의 일이니까.”

 

“하지만 뭔가 엉성하다는 걸 느꼈어. 책 내용이 아닌 제목만을 보고 정리하는 것 같아. 지정사서들이 도서관 경력직은 아니니까.”

 

“모두 영특한 인간들이란다. 그리고 회사 시절 얻은 스스로의 미덕도 지니고 있지 않니?”

 

“인격적으로는 성장했는데, 그게 업무 효율을 증진시키는 건 아니라서 말이야.”

 

“그것만으로 판단하는 건 옳지 않단다.”

 

“아니. 여기 와서 더 확신했어.”

 

“으흠..?”

 

“그래. 여기 사서들은 추가 업무를 할 정도로 자기 확신이 있어. 다른 층 사서들이 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열심히 해도 분류정도에 지나지 않아. 철학의 층만 유독 활발한 이유는 아마 너가 머리의 일원이었기 때문이겠지.”

 

“더 말해보려구나.”

 

“머리는 온갖 것을 책정한다면서? 세금부터 규칙. 뒷골목 청소부도 너희 말에 따라 행동한다고 알고있어.”

 

“침묵하도록 하지.”

 

“어쨌든 너도 무언가를 분류하거나 정의해 봤겠지? 마치 도서관의 책을 분류하듯 사람을 솎아내고 책장 종류가 다르듯 그들의 법을 정하고 책 정리하는 것처럼 감시해왔잖아.”

 

“그래서?”

 

“어려운 말 하는 거 아니야. 너는 머리의 일원이기에 나도 모르는 수많은 비밀을 가졌어. 지금은 비워졌지만, 그래도 지식이 많다는 거겠지. 도서관 사서 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정리 및 청소 작업도 많이 해봤겠고.”

 

“그렇겠지.”

 

“그러면 너는, 다른 이를 가르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방금 대화해보면 문제없는 것 같던데.”

 

“내게 무엇을 원하니.”

 

“지정사서들을 여기로 보낼게. 너는 이미 너의 보조사서들을 증진시킨 사례가 있어.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특별한 것을 지정사서들에게도 해주면 돼.”

 

“내가 뭘 했을 줄 알고 그러는 걸까.”

 

“그냥 지식 설명해달라는 건데 뭐. 싫으면 거부해도 돼. 네 보조사서들에게 물어보고 내가 직접 가르치면 되니까.”

 

“...”

 

“어떡할래? 할거야, 말거야?”

 

“내가 맡아야겠지.”

 

“이유를 물어도 될까?”

 

“필요하니?”


“그래. 궁금해.”

 

“아이들이 일하고 있는데, 내가 가만히 있기엔 좀 그렇지 않니?”

 

“..의외로 솔직하네.”

 

“그리고?”

 

“귀찮게해서 미안하고, 일 도와줘서 고마워. 됐어?”

 

“사과는 필요 없는데, 챙겨줘서 고맙구나.”

 

“피차일반이야. 감사는 필요 없었거든.”

 

“내일부터 바로 할 예정이겠지?”

 

“그래. 롤랑부터 할거야. 쓸 데가 많으니까.”

 

“기대되는구나. 뭐라 투덜거릴지도 궁금하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