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쩡하게 흐린 날이 눈썹을 찡그리더니 눈발이 거세지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안전한 보금자리를 얻지못한 그가 우울로 가득 차 있을 무렵 벗으로부터 전달받은 편지의 내용은 매우 반가울 만한 일이였다. 열차를 타고 북쪽으로 향하는 그의 얼굴엔 드디어 둥지를 얻었다는 기쁨과 벗의 상태에 대한 걱정 반이였다.


사실 문 밖을 나서기까지의 과정이 매끄럽진 않았다. 부부 간의 사소한 다툼이였다.

아기를 밴 아내는 볼 맨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가야 하는 건가요."


"둥지 이주권을 얻을 수 있으니 어찌 마다하겠소."


"굳이 둥지에 거주하지 않아도 아이는 안전합니다."


"만약을 대비하는 거요."


"... 이상 씨의 친구 때문인가요."


"... 부정은 안하겠소."



둘 사이엔 잠깐의 침묵이 감돌았다. 이윽고 방에 들어갔다 나온 파우스트 손에 들린건 목도리와 장갑이였다.



"장갑은 부인의 것인데, 어찌 내게 건네주는 것이요."


"친구를 구하는데 수단을 가릴 순 없으니까요."


"하오나...."


"장갑이 없어도 특색은 특색이랍니다."


"하기야...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소."



그날따라 귀신이 들린듯 여느 때보다 추운 날이였기에 이상은 목도리를 동여싸고 문 밖으로 나서려하였으나, 급작스레 아내가 남편의 옷자락을 손 끝으로 붙잡았다.



"?"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냥 가려는 건가요."



아내의 사소한 삐짐에 무언의 행복감을 느끼는 남편은 쓴웃음을 잠깐 짓고선 아내에게 입맞춤을 해주었다. 남편의 입술이 까슬까슬했지만 가족을 위해 입술이 부르트게 일하는 사실을 알기에(그리고 아내가 은퇴한 이후엔 더더욱) 그것은 아내에게 별 대수가 아닌 일이였다.



"사랑하오. 언제나."


"뱃속의 아기가 파전이 먹고 싶다하는군요."


"파전도 반드시 따뜻하게 가져오겠소."



그렇게 밖으로 떠난 이상이였다.


한참 뒤 25구의 사건을 마무리한 이상은 근처 돌부리에 걸터 앉았다.



"그대가 없었다면 전멸했을 것이다. 감사를 표하지."


"감사인사는 됐소. 벗이 좋다는게 무엇이겠소."



흐린 날씨와는 대비되는 새빨간 골목이 두드러졌다. 사태가 끝난 후, 잠깐의 휴식을 가지는 둘이였다.

뫼르소는 이상의 옆에 서서 담배를 건넸다.


"사양하오. 임신한 여인의 몸에 매우 해롭기에."



거절의 대답을 들은 그는 쪽빛 지포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새빨간 거리와는 대비되는 푸른 불빛이였다. 이내 매캐한 연기에 이상은 잠깐의 헛기침을 하곤 뫼르소 쪽을 바라보았다.



"어디있소?"


"없다."


"뫼르소 군, 지금 나와-"


"농담이다."



뫼르소가 주머니에서 둥지이주권을 꺼내지 않았다면 이상은 그대로 달려들 기세였다. 둥지이주권을 보자마자 이상의 기분은 급격히 풀려 본래의 얼굴을 되찾았다. 둥지거주권을 갖게된 그 순간 만큼은 하늘의 색도 잠깐이나마 밝아졌다고 그는 생각했다.



"혹시 내가 부탁한 물건도 가지고 왔는가?"


"규정에 따르면 특이점을 이용한 물건을 운송할 때는 매우 복잡한 절차가 필요-"


"역시... 그것까지 부탁하는 것은 과분한 요청이였구료..."


"하나, 친우의 부탁이니 이를 감수하고 가져왔다."



뫼르소가 건넨 것은 현상 보존 상자였다. 무엇이든 시간이 멈춘 듯, 그대로 보존하는 마법같은 상자.



"요청을 들어준 보답이다."


"고맙소. 벗이여."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후 이상은 집으로 달려갔다. 아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했던 파전을 상자에 담고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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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렸던 날씨는 결국 궂은 비를 뿌렸소. 그렇기에 25구와 9구의 온도가 차이나지 않았기에, 나는 아내가 준 목도리를 더욱 동여매고 집으로 향했소.


아무리 뒷골목이여도 멀쩡한 집은 존재하는 법. 햇빛이 가장 잘드는 양지바른 곳 위에 있는 곳이 우리집이요. 매우 아리따운 만삭의 아내가 나를 사랑해주는 그 곳이 바로 내 집이요.

그 곳까지 가는 길은 음악의 거리답게 매우 정겨운 화음으로 가득 차있소. 최근 취미도 바뀌었소.


하오나 그 날은 유독 쌀쌀한 날이였소. 궂은 비 때문만이 아니였소. 노래를 부르는 이들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것 때문도 아니였소. 인간이 만들어내는 다중의 화음, 조금의 불협화음을 동반한 노래가 아닌.


한 명의 사람이 만들어 낸 듯한. 매우 매끄러운 음악이였소. 그것도 매우 크게 들리니 혼란은 가중되었소.

언제였는지, 내 손에 파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소. 둥지이주권이 물에 젖는 것도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였소.


파이프오르간 소리 사이로 들리는 빗소리와 침묵은 형언할 수 없는 불길함을 가져다주었소. 다리가 부들거리고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소. 집에서까지 가면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혹시나.


설마 그렇지 않겠지만. 누가 감히 그녀를 이길까 생각하겠지만.


만에 하나.

만약.



회색문을 두드렸소.

매우 애타게 두드렸소.


그녀가 문을 열며 미소짓는 모습을 기다렸소.


그러나 들리는 건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건반 소리였소.



문을 열고 들어오자 그녀의 모습이 보였소.

25구에서 맡은, 여기선 나선 안되는 피비린내가 매우 진하게 내 코를 찔렀소.



"파우스트 양?"


"이상 씨..."



그 말이 우리 부부의 마지막 대화였소.



"파우스트 양."



"왜... 말이 없소..."




"제발...."




그날,

내 세상은 다시 깨졌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