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좋은 밤입니다! 여러분, 이번 주는 특별히 이 지팡이 사무소의 사장 네모가 '루나틱 토크쇼'에 진행자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장? 왜 어쩌다..."


 "거기서 뭐하시는 건가요?"


 "다들 깜짝 놀라셨을 겁니다. 다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 거니까 잘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무튼 이번 토크쇼의 참가자는 다름 아닌 언쇼 가의 히스클리프 씨입니다!"


 (박수 갈채)


 '캐서린이 한 번 나와보라고 해서 나오기는 했지만 이거 뭔가 불안한데...'


 "자, 히스클리프 씨? 왜 이 토크쇼에 참가하게 되셨습니까?"


 "어, 그냥 캐서린 추천으로 여기 오게 되었어."


 

 캐서린은 조용히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지만 린튼은 그가 못마땅한지 불쾌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바로 진행하죠! 이번 토크쇼의 주제는... '비밀'입니다."


"뭐? 비밀이라고?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아뇨. 히스클리프 씨. 당신이 몰래 가지고 있는 '비밀' 같은 거 털어놓고 싶으시다면..."


 "임마, 내가 바보인 줄 아나 보는데 당신 돈 밝히는 거 다 알고 있어. 그런 식으로 꼬드겨서 돈 벌 생각 뿐인 것도 잘 알고 있고."


 "예. 잘 알고 계시는군요! 워낙 돈이 많이 필요한 몸인지라..."


 "닥치고 뭘 말할지나 말해."


 "예, 예. 진정하시고 계속 진행하죠."


 솔직히 네모는 딱히 별다른 주제 없이 히스클리프와 계속 '대화'만 이어나갔다.


 그런데 워낙 네모가 유쾌한 사람이기도 했고, 히스클리프의 기분을 잘 맞춰주면서 토크쇼를 이어나가서 그런지 의외로 물 흐르듯 잘 흘러갔다.


  가끔 히스클리프가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생각에 버럭 화를 내면


 네모는 서둘러 캐서린 이야기를 꺼내며 히스클리프를 달랬다.


 물론 린튼의 얼굴이 점점 더 구겨지긴 했지만 이를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사이, 관중석에 앉아있던 구인회의 아세아가 옆에 있던 힌들리 몰래 그의 와인 잔에 입을 댔다.


 (홀짝)


 아세아가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손거울을 보고 있던 사이, 힌들리가 와인을 마시려다 뭔가 위화감을 느끼고 아세아에게 말을 걸었다.


 "뭐야? 내 와인 누가 마셨어? 너지?"


 "이봐요. 제가 당신 와인을 왜 마셔요? 그대로구만, 뭐."


 "그대로? 야, 내가 절반 마셨는데 지금 1/3도 안 남아있거든?"


 "당신이 착각한 거 아니에요? 아니면 당신이 거의 다 마셔놓고 기억 못 하는 것 같은데..."


 "뭐야? 이게..."


 "우습군. 자기가 와인을 마셔 놓고 남을 의심하는 꼴이."


 "넌 왜 또 끼어들어?"


 "거참, 조용히 있을 것이지 참 시끄럽네요. 저 사람 누구인가요?"


 "힌들리라고, 아까 말한 캐서린 오빠에요. 아주 밉상인 놈인데..."


 "네. 그런데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이라니, 언쇼 씨는..."


 "네. 돌아가셨습니다."


 "아, 그렇군요.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저런 한심한 인간이 가문을 물려받다니, 차라리 캐서린 양이..."


 "뭐? 무슨 소리야? 갑자기."


 네모는 목소리를 낮추고 계속 이야기했다.


 "아니. 지금 저 인간 꼬라지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기 보니까 캐서린 씨 용모는 물론, 성격도 흠잡을 데 없는 분 같으십니다."


 "뭐, 그렇기는 하지..."


 "이참에 힌들리 씨는 그냥 어디 보내버리고 캐서린 양이..."


 "뭐? 아니, 당신이 누구 마음대로 남의 가정사에..."


 "네모 씨가 맞는 말 하네요. 이 젊은 나이에 벌써 알코올성 치매까지 있는 사람이 어떻게 가문을 관리해요? 제 생각에는 당분간 치료가 좀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러게 말이야."


 (웅성웅성)


 어느새 모든 시선이 힌들리에게 집중되었어.


 "그러고 보니 요 최근 도박장에..."


 "알코올 의존증에 도박 중독이라니! 이 정도면 적어도 정신과 상담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힌들리 씨."


 "아니. 갑자기 왜? 내가 무슨 미친 놈으로 보여?"


 "알코올 의존증의 경우, 충동적으로 변하며 감정 조절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알코올성 치매로도 이어질 수도 있다고 아는데 지금 건망증 있는 거 보면 당장 술 끊거나 치료하지 않으면 더 심해질 걸요?"


 "의존증? 까짓 거 주치의랑 버틀러들도 있는데 술과 도박이야 그냥 끊으면 그만이지."


 "흐음, 자네가 과연?"


 "린튼, 이 자식이 보자보자 하니까!"


 힌들리는 린튼이 여간 거슬린 게 아니었는지 주머니에서 리볼버를 꺼냈다.


 "겨우 그런 장난감 권총 따위로 날 어찌할 수 있겠나?"


 "장난감 권총? 그런 걸 왜 가지고 있어요?"


 "어렸을 때 언쇼 씨가 사준 건데 아직도 가지고 있다니, 여전히 애라니까."




 "푸하하, 그걸 아직도 가지고 있다고요? 이거 아주 재밌네요."


 "정말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군. 당분가..."


 탕. 탕.


 린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개의 탄환이 그의 머리를 꿰뚫었다.


 "린튼!"


 "뭐, 뭐야? 이게 대체..."


 린튼이 선혈과 함께 소리 없이 쓰러지자 힌들리는 당황한 채 리볼버를 떨어트렸다.


 곧바로 아세아가 떨어진 리볼버를 주워 약실을 열어보았지만 아세아는 리볼버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경악했다.


 "엉? 이거... 그냥 종이인데?"


 아세아가 권총의 일부를 잡아당기자 권총에서 종이가 뜯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살상용 무기였던 리볼버가 이제는 한낱 모조품으로 전락해버렸다.


 "이 무슨..."


 "일단 바다 씨, 마르티나 씨. 힌들리 씨를 서둘러 제압해주시죠."


 그들은 프로 답게 재빠르게 어안이 벙벙한 힌들리의 양팔을 붙잡아 제압한 뒤, 어딘가로 끌고 갔다.


 힌들리의 아우성이 울려퍼졌지만 모두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침울한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이봐, 아무래도 이번 토크쇼는 여기서 끝내야할 것 같은데 하나만 물어보자. 왜 당신이 토크쇼 진행자가 된 거야?"


 "사실은 토크쇼 진행자가 제 친구인데 이번 주는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다리를 의체로 교체하는 동안 일을 못해서 제가 대신 나오게 되었습니다. 자, 이번 토크쇼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모두들 잠시 고개를 숙이고 고인을 애도해주시죠. 그럼 이만."


 (번외 1)

 캐서린의 남편, 린튼의 장례식이 끝난 뒤였다.


 

 "히스, 이제 우리 둘 뿐이야. 아빠도, 힌들리도, 린튼도 없어. 더 이상 우리의 사랑을 방해할 방해꾼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겨우 하고 싶은 말이 그것뿐이야?"


 "일단 먼저 씻고 내 방에 들어가 있어. 침대 위에서 할 말이 좀 많으니까."


 "그러지. 뭐."


 히스클리프가 먼저 씻으러 간 사이 넬리가 캐서린에게 다가왔다.


 "캐서린, 여기 네가 말했던 채찍과 목줄이야. 그런데 왜 이걸 사오라고 한 거야? 경비견이라도 키우려고?"


 "후후, 일단 저쪽에 놓고 가서 푹 쉬어. 내가 씻고 나서 알아서 챙길 테니까."


 캐서린은 따로 씻고 난 뒤, 가운만 입은 채 채찍과 목줄을 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뒤, 그들의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한편 힌들리는...


 "여긴 대체 어디야? 왜 내가 이런 곳에 갇혀 있는 건데? 설마..."


 "좀 조용히 해라. 어차피 곧..."


 아무래도 끝이 영 좋지 않을 것이라는 건 확실하다.


 (번외 2)

 "후우, 그래도 아세아는 무사하구료."


 "그러게,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 왜 아세아가 손거울을 들고 다녀?"


 "얘들아, 나 왔어!"


 "이제 오는구료."


 "아세아, 무슨 일 없었어?"


 "하하, 그 힌들리라는 사람이 마시던 와인. 꽤나 고급이더라?"


 "음?"


 "그리고 내가 몰래 힌들리 자리에 있던 거 몇 병 슬쩍했어. 같이 마실까?"

 

 "너나 많이 마셔! 이 한심한 놈아. 와인은 언제 또 가지고 온 거야?"


(번외 3)

6/15 화요일

 솔직히 이번에는 상황이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이상 그 멍청이가 만들어낸 '거울'을 몰래 '유리창'으로 개조해서 실험해봤는데 동물은 버티지 못하고 죄다 유리창처럼 산산조각나 죽었지만 물건의 경우,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끌어와 덧씌우는 게 매우 손쉽게 이루어졌다.


 이번 토크쇼에서 힌들리라는 사람의 권총을 통해 실험해보았는데 손거울을 통해 평행세계의 가능성을 덧씌우는 건 성공했지만 빠르게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는 건 여전히 힘들어서 힌들리의 권총이 종이로 되어있는 가능성을 또 덧씌워야 했다.


 사람이 죽은 건 예상 외지만 인생이 원래 그런 것 아닌가, 어차피 다시 볼 일도 없을 텐데 굳이 신경 쓸 이유도 없고.


 일단 이 부분은 다른 멍청이들이 읽지 못하게 투명 잉크로 써야겠다. 만약 멍청이들이 이걸 알아내기라도 한다면 당연히 난 끝장이니까.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