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하이스쿨 오브 루이나



그나저나 명찰이 엄청 모였네~

이런데도 찾는 게 안 나온 거야?


응.

당연한 일이지.

날 자유롭게 해줄 단 하나의 명찰을 벌써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어.


그런데 앤젤라, 이쯤이면 슬슬 말해줘도 되지 않아?


뭘 말이야?


말쿠트, 예소드... 그리고 앞으로 올 신입 부원들도 널 굉장히 원망하고 있는 것 같던데.

이유가 뭘까 싶네.


...


나도 사정을 좀 알고 싶어서 그래, 앤젤라.

츠바이가 나섰다는 건, 우리 도서관이 하나에서 학교전설 등급으로 지정되었다는 소리야.

그러니 앞으로도 더 많은 접대를 해야 할 텐데,

그러려면 적어도, 네가 뭘 위해 이러는지는 알려줄 수 있잖아?


난... 자유를 원해.

이 도서관을 나갈 수 있는 자유, 살아갈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잊어버릴 수 있는 자유.

기계의 몸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이런 방법이 아니면 닿을 수 없는 목표이지.


그 목표를 위해 이런 거창한 일을 준비한 거였구만.


꼭 그것만은 아니야.

난 복수를 원하거든.


복수라...

뭐, 누구에게나 갚아주고 싶은 응어리는 있는 법이니.


그래서 지금처럼 명찰을 모으다보면, 자유와 복수의 끝에 닿을 수 있는 건가?


그렇게 믿고 있어.


힘든 여정을 걷고 있구만~

소감은 어때?


소감이라...

나쁘지 않아. 구 L동 지하에 처박혀있던 나날보다야 훨씬 낫지.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많은 걸 배우고 있으니까.


야, 망치! 

형광등 좀 작작 깨먹어!

대걸레 자루 높이 들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하냐!


쟤는 도서관 청소를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매번 어리바리야...


내가 얼른 치울게...


빨리 치워.

형광등은 내가 가져올 테니까.


...


뭐... 저런 소란스러운 녀석들에게도 배울 점이야 있지 않겠어?

혹시 내쫓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지?


아직은.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보다 앤젤라, 내가 정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츠바이에서 도서관에 찾아온 이유가, 뒤틀림과 도서관, 구 L동의 관계를 알기 위해서였잖아?


그랬지.


그러면...

이전에 일어난 백야, 흑주 사건도 연관 되어있는 거야?


...백야, 흑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


딱 남들 아는 만큼만 알고 있지.

구 L동 건물 꼭대기가 날아가더니, 빛이 3일동안이나 기둥처럼 솟아오른 사건이잖아.

그 후에 온 동네 전기가 맛이 가서, 4일 내내 학교 전체에 정전이 일어났었다고.

그래서 다들 수군거렸지. 분명 구 L동의 발전기에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 말이야.


...


하지만 그 사건이 뒤틀림과 연관되어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는데...

언제부턴가 생긴 그 뒤틀림들의 발생 시기가, 백야, 흑주 사건 이후라는 걸 감안하면...

썩 빗나간 추론도 아닌 것 같더라고.


네 말대로야.

적어도 그 사건은 구 L동과 연관되어있는 게 맞아.


그렇군.

그러면 구 L동에서 어떤 괴악한 짓거리를 했고... 그 결과가 뒤틀림의 발생이라고 봐도 되는 거네?


그렇지.

...표정이 이상한데.


내 표정 말이야?

언제부터 내 표정을 신경썼다고 그래, 앤젤라.

난 평소랑 똑같은데.


그런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백야, 흑주...

그리고 뒤틀림이라...


무슨 생각해, 롤랑?


아, 말쿠트.

예소드도 같이 있네.


당신은 넥타이를 똑바로 매지 않으면 혀에 가시라도 돋는 겁니까?


너무 그러지 마, 예소드

롤랑은 바빠서, 옷차림을 신경쓸 겨를이 없는 거야.


꼭 그런 건 아니지만... 흠흠.


무슨 생각을 했냐면, 너희와 앤젤라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

이쯤 되면 나도 궁금하지 않겠어?


 ...

말쿠트, 어떻게 하겠습니까.


롤랑도 알고 싶을 거야.

그리고... 이제는 알려줘도 된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제가 설명하죠.

롤랑, 당신을 아직 완전히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당신 말마따나 한 배를 탄 지금, 우리의 과거에 대해 당신도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드디어 말해주려는 거야?

이야, 기대되는데.


장난은 치지 말아주십시오.


미안.


과거, 모든 인간은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의 병?

상처나 트라우마를 말하는 거야?


상처도, 트라우마도 해당될 수 있겠지만, 그것들보다 본질적인 이형의 질병이 모두의 마음에 맺혀있다고 그 사람은 믿었습니다.

이름은 카르멘. 저희 세피라들은 카르멘에게 동조하여 모인 자들이었죠.

그리고 그 자는... 이 학교의 재학생이었습니다.


나나 너희에게는 선배님이겠구만.

마음의 병이라... 하긴, 그런 게 없는 게 더 이상한 세상이긴 하지.


카르멘은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 넘치는 이 세상을 바꾸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걸 위한 실험대로 이 학교를 택했지요.

마침 구 L동은... 사람의 마음과 같은 무형의 것을 형체를 띤 것으로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술이라... 각 동마다 가진 특이점이라고 부르는 그거?

그보다, 구 L동은 그냥 발전소가 아니었던 거야?


그렇습니다.

우리는 환상체로부터 에너지를 추출해 학교 전체에 공급했고, 동시에 카르멘과 함께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우리는 다치기도 했고, 쓰러지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우리의 고난이 결국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요.


전부터 궁금했었는데, 그래서 그 연구의 결과물이 뭔데?


당신도, 저희도 지금 착용하고 있는 것.

이 학교의 모든 학생들에게 한 벌씩 주어지는, 그 사람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하는 교복입니다.


...!


많이 놀랐어? 롤랑.


놀랐지.

이 교복이... 그 카르멘이라는 사람과 너희가 함께 만든 결과물이란 소리잖아.

이거, 남의 일이 아니었군.


정확히 말하자면, 교복 자체는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우리가 연구하던 건, 그 교복에 새로운 기능을 덧입히는 것이었죠.

그리고 앤젤라는, 그 교복에 내재될 내장 프로그램... AI였습니다.


잠깐, 정리 좀 해볼게.

원래 교복에 AI가 내장될 예정이었고, 그 AI가 사실 앤젤라였다고?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랜 연구 끝에 준비를 마쳤고, 이제 그 성과를 빛을 만들어 학교 전체에 뿌릴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앤젤라는 그 빛을 탈취하려 했습니다.


너희도 놀랐겠구만.

그저 교복에 탑재할 인공지능일 뿐이었는데, 그런 인공지능에게 뒤통수를 맞은 거잖아.


뒤통수를 맞은 건 사실이지만, 앤젤라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야.

앤젤라가 교복에 AI로서 내장된다면, 앤젤라의 자아가 포맷될 예정이었거든.

자아를 잃지 않으려면, 앤젤라로선 빛을 탈취하는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 점은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말쿠트, 앤젤라가 우리의, 그리고 카르멘의 의지를 모조리 물거품으로 만든 것도 사실입니다.

게다가 지금 앤젤라는 우리를 조종하고 있지 않습니까.


잠깐만.

조종?

이전부터 궁금했는데, 너희는 왜 앤젤라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이 학교의 교복은 한 학생에게 한 벌씩만 지급되잖아.

그래서 AI 내장 기능을 실험하기 위해선, 우리의 교복을 실험용으로 써야만 했어.

세피라들이 입고 있는 교복는 전부 실험에 쓰였던 것들이야.


그 말은, 지금 너희 교복이...


맞아, 앤젤라와 연결되어있어.

빛을 앤젤라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앤젤라는 우리 세피라들의 교복을 원하는대로 조종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앤젤라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처지이죠.

왜 그러시죠? 이런 저희의 처지가 우습습니까?


우습다니. 그런 게 아니야.

그런 일이 있었다니, 상상도 못 해서 얼떨떨할 뿐이야.


...


앤젤라는 세상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앤젤라의 탓이 아니죠.

우리라고 해서 잘 아는 건 아닙니다만, 적어도 앤젤라에게 우리가 아는 만큼은 가르쳐줄 수는 있을 겁니다.


이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앤젤라를 설득할 수 있다면...

어쩌면 앤젤라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시간을 들여 설득하여, 앤젤라가 지금 가지고 있는 빛을 다시 뿌려주기만 한다면... 

늦게나마 카르멘의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될 겁니다.


지금 앤젤라가 빛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뭔데?


그 빛이 있기 때문에, 앤젤라는 교복 내장 AI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거야.

반대로 앤젤라가 빛을 포기한다면, 앤젤라는 자아를 잃고 교복에 내장된 AI로 쓰이게 되겠지.


그 말은, 카르멘이라는 사람의 목표를 이루려면 반드시...

앤젤라가 자아를 잃고, 교복에 갇힌 신세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군. 


그런데 그 AI라는 게 꼭 필요한 거야?

지금도 AI 없이 잘만 쓰고 있는데?


교복의 본질적인 용도는 영혼 치료에 있으니까요.

그걸 위해 필요한 건 교복, 그리고 그것을 쓸 수 있게 해줄 고등한 AI라고 카르멘은 말했습니다.


지금 남의 교복을 훔치거나 마음대로 개조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도... 전부 AI 기능이 누락되어있기 때문이야.

처음부터 그걸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들었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였구만...

알려줘서 고마워, 예소드. 말쿠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혼절)


젠장...

결국 기절하고 말았군. 


기절해도 싸지.

약속의 소중함을 모르는 놈 따윈 말이야.


이해해, 경미.

그래서 어쩔 건데? 정말 도서관에 갈 거야?


그래.


가서 뭘 어쩌려고?


우리가 이 자식과 한 거래는, 엄지에게 바칠 상납금을 대납해주는 대가로 뒤틀림에 대한 정보를 얻어다주는 거였어.

그 상납금은 월터가 츠바이 윗선에 신청해서 받아낼 예정이었지.

하지만 월터 이 자식이 명찰을 잃고 츠바이에서 쫓겨난 바람에, 상납금을 못 받게 되었잖아.

그러니 다른 데에서 충당해야지.


그래서, 도서관에서 뜯어내겠다?


그래. 도서관으로 가서, 츠바이 녀석들이 빼앗겼다는 명찰을 모조리 쓸어오면 되는 거야.

그것 말고는 급하게 돈 나올 구멍이 없잖아.


나쁜 발상은 아닌데...

우리가 갔다가 월터 이 새끼처럼 당해버리면 어쩌려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야.


그건 그렇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여기인가.


굉장히 큰 걸. 듣던 대로야.


들어가자고.


이봐, 경미. 

너무 서두르는 거 아니야?


됐고!

들어가기나 하자고!


마음만 앞섰다간 괜히 망치는 수가 있어.

조금 진정하고...


어.


...어허?

이게 누구야.


경미.

네가 여긴 웬 일이냐.


우리 피트 선배님이야말로 왜 여기 계실까?

손가락에 들어가겠다는 꿈은 포기했나봐?


정확히 말하자면, 그 꿈의 끝은 손가락이 되는 거였지.

뭐, 지금은 오래된 이야기지만.


...경미, 이 사람 알아?


알지. 

입학한 지 닷새만에 교복을 삥뜯기고 뒷골목 생활 시작했다던 피트 선배잖아.

지금은 도서관의 노예라도 된 모양이야.


피트~ 아직 멀었어?


야, 경미. 닥치고 있어봐.

미안, 지정사서님! 

볼일이 있어서 그런데, 조금만 기다려줘!


급한 거면 천천히 와~

형광등은 나중에 갈아도 괜찮아~


...


...왜 그런 표정이야?


여기에서 일해?


그래. 잠도 잔다.


잠도?


그 뿐일까? 밥도 먹지. 

피에르랑 잭이 기가 막히게 해줘.


상납금은...


물론 안 내지.

누구처럼 상납금 못 내서 조급해질 필요도 없고 말이야.


하, 그래봤자 총알받이 신세겠...


손님 접대는 롤랑이란 녀석이 다 해준다.

가끔 우리가 나설 때도 있긴 한데, 흔한 건 아니고.

사실 제대로 된 단체전은 츠바이 때 처음 했어.


...


경미, 너 설마...


디노,

살아날 구멍을 찾은 것 같다.


뭐, 들어오고 싶다면 와도 될 거야.

적어도 문전박대는 안 당할 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경미.

조금만 신중해지는 게 어때?


신중?

지금이 앞뒤 잴 때인가?

곧 있으면 엄지에서 카포들을 보낼 거야.

차라리 신 L동에 들어가는 게 낫다고.


그래,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군.

하지만 그래도, 저 선배같지도 않은 놈의 말을 믿는 건 너무 위험해.


완전히 믿는 건 아니야.

그래도 말 정도는 해볼 수 있겠지.

(벌컥)


환영합니다, 손님.

저는...



됐고!


...?


여기에 눌러앉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


하아...


자자, 친구들.

반가워, 난 롤랑이야.

명찰은 있어?


있어!


우리한테 넘겨줘. 그러면 눌러앉게 해줄게.

아, 물론 맡아만 두는 거야. 접대할 일 있으면 돌려줄 거고.


...


잠깐만, 경미.

난 디노라고 한다. 얘는 경미.

다짜고짜 와서 미안한데, 정말 명찰만 맡겨두면 여기에서 지낼 수 있나?


안 될 것도 없지.

피트, 레니, 망치, 핀, 피에르, 잭...

얘네 전부가 명찰을 맡기고 여기에서 지내고 있다고. 


그럼... 들어가도록 하지.

입부 신청은 어디에서...


(스윽)


워워.

입부니 어쩌니 하지 마. 이건 사실상 고용 관계니까.

앤젤라, 첫 인상이 나쁜 건 알지만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이번만 참아봐.


...

청소는 제대로 해주길 바라.


약속하지.


...믿어도 되는 거지?


이 녀석 입에서 약속이란 말이 나왔으면, 그 말은 믿어도 돼.

별명이 특색 회색약속이거든.


(헛웃음)



[버림받은 개 접대 완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과연 이 시리즈는 엔딩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

개념글 달면 다음편 씀.




아래는 차회 예고.



아, 더워.

땀난 것좀 봐.


그러게 W동 셔틀 버스 타자니까.

티켓도 받아놓고 이게 뭐예요.


안 탄 게 다행이야, 바보들아...

숙취에 차멀미까지 겹치면 감당 안 된다...

으, 아직도 죽겠네.


그렇다고 무식하게 이 먼 거리를 걸어서...


그래도 도착했으니 됐잖아.

들어가서 물이라도 얻어마시자.

저 건물인가보네. 구 L동 위치라고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