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https://arca.live/b/lobotomycoperation/102161964


2화

https://arca.live/b/lobotomycoperation/102456326


진주만 공습.


진주만 공습이 벌어지고 미국이 본격적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을 때, 미 해군은 100여척 정도의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첫 번째 실전을 치룬 건 필리핀 루손 섬에 주둔하고 있던 제20잠수함전단(Submarine Squadron 20)이었죠.


제20잠수함전단의 로고(1941년 당시의 로고와 다를 수 있습니다)


진주만 공습 이후 일본군은 당시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을 향해 쳐들어갔는데, 이때 다수의 보급선단을 동원했죠. 그리고 제20잠수함전단 예하 28척의 잠수함들이 노린 건 바로 바로 그 보급선단이었고요.


배고프고 포탄 없는 군대는 필연적으로 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28척이라... 한 척이 수송함 한 척만 격침시켜도 28척이네요? 그럼 전과가 그쯤 나왔을까요?


아니요. 단 열두 척밖에 못 가라앉혔어요.


수.듄.


...다시 한 번 말해보시죠?


이번 건 나도 못 참겠소.


이스마엘과 이상은 합동으로 료슈의 대가리를 깼다.


아무튼 다시 설명으로 돌아가서, 필리핀에서 미군이 패배한 이후로 한동안 미 해군 잠수함들은 태평양에서 초계를 돌다가 이후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함대를 수색하는 임무에 투입되었는데, 이때 나왈급 잠수함 노틸러스가 일본군 함대를 발견하게 되었죠.


나왈급 잠수함 2번함, SS-168 USS 노틸러스.


당시 노틸러스 함은 공고급 순양전함 기리시마를 조준하고 어뢰 두 발을 발사했는데, 한 발은 빗나갔고 한 발은 명중했는데 불발이 나버렸어요.


하지만 노틸러스를 쫓던 일본 구축함 아라시의 항적 덕에 승리할 수 있었으니 전화위복 아니겠소?


그건 그렇네요.


아니 근데, 필리핀에서도 고작 열두척 밖에 못 가라앉히고, 순양전함도 못 가라앉히고. 도대체 왜 이런 거에요?


아, 그게... 당시 미 해군의 어뢰에 문제가 많았거든요. 이른바 '어뢰 스캔들' 이라고 불리죠.


'스캔들'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면 꽤 큰 사건이었나 보네요?


뭐, 그렇죠. 어뢰 스캔들만 없었더라도 개전 당시 필리핀의 일본 수송선을 대부분 격침시킬 수도 있었다는 말도 있었으니까요.


그 정도야? 도대체 왜 그런 어뢰를 만들었대?


그게, 하필 구식 마크 10 어뢰를 대체할 어뢰를 개발할 시점이 대공황 시기였거든요. 군사 예산이 팍 쪼그라든 상황에서 신형 어뢰에 투자할 자금이 모자랐어서 제대로 개발이 진행되지 못했어요.


게다가 잠수함용 마크 14 어뢰뿐만 아니라 항공기용 마크 13 어뢰, 구축함용 마크 15 어뢰까지 한꺼번에 같이 개발하다 보니 어뢰 하나하나에 투자할 예산이 더더욱 적어졌소. 이런 상황에 실전 테스트도 제대로 못해서 결함을 제대로 캐치하지 못했던 거요.


그렇게 잠수함에 배치된 마크 14 어뢰는 쓰레기 그 자체였죠. 심도(쉽게 말해 바닷속에 어뢰가 가라앉은 깊이)를 유지 못해서 어뢰가 배 밑으로 그냥 지나가질 않나, 맞긴 맞았는데 폭발이 안 일어나서 제대로 피해를 주지 못하질 않나...


심지어 마크 14 어뢰의 마크 6 자기감응신관(기폭 장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였소. 어뢰가 배에 맞으면 격침(폭약의 내관을 때려 폭발시키는 침)이 작동하지 않거나 심지어 부러지기도 하고, 자기감응신관이라는 이름처럼 지구 자기장의 변화를 감지해 폭발도록 개발했는데도 자기장 변화의 감지도 못해서 일찍 터지거나 늦게 터지는 일도 많았소.[2]


그리고 그런 문제점을 현장의 함장들이 보고했는데도 상층부는 오히려 현장 지휘관들한테 책임을 돌려버렸고요.


그뿐이면 다행이게요. 이건 전기 배터리로 추진하는 마크 18 어뢰 이야기긴 한데, 어뢰가 아예 한 바퀴를 돌아와서 발사한 미국 잠수함을 가라앉혀버리기도 했죠.[1]


그러니 전쟁 초장의 그 말도 안 되는 전과가 나타난 거였구려.


병기는 실전으로 그 성능을 입증하는 법이니 말이오.


일이 이렇게 되니 일선 잠수함 함장들은 차라리 구형이 더 나았다며 구식 마크 10 어뢰를 잠수함에 싣고 출격하기도 했고, 수병들은 어뢰의 추진체가 에탄올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아예 어뢰의 에탄올을 몰래 빼서 술처럼 마시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죠.


결국 이 문제가 잠수함대 사령관 찰스 록우드 제독과 태평양함대 사령관 체스터 니미츠 제독에게까지 보고되고 나서야 어뢰 성능이 개선될 수 있었죠.


2차 대전 당시 미 해군 잠수함대 사령관, 찰스 록우드 제독.


태평양 전쟁 당시 미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관 체스터 니미츠 제독.


그럼 그렇게 어뢰가 개선되었으면 이제 잠수함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게 될 수 있었겠구려?


네. 태평양 전쟁에서 미 해군 잠수함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게 된 첫 사건은 1944년 6월 19일에 벌어진 필리핀 해 해전이었는데, 이때 가토급 잠수함 카발라가 일본 해군 항공모함 쇼카쿠를, 자매함 알바코어가 항공모함 다이호를 격침시키는 것으로 길고 길었던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왔죠.


가토급 잠수함 USS 알바코어.


가토급 잠수함 USS 카발라.(단 이 모습은 2차 대전 이후 개조된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후 벌어진 사이판 전투에서 사이판 섬을 미군이 탈환하면서 보다 일본 가까이에서 잠수함이 출격할 수 있게 되면서, 1944년 7월 이후 미 해군 잠수함들은 2차 대전 초기 독일의 유보트 못지 않은 화려한 전과를 올리게 되죠.


근데 고작 섬 하나 찾은 게 잠수함에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사이판 섬을 탈환하기 전에 미 해군 잠수함들은 호주나 하와이에서 출격해야 했소. 그러니 일본 연안에서 작전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았소. 멀리 있는 곳에서 출발할 수록 그만큼 연료나 식량을 더 소모해야 하니까.


하지만 사이판 섬을 탈환하면서 보다 일본 가까이서 작전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소모되는 연료도, 식량도 줄일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리하여 1944년 한 해 동안 미 해군 잠수함들이 격침시킨 일본 군함들과 상선들은 자그마치 500척 이상이었죠.


비단 상선이나 군함 격침 뿐만 아니라 망망대해에 떨어진 조종사들을 구조하는 임무도 맡았었소.


하지만 태평양 전쟁기 미 해군 잠수함의 최고 전과는 뭐니뭐니해도 1944년 11월 28일에 벌어진 전투였죠. 당시 발라오급 잠수함 USS 아처피쉬는 세토내해 주변을 초계 중이었는데, 당시 세계 최대 크기의 항공모함 시나노를 발견하고 격침시켜 단번에 7만 톤의 전과를 얻었죠.


발라오급 잠수함 USS 아처피쉬.


항공모함 시나노.


그렇게 전쟁이 끝날 동안 미 해군 잠수함들은 약 500만 톤의 총 격침 전과를 올렸어요. 물론 41척의 잠수함이 격침당하는 피해는 있었지만, 이 정도 교환비면 어마어마한 수준이죠.


그리고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도 미 해군은 새로운 잠수함 개발과 기술 개발에 열을 올렸죠. 새로운 적, 소련이 등장했으니까요.

---------------------------------------

[1]가토급 잠수함 USS 툴리비, 발라오급 잠수함 USS 탱. 툴리비는 앞서 말한 마크 14 어뢰에 격침당했습니다.

[2]다만 이 문제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는 게, 자기감응신관을 테스트한 장소의 자기장과 태평양의 자기장이 달랐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인데 당시에는 아무도 지구의 자기장이 장소에 따라 다르다는 걸 몰랐습니다.